이계남녀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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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3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22화
122 모여드는 사람들(1)
무림맹에서는 때아닌 소란이 일어났다. 제갈두휘를 추적해 갔던 집법부의 추적대가 전멸을 하고 한 명만이 살아 돌아왔기에 놀라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초췌한 모습의 비연신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을 마치자 무림맹주는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패를 노려보았다.
비연신보가 말하는 망인곡이 있는 지역은 무림맹이 지키는 사천과 마교가 점령한 감숙의 경계 지역에 가까워 중원의 무림인들을 보기 힘들지만, 공동파가 끈질기게 버티고 있기에 아직은 마교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곳이다.
그곳에서 서장의 라마승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지금 무림맹의 정보망이 얼마나 엉망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림맹주인 비학신검(飛鶴神劍) 형반정(荊潘情)이 아무 말 없이 슬쩍 눈을 돌려 군사인 제갈하벽을 보니 아들의 죽음에 대해 충격이 큰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군사…….”
그러나 그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제갈하벽을 보던 무림맹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집법장로를 보았다.
“집법장로.”
“예, 맹주님.”
“제갈 공자의 죄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차가운 인상의 집법장로의 눈이 맹주와 제갈하벽의 얼굴을 오고 갔다.
하지만 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의 입장에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갈 공자가 끝까지 무림맹을 위해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소? 그럼에도 계속 죄를 묻는 것은 옳은 일이라 보기 힘들구료.”
맹주의 말에 결국 집법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제갈두휘의 잘못에 대해서 심증이 가지만 비연신보의 말을 들어보면 두휘가 무림맹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검은 패를 빼내어 넘겼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갈세가의 제갈두휘 공자를 무혐의로 통보하고 그가 무림맹과 백도무림을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리겠습니다.”
“고맙소이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제갈하벽이 고개를 숙였다. 집법장로의 말은 그의 아들의 명예를 살려주는 일이었고 제갈세가의 명부에 명예로운 죽음을 했음을 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군사, 망인곡으로 사람들을 보낼 수 있겠소?”
하지만 제갈하벽은 고개를 저었다. 지속적으로 무림첩을 돌리고 있지만, 아직 마교의 세력에 비해서 부족하였기에 한쪽에서 인원을 빼게 되면 그 방면에 있는 문파들의 아우성이 무림맹을 몰아칠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맹주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백도 무림의 1갑자의 시간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바꿔버린 것이다.
1갑자의 시간 전에는 백도와 흑도가 혼재했었기에 무림맹의 깃발 아래 수많은 백도의 문파들이 단합을 했었고 각 지역에서 경쟁자 격인 흑도의 문파에 지지 않기 위해 정파 무사들의 무공실력은 높았다.
그러나 정사대전 이후 경쟁 상대가 같은 정파의 문파들이었기에 해가 갈수록 단결력이 약해져 갔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검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무공의 수준이 날로 떨어져 갔었다.
하지만 개방을 통해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마교의 총단이 있는 신강에 흑도의 후예들이 모여 복수를 위해 매진했고 마교의 기치 아래 백도 무림에 검을 겨누기 위해 일치단결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사대전 자체를 벌이면 안 되는 것이었어.’
2차 정사대전을 겪으면서 맹주는 그가 어렸을 때의 무림을 부쩍 자주 떠올렸었다.
그때의 무림은 백도와 흑도의 피를 부르는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왔지만, 문파 내에서는 활기에 넘쳐 있었고 제자들은 언제나 검법을 매진하고 있었다.
맹주가 중원의 한복판에 나타난 라마승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인영들이 있었다.
무림맹주는 눈앞에 나타난 노인들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공식적으로 무림맹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경비 무사들도 그들이 드나드는지도 확인을 할 수 없는 전대의 고수들이었다.
맹주가 알고 있기로는 무림맹의 어딘가에 그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고 하지만 모임에 소속되지 않은 자들은 알지 못해 언제 오고 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르신들이 어쩐 일이십니까?”
누구 한 명을 보아도 만만한 사람이 없다. 물론 무공은 자신이 더 높을지 모르나 배분은 자기가 낮았다.
무림이 무공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곳이라고 하나 그건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났을 때의 문제지 지금처럼 무림맹의 원로원과 같은 정심회(正心會)의 원로 고수들의 앞에서는 배분으로 놀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원래는 안 되는 일인지는 알고 있으나 집법무사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길이외다.”
“제갈 공자가 가져온 패를 어찌하실 생각이오?”
맹주는 곰곰이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눈앞의 사람들에게는 절대 말실수를 하면 안 되었기에 맹주의 말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말대로 마교에 사람을 보내어 이 패를 전해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중원의 한복판에 있는 서장의 세력들은 어찌할 생각이시오?”
“음… 아직은 뾰족한 방법이…….”
맹주가 머뭇거리자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듯 원로 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입을 열었다.
“정심회에서 서장의 세력을 묶어두겠소. 그 사이에 맹주는 그들에게 연락하여 해결책을 찾을 방도를 강구하기 바라오. 가능하겠소?”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무리 없이 처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검은 안개에 대해서 같이 협조하여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협조를 하다니?”
“그러니까…….”
맹주는 눈앞의 노인들에게 지금 산서성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 파견된 조사단이 마교의 조사단과 만났으며 특별한 충돌 없이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서로 협조하며 같이 다니고 있음을 알리자 노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랑환검. 현재 천기를 쥐고 있는 자이니, 이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소.”
그러자 맹주는 옆에 있는 개방의 장로에게 말했다.
“혈랑환검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소?”
“개방에서 첩자를 몇 번이나 보내어 보았으나 혈랑환검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맹주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서신을 써서 줄 터이니, 환영삼검(幻影三劍). 자네가 그것을 가지고 교주를 만나보기를 바라네.”
맹주의 다섯 직속 무사 중 한 명인 환영삼검 구인낙(瞿引洛)은 맹주의 명을 받아 자신의 수하 열 명을 이끌고 마교의 수뇌부가 임시 본부를 차린 청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림맹주의 친필서신을 품고 가는 것이니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본교에 무슨 볼일인가?”
교주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눈앞에 있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 정도면 혼자서 모두를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 교주님. 지금 산서의 사건에 대한 알려드릴 것이 있어 달려왔습니다.”
“산서의 사건에 대해?”
“예.”
환영삼검이 무림맹주의 친필서신을 넘기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교주와 장로들이 모두 침음성을 내었다.
만일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장의 세력이 마교와 무림맹의 대결을 틈타 다시 중원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을 생각하던 교주의 눈이 중손면인을 향했다.
“중손가주, 가주의 생각은 어떤가?”
“무림맹에서 보내온 패를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자 환영삼검은 쥐고 있던 검은 패를 주저함 없이 옆에 있던 마교의 무사에게 건네주었다. 다시 무사로부터 패를 넘겨받은 중손면인은 손안의 패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그의 외손녀와 아이네스가 연구하던 마법진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진법을 연구한 그로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손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검은 패가 두 여인이 연구하던 진과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든 중손면인은 다시 무림맹의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것이 그들에게서 뺏은 것이 확실하오?”
“그렇소.”
“그리고 망인곡을 이야기하였다고?”
“틀림없소.”
다시 패를 향해 눈길을 돌린 중손면인은 그것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여전히 기분 나쁜 기운이 손을 타고 들어왔다. 그것을 확인한 중손면인은 교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것은 확실히 전해주겠다. 또 다른 할 말이 있나?”
“그리고 조사단에 대해서입니다.”
“말하라.”
“조사단이 간세의 역할을 못 하게 한다고 보장하는 대신 그들의 요청에 대한 협조와 활동을 보장하고 그들이 이번 사건의 조사를 마칠 때까지 서로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였으면 한다는 것이 맹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싸움을 중지한다?”
“예.”
교주의 마음은 사건을 빠르게 해결을 하고 다시 혈채를 받기 위한 행보를 계속했으면 했다. 하지만 외부의 세력이 끼어들어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때 중원인들끼리 싸운다면 많은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혈채를 위한 행보라 해도 서장의 세력이 중원에 난입하는 것은 절대 방관할 수 없는 일이다.
‘1갑자의 시간을 기다렸는데 얼마간의 시간을 더 못 기다릴까?’
교주는 그런 생각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동의한다고 전하시오. 나 역시 조사단의 활동에 어떠한 협조도 아끼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교주님.”
중손면인은 손에 쥔 검은빛의 목걸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게 대체 무엇일꼬?”
그의 기억에 어디에도 이 목걸이의 재질과 문장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강렬한 호기심을 접고 중손면인은 뒤에 선 중손세가의 총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것을 빠른 시간 내에 소아에게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망인곡이라는 말도 잊지 않도록.”
“예, 가주님.”
총관은 고개를 숙이고서 그가 건네어 주는 두 개의 검은 패를 비단 보자기로 싼 후 나갔다.
“서장의 세력이라…….”
중손면인의 혼잣말이 그가 있는 방에 나직이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