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89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89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8권 - 14화
위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피에나는 렉턴을 쉽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피에나, 내가 프레타 성으로 되찾으려는 것만큼 지금 렉턴은 자신의 종족들을 지켜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렉턴에게 받은 도움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이쯤에서 보내주도록 하자.”
피에나는 위드를 빤히 바라보다 렉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까지도 렉턴은 보이지 않는 어쩌면 그에게만 보이는 어둠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렉턴.”
피에나의 음성에 렉턴이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고 싶어?”
크어어엉.
그렇다는 듯, 자신의 종족이 걱정된다는 듯 렉턴이 낮게 울었다.
피에나는 위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위드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 다시금 렉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돌아가.”
렉턴은 가만히 피에나를 응시했다.
“이제는 돌아가서 왕으로써의 의무를 다해.”
피에나가 렉턴의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만히 그녀의 손길을 느끼던 렉턴이 엎드려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트윈문 아래 황금빛을 뿌려대는 렉턴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황홀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신의 애완동물…….”
위드는 렉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 가도록 해.”
피에나의 말에 렉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낮게 크렁거리고는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고요한 밤을 깨지 않기 위해서인지, 왕의 품위를 나타내기 위함인지 렉턴의 발걸음은 조용하기만 했다.
어둠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렉턴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피에나는 서운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위드가 다가와 어깨를 감싸주었다.
“렉턴은 할 만큼 한 거야. 우리는 렉턴에게 고마워해야 해.”
“응.”
피에나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달이 참 밝지?”
위드의 말에 피에나는 고개를 들어 밝게 떠오른 트윈문을 바라봤다. 두 개의 달은 자신이 지닌 최고의 빛으로 어둠에 대항하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어엉!!
고요한 어둠을 산산이 뒤집어 놓는 거대한 포효가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단잠에 빠졌던 병사들은 저마다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고, 이곳저곳에서 소란스러움이 일었다.
위드와 피에나는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렉턴의 마지막 인사가 너무 요란한 것 같은데?”
“응!”
이후, 위드 일행들도 렉턴의 마지막 인사에 놀라 부산스럽게 막사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렉턴이 돌아갔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아주 진한 안타까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우라질! 어째서 렉턴이 내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난 거야!!”
그 중 후바의 안타까움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컸다. 여담이지만, 후바는 렉턴이 떠난 그날 밤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며 주정을 부려댔다. 물론, 그런 후바의 주정을 막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샤프였다.
***
연합군은 무려 반년이 넘는 시간을 레켄 영지 수복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수십 차례나 전투를 치뤘고, 대부분 이겼다고 하지만 그 진군 속도는 형편없을 정도로 느리기만 했다. 마치, 레켄 영지 전체가 몬스터들의 서식지로 변했다고 느껴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현재 프라디아 대륙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터를 통틀어 가장 치열한 곳을 꼽으라면 마땅히 레켄 영지 수복 전쟁터를 그 일순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병사들은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치가 떨릴 정도였다. 동시에 몬스터들은 막아도, 막아도 밀고 들어오는 연합군이 진절머리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레켄 영지 수복을 향한 전투는 또 다시 벌어졌다.
전투의 양상은 여느 때와 같았다. 연합군이 체계적으로 효율적인 전투를 벌이면, 몬스터들은 단순한 파괴 본능이 아닌 생존 본능에 매달리며 연합군을 막아섰다.
파괴 본능과 생존 본능의 차이는 분명 달랐다. 문제는 너무나 달라 전쟁을 치루는 연합군이 골머리를 썩 혀야 할 정도였다.
또 다시 전투는 반나절을 훌쩍 넘겼다.
레켄 영지에서의 최장 전투 시간은 8월에 있었던 전투로 낮밤을 모두 동원한 삼일 간의 전투였다. 당시 연합군의 희생자만 무려 5만에 이르렀을 정도로 전투는 치열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했었다.
그때 죽은 인간과 몬스터들의 시체는 작은 동산을 수십 개나 만들어 놓았고,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핏물들은 구역질나는 호수를 만들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대지는 비명을 내질렀고, 하늘은 참다못해 눈물을 흘렸다. 바람마저도 시체와 피 냄새를 씻어내지 못했을 정도로 당시 상황은 지옥이라 할 정도로 처참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생각했다.
자신이 선 이곳이 마계보다도 못할 것이라고.
전투는 또 다시 길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창을 내지르는 창병은 그날의 치열함이 더 이상 재연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창을 내질렀다. 방패를 들어 올린 방패병은 그날의 중압감이 온 대지에 내려앉지 않기를 빌고 빌었다. 대지를 내달리는, 몬스터의 시체를 짓밟으며 나아가는 기마병은 그날의 끈적끈적함이 몸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더욱더 세차게 말을 몰았다. 검과 도끼 등을 휘두르고, 내지르는 보병은 그날의 처참함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악을 쓰며 몰아내기에 급급했다.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들은 그날의 혼돈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기를 주문처럼 외우며 마나를 쥐어짜냈다.
이런 모든 이들의 바람이 하늘에 닿기라도 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전투는 서서히 마지막을 향해 치달았다. 그리고 어둠이 세상을 움켜쥐었을 때, 비명 소리도, 고함 소리도, 울부짖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2만 명의 병사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나머지 14만 명의 병사들은 꿀과 같은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야 말로 또 다른 전쟁의 양면성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짧은 한 단어로 표현한다.
이기적.
희생당한 자들을 대신하는 울음소리, 원한에 맺힌 절규보다도 자신의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터트리는 웃음소리, 승리 후 얻어낼 수 있는 이익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쟁의 이기적인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모두의 가슴 속에 싹터 있는 작은 불안감이 언제 열매가 될지 모른다는 것.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더욱더 이기심에 빠지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합군이 승리의 달콤함을 느끼는 사이 코노 왕국을 벗어난 10만의 병력은 살아있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콰아앙! 콰아앙!
“크아아아악-!!”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
“으악! 사…… 살려줘어어-!!”
퍼퍼퍼퍼퍽!!
“으아아아-!!”
“우와아아악!!”
좁은 협곡 사이에 거대한 바위 비가 내린다. 그 바위 비는 하늘을 비행하는 무수히 많은 검은 그림자들에게서 분리되어 떨어져 내렸다. 바위 비는 협곡 사이에 갇힌 코노 왕국 지원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고, 그것을 피하지 못하는 지원군들은 저마다 비명만을 내질렀다.
좌우로는 100미르(m)가 훨씬 넘는 절벽이 늘어서 있었고, 앞뒤로는 진군하는 10만의 코노 왕국 지원군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바위 비는 불과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려 2만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몰고 왔다.
바위 비에 맞지 않으려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살아 있는 동료를 넘어트리고 지나가려는 모습은 극한의 이기주의, 하지만 살아남고자 하는 처절한 생존 본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근차근 앞뒤로 물러나라! 우왕좌왕하면 죽음뿐이다!!”
대항조차 할 수 없는 기습이기에 방법은 오직 이 좁은 협곡을 빠져 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앞뒤로 꽉 막힌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길을 트는 것뿐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퍼억! 퍼퍼퍽!!
“끄아아악!”
“내 어깨에에에-!!”
“다리! 다리!!”
하지만, 협곡을 빠져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위 비를 피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먼저 협곡을 빠져나가려는 병사들은 이미 극한의 혼란 상태에 몰려 있었다.
이리저리 밀고, 넘어트리고, 부상당한 동료를 방패로 삼으면서까지 병사들은 살기 위한 발악을 해댔다.
“차례차례 움직여라! 차례차례 움직여!!”
“동료와 함께 움직여라!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
지휘관들이 제 아무리 목이 터져라 외쳐도 이미 극심한 공포에 몰려 버둥거리는 병사들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츄아악! 서걱! 서걱!
“히에에엑!!”
“혼자만 살겠다고 움직이는 놈들은 내 검에 먼저 죽는다!”
“꿀꺽!”
“여긴 전쟁터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결국은 지휘관들이 검을 뽑아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병사들을 제 손으로 죽이기에 이르렀다. 너무나 몰인정한 장면이었지만 그 효과는 분명했다.
조금씩 병사들은 안정을 되찾아갔고, 차근차근 협곡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쏟아져 내리는 바위 빗속에서 목숨을 걸고 전진한 결과 살아남은 병력은 5만을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한 순간에 절반의 병력을 잃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협곡을 빠져나오고 더 이상의 기습이나, 공격은 없었다. 그 한 가지 사실만이 살아남은 병사들을 위안해주었다.
“후우…… 이렇게 허무할 수가…….”
흙투성이에 온 몸이 피로로 찌든 한 지휘관은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Chapter 7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3만이란다.
10만이라던 병력이 고작 3만이란다!
지원군이 오고 있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내지르던 것도 까맣게 잊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원군이다. 10만의 지원군도 많다고 여길 수 없는데 고작 3만이란다!
니드먼 후작은 침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들은 그대로네. 중간 중간에 기습을 받아 3만의 병력밖에 남지 않았다네.”
“허!”
“그럴 수가…….”
지휘관들은 저마다 허탈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 중 코노 왕국의 지휘관들은 그 누구보다도 극심한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고작 3만 정도로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허튼 남작은 자신의 위치도 잊은 채,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연합군의 병력은 14만을 조금 넘는다. 코노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이전에 레켄 영지 수복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병력이 희생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4만의 병력에 3만을 보태어도 17만 밖에 되질 않는다. 아직까지 되찾아야 할 영지는 브리자스, 라네시, 프레타까지 세 곳이나 남아 있었다. 특히, 프레타는 말할 것도 없고, 라네시와 브리자스까지도 레켄 영지보다 어려운 전투를 벌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곳이었다.
그런데 17만의 병력 아니, 어쩌면 15만도 안 되는 병력으로 세 곳을 수복해야 한다니? 그건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코노 왕국의 또 다른 지원군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까?”
로이어 자작이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그렇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니드먼 후작이 아닌 코노 왕국 출신의 지휘관이 대신했다.
“저희 왕국은 아시다시피 엘프 숲을 영토로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르세르크 협약에 의해 타국의 침범을 잘 받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타국보다 병력이 부족한 국가입니다. 더 이상의 지원군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하긴, 코노 왕국의 군사력은 대륙 최하위이니.”
데일리 백작의 말대로 코노 왕국은 대륙 그 어느 나라보다도 군사력이 약했다. 땅덩어리가 가장 작은 오란 왕국과 비교해도 심하게 차이가 날 지경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군사력이 약한 대신 코노 왕국은 두 제국과 비교가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경제 강국이기에 굳이 군사력까지 키우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