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87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87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8권 - 12화
“젠장! 빌어먹을!”
허튼 남작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의 얼굴은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표정을 담고 있었으며, 걸음을 내딛는 걸음걸이 또한 거칠기 짝이 없었다.
“공작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공작의 작위를 내릴 수 있는 거란 말이야! 다른 나라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우습게 여길지!”
준남작에서 공작으로 단번에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는 것,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공작이 되어버렸다는 것, 어느 것 하나도 허튼 남작은 인정할 수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겨 사르토 백작의 막사에 도착한 허튼 남작. 막사 안에는 주인인 사르토 백작을 비롯해서 다섯 명의 인물들이 각각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니드먼 후작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귀족 지휘관들로 공통점이라면 위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네도 왔나? 어쨌든 저곳에 앉도록 하게.”
“예.”
답답한 마음에 사르토 백작을 찾았던 허튼 남작은 자신보다 먼저 그를 찾은 이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허튼 남작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멈추었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내가 말했다시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오.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불만을 터트려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는 거요.”
“그렇다고 이대로 고분고분 카일러 그자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거요?”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오!”
“나 역시 마찬가지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평민 출신인 그에게 머리를 조아린단 말이오!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하오!”
강경하게 자신의 뜻을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허튼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소?”
사르토 백작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 역시 위드를 공작으로써 대우해주기 싫었다. 하지만, 계급 사회에서 자신이 그 철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막말로 표현해 당장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귀족이 자신을 무시하더라도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위드를 공작으로 대우해줘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와 뜻이 같은 귀족들을 모아 국왕 폐하께 탄원서라도 올리는 것이 어떻겠소?”
알다크 백작의 말에 사르토 백작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사르토 백작은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다고 핀잔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자들과 이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군!’
페르만 왕국에 절실히 필요한 인재가 누구던가?
사르토 백작 자신을 포함해서 이곳에 모인 귀족들 100명이 있어도 위드 카일러 한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키에브 제국의 바하르테 황제가 직접 백작의 작위를 약속하며 망명을 요청했을 만큼 위드 카일러는 소중한 인재이다. 확실한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원한다면 공작의 작위도 일정 시간 내에 하사할 수 있다는 약속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런 위드 카일러를 상대로 자신들이 탄원서를 올린다고 그것이 얼마나 통하겠는가? 되려, 국왕의 질책이 이어지지 않으면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후로도 사르토 백작의 막사에 모인 지휘관들은 저마다 앞으로 어떻게 위드를 상대해야 할지 의견을 나눴지만 결과적으로는 괜한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Chapter 6 지원군은?
위드 막사 안.
위드의 작위 상승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기에 그 분위기는 대륙 그 어느 곳보다도 밝고, 유쾌하기만 했다.
“공작님! 공작님! 공작님!”
“루카 형님! 그만 좀 해요!”
“공작님! 공작님! 공작니이임-!”
얼큰하게 술에 취해 쉬지 않고 ‘공작님’이라고 떠들어대는 루카의 모습에 가일은 그만 좀 하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런다고 멈출 그가 아니었다.
“나 원! 살다 살다 저렇게 술주정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기뻐서 그러는 것이니 너무 그러지 마.”
가일의 곁으로 커닝이 다가왔다. 그 역시 취기가 맴도는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다.
“아무리 기뻐도 그렇죠. 공작님, 공작님, 공작님, 공작님! 이게 뭡니까? 무슨 애도 아니고 같은 말만 쉬지 않고 반복하다니!”
한심하다는 듯, 루카를 알고 있는 것이 창피하다는 듯 가일은 고개를 저었다.
“미친 놈 같지만 오늘 만큼은 내버려둬라.”
얼굴은 물론이고, 목과 머리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가스파조차도 루카의 행동을 이해하라고 말했다. 단순히 술에 취했기에 하는 말은 아니었다.
“가일.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정말로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영주님을 데리고 프레타 성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뭔지 알아?”
커닝의 말에 가일은 찡그렸던 얼굴을 펴며 진지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곁에 선 가스파는 그때가 떠오르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스파, 기억나?”
커닝의 물음에 가스파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 미친 새끼! 어디서 형님한테 반말이야!”
“시끄럽고, 기억나냐고?”
커닝이 재차 묻자 가스파는 위아래가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대답을 했다.
“잊을 리가 있겠냐? 아마, 그때의 그 빌어먹을 감정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멍청했지.”
가스파의 말에 커닝은 킥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남았던 건지. 킥킥!”
가일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는 듯 궁금함에 눈살을 찌푸리자 커닝이 알겠다는 듯 웃음을 멈추고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프레타 성에 들어섰을 때, 나나 가스파, 커닝, 그리고 죽은 다른 동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까였다. 정말로 처음 프레타 성에 들어섰을 때, 욕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영주님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지. 사실, 돌아가신 마로크 님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용병들은 프레타 성을 떠났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
말을 멈춘 커닝은 술잔에 가득 담긴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크으’하는 소리를 낮게 뱉어내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레타 성은 지옥이 따로 없었지. 한 달에 열 번도 넘게 침입을 하려는 몬스터들과 싸우는 건 그야 말로 살아있는 생지옥이었어.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반 년이 흐르고, 1년, 2년……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더군. 아마도 레드 트윈문이 뜬 날이었을 거야. 한창 몬스터들을 막고 있는데 갑자기 성벽에 아주 작은 꼬마아이가 올라서는 거야.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며, 그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성벽에서 내려가지 않았지. 그리고 전투가 끝났을 때, 그 꼬마아이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곤 삼일 만에 깨어났지.”
커닝이 다시 말을 멈추자 가만히 듣고 있던 가스파가 그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워줬다. 고맙다는 말을 하곤 입술부터 촉촉하게 적신 커닝은 이윽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그 꼬마아이는 몬스터들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벽에 올라와 그 치열하고 공포스러운 전투를 빠짐없이 바라봤다. 가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꼬마가 바로 영주님이다. 물론, 처음에는 마로크 님이 시키셨다고 했어. 영주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며 강제로 시키셨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영주님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번 전투가 벌어지면 성벽에 올랐다. 그때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가일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커닝은 빙긋 웃으며 가스파를 바라봤다. 어느새 루카까지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아니,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버티자! 지키자! 싸워서 이기자!”
우렁차게 루카가 외쳤다. 가스파가 시끄럽다고 타박했지만 그저 말 뿐이었다. 그 역시도 루카처럼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커닝은 그런 루카와 가스파를 한 차례씩 바라보고는 가일을 향해서, 아니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든 이들을 향해서 말했다.
“버티자. 지키자. 싸워서 이기자! 어떻게든 저 어린 영주님이 훌륭하게 자라나 우리를 이끌어 줄때까지만 버티자!”
“…….”
“20년만 버티자! 20년만 우리가 영주님을 대신해서 프레타 성을 지켜내자! 딱! 20년만! 20년만 싸워서 이기자! 그때부터 모든 병사들과 용병들은 하나가 되었다.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프레타 성에서는 신분의 차이가 없다.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가일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커닝은 루카를 바라봤다. 루카는 가스파를 바라봤다. 세 사람은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다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한 마음이 되어.
“영주님을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 우리는 모두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영주님과 프레타 성을 지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다! 그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여긴 지옥이다!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 곁에 있는 사람이 기사든, 용병이든, 병사든!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하는 사람이라면 격식 따윈 버려야 한다!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길 바라기보다는 내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세 사람은 그렇게 외쳤다. 순간, 막사 안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마로크 아저씨…….”
목이 잠긴 위드의 음성에 고요한 적막감을 깨트렸다.
“돌아가신 마로크 님이 우리들, 그리고 저곳에 있을 모든 동료들에게 한 말이다.”
커닝은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들어 막사의 지붕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것이 막사의 지붕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이 자리에는 우리 셋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 곳에 있을 동료들은 지금쯤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술통을 붙잡고 영주님의 일을 제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하고 있을 것입니다. 알고 계시죠, 영주님?”
위드는 물론이라는 듯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가스파가 씨익 웃었다.
“먼저 간 동료들도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아니요.”
위드가 단호하게 반박했다. 무슨 말이냐는 듯 가스파와 루카, 커닝이 바라보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레타 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며, 먼저 간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영주님…….”
“반드시 프레타 성은 되찾을 겁니다.”
위드의 다짐에 루카와 가스파, 커닝은 서로를 바라보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모습에 감동한 후바가 굵직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다른 이들보다 유난히 커다란 술잔을 치켜들며 외쳤다.
“나 위대한 드워프 후바가 반드시 돕겠다! 위드는 내가 인정한 유일한 인간이니까!!”
후바의 외침에 막사 안에 모인 이들이 하나, 둘 자신의 술잔을 들며 도움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지.”
가장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샤프였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이곳에 모인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
전쟁 시작과 동시에 커다란 승리를 거머쥐었던 카르타 제국은 이후로도 바이텐 제국의 유일한 원군인 수호 기사단과 비행 몬스터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따냈다.
초기 전쟁 양상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키에브 제국은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였고, 카르타 제국은 쉬지 않고 새로운 영토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그러한 전쟁 모습도 길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두 제국이 대등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에브 제국이 어쩔 수 없이 마법병단의 모든 전력을 쏟아 붓기 시작하자 수호 기사단과 비행 몬스터들의 활약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 결과 쉬지 않고 진군하던 카르타 제국군의 발걸음도 멈춰지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전쟁은 더 이상 일방적일 수가 없었다.
일진일퇴를 주고 받은 카르타 제국과 키에브 제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전투는 화려하고도 잔인하게 변해갔다.
그렇게 팽팽한 공방전을 벌이던 두 제국의 전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서 그 균형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란 다름 아닌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이 악에 물든 카르타 제국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전쟁의 칼날을 들이민 것이다.
다른 때라면 코웃음이라도 쳤을 카르타 제국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키에브 제국과의 전쟁만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설마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이 전쟁을 일으키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서부 병력 대부분을 제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 전선으로 대량 이동시켜 놓은 것이야 말로 가장 커다란 실수였다.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은 카르타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 선포와 동시에 일방적으로 카르타 제국령을 넘기 시작했다.
두 왕국이 자국의 모든 전력을 동원하였기에 구멍 뚫린 서부 전선이 속절없이 함락되는 것은 그야 말로 순식간이었다.
카르타 제국은 다급히 제국비상경계령을 동원하여 급하게 끌어 모은 병력을 서부 전선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급조된 병력으로 정예라 부를 수 있는 두 왕국의 병력을 막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 말로 눈 깜짝한 사이에 많은 영지를 빼앗긴 카르타 제국은 어쩔 수 없이 제국 전쟁에 동원했던 병력 중 일부를 급히 서부 전선으로 돌려야만 했다.
그러한 기회를 놓칠 키에브 제국이 아니었다.
키에브 제국은 자신들이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대단한 활약을 펼친 두 왕국으로 인해 흔들린 카르타 제국에 대대적인 역습을 펼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수호 기사단이 이리저리 날뛰어도 대대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수십 만의 병력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키에브 제국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고용한 마법사 길드의 마법사들의 활약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변해가던 제국 전쟁은 또 다시 변화하게 된다.
키에브 제국이 빼앗겼던 영지를 대부분 수복해갈 때쯤, 키에브 제국 남부. 바이텐 제국의 제국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란 왕국, 하라 왕국에 이어서 바이텐 제국까지 카르타, 키에브 제국 전쟁에 끼어들자 전쟁은 다시 한 번 급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 전쟁터는 바로 페르만 왕국의 레켄 영지였다.
때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뜨거운 전쟁터의 열기마저 휘감으며 병사들의 손과 발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11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