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83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83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8권 - 8화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도대체 사하라 황제가 무슨 목적으로 그들과 손을 잡았는지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하라 황제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이텐 제국과 손을 잡았을리는……!”
“바이텐 제국이라니! 그깟 놈들에게 감히 제국이라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 악마 같은 연금술사들이 세운 나라를 어느 누가 인정한단 말인가!”
“나라는 무슨 나라란 말이오! 그놈들에게는 나라라는 말도 입에 담기 부끄럽소!”
젊은 귀족은 자신의 말에 흥분해 소리치는 이들의 모습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가 이렇고 저렇고 해봐야 이미 제국의 황제인 사라하 황제가 인정한 사실을 어쩔 것인가?”
백발을 곱게 빗어 넘긴 노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방금 전까지 흥분해서 소리치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가득 떠오른 불만스런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쳇!’
그들의 모습에 젊은 귀족이 눈을 찌푸렸다. 만약, 자신이 같은 말을 했다면 당장 죽이기라도 할 듯 눈에 불을 켜고 소리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그들을 제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금발이 어지럽게 치솟고, 늘어진 흡사 사자의 갈기와도 같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육십을 훌쩍 넘었음에도 젊은이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장대한 체격을 지닌 그는 키에브 제국의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이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대치상황을 이룬 백발의 노인은 마찬가지로 키에브 제국의 공작인 레이시스 화이트리운으로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과는 젊은 시절 때부터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 말은 참으로 위험한 발언이 될 수도 있네. 자네의 말대로라면 우리 키에브 제국의 공식적인 발언을 카르타 제국에서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겠나?”
“무시할 만한 일이라면 무시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정치를 한다면 어찌 제국이 바로 서겠는가? 또한, 다른 왕국에서 우리 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나?”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자네의 말대로 카르타 제국의 사하라 황제의 말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제국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알면서도!”
사나운 눈초리에도 레이시스 화이트리운 공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여기 모인 것이 아니겠나?”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이 반박하려는 순간.
“황제 폐하 입장하십니다!!”
근위병의 우렁찬 외침에 대회의장에 모인 모든 귀족 대신들이 고개를 숙이며 좌우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자 그 사이를 여유롭게 걸어 들어오는 50대 후반의 중년인. 그가 바로 키에브 제국의 바하르테 퀘스찬 세르 드 헤라질 황제다.
눈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바하르테 황제는 상당히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하고 있었다. 걸음걸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에서 풍기는 여유로움은 세상에 우뚝 선 절대자의 느낌 그대로였다.
그런 바하르테 황제의 뒤를 한 중년 기사가 바짝 따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특이했다. 유일하게 홀로 허리에 바스타드 소드를 걸어 놓고 있었으며, 등 뒤로는 약 1.5미르(m)정도 길이의 하프 파이크(Half pike)를 매어 놓고 있었다. 또한, 바스타드 소드를 걸어 놓은 반대편 허리에는 다섯 자루의 더크(Dirk : 단검)가 나란히 검대에 매달려 있었다.
유일하게 무장을 한 기사인데 그가 바로 바하르테 황제를 가장 가까이서 보호하는 제로나이트다. 키에브 제국 최강의 기사이며, 오직 황제를 지켜내는 것만을 목숨처럼 여기는 존재로 이름도, 출생지도 알려지지 않은 호위기사다.
제로나이트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황제만을 보호하기 위해 키워진 존재로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제로나이트가 키워지고 있다.
퍼져나간 소문 중에는 수백 명의 아이들을 데려다가 같은 교육을 시켜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만이 제로나이트가 되어 황제를 호위한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분명한 것은 제로나이트는 키에브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내에서 가장 신비로운 기사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그런 제로나이트와 함께 대회의장을 가로질러 자신의 자리에 앉은 바하르테 황제는 전신에서 풍겨져 나오는 여유로움을 그대로 닮은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모두 모였나?”
바하르테 황제의 물음에 대회의장의 모든 귀족들의 입장을 기록하는 자가 대답했다.
“알레스찬 바벨 공작님께서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답에 바하르테 황제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효엘트 전선에 있어야 할 바벨 공작이 어째서 이 자리에 참석한단 말인가?”
“바벨 공작께서 급하게 상의드릴 문제가 있다고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오셨습니다.”
“급하게 상의할 문제?”
도대체 무엇을 급하게 상의하려고 전선에 있어야 할 바벨 공작이 수도까지 온다는 것인지 궁금한 바하르테 황제였다. 어쨌든 그 문제는 바벨 공작이 도착해야 알 수 있기에 바하르테 황제는 궁금증을 잠시 뒤로 미뤄났다.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카르타 제국이 이번에 아주 재밌는 일을 해버렸소.”
바이텐 제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을 그저 ‘재밌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바하르테 황제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걱정도, 긴장감도 없었다. 자신의 말 그대로 그저 재밌는 일을 구경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사하라 황제에게 내 뜻을 전했소.”
그 말이 끝나자 이곳저곳에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바하르테 황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벌써 사신을 보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사하라 황제의 뜻을 전해 들었소.”
이번에는 웅성대던 귀족들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신을 보낸 것뿐만이 아니라 벌써 그 답신까지 받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황제 폐하! 벌써 그리도 일찍 움직이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 귀족의 외침에 나머지 귀족들도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 바하르테 황제는 됐다는 듯 손을 휘 저었다.
“그것보다도 사하라 황제가 내게 아주 재밌는 말을 했소.”
바하르테 황제는 말과 다르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절대자의 여유로움도 이 순간만큼은 깡그리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잠시 시간을 끌던 바하르테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을 하는 그의 음성에는 불쾌감이 잔뜩 배어나오고 있었다.
“바이텐 제국과의 전쟁을 그만두라고 하더이다.”
“……!”
“……!”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또한, 계속해서 바이텐 제국과 전쟁을 한다면 대륙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군대를 출병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더이다. 하하하하!”
“허!”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미친 작자 같으니라고!”
여기저기서 귀족들의 경악에 가득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변해버린 것이다.
“그 말씀은 이미 카르타 제국이 그들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레이시스 화이트라운 공작의 차분한 물음에 바하르테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상황들을 살펴봤을 때, 분명 그럴 가능성이 높네.”
“미친 인간입니다!”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이 분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외모에 더해 얼굴까지 붉어지자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무섭게 느껴지는 그였다.
“그래도 그는 카르타 제국의 황제인데 그리 말해서 되겠나?”
말과 다르게 바하르테 황제는 사하라 황제가 미쳤다는 것에 크게 동조하는 얼굴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이 내뱉은 말에 시원해하는 얼굴 표정이기도 했다.
“폐하의 뜻은 어떻습니까?”
바하르테 황제는 레이시스 화이트라운 공작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나는 키에브 제국의 황제네.”
간단한 말이지만 그 의미는 명백했다. 결코, 사하라 황제의 말대로 고분고분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 그가 전쟁을 원한다면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바하르테 황제의 대답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이었다. 그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레이시스 화이트라운 공작의 걱정스런 말에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이 곧바로 받아쳤다.
“그렇다면 화이트라운 공작은 사하라 그 미친 인간의 말대로 이대로 물러나야 한다는 건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물러나야 한다고 한 적이 없네. 다만, 앞으로 벌어질 제국 전쟁에 충분한 대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네. 알다시피 우리의 상대는 카르타 제국뿐만이 아니라 남쪽의 바이텐 제국까지도 상대를 해야 하네.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고, 그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네.”
레이시스 화이트라운 공작의 말에 많은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타 제국만을 상대하는 것도 솔직히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그라다 왕국을 통째로 집어 삼킨 바이텐 제국까지 상대하려면 그 병력의 소모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최악의 경우 전쟁의 후유증으로 제국의 위엄을 이어나갈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회의장에서는 앞으로의 제국 전쟁에 대비한 효과적인 방법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많은 의견들이 나왔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 방법은 새로운 대륙 연합군의 창설이었다.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페르만 왕국에 주둔하고 있는 프라디아 대륙 연합군 제5군은 빠른 속도로 영지를 수복하며 바이텐 제국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이라면 제5군은 대다수 페르만 왕국의 병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코노 왕국이 적극적으로 지원 병력을 파견한다면 바이텐 제국과의 전쟁을 충분히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두 왕국이 바이텐 제국과 전쟁을 치루는 사이, 우리는 전면전으로 카르타 제국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이 연합하여 카르타 제국의 뒤를 친다면 이 전쟁 역시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바하르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방법은 그 역시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만큼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연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이 카르타 제국의 뒤를 칠 배짱이 있느냐입니다. 사실, 두 왕국이 힘만 합친다면 카르타 제국을 흔들어 놓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카르타 제국의 관섭을 받으며 지내온 그들입니다. 과연 우리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 노귀족의 말에 몇몇 귀족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이 아무리 힘을 합쳐도 카르타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20%도 되지 않았다. 그 만큼 두 왕국과 카르타 제국의 힘 차이는 컸다. 물론, 이번 경우는 키에브 제국의 전쟁에 그들이 도움을 주는 것뿐이지만 그들이 과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모험을 하려고 하느냐였다.
자칫 잘못 하면 멸망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이익을 약속해야겠군.”
바하르테 황제가 중얼거리고는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약속하도록. 그들이 점령한 영지는 향후 10년간 그대로 자신들의 땅이 될 것이라고!”
전쟁에서 빼앗은 영지를 그 당사자가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바하르테 황제가 말한 의미는 그 당연한 의미를 뛰어 넘고 있었다. 즉, 10년간은 그 영지를 지킬 수 있도록 키에브 제국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다.
이는 전쟁 이후, 혹시라도 카르타 제국이 잃은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오란 왕국이나, 하라 왕국과 전쟁을 벌이면 그에 맞춰 키에브 제국 역시 카르타 제국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의 입장에서는 10년간 막강한 후원군을 두게 되는 셈이다.
“그 정도의 조건이라면 오란 왕국과 하라 왕국이 결코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테르시스 포일러 공작은 확신하듯 대답했다. 그가 두 왕국의 왕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오란 왕국은 프라디아 대륙 내에서 가장 적은 영토를 지닌 나라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자국의 영토를 늘이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