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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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90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90화. 배후의 조종자 (7)
-용병들을 모아달라고요? 또 말인가요?
몇 달 전. 유렌이 7레벨에 올라 왕국에 돌아온 직후.
유렌은 자신의 마탑과 거대한 규모로 거래하고 있는 예루니스 상회의 회주, 샤디아를 불러 의뢰했다.
산더미 같은 마석과 황금을 그녀의 앞에 그득히 쌓아 놓은 채로 말이다.
-후훗. 못 할 것은 없죠. 이미 해봤던 일이기도 하고.
샤디아는 눈앞에 쌓인 보물들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이미 공국과의 전쟁 시절 용병단을 고용해 그에게 보낸 적이 있던지라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가장 큰 거래 파트너인 유렌.
그의 부탁이라면 공짜로 몇 번 해줘도 부족한데, 이런 거금까지 선뜻 주겠다고 하니 그녀로선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의뢰나 사업이 그렇듯, 이것 역시 그렇게 쉽고 만만하진 않았다.
-…예? 무슨 최소 조건이 이렇게 높은 건가요?! 이런 실력에, 이런 숫자면 말 그대로 전 대륙을 다 돌아야…!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어. 부탁하지.
-자, 잠깐만요!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걸 반년 안에 모으라고요?
샤디아는 붉은 머리를 찰랑이며 유렌에게 따졌지만, 곧 입을 다물고 미소를 지었다.
유렌이 마석과 금을 치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러니까 거절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면 저희 상회원들에게 너무 무리가 간다는….
-좋아.
유렌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자, 대량의 금과 마석이 샤디아의 눈앞에 추가로 더해졌다.
-!
-만약 모으는 기간을 줄인다면, 여기서 추가금을 더 주도록 하지.
유렌은 반짝거리는 황금과 마석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샤디아에게 추가타를 가했다.
-할게요! 최대한 빨리! 추가금이나 준비해주시죠!
샤디아는 활짝 웃으며 당당히 외쳤다.
기필코 성공해 그 추가금마저 몽땅 받아내리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뭐, 결론적으론 성공이로군.”
그렇게 옛 기억을 잠시 더듬은 유렌은, 엘프들을 하나씩 유인하여 처치하는 용병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찮은 하등 생물 놈들! 감히 이 몸을 속여서…!”
“뭐라는 거야? 이 귀만 징그럽게 긴 놈이.”
“자. 자 듣고 있지 말고, 일이나 하자고!”
함정에 빠진 엘프가 마력을 강하게 내뿜으며 둘러싼 용병들을 견제했지만 그것은 헛된 저항이었다.
파아앗-
유렌이 용병들에게 건네준 마도구가, 밝은 빛을 내뿜으며 엘프의 마력을 순간적으로 억눌러버린 것이다.
파아앗-
파아아앗-
더군다나, 그것을 특정 용병만 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엘프를 상대하는 용병 모두에게서 마도구가 빛을 뿜었다.
“어, 어떻게 그런 물건이 이렇게 많이?!”
엘프가 경악하며 놀란 것도 당연했다.
저것은 이미 백 년 단위 이전. 드워프가 엘프를 상대하기 위해서 그들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만들었던 마도구다.
하지만 그 드워프들은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학살당해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기에,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지하로 피한 드워프들의 후손이 재현한 물건을, 한 인간의 천재가 발전시켰지만 말이지.’
유렌은 경악한 엘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저 마도구를 이렇게까지 강화해서 양산하리라곤 유렌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천재 마도구사이자 자신의 선배. 베두인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터.
그랬다면 자신이 일일이 다 움직여 엘프들을 하나씩 처리해야 했겠지.
‘이러면 내가 굳이 내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쓰러트릴 수 있겠고.’
유렌은 바둥거리며 제압된 엘프를 바라보며 용병들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여라.”
“예엡!”
“자, 잠깐…!”
서걱-
목돈을 주는 고용주의 말에, 용병들은 아무 망설임 없이 엘프의 목을 쳤다.
“에잉. 그렇게 스스로 고귀하다 고귀하다 하더니만, 뒈지는 건 인간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그러게 말이야. 마력 좀 있고 예쁘장하게 생긴 것 빼면, 인간이랑 다를 것도 없겠구만! 아! 귀가 긴 것만 빼면 말이지!”
유렌은 그렇게 말하고 낄낄거리는 용병들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생각보다도 실력이 더 괜찮다.
물론 일대일로 엘프들과 싸우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당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4~5명 이상이 자신이 준 마도구를 들고 상대하면 한 명의 엘프 정도는 이렇게 어렵잖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손발도 잘 맞고.’
이들을 이렇게 전개해 도시에 숨어 들어와 있는 엘프들을 각각 처리하면, 놈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겠지.
게다가 놈들이 지금 자신으로 위장한 더미와 함께 있는, 마탑원들을 습격하러 간 상황이라 대응도 늦을 터이고.
“좋아. 그럼 건네준 마력 탐지기로 엘프들을 찾은 다음, 지금과 같이 유인해 하나씩 처리한다. 이상. 이의 있는 사람 있나?”
조용히 말한 유렌의 말에, 낄낄거리던 용병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들은 고위 용병답게, 어지간한 귀족 고용주에게도 크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편이었지만 지금의 고용주는 달랐다.
‘슈나이더 후작.’
그들 중에는 대륙에서 오지에 해당하는 곳에서 온 용병들도 상당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곳까지 오면서 무려 전설 속의 7레벨에 올랐으며 그가 여태껏 세운 엄청난 소문들을 들었다.
만약 단순한 소문, 카더라에 불과했으면 실력과 잔뼈 둘 다 굵은 용병들은 헛된 명성 따위에 굴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장난이 아닌데?! 무슨 눈빛이 저래?’
‘마치 사람이 아니라 드래곤을 보는 것 같군. 물론 드래곤 따윈 본 적도 없지만!’
하지만 그들은 유렌을 직접 본 순간 느꼈다.
그 소문과 명성은 오히려 실물보다 모자랄 정도라고.
“없습니다. 후작님.”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 귀쟁이 놈들을 하나하나 족치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손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강자를 잘 알아보는 실전의 강자들다운 행동이었다.
“좋아. 하지만 위험해지면, 도망쳐 이 마도구로 나를 부르도록. 쓸데없이 목숨을 버릴 필욘 없다.”
“옙!”
“감사함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목숨마저 신경 써주는 고용주에게 용병들은 감복하여 소리쳤다.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결국 용병은 용병. 그저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라고 인식되는 와중, 이렇게 신경을 써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유렌은 흩어지는 용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이제 공국 국경을 통과하고 있을 마탑원들을 생각했다.
‘이제 슬슬 그 쪽에게 엘프들이 들이닥치겠군.’
자신이라는 최고의 전력 없이 엘프라는 강적들이 기습하는 상황.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걱정에 빠져 달려가야겠지만, 이미 여러 준비를 마친 유렌은 자신의 동료들을 믿었다.
‘만약 ‘놈’이 나타나면 위험하겠지만. 내가 이쪽에 있다는 것쯤은 이미 놈도 알았겠지. 뭐, 만약 나타난다 해도 비장의 수단은 있으니.‘
그렇게 유렌은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따진 후에야, 용병들을 보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을 죽였던 대마법사 레니안과의 대결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 *
공국의 국경을 넘어선, 어느 한가한 들판.
본래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정반대였다.
채애앵-!
뻐걱-!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
퍼어엉-!
“이 자식들!”
“으아아악-!”
마법이 폭발하는 소리와 욕설과 고함 소리 등등.
담력이 약한 일반인이라면 듣기만 해도 무릎이 벌벌 떨릴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전투 현장의 한 가운데.
뻐어어억-!
“크억?!”
거대한 망치를 가슴으로 받은 엘프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고통과 경악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이다.
“대, 대체 어떻게…. 이런?!”
죽어가는 엘프는 지금 이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대략 30여 분 전.
족장과 그 ‘인간’의 명을 받은 30여 명의 엘프 부대는 인간들을 습격했다.
다만 원래는 족장에 이어 그 레니안이란 인간도 함께해 그 유렌이란 인간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유렌이 다른 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자신들만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상대는 그 핵심이라는 유렌 슈나이더가 빠진,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다.
조금 조심해야 할 대상은 소드마스터와 스피어마스터로 총 2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자신들이 충분히 가지고 놀다 죽여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들뿐.
게다가 같이 있다는 몇몇 인원들은 어디로 갔는지, 겨우 20명도 안 되는 주요 간부들만이 거기에 있었다.
즉 숫자도 자신들보다 더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저 빠르게 몰려가서 몰살하면 그만이니까.
‘그래야 했는데…!’
하지만 지금 상황은 무엇인가.
완전히 예상과 정반대가 아닌가.
“대장이 없다고, 아주 신이 나서 달려들더니만! 어림도 없다, 이 귀쟁이들아!”
“…노예로 부려 먹은 값은, 그대로 갚아주지!”
창과 검을 휘두르며 엘프들을 서걱서걱 베고 찌르고 있는 저 두 명의 마스터까지는 이해했다.
비록 예상보다 더 강하긴 했지만, 워낙 마스터란 존재가 워낙 알 수 없는 존재이다 보니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고.
어차피 저 둘에게 어느 정도 희생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고 온 것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다른 이들이었다.
“데르빗이시여! 이 망할 긴 귀들을 분지를 힘을!”
“하하핫! 그렇답니다! 데르빗이시여!”
뻐억-! 빠악-!
철퇴와 둔기를 휘두르며 엘프들의 팔다리부터 잘근잘근 분지르고 있는, 괴상한 신의 두 성직자.
“곧 나도 6레벨에 오를 거야~! 오를 거라고~! 아하하하~!”
왜인지 6레벨에 집착하면서, 짧은 검으로 엘프를 마구 난도질하는 미친 듯한 인간의 여마법사.
“우어어어어-! 얼마든지 오십쇼!”
그리고, 방금 자신을 한 방에 빈사 상태로 만든, 체격은 트롤보다 더 커다래 보이는 괴물 같은 인간 마법사까지.
다른 놈들도 놈들이지만 특히나 저놈들이 제일 날뛰고 있었다.
‘…이게, 다…!’
다만 아무리 저들이 생각보다 강하더라도, 이렇게 엘프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저들이 강해졌어도 마스터 둘을 제외하면, 엘프들과 간신히 1:1이나 가능할 실력이니까.
하지만 그걸 단체로 가능하게 하는 힘이, 저쪽에는 있었다.
‘저…년! 저년과 저 도구 때문에!’
가슴이 함몰되어 죽어가는 엘프의 원망 어린 눈이, 저 인간 놈들의 중심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금발의 여마법사에게 향했다.
【도구여. 마석의 힘을 다시 한번 받아들여, 오만한 그 종족을 강하게 짓눌러라!】
그 빌어먹을 금발의 마법사는 거대한 마석을 양손에 쥐면서, 언령 마법으로 자신의 발밑에 있는 커다란 마도구에 계속 마력을 쑤셔 넣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더 증폭되어라!】
거기에 청량한 목소리로 그 마도구에 증폭까지 걸자, 다시 한번 강력한 마력 제어가 근방의 모든 엘프들을 억눌렀다.
“끄윽!”
“으윽!”
“아악!”
그래서 현재의 엘프들은 본래의 힘을 채 절반도 내지 못하는 상황.
언제나 우위에서 하등 종족들을 학살했던 엘프들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자연스럽게 패닉과 공포로 몸이 더더욱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중으로 약화된 상태라, 그들은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빌어먹을 년이 쓰는 마석! 하나하나가 인간에겐 엄청난 보물일 텐데 저렇게 물 쓰듯 하다니. 게다가, 저 마도구는 대체…?!’
드워프의 원한이 담긴 백 년도 더 전의 물건이, 그의 자손들에게 전해져 그렇게 무시하던 인간의 천재에게 강화된 물건이었다.
본래라면 4~5명이 달라붙어 하나를 겨우 압도하는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저것 하나만으로 수십 명의 엘프를 모두 제어하고 있었다.
물론, 엄청난 마력이 들어가며 언령 마법의 대가인 아메리아만 사용할 수 있게 개조가 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런 비싸고 사용하기 힘들고는 엘프들이 알 바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저 괴물 같은 마도구는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었으니까.
‘이, 이대로라면 전멸이다. 어떻게든 도망치게 해야…!’
엘프는 죽어가면서도, 전멸을 피하려 최대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남은 목숨으로,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동포들을 탈출시킬 생각이었다.
‘…저쪽. 저쪽이 조금이나마 느슨…어?’
겨우 느슨한 방향을 찾아 마지막으로 눈이 반짝거렸던 엘프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아!”
그리고 절망 어린 비명을 뱉었다.
그 느슨한 쪽에, 수백 명의 인간 놈들이 진형을 이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저들과 함께 출발했지만, 어느새 모습을 감췄던 약한 축의 마탑원들이었다.
“음? 아직 살아있었음까? 역시나 보기보다 튼튼함다!”
우지직-
다만 절망 어린 엘프의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곧바로 눈치챈 레이칸이 다가와 그 커다란 발로 밟아 버렸으니 말이다.
“한 놈도 살려두면 안 됨다!”
레이칸은 그렇게 커다랗게 소리치며 다음 엘프들에게 달려들었다.
최대한 한 놈이라도 더 줄여서, 이 둘도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 *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공국의 수도. 페라안 근방의 한 깊은 산.
여전히 온몸이 깊은 화상 흉터로 뒤덮여 있는 족장 레이티아가 경악 어린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죽는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 많은 수가 남지 않은 그녀의 동족들이, 마치 지푸라기가 타는 것처럼 쉽고 덧없게 사라지고 있었다.
레이티아는 인식 마법이 걸린 엘프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공포에 질려갔다.
“흐음? 혹시 엘프들이 죽어가고 있는 겁니까?”
그런 그녀를 보며, 푸른 머리의 대마도사 레니안은 안타까워하며 말을 걸었다.
“이런. 그게 함정이었나 보군요. 이거, 참 안타깝습니다.”
“….”
적절한 슬픔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담긴 그의 말.
엘프의 민감한 감각은 그 감정을 거짓이라 판단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레이티아는 참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모든 감각이 저 감정은 사실이라고 느끼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위화감이 조금씩 느껴졌던 것이다.
“너…! 네가 분명 틀림없는 작전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녀는 눈에 불을 켜며 레니안에게 따졌다.
이번 작전은 그가 짠 것이었으니까.
“예. 제가 짠 계획이지요. 그 가운데 엘프분들이 이렇게나 희생되고 있다니. 참 안타깝기 그지없군요.”
레니안은 슬픈 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모두 동의하고, 엘프들을 보내신 것은 바로 당신이잖습니까. 결국은 모두의 잘못 아니겠습니까?”
“…!”
그의 말에 레이티아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이였다면 권위나 힘으로 눌러버렸을 테지만, 이 인간을 상대론 어림도 없었고.
“전력은 이쪽이 꽤나 위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역시, 똑똑하고 경험이 많습니다. 전장에서 오래도록 있던 자답군요.”
“…상대를 칭찬할 때야?”
“하하. 그건 아닙니다.”
레니안은 살짝 웃으면서 부정했다.
조금 전 슬픈 감정이 담겨있던 대화는 어느새 잊힌, 너무나도 빠른 감정의 변화였다.
“이미 실패한 제가 다시 작전을 내도, 의미가 없겠죠. 대응하는 것도 아마 그쪽이 위일 테니까요.”
“…그래서?”
“전 저대로 알아서 하도록 하죠. 당신들 엘프들은 각자 알아서 해주시길.”
“!”
단언하는 듯한 그 말에, 레이티아는 소름이 돋았다.
그마저 사라진다면, 현 상태에서 균형은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자, 잠깐…!”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을 버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레니안은 싱긋 웃으면서, 무언가를 소환해냈다.
“!”
엘프라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어떤 비뚤어져 있는 커다란 씨앗을.
“자. 이걸 쓰면 이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래 봬도 세계수에 기생한, 그 씨앗이니까요.”
“….”
“게다가 줄어든 엘프들의 수도 그것으로 어떻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뭐,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레니안은 그 씨앗을 건네주고 입에 아주 작은 비웃음을 담은 채, 그대로 마법을 써 사라졌다.
슉-
은발의 엘프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그가 사라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그러더니, 곧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에 들린 괴상하게 생긴 씨앗만을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죽음과 놈에게서의 승리. 그리고 종족의 미래가 담긴 그 씨앗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