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16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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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16화 (완결)
216화
11장. 회귀
1
자금성의 금빛 지붕이 시뻘겋게 물들 무렵, 구룡상방의 정문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콰당!
그들은 반쯤 닫힌 문을 부수듯이 밀치고 들어서더니, 누가 막을 새도 없이 안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대여섯 명의 호장무사가 갑작스런 소란에 뛰어나왔다.
“누구냐!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그러나 들어선 자들 중 전면에 선 사람들의 복장을 본 그들은 뱀이라도 밟은 듯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금의위가 무슨 일로……?”
어깨를 떡 편 채 앞장서 걷던 두충이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물렀거라! 황상의 명을 받잡고 오신 수천호령사 어른의 행차시다!”
두충의 핏대 올린 목소리에 구룡상방의 건물이 들썩거렸다.
막아섰던 자들이 왕방울처럼 커진 눈으로 두충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금의위만도 두려움의 대상이거늘, 수천호령사라는 권위의 무게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나온 자들까지, 수십 명의 무사들이 망연한 눈을 파르르 떨며 정신없이 물러섰다.
그러자 두충의 전면으로 한줄기 대로가 뻥 뚫렸다.
턱과 가슴을 쑥 내밀고 사방을 둘러보던 두충이 씨익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본인은 금의위의 백.호.장! 두충이라 한다! 죄인 하주령과 하씨 일가족은 속히 나와 무릎을 꿇어라!”
천둥벼락이 구룡상방을 휩쓸었다.
금의위 북진무사 휘하 삼십여 명의 위사가 천호장 육두강의 지휘 아래 수십 채의 건물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구룡상방 전체가 뒤집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르르 밀려 나오는 자들 중에는 일반 일꾼도 있었지만, 무사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두충의 일갈이 이어졌다.
“반항하는 자들은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모두 도검을 풀고 명을 기다려라!”
그 말에 누가 감히 저항할 것인가.
간혹 자신의 무공을 믿고 저항하려던 자들은 진용을 따라온 천탁의 무사들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무릎이 꺾였다.
단 이각 만이었다. 구룡상방의 앞뜰이 신음 소리로 들끓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진용은 하군명이 끌려나오자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진용을 알아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기회만 보고 있던 두충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딱!
“머리 숙여!”
“크윽!”
그는 강제로 숙여진 머리를 차마 들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진용이 답했다.
“반역의 무리들에게 자금을 대준 죄!”
짧지만 확실한 죄목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죄는, 자신의 여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들어선 지 반 시진, 어둠이 북경의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구름이 끼어선지 별빛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구룡상방의 넓은 뜰은 수십 개의 횃불로 인해 대낮처럼 밝았다.
“깔깔깔깔! 이히히히히!! 하늘이 왜 이리 밝지? 아버지, 오라버니, 우리 탁 오라버니는 어디 갔나요? 오호호호!”
불빛이 일렁이는 뜰에서 하주령의 넋 나간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만 해도 악을 쓰며 욕을 퍼부었다.
진용은 그녀를 짐승 다루듯이 두들겨 팼다. 아마 초연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의 손에 맞아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고, 대신 미쳐버렸다.
진용조차 마안으로 진실을 가리지 않았다면, 분명 가짜로 미친 척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언니, 제가 누군 줄 알겠어요?”
초연향이 얼굴을 가린 면사를 제치며 물었다.
하주령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짝,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 향 동생! 어디 갔다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초연향이 이를 악물고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왜요?”
하주령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오호호홋! 그야… 죽이려고!”
그러더니 눈을 번들거리며 초연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용이 막으려 하자 초연향이 가만히 손을 저어 말렸다.
그녀는 달려든 하주령의 두 손이 멱살을 움켜쥐는데도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네년 때문에 탁 오라버니가 내 곁을 떠났어! 다 네년 때문이야! 네년만 아니었으면 오라버니는 절대 떠나지 않았을 거야! 돌려줘! 탁 오라버니를 돌려줘!”
하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초연향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초연향이 꿈쩍하지 않자 하주령은 철퍼덕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제발 돌려줘, 응? 살려줄게. 살려줄 테니까, 제발 탁 오라버니를 돌려줘……. 흑, 흐흑…….”
초연향은 미쳐 버린 하주령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가요. 마무리는 진 장주님에게 맡기면 될 거예요. 하아…….”
끝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처연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막상 하씨 일가의 비참한 몰락을 보자 시원하다기보다는 답답했다. 더 보고 있어봐야 답답함만 더할 것 같았다.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지 않겠소?”
진용의 말에 초연향이 고개를 저었다.
“죽여서 얻을 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가요.”
진용은 고개를 끄덕이고 육두강을 바라보았다.
“육 천호장님이 진 장주과 함께 마무리 지어주세요.”
“알겠소이다, 수천호령사.”
“갑시다, 향 매.”
2
그해 완연한 가을의 끝 무렵, 두 노소가 오색단풍이 절정에 달한 팔공산을 나란히 올랐다.
“할아버지가 직접 단죄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살려두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아들이 남궁세가에 있다는 말을 듣고 남궁세가를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남궁환 어르신을 비롯해서 많은 고수들이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남궁환이 구양무경을 상대했다.
절벽의 무공을 깨달은 남궁환은 장난하듯이 구양무경의 암흑천마공을 상대했다.
팽팽하던 접전은 백여 초가 지나면서 구양무경 쪽으로 승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내공에서 남궁환이 밀린 것이다.
그때 천인효가 공격에 가세했다. 남들이라면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남궁환은 환하게 웃으며 천인효의 합공을 반겼다.
‘우와! 혼자서는 안 되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결국 그는 남궁환 어르신과 천 련주에게 패해서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내상을 입은 바람에 제가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요.”
“그의 가족은?”
“무공을 잃은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겠다며 구화산으로 갔어요.”
“그래? 어쩌면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이미 구양무경은 무공이 폐지된 상태입니다.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구양무백의 굳은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창천에 무리를 잃은 한 마리 기러기가 외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의 주름진 입술을 비집고 나직한 말이 새어 나왔다.
“떠나보내는 게… 그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구나.”
3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몸에 상처가 있었는데, 그 흔적이 있는 위치가 묘했다.
“아버지, 장문혈은 왜 다친 거죠?”
고중헌은 대충 얼버무렸다.
“음? 글쎄, 아마 돌아다니던 중에 다쳤나 보지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게 다친 곳의 흔적이 왜 뇌전 문양이란 말인가!
게다가 아문 살 속에 살짝 도드라져 있는 것은 또 뭐고.
진용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그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아버지의 방에서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놈! 네놈 따위에게 지지 않아……. 휼…….”
진용은 가위눌린 듯한 아버지를 깨우려다 조용히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방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아버지가 또 입을 열었다.
“아들에게…… 쫓기게 만들다니…… 개 같은… 놈…….”
진용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설마……?’
하지만 다음 날에도 진용은 묻지 않았다. 묻고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비록 그때의 정신이 휼탄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그래요, 아버지. 그냥 영원히 묻어둬요, 우리.’
4
신혈교가 무너진지 칠 년이 지났다.
봄이 오자 세르탄이 마침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용과 고중헌과 함께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한 마법진을 연구했는데, 마침내 칠 년 만에 그 결실을 본 것이다.
그런데 세르탄이 서장의 신산까지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여기서 마법진을 펼쳐도 될 것 같은데.”
“제나가 그곳에서 마법진을 펼쳤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고중헌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알기로, 서장은 기운이 무척 강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신산이라 불릴 정도라면 알만 하지. 그래서 제나라는 사람도 그곳에 마법진을 펼친 걸지 모르겠다.”
“하긴, 그래도 그곳이 좀 멀어야죠.”
“시르, 솔직히 말해. 식구들하고 떨어지기 싫으면 싫다고 말이야.”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후우, 할 수 없지. 나 혼자 가는 수밖에. 처음부터 시르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닌데…….”
“누가 안 간다고 했어? 그냥 멀다고 했지.”
“전에 책에서 보니까 여자에게 빠지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더라 뭐.”
여기서 웬 여자?
“어떤 책에서 그런 것이 나와?”
“금병매.”
금병매 같은 소리하고 있네. 거기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크크크…….”
하군상이 크큭대며 웃음을 삼켰다.
세르탄이 투덜대며 말하고, 하군상이 웃고.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표정을 번갈아 짓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구나 하군상조차 이계로 간다는 것에 마음이 붕 떠서 졸라대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이미 아버지는 물론이고 초연향과 화인화도 알고 있는 이야기. 굳이 따로 설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어차피 보낼 거라면 일찍 보내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좋아, 내일 가자, 가!”
다음 날, 진용이 잔뜩 가기 싫은 표정으로 짐을 꾸리고 있는데 두충이 운아영과 함께 찾아왔다.
“어? 고 공자님, 어디 가십니까?”
“예, 잠깐 여행 좀 다녀오려고요.”
“도독께서 며칠 안으로 들르지 않으면 녹봉을 깎는다고 하시던데요?”
“깎을 테면 깎으라고…….”
하지만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진용은 재빨리 말을 삼켰다.
“뭐예요? 그게 정말이에요?”
“얼마나 깎는다고 그래요?”
초연향과 화인화가 뛰듯이 튀어나오며 두충에게 물었다.
두충이 어색한 표정으로 운아영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하, 하! 뭐 설마 깎겠습니까? 세운 공이 얼마나 큰데. 안 그러냐, 진용아?”
진용이 두충을 노려보았다.
“두 형, 그 아이 이름, 정말 안 바꾸실 겁니까?”
“원, 고 공자님도. 어디 제가 지은 이름입니까? 정광 도장님이 장수하라고 지어주신 이름인데. 정 듣기 싫으시면 태산으로 가서 정광 도장님께 따지시라구요.”
끄응! 정말이지……!
그때 초연향이 물었다.
“지금 가시려구요?”
“일찍 가야 일찍 오지 않겠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런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한 석 달……?”
두 여인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끄응, 전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만 해도 자신의 말이라면 콩이나 쌀이 같은 것이라 해도 믿었다.
그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었다. 두 여인이 선녀였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두 여인의 모습을 아침저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진용에게는 고가장이 곧 천당이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진용이 잠시 회상에 잠긴 사이 눈꼬리를 반쯤 내린 화인화가 말했다.
“두 달이면 되겠죠? 아버님도 그렇고, 애들도 기다릴 텐데.”
“한눈팔지 않고 갔다 오면야……. 좌우간 최대한 빨리 갔다 오겠소.”
그제야 조금은 마음을 놓는 눈치다.
진용은 잔소리가 나오기 전에 서둘렀다. 뭘 잊은 것 같아 뒤가 찝찝했지만, 기회가 되었을 때 빨리 떠나야 했다.
“하 형, 갑시다.”
“어? 예, 그러죠 뭐.”
두 사람이 급히 문밖을 나가려는데 건너편 집에서 대문을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여기에 붙이는 것이 맞나?”
“글쎄, 이곳에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고 공자, 어디가 좋겠나?”
율천기와 포은상이었다.
두 사람은 고가장의 건너편 집을 사들이더니 그 자리에 눌러 앉았다.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고가장을 둘러싼 일대에 전부 천탁의 무사들이 살고 있었다.
젠장할, 집이 작아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더니 결국 그런 방식으로 들러붙었다.
뭐 그래도 심심하지 않아 좋긴 했다.
아버지도 싫어하지 않고, 구양 할아버지도 이 집 저 집 놀러다니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이제 다섯 살이 된 두 남매. 두 아이에게는 근처의 집이 모두 자기들 놀이터였다.
입춘대길이라 쓴 종이를 들고서 입씨름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진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두 사람은 시간만 나면 아이들을 꼬드겼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 앞에서 말없이 막대기를 휘두르는 독고무종도 있다.
나비와 논다나?
아이들이 장차 어떻게 클지 진용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말썽꾸러기들이 어디 갔지? 구양 할아버지도 안 보이고, 아버지도 안 보이고.’
“장 받으시지요.”
“음, 한 수만 물리세.”
“일수불퇴(一手不退)입니다.”
“그럼, 진용이 가는 거나 보고, 다음에…….”
“원, 아버님도. 그 애가 집 떠나는 것하고, 장기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자넨 걱정되지도 않나?”
“누가요? 하늘 아래서 그놈을 곤란하게 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걱정할 게 따로 있지요.”
“어험! 그건 그렇지만서도…….”
그때 별채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신웅이 털북숭이 얼굴을 들이밀고 냅다 소리쳤다.
“어르신! 장주님! 도련님과 아가씨가 한참 동안 안 보입니다요!”
“뭐?”
구양무백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슬쩍 발을 비틀자 장기판이 와르르 무너졌다.
고중헌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또……! 신 부총관, 자네…….”
하지만 이미 신웅과 구양무백은 사라진 뒤였다.
“끙, 별수 없지. 장기판도 엎어졌겠다, 아들 놈 떠나는 거나 보고 와야겠군.”
사내아이는 아무리 봐도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누나야, 여기서 뭐가 보여?”
“쩌기 봐, 보이잖아.”
“뭐가 보여, 안 보이는데.”
“잘 봐! 보이잖아!”
이제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계집아이가 가리키는 곳, 그곳은 백 장도 더 떨어진 곳의 언덕 중턱, 나무에 가려진 바위틈의 작은 구멍이었다.
나뭇잎에 가려진 구멍은 어른 주먹만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을 씻고 봐도 구멍은커녕 바위조차 분간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계집아이는 친절하게 그곳의 상황을 설명했다.
“근데 족제비가 졸린가 보다. 꾸벅꾸벅 졸고 있어. 저러다 누가 나타나면 잡힐 텐데…….”
계집아이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사내아이의 입술이 한 치는 튀어나왔다.
“씨이, 누나만 보고…….”
바로 그때, 계집아이가 숨어 있던 곳에서 기어나오더니 손을 모아 소리쳤다.
“어? 아버지다! 아부지이이이!”
진용은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자신이 빠져나온 골목을 바라보았다.
구석진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창고에서 두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버지! 어디 가세요?”
“삼촌하고 어디 좀 다녀오려고!”
“할아버지처럼 정신 잃고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돌아오세요!”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걸 잊지 않고 꼭 어디만 가면 저런 소리를 한다.
“알았다! 말썽 피우지 말고, 할아버지하고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
그때.
“큼! 하나 있는 아들 놈이 지 아비 흉이나 보고……. 괜히 나왔잖아?”
고중헌이 고개를 쳐들고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진용이 빽 소리쳤다.
“아버지!”
“왜!”
“사랑한다구요!”
“…썩을 놈.”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갔다 와라. 함부로 싸우지 말고, 돈 아껴 쓰고, 항상 가족이 기다린다는 것 잊지 말고. 그리고…….”
고중헌의 말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미 아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잔소리를 다 늘어놓기도 전에 하군상과 함께 도망치듯이 떠난 것이다.
고중헌은 중얼거리듯 마지막 말을 맺었다.
“갔다 오면, 종 형의 가족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자꾸나.”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