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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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14화
214화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물러선 적이 없기에, 진용은 이번에도 혈신이 당연히 맞설 거라 생각했다.
그 바람에 물러섰을 때의 대비책을 갖추지 못했다.
건곤천단심공이 가득 실린 두 손이 허공을 갈랐다.
강기가 이 장 정도 뻗어갔지만, 그 정도로는 물러선 혈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었다. 마지막 공격이 실패하다니!
‘제기랄!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자신에겐 더 이상 상대를 공격할 여력이 남지 않았다. 이제는 역공에 걱정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그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혈신이 물러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정신없이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저으며,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며.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돼! 이런 나쁜 놈이…… 이제 꺼져, 이놈아!”
어찌나 빨리 도망가는지, 진용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백 장 밖을 날아가고 있었다.
벽력탄이 터질 때의 충격에 나가떨어졌던 정광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저, 개 같은 악마가 도망간다!”
“쿨럭!”
“으웩!”
율천기와 포은상은 혈신이 사라진 후에야 억눌러 두었던 피를 토해냈다.
진용은 안간힘으로 버텨선 채 율천기와 포은상에게 바라보았다.
피를 토한 두 사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율천기의 검은 손잡이만 남은 상태. 포은상의 곤도 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독고무종 역시 악다문 이 사이에서 덩어리 진 핏물이 계속 새어 나오고.
“괜찮습니까?”
진용이 묻자 율천기가 다시 한 움큼의 피를 뱉어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단 한 수에 당하다니.’
지금까지 강해지겠다고 발버둥친 것이 허무하기만 했다.
“이제 강호를 돌아다니기에는 좀 늙은 것 같아. 아무래도 자리를 잡고 머물러야 할 것 같네.”
“으음……. 살아 있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해야겠군.”
포은상도 비틀거리며 겨우 상체를 세우고는 처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독고무종이 혈신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며 이를 갈았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았다면 결코 믿지 않았을 거네. 하늘 위에 하늘이라더니…….”
주저앉아 있던 세르탄이 진용을 보더니 씩 웃었다.
“봐봐, 우리가 힘을 합하니 이겼잖아.”
혈신이 사라진 곳을 향한 채 진용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야. 그가 살아 있는 이상은.”
“그건 그래. 그가 마계의 능력을 되찾기 전에 시르가 쫓아가 죽… 여…….”
털썩!
그 말을 끝으로 세르탄의 몸이 무너졌다.
“세르…… 군상!”
10장. 미안하다
1
풍옥산까지 왔던 신혈교의 무리 중 살아남은 자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야율립과 등우광마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분노한 정천무맹의 원로들의 협공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살아간 사람은 혈신이 떠나감과 동시 미리 몸을 뺀 몇 사람뿐.
결국 정천무맹과 천제성의 연합 세력이 신혈교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승리의 기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려 일천수백의 시신이 풍옥산을 가득 메웠다. 어찌 승리를 노래할 수 있으랴.
그들은 입을 꾹 닫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도 잊은 채 사형제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일을 생각할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일 혈신이 천뢰서생과 대결하기 위해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로 인해 신혈교의 교도들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과연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 * *
천탁을 따르던 무인들도 이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굳어진 얼굴로 동료들의 시신을 찾아 돌아다녔다.
진용은 그들이 동료의 시신을 정리하는 사이 부상자들을 근처의 마을로 옮겼다.
날이 밝자 요료가 직접 쓴 서신이 왔다.
장문으로 고맙다는 내용을 적은 서신이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정천무맹에서도 주마점에 남아 있는 신혈교의 무리들을 치기 위해 살아남은 자들이 움직일 거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뜻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진용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진용은 요료에게 자신의 몸이 조금 나아지면 곧바로 혈신을 추적할 거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요료가 한 알의 대환단과 두 알의 소환단을 보내왔다.
진용은 아무도 몰래 부상자들이 마시는 찻주전자에 대환단과 소환단을 집어 넣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차를 따라주었다.
“차를 마시고 운기하면 몸이 훨씬 빨리 낫는다고 하더군요.”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정오 무렵, 진용은 혈신을 추적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내력이 반밖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건곤흡정진혼결이라면 가면서도 충분히 내력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듯했다.
‘그가 갈 곳은 오직 한 곳이다.’
그는 결코 주마점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충격을 입은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그의 힘이 발원한 곳. 바로 동백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어쩌면 그곳에 그를 다시 강하게 할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그가 자신의 힘을 찾는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천하가 피에 잠기게 될 테니까.
‘그가 마계의 능력을 찾기 전에 제거해야 해!’
2
초연향이 그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진용이 이끄는 천탁의 무사들이 각산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쪽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저 앞에 굳은 피로 인해서 갈색으로 변한 청삼을 입은 자가 앞서 가는 게 보였다.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로 지친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마차를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몸을 돌린 순간, 초연향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어이가 없었다.
‘삼혼신마?’
그랬다. 지친 기색에 온몸이 피로 물든 그는 삼혼신마였다. 각기 다른 빛으로 빛나는 그의 눈을 그녀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초연향은 웃음이 나왔다.
그때 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탐욕이 가득한 눈으로 마차를 바라보면서.
십여 장의 거리가 되자 그가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살고 싶다면 마차를 비우고 이 어르신을 모셔라.”
초연향은 발작하려는 열두 명의 환밀궁 여인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그는 혼세십팔마 중 삼혼신마예요. 내가 처리할 테니 그냥 놔두세요.>
여인들은 굳은 눈으로 심혼신마를 바라보았다.
저 거렁뱅이가 혼세십팔마라고?
그때 초연향이 삼혼신마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말인가요?”
“클클클, 제법 깐깐하게 대들 것 같더니 눈치가 없지는 않구나. 계집, 이 어르신을 태우고 주마점으로 가자.”
“글쎄요. 저는 당신을 다른 곳으로 모시고 싶은데요?”
“다른 곳? 어디로 말이냐?”
초연향이 조용히 웃으며 손을 쳐들었다.
“지옥으로요.”
번쩍!
삼혼신마는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경한 그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날리려 했다.
그때 뭔가가 자신의 온몸을 뚫고 지나갔다.
순간, 다리가 꼼짝하지 않았다.
“계, 계집! 무슨 사술을…….”
“저를 모르시겠어요? 한때는 저를 데려가려고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제 이름은 초연향이에요. 어때요, 기억이 나시나요?”
삼혼신마는 흐트러진 내력을 급히 끌어올리려다 멈칫했다.
그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네, 네가 그년이라고?”
“그래요. 제가 바로 초연향이에요. 아, 공연히 힘을 쓰려 하지 마세요. 당신은 더 이상 무공을 쓸 수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헛소리! 내가 바로…….”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내력이 움직이지 않는다. 단전이 텅 비어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밀천신안공이라고 해요. 본 궁에서 백 년 만에 부활시킨 무공이죠. 아마 당신이 처음부터 경각심을 늦추지 않았다면 어림없었을 거예요. 무공이 반만 남았어도 쉽지 않았겠죠. 당신은 누가 뭐래도 혼세십팔마에 드는 고수니까. 어쩌면 제가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죠.”
“이, 이…….”
초연향이 잠시 삼혼신마를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었다. 자신과 하군상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죽여도 아무런 마음의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죽이려 하자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신혈교와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여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십이영은 저자를 묶어 마차에 매다세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군요.”
삼혼신마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차라리 죽여라, 이년! 죽여! 감히 나를 개처럼 마차에 매달겠다는 말이냐!”
그 말에 초연향은 조금 풀어진 얼굴로 삼혼신마를 응시했다.
“그래요? 잘 됐군요. 죽는 것보다 못하다니.”
다음 날, 각산에 들른 초연향은 진용 일행에 대해 수소문해 보았다.
하지만 방성으로 돌아갔을 거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초연향은 다시 방성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러기를 이틀, 마차가 방성의 장원에 도착하자, 마침 운아영과 함께 밖으로 나서던 두충이 그녀를 알아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오랜만이에요.”
“이, 이게 누구십니까?”
어쩔 줄 모르는 두충이 이상한지 운아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에요?”
“고 공자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초 소저입니다.”
운아영의 눈도 왕방울만 해졌다.
“초 소저요?”
장원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귀를 기울이면 운아영의 커다란 목소리를 십 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 하물며 문 앞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다. 심지어 담장 위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무려 수십 명이나 되었다.
초연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분은 어디 계신가요?”
“고 공자는 지금 혈신을 쫓아가셨습니다. 곧 돌아오실 겁니다. 어이구,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하는 수 없었다. 계속 뒤를 쫓아가는 것보다는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래, 차라리 이곳에 있으면서 구룡상방과 교주에게 연락을 취해보자.’
초연향이 머무르기로 한 후원에는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봉황곡으로 가기 전 진용을 찾아 온 화인화였다.
두 여인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초연향은 초연향대로, 화인화는 화인화대로.
어색함을 깨며 화인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말씀 들었어요.”
“예? 무슨 말을…….”
“굉장히 슬퍼하시더라구요. 찾으러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게 한이라면서요.”
“정말요?”
“예, 바보같이…… 속으로만 울더라구요.”
“원래 그분이 좀 바보 같아요.”
화인화가 슬쩍 눈을 치켜뜨며 반문했다.
“그죠?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죠?”
언니? 초연향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그랬어요. 상어의 입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지를 않나, 상어의 이빨을 뽑아서 기념이라고 가지고 다니지를 않나…….”
“어마? 정말요?”
“정말이라니까요. 내가 벽 틈으로 다 봤는데… 자기는 내가 못 본 줄 알 거예요.”
호호호, 깔깔깔, 여자들의 수다가 끝이 없이 이어졌다.
한참 만에야 초연향이 물었다.
“동생은 봉황곡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화인화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없는 손톱만 뜯었다.
“그게……. 어…… 고 공자 만나보구요…….”
“고 공자는 말이 별로 없어서 재미가 없는데. 어때요? 나랑 함께 북경으로 가지 않을래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화인화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 그래도 되요?”
“물론이죠. 화 동생은 예뻐서 고 공자도 좋아할 거예요.”
“피이,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언니 눈을 보니까, 고 공자가 왜 언니를 좋아하는 줄 알겠어요.”
그때 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향 매가 왔다고?”
초연향의 눈이 한껏 커졌다.
“하, 하 오라버니?”
하군상은 끌어오른 감정을 억지로 구겨 넣고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놈을 향 매가 잡아왔단 말이오?”
“예, 오라버니.”
“정말 잘됐소! 그러잖아도 그놈을 놓친 것이 아쉬웠는데 말이오.”
삼혼신마를 마치 옆집 강아지처럼 말하는 하군상이다. 초연향이 묘한 눈으로 하군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좀 말하면 긴데…….”
하군상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자신의 머릿속에 든 괴이한 정신체가 어떻게 자신을 살렸는지, 어지간한 내용은 모두 말해줬다.
초연향은 자신이 겪은 일보다 더 괴이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듣고 입이 반쯤 벌어졌다.
“세상에…….”
“뭐 향 매가 환밀궁의 궁주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만만찮으니까, 너무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마시구려.”
“풋! 하긴 그래요.”
초연향은 웃으면서도 걱정스런 말투로 하군상에게 물었다.
“그런데 고 공자가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하군상이 말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놈이 그러는데, 저번의 싸움 때 보니까 고 형의 천령이 반쯤 뚫린 것 같다고 하더구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고 형을 어떻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소. 뭔 말인지 잘은 몰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그 말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열이 났다.
-놈이 뭐냐. 놈이? 하여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 대전사 세르탄님을 우습게 보는 건 똑 같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