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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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02화
202화
사도굉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들은 상문의 사람들이네.”
상문이라면 음지에 속한 문파다. 백도도 아니고 흑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인들도 아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음지에서 조용히 자신들만의 세계를 지키는 자들이다.
사도굉이 말을 이었다.
“저 관 옆에 표식이 하나 있네. 내가 알고 있는 표식이지. 해서 관 안을 보고자 하는 것일세.”
“무슨 표식인데요?”
사도굉이 한쪽에 내려진 관을 가리켰다.
“두 개의 열십 자. 내 친구가 자주 쓰는 표식이네.”
“친구요?”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지. 상여충이라고. 그가 바로 상문의 문주야. 처음에는 그 친구가 표시한 관이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닌 것 같아. 저놈 말 들어보니까, 저 관에 그 친구가 들어 있는 것 같네. 그래서 나는 정말 상문의 문주가 죽었는지 그걸 알고 싶은 거네.”
중년인의 얼굴이 회칠을 한 것처럼 창백해졌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독문의 내공을 끌어올렸다는 증거였다.
“사도 늙은이, 공연한 일에 끼어들어 명을 재촉하는군. 그냥 가라면 갈 것이지……. 쯔쯔쯔, 거기 두 사람도 참 안 됐군. 죽어 저승에 가거든 재수없는 늙은이 때문에 왔다고 해라.”
정광이 뚤래뚤래 주위를 둘러보고는 피식 웃었다.
“우리? 우리가 재수가 없다고? 크크크, 그렇게 재미있는 말은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안 그런가, 고 공자?”
어이가 없었다. 단지 그 사실을 알고자 하는 것만으로 자신들을 죽이겠다니.
진용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없으니 일단 다 때려눕혀 놓고 물어보지요.”
“그럴까? 하긴,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진용과 정광의 대화에 중년인이 냉소를 날렸다.
“상문에 대적하겠다니, 용기가 가상하긴 하다만…….”
하지만 진용의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말은 나중에 하고, 일단 시작하자고!”
정광이 쇠신발을 날렸다. 동시에 진용이 상문의 무사들 틈으로 스며들었다. 세르탄도 실피나에게 당한 기분을 이곳에서 풀기라도 하려는 듯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야밤에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번쩍! 벼락이 쳤다.
쇠신발이 허공을 날고, 시퍼런 손바닥이 파리채처럼 휘날렸다.
그리고 딱,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를 즈음 싸움이 끝났다.
상문의 무사 스물다섯이 바닥을 기었다.
정광은 진용에 의해 삼 초만에 쓰러진 중년 무인에게 다가가고, 사도굉은 초조한 표정으로 관을 향해 걸어갔다. 세르탄은 분이 좀 풀리는지 하늘에 떠서 구경하고 있는 실피나를 흘겨봤다.
진용이 사도굉을 향해 말했다.
“거리가 너무 벌어졌습니다. 볼일을 빨리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굉은 두말도 않고 관 뚜껑을 잡아 올렸다.
한 노인이 수의를 입은 채 안에 누워 있었다. 자신의 친구, 상문주 상여충이었다.
그는 누워 있는 노인의 목에 손을 대보았다.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죽은 지 상당히 된 듯싶었다.
사도굉의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십 년 만이거늘, 죽어서야 만나다니.
그는 홱 고개를 돌려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인에게 소리쳤다.
“도지명, 어찌 된 거지? 왜 상 형이 여기에 누워 있는 거지? 상문에 반란이 일어났단 말인가?”
중년인 도지명은 정신이 없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도굉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양쪽 어깨뼈가 조각조각 부서졌는데도 아무런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진용만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당신은 누구지?”
사도굉이 그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는 천뢰서생 고진용이라는 공자다. 네놈 따위는 백 명이 달려들어도 어림없는 고수지. 빨리 말해! 왜 상 형이 죽어 있느냔 말이다!”
저자가 바로 그자? 맙소사!
도지명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부릅떠졌다.
상문의 정예 스물네 명이 자신과 함께 십 초를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벼락이 치고, 시퍼렇게 물든 커다란 손이 허공을 휩쓴다 싶으면 서너 명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순식간에 무기가 부서지며 항거불능이 되어버렸다. 팔다리가 꺾인 수하들에게 도망가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자신 역시 도망갈 시간도 없이 어깨뼈가 부서져 버렸으니까.
듣던 것보다 더한 강함이었다. 세상에 저렇게 강한 자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꿈을 꾼 것이 아니다.
그는 마지막 끈이라도 붙잡으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문은 삼존맹과 함께하기로 했소.”
하지만 삼존맹의 이름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도굉의 화만 부추겼을 뿐이다.
짝!
사도굉이 도지명의 얼굴을 후려치고는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미친놈들! 갑자기 웬 삼존맹이란 말이냐? 그놈들이 네놈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하든? 아니면 제놈들 들어갈 관을 만들어달라고 하든? 상 형이 원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지?”
“그래서 죽은 것이오. 그가 보낸 살귀들에게. 나는… 우리는, 문주의 시신을 그에게 보내기로 했소. 충성의 대가로.”
뻑!
사도굉이 끝내 참지 못하고 발길질로 도지명 턱을 날려 버렸다.
“곧 뒈질 놈들에게 충성은 무슨, 개뿔이나!”
3
상문의 행렬은 다시 이어졌다.
선두는 진용이 세르탄과 함께 섰다. 그리고 정광과 사도굉이 뒤를 이었다. 그 뒤를 관을 맨 상문의 제자들이 뒤따랐다. 모두 마안에 의해 정신이 제압된 상태로.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만붕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 한 가지 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말 그대로 무혈입성을 위한 계획이.
회하의 강변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난데없는 행렬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진용 등을 바라보았다.
진용은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좀 더 치밀한 계획을 짰다. 모두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는 사도굉이 서기로 했다. 강호에 대해서 사도굉만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가 만장일치로 사도굉을 밀어주었다.
사도굉도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좋네!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의 심장부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네!”
일단 계획이 서자, 관 안에 들어 있던 상여충은 근처의 양지바른 야산에 임시로 묻었다. 사도굉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친구의 천당행을 기원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상여충의 넋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살펴 주기를 바랐다.
향도 피우지 않은 채 간단하게 고인을 위한 의식을 끝내고, 일행들은 강변을 거슬러 올라갔다.
상문 사람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것은 강을 건널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실피나가 날아가더니 얼마 있지 않아 되돌아왔다.
―주인아! 배가 있다!
“사람은?”
―두 명 있어.
아니나 다를까, 십 리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자 배가 한 척 보였다. 이십여 명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제법 큰 배였다. 배를 몰 선원 두 명을 빼고는 주위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상문 사람들에게 배를 빌려주기는 하지만, 왠지 께름칙한 기분에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배는 팔공산(八公山)의 서북쪽, 야트막한 둔덕이 선착장 구실을 하는 곳에다 진용 일행을 내려놓았다.
진용 일행이 관을 든 채 배에서 내리자 미리 알고 있었던 듯 무사 셋이 다가왔다.
진용 일행들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자신들이 상문 일행으로 꾸미지 않고 그냥 건너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팔공산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적에게 발각 당했을 게 뻔했다.
“상문에서 오신 분들이오?”
세 무사 중 옆구리에 칼을 찬 자가 물었다.
사도굉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네. 안내해 주겠나?”
그자는 사도굉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뒤돌아섰다.
“따라오시오. 혹시라도 길을 잃을지 모르니 바짝 따라와야 될 거요.”
굳이 걱정해 주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진용 일행은 결코 그들로부터 멀어질 마음이 없었으니까.
강변에서 이십 리를 들어갔는데도 만붕성이 있다는 만붕곡은 나오지 않았다.
만붕성의 비밀 초소 세 군데를 지나쳤지만, 그들은 진용 일행을 이끄는 세 사람을 보고 별 의심 없이 통과시켰다.
은근히 긴장된 마음에 사도굉이 물었다.
“만붕곡이 무척 험하게 생겼다고 하던데, 얼마나 더 가야 그 장관을 구경할 수 있겠나?”
앞서 가던 세 사람 중 도를 찬 자가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사도굉을 쳐다보았다.
사도굉은 뜨끔한 심정으로 냉랭한 표정을 더욱 싸늘하게 굳혔다. 뒤따라가던 사람들도 여차하면 손쓸 준비를 하고 슬며시 내공을 끌어올렸다.
밤공기가 싸늘히 가라앉았다.
도를 찬 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이상하군. 얼마 전에 직접 오지 않았소?”
“나는 처음으로 와봤네.”
“처음으로 와봤다?”
그가 더욱 굳은 표정으로 사도굉을 노려보았다. 말없이.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슬며시 검을 잡아갔다.
그가 말했다.
“젠장, 기왕에 보낼 거면 와봤던 사람을 보내야 내가 고생을 덜할 것 아닌가? 도대체 상문은 무슨 생각으로 초행인 사람을 보낸 거요?”
사도굉이 고개를 흔들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나도 오고 싶지 않았지. 그런데 장로들이 그러더군. 젊은 놈들만 보내면 무시당할지 모르니 장로들 중에 한 사람을 뽑아서 보내자고 말이야. 재수없게 내가 뽑혔지. 내 이렇게 푸대접받을 줄 알았으면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네. 제기랄!”
어찌나 실감나게 말하는지 도를 찬 자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 마음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돌아섰다.
“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조금만 더 가면 되니 따라오시구려.”
검을 잡았던 자들도 검을 놓고 돌아섰다.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따라가던 진용 일행은 모두가 감탄한 눈으로 사도굉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역시 대단하군. 거짓말을 저렇게 능숙하게 하다니!
한편으로는 앞으로 사도굉의 말을 세 번은 의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를 찬 자의 말대로 오 리 정도를 더 가자 밝게 빛을 발하는 계곡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자, 은은히 퍼지는 불빛 사이로 고루거각의 지붕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만붕성이 이제 코앞이었다.
세 사람이 마치 성문처럼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자 몇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정지! 어디의 누구인가?”
도를 찬 자가 대답했다.
“백수전의 대주 나인겸이라 한다. 상문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왔다. 알고 있을 텐데?”
정문의 위사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왔다.
“상문? 아! 말은 들었소. 한데 저들이 그 죽은 사람들만 상대한다는 상문의 사람들이오?”
“맞네.”
“흠, 알았소.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맡을 테니 돌아가서 쉬도록 하시오, 나 대주.”
“고맙군. 그럼 수고하게나.”
나인겸이 사도굉에게 다가왔다.
“편히 쉬도록 하시오. 어지간하면 다음에 보지 맙시다. 일찍 관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사도굉이 속으로 말했다.
‘글쎄, 어쩌면 곧 볼지도 모르지.’
끼이익!
성문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밝혀진 횃불에 계곡을 빽빽하게 메운 고루거각이 보였다.
사람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만붕성의 심장부에 도착한 것이다.
“따라오시지요!”
정문의 위사장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건방진 놈! 어디서 손가락으로!
생각 같아서는 저 괘씸한 놈의 손가락을 똑 부러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은 조금 더 참아야 할 때다. 내부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사도굉이 화를 꾹 참고 안으로 들어가자 관을 든 상문의 제자들과 진용 일행이 우르르 따라 들어갔다.
안은 조용했다. 밤이어서인지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정문의 위사장이 걸음을 멈춘 곳은 백여 장쯤 들어간 곳에 서 있는 커다란 전각 앞이었다.
만혈전(萬血殿)이라는 현판이 핏빛으로 쓰여 있는 곳.
“이곳이외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는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왔다. 상문에서 손님들이 도착했다는 전갈만 전하고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험. 안에 전갈을 전했으니, 그럼 일들 보시오.”
그는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그러다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돌아서서 정문 쪽으로 가버렸다.
전각 안에서 나온 사람은 사십대의 중년인이었다. 긴 머리가 어깨까지 덮은 그는 언뜻 보기에도 마치 잘 갈린 칼을 보는 듯했다.
사도굉을 본 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분이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