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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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97화
197화
4장. 떠났어도 너는 내 밥이다
1
원정은 어깨에 힘을 주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소림의 산문을 지킨 지 어언 오 년, 요즘처럼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던가.
마침내 장문방장께서 맹주로 추대되었다. 그러자 수많은 무림인들이 소림을 오른다.
누구도 산문을 지키는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이가 없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역시 명예란 대단한 것이야!’
봐라! 얼마 전만 해도 어깨에 잔뜩 힘 준 채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던 자가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원정 스님.”
“어이구, 대검문의 소문주께서 또 오셨군요.”
“하하하, 가까이 있다는 게 어디 보통 인연입니까? 자주 들러야지요.”
“아미타불, 그럼 저희 소림이야 환영이지요. 어여 들어가시지요.”
“예, 그럼…….”
원정은 안으로 들어가는 청년의 뒤통수를 노려보고는 피식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작년만 해도, 하늘 높은 줄만 알고 땅은 쳐다보지도 않던 자가…….’
원정이 대검문의 소문주인 강인봉을 바라보며 세월 무상의 도를 깨우치고 있을 때다.
뒤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쯔쯔, 어떤 시주들이 감히 소림에서…….’
원정은 스윽 고개를 돌려서 가소로운 눈빛으로 소란을 떠는 사람들을 흘겨봤다.
순간, 원정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저, 저 사람들은……!’
자신의 사제가 뭣도 모르고 열 명에 이르는 무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맨 앞에서 낡은 도복을 입은 도인이 사제와 말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뒤로 보이는, 건 대신 무명끈으로 머리를 묶은 서생은…… 맙소사! 바로 그였다!
“물러서게, 원여!”
원정이 빽 소리치며 달려오자 정광이 물었다.
“이보게, 아직도 소림에선 문파의 이름을 밝혀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아닙니다, 도장! 어서 오시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광이 허리를 꾸벅 숙이는 원정을 흘겨보고는 원여에게 말했다.
“아니라는데? 이제 들어가도 되지?”
“예? 아 예…….”
벙찐 표정으로 원여가 대답하자 진용 일행은 산문을 넘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정이 사제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어서 안에 기별을 넣어라! 그들이 왔다고!”
“예? 누구라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시간도 없었다.
“아니다. 내가 직접 하마!”
원정은 산문 옆의 작은 전각으로 들어가 황급히 몇 자를 적었다. 원여가 어깨너머로 그 모습을 보더니, 한순간 입을 떡 벌렸다.
“처, 처, 천뢰서생?”
원정은 재빨리 서신을 전서 통에 집어넣고 전서구 한 마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숨을 세 번 쉬기도 전에 전서구 한 마리가 내소림을 향해 날아갔다.
원정은 전서구를 날리고서야 숨을 길게 내쉬고 원여를 바라보았다.
“전에 십절검존께서 방문하셨을 때 봤다네. 이야기도 나누어봤지.”
원여가 존경이 담긴 눈으로 원정을 쳐다보았다.
오! 대단한 사형!
원정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흐흐흐, 이래서 내가 산문을 못 벗어난다니까!’
진용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요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제자를 구해준 진용 일행에게 소림의 그 누구보다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고 시주.”
“효정 스님에게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사.”
“허허허, 반갑기는 빈승이 더 반갑다오. 따라오시구려. 고 시주가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소이다.”
기다리고 계신 분?
소림의 장로인 요양이 높여 말한다. 요료는 맹주의 위를 수락했으니 정천무맹으로 갔을 터.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진용은 궁금하기만 했다.
내소림으로 들어가자 많은 소림승들이 진용 일행을 주시했다. 진용 등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하지만 누구도 요양의 앞을 막고 말을 붙이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하군. 마치 어떤 절대적인 힘이 저들의 입과 행동을 규제하고 있는 것 같아.’
요양은 진용을 방장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내소림의 불전을 돌고 돌더니, 외곽으로 빠져나가 아담하면서도 고색창연한 건물로 안내했다.
여운전(餘雲殿).
불전치고는 조금 기이한 이름을 지닌 곳이었다.
방문 앞에 선 요양이 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시고 왔습니다, 사숙.”
사숙? 진용을 비롯한 모두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소림에서 요 자 배의 노승들에게 사숙이라 불릴 만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아직 건재하다고 알려진 공 자 배의 고승들은 소림을 통틀어도 다섯 명이나 될까? 그나마 얼굴을 보이지 않은 지 적어도 십 년 이상은 되었다.
“들어오너라.”
안에서 나직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양은 문을 열고 진용에게 눈짓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눈치만 봤다.
그때 빙그레 웃은 요양이 진용이 들어간 문을 닫으며 그들을 곤란에서 구해주었다.
“여러 시주분들께 빈승이 차를 대접하리다. 이리 오시지요.”
허리가 굽은 노승의 얼굴에는 수많은 주름이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입가에도, 눈가에도, 온통 주름이었다.
“지붕 안 무너져. 앉게나.”
노승이 실실 웃으며 진용을 향해 손짓했다.
진용이 조심스럽게 앉자 노승이 입을 열었다.
“좋은 눈이구만.”
“노 스님의 눈도 참 맑아 보입니다.”
“헐헐헐, 늙은 땡초가 눈이 맑아 뭐에 쓰겠나? 그래 봐야 부처님 곁으로 가는 시간은 똑같다네.”
사미승이 차를 가져오자 노승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손짓을 했다.
“내가 직접 따서 말린 거라네. 마셔보게.”
다향에는 약 향이 미미하게 섞여 있었다.
문득 유태청이 소환단차를 마시며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진용의 입가에도 씁쓸한 웃음이 맺혔다.
“보낸 사람을 생각하면 한도 없는 법이라네. 그들은 편히 있을 터인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을꼬.”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수양이 덜 되어서 그런 거겠지요.”
“그래, 효망은 어떻게 갔는가?”
갑자기 노승이 물었다. 진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늙으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네. 너무 그렇게 볼 건 없네.”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힌 진용이 말했다.
“편히 가셨습니다. 동백산 근처의 야산에 묻었습니다. 사실 그걸 알려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고맙구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굳이 그 말을 할 필요는 없네. 내가 알았고, 소림이 알았으니 된 것이지.”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노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주려 왔고, 알았으니 된 것이 아니겠는가? 너무 마음 쓸 것 없네.”
이후로도 노승은 진용에게 선문답 같은 말을 계속 물었다. 진용은 자신이 아는 한도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답했다. 노승은 진용이 말할 때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지났을 즈음, 노승이 엄숙해진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고 말했다.
“혈신이 가진 힘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네. 그런 만큼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야.”
진용의 얼굴이 굳어졌다. 노승이 혈신의 능력에 대해서조차 알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마 세르탄이 아직도 자신의 머릿속에 있었다면 놀라 경악성을 발했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수라의 힘이 이 세상의 힘이었을 거라 생각하나?”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아수라와 제석천의 싸움은 신들의 싸움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하늘이 붉어졌지. 천기를 볼 수 있는 선인들은 그 기운을 느꼈을 것이네. 안다는 것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종이를 뒤집은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분명하다네. 그 이치를 알면 굳이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지.”
진용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때였다. 노승은 주섬주섬 승포를 뒤지더니 작은 갑 하나를 내밀었다.
“받게나. 필요할지 모르니까.”
“뭡니까?”
“헐헐, 부처의 사리야. 내가 어릴 적에 몰래 꼬불쳐 둔 거지. 행여나 탁발 나갔다가 죽으면 극락정토에 갈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예?”
황당한 말에 진용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마(魔)에 대항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것이 혈신에게도 통할지 그것은 미지수지만.
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한 가지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이 나았다.
“고맙습니다, 노 스님.”
“고맙기는. 대신 싸워준다는데 내가 고맙지. 헐헐헐, 이제 가보게나. 받을 것 다 받았고, 줄 것 다 주었으니 바쁜 사람 더 붙잡을 수 없는 일…….”
소림을 나서기 전에야 요양에게서 여운각의 노승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주름만 많고 웃기 좋아하는 그 노승이 바로 요공의 사부이고, 효망의 사조이며, 이미 부처가 되었을 거라 소문난 공은 대선사였다.
놀라는 진용을 향해 요양이 조용히 말했다.
“본래 다른 사형 사제들이 고 시주를 만나려 했는데, 공은 사숙의 말씀 한마디에 모두 흘러가는 대로 놔두기로 했다오.”
공은 대선사가 했다는 말은 단순했다.
‘너희들이 아수라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한마디로, 너희들이 아무리 찧고 까불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었다.
2
하군상의 몸은 빠르게 좋아졌다.
단 삼 일 만에 손발을 움직이더니, 열흘이 지나자 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세르탄 때문이었다.
“몸은 어때?”
“우헤헤, 생각보다 더 좋은데? 조금만 지나면 뛰어다닐 수도 있겠어.”
세르탄이 방정맞게 웃으며 즐거워한다. 진용은 피식 웃으며 세르탄에게 말했다.
“다행이네. 그럼 시작해 볼까?”
세르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뭘?”
“천공지, 마왕후, 또 뭐가 있더라? 전에 다 가르쳐 준다며?”
빌어먹을 시르! 그런 것은 좀 잊어 먹으라구!
“시간이 없어. 잘해야 몇 달인데, 그사이 그걸 다 배우려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힘들 거 같아. 그러니까 세르탄도 열심히 가르쳐 보라고.”
“그, 그거야…….”
“왜 싫어?”
“싫은 건 아닌데…….”
“그럼 괜히 빼지 마. 군상에게 뒤통수치는 법을 알려주기는 나도 싫으니까.”
“이 악랄한 시르……! 하지만, 시르의 능력으로는 아직…….”
마지막 발악처럼 말하는 세르탄의 코앞에 진용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혹시 알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세르탄이 빠져나가니까, 그곳에 흩어졌던 기운들이 다 모였거든? 내가 생각했을 때, 이제 충분한 것 같아. 그러니 이제는 능력 어쩌고 하는 건 이유가 안 돼, 알았어?”
세르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진용이 씨익 웃으며 마차 밖을 향해 눈을 돌렸다.
방성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전에 보았던 풍경이 달빛 아래 드리워져 있었다.
“거의 다 왔군.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하자고.”
* * *
“몸은 좀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습니다. 세상에, 내가 다시 살아나다니.”
“그뿐이 아닐 겁니다. 일단 혈이 다 뚫리면 무공도 전보다 훨씬 강해질 겁니다.”
하군상도 그걸 느끼고 있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때려죽일 놈이 하나 있으니 말입니다.”
누군지 알만 했다. 삼혼신마! 아마 그를 말함일 것이다.
“세르탄하고 싸우지는 않습니까?”
하군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용하던데요?”
“이상하네, 그 떠버리가…….”
언뜻 하군상의 왼쪽 눈에서 녹광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금은 아침이니까.
“좌우간 세르탄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귀찮게 하면…….”
갑자기 녹광이 파르르 떨린다.
진용이 속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용히 하라고 해보세요. 의외로 말을 잘 들을 때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고 형.”
녹광이 천천히 스러지더니 결국 하군상의 눈동자에서 사라졌다.
진용은 처음서 끝까지 그 모습을 보고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크큭! 세르탄, 떠났어도 너는 내 밥이야.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려고.’
3
방성에 도착하자 두충과 운아영, 사도굉이 광소쌍마와 함께 먼저 와 있었다.
입구에 나와 있던 사도굉이 환하게 웃으며 진용에게 다가왔다.
“고 공자! 오셨구만!”
“언제 오셨습니까?”
“이틀 됐네.”
사도굉은 반가움에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고는 신양에서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남궁환과 남궁창훈은 탕마단 삼단의 잔여 세력과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이끌고 합비로 돌아갔는데, 그들이 구양한을 데려갔다고 한다.
간략하게 설명을 끝낸 사도굉이 품에서 구겨진 종이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뭡니까?”
“남궁 노인이 자네 주라고 하더군. 유 노사가 돌아가셨으니 줄 사람이 자네밖에 없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