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 라이프 221화
무료소설 리스타트 라이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리스타트 라이프 221화
극단적인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원래 여신으로서 힘을 고스란히 간직했다면, 아니 어쩌면 지금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힘으로 나
같은 사람 한 명쯤 소멸시키는 것은 간단할 것이다.
힘의 격차, 존재의 격차만 따지자면, 사람과 개미 수준이다.
그런데도 대륙의 모든 이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능력 없는 여신이라 칭하며 고개 숙였다.
완전히 숙이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는 최후의 이 세계 총괄자라는 지위 때문이겠지.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까지 일면조차 없는 대륙을 구하고, 그 남은 힘마저도 오로지 대륙인들을 위해 사용한 자비의 여신이구나, 하는
경건한 마음이 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 세계에 태어난 순간부터 여신님께서 여러 번 목숨을 구해 주셨습니다. 비록 직접 행한 일이 아니더라도 저는 여신님을
따르는 신관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세상에 태어났고, 그 후에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크게 부상을 당했을 때도 그 신성력의 치료 덕분에 다시
건강해졌죠. 이번엔 세레나에게 얻은 힘으로 일행들과 소중한 이들을 큰 피해 없이 지키며 드레이크라는 강적을 쓰러뜨렸습니다. 이 세계에 환생한
뒤에 정말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냅니다. 새로운 가족과 친구, 처음 경험해 보는 신비한 힘, 새로운 환경. 그 모든 것이 에레나 여신님이 그 옛날
자신의 힘을 소모하면서까지 대륙을 구했기에 제가 누리는 즐거움이자 행복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제가 여신님을 도울 이유는 충분하고 넘치죠.
그러니 고개 숙이지 말고 더욱 당당히 요구해 주세요. ‘가서 내 뜻을 대륙에 전하라!’고 말이죠.”
그 순간, 에레나 여신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한동안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큭! 하고 웃음을 참는 듯하더니, 결국 웃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푸훗, 아하하하! 이거, 괜히 무게 잡았다가 아넬에게 당했네요. 하하……! 고마워요, 아넬! 이 수천 년 동안, 제게 그렇게 말해 준 것은
아마 아넬뿐인 것 같네요. 그런가요, 제가 대륙을 구해 아넬이 이 세계에 태어났고 또한 저와 이렇게 만났다는 것으로도 이야기가 되네요.”
정말로 즐겁게 웃으며, 에레나 여신은 장난스럽게 나를 바라보더니 내게 손을 내뻗었다.
“아넬, 제 말을 대륙에 전하여, 아직 이 대륙에 여신의 보살핌이 있음을 대륙인들에게 가르쳐 주길 바랍니다!”
“네,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소꿉장난에 어울려 주듯, 한쪽 무릎까지 꿇어 가며 폼 나게 자세를 잡아 주자, 에레나 여신의 웃음보는 또다시 터져 나왔다.
“……푸훗, 아하하! 이러면 자비의 여신이 아니라, 그저 대마왕 같은 분위기잖아요?”
“뭐, 우리 둘뿐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적어도 대륙에 이 이야기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그래도 기왕이면 자비의 여신이라는 좋은 명칭으로 불리고 싶거든요.”
그렇게 서로 한바탕 웃고 나서 웃음이 진정되자, 에레나 여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나와 그녀가 앉은 의자와 테이블이 사라지고, 그 옆에 작은 마법진이 하나 생성되었다.
분위기로 보아선, 그 위로 올라가면 내 원래 몸으로 의식이 이동되는 것 같았다.
에레나 여신은 말없이 내가 마법진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고, 나는 마법진 위에 선 뒤에 나를 바라보는 에레나 여신에게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에레나 여신님은 어째서 제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이 세계에 환생했는지 그 이유를 아시나요?”
이 세계에 환생하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속으로 생각해 왔던 질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답을 받을 수도 없던 질문이었다.
내 눈동자를 차분히 응시하던 에레나 여신은, 이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내게 말했다.
“아뇨, 원래라면 본래 세계에서 육신을 잃고, 다른 세계에서 새 생명을 얻어 태어나는 사람은 예외 없이 전생의 기억을 잃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넬이 전에 살던 세계에서 수명을 다하고 이 세계로 다시 태어날 운명이었더라도 전생의 기억을 가질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아넬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보겠죠. 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의외로 세상 모든 일엔 ‘우연’이라는 게 없다는 점이랍니다.”
“그런가요?”
“네, 충분한 답을 들려주지 못해 미안해요!”
“아뇨, 어쩐지 그 대답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명확한 해답이라곤 할 수 없지만, 자신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점차 빛나기 시작하는 마법진을 한 번 그리고 눈앞에 에레나 여신의 모습을
또다시 바라보았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 다음에 여유 있을 때 또 보죠!”
“……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려 오는 것이 아니었어? 라고 묻기도 전에, 내 몸은 환한 빛에 둘러싸여 천천히 의식을 잃어 갔다.
그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에레나 여신은 특유의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아넬, 정신이 좀 들어?”
“윽……, 몸이 좀 쑤시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셀린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내가 정신 차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금은 나무라는 어투로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넬도 참, 검이 빠지지 않으면, 아무리 소중해도 놓고 도망칠 생각을 먼저 해야지, 그걸 끝까지 붙잡다가 그대로 깔려 버리면 어떻게 해?
아넬이 눌려 죽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아, 역시 겉으로 보면 그렇게 보였구나!”
조금 있다가 에레나 여신에 대해 일행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충분히 해명이 가능한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부끄러웠기에 나지막이 한숨 쉬며 몸을 뒤척이려니, 누운 머리 뒤쪽이 묘하게 따뜻하고 포근함을 알았다.
“응?”
나는 정자세로 누웠고, 바닥엔 딱히 모포나 침낭은 깔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셀린의 상체와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 이거 혹시 무릎베개인가?
남자라면 한 번쯤 꿈꿔 볼 만한 무릎베개를 내가 한 사실을 깨닫고 셀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었다.
“좀 불편해?”
“아니, 셀린이 다리 저릴까 봐!”
“고작 이 정도로 쉽게 다리가 저릴 만큼 단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는걸.”
무릎베개라곤 해도, 사실 머리가 얹힌 부분은 허벅지니까 말이다. 아무리 단련했더라도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은 충분하다.
어쨌든 그다지 다리가 저리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는, 이런 호사를 또 언제 누려 보겠나 싶어 목에 힘을 더 빼고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주위를 간단히 둘러보자, 나와 셀린이 있는 장소가 신전 밖이 아니라, 신전 내부 중에서도 드레이크가 그다지 더럽히지 않은 안쪽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셀린에게 일행들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루시안이나 엘리시아, 다른 사람들은?”
“아넬이 드레이크를 쓰러뜨린 후에, 나이아스 님은 곧바로 세레나를 데리고 신전의 봉인을 복구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각자
역할 분담을 나눠서 신전을 간단히 청소하는 중이야. 나이아스 님 말로는 못 해도 일주일 정도는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으니, 그동안
나뒹구는 뼈나 가죽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지낼 순 없잖아?”
하긴, 보기에도 그다지 좋지 않을뿐더러 냄새도 난다.
냄새의 원인인 썩어 가는 가죽과 풍화된 뼈 그리고 드레이크의 배설물들을 치우고 나면, 그래도 클린 마법으로 피 얼룩이나 냄새를 제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도 가서 도와야 하는 것 아니야?”
“드레이크를 상대하면서 가장 많이 체력을 소모한 아넬과 나 그리고 세라 언니랑 그렌 씨는 휴식하도록 모두 배려해 주었어. 특히 아넬은 그 거대한
몸에 깔려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으니까, 좀 더 쉬어도 괜찮아.”
“그거 말인데, 사실은 내가 깔리고 싶어서 깔린 것은 아니야.”
“응? 드레이크의 목에 박힌 검을 빼려다가 너무 깊숙이 박혀 빼지 못하고 같이 넘어가지 않았어?”
처음엔 어떻게든 버텼지만, 역시나 같은 오해를 두 번씩이나 들으려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나는 일행들에게 말하기에 앞서 먼저
셀린에게 에레나 여신을 만난 부분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까짓것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참고, 두 번 설명할 필요 없이 한 번에 설명하기가 더 쉽고 깔끔하지 않으냐고 말하면 할 말 없는 부분이긴
한데, 자고로 남자란 때론 자존심에 살고 죽는 생물이기도 하다.
기껏 드레이크 녀석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성공시켜 그 거대한 적을 쓰러뜨려 놓곤, 딴 것도 아니고 녀석이 쓰러지는 것을 피하지 못해 그 밑으로
깔려 죽을 뻔하다니!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며 적잖이 당황했을 일행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아, 그것을 해명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처음 에레나 여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셀린이 보인 반응은 역시나 당황스러움이었다.
그야 몬스터에게 깔아뭉개져 기절했던 사람이 이 세계의 유일신이라고 할 에레나 여신을 직접 꿈속에서 만났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을 순순히 믿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쉬이 거짓말 따위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장난칠 때를 제외하곤 과장이나 허세를 부리는 일 또한 없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셀린이기에, 처음 내 말을 들었을 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내 말을 신뢰해 주었다.
거기에 나는 헤어지기 전 에레나 여신이 했던 말대로, 내가 그녀를 직접 만났음을 증명할 다양한 증거가 있었다.
내가 알 리 없는 이상 현상 몬스터 출현 원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 신전의 봉인과 그것이 풀린 계기 또한 에레나 여신이 나를 부른 이유와 앞으로
신전의 봉인이 복원된 뒤에 대륙에 일어날 여러 문제점까지.
단순히 지어냈다고 보기에는 여태껏 우리가 알아냈던 사실들과 세레나와의 만남과 일행들이 겪었던 상황들에 대한 의문들이 전부 해결되고, 앞뒤가
들어맞는 점에서, 그 모든 것을 나와 함께 직접 겪은 셀린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깜짝 놀라며 소리를 내질렀다.
“세상에, 그러면 아넬은 천 년 만에 에레나 여신님과 소통한 사람이야?”
“에레나 여신님이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사실 세레나가 우리에게 주었던 열매에 담긴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나도 에레나
여신님을 만나기는 불가능했겠지만 말이야.”
“으으, 나도 아넬과 같이 열매를 먹었는데, 아넬만 여신님을 만나 뵙는 건 치사해!”
셀린은 나 혼자만 에레나 여신에게 불려 갔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지 볼을 살짝 부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