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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97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97화

 197화 전후처리 (2)

 미국과 영국의 경고를 받아들인 소련이 독일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사흘 뒤.

 독일 현 총리이자 대통령 대행인 카를 괴르델러가 연합국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항복 조인서에 사인했다.

 이로써 유럽 전쟁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제까지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와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또한 해방되었고 해방된 시민들은 일제히 밖으로 쏟아져나와 자국의 깃발을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전 세계의 신문들이 독일의 항복을 대서특필했으며 워싱턴과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각지에서 승전을 기념하는 성대한 퍼레이드가 열렸다.

 "마셔라, 마셔!"

 "오늘 안 마시면 언제 마시냐, 응?"

 "먹고 마셔라!"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종전을 축하했다.

 날이 날인만큼, 상부에서도 병사들을 위해 술과 고기를 양껏 준비해줬다.

 아직 일본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날만큼은 다른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마시고 싶었다.

 "그레이 대위, 축하하네! 드디어 제리들이 백기를 올렸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가온 무어 소령이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코가 체리처럼 새빨갛게 변한 것을 보니 상당히 취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남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취한 상태였고. 이렇게 기분 좋게 취하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아유, 제리들이 항복한 게 왜 제 덕분입니까? 과찬도 지나치면 독입니다, 독!"

 "새끼, 빼기는. 야, 니가 썰어버린 제리들 모가지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하냐? 응? 니 덕분에 평생 받을 일 없을 줄 알았던 훈장도 다 받아보고, 응?"

 "알긴 아네요. 그러니까 평소에도 저한테 잘하십쇼?"

 "물론이지, 새꺄."

 브랜슨 대령은 어느새 병사들 사이에 껴서 술 많이 마시기 내기를 하는 중이었고, 게이츠 원사는 재수 없는 몇 놈들을 앞에 두고 인생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다. 정작 그 병사들은 신경 1도 안 쓰는 눈치였지만.

 떠들썩한 부대 분위기와 별개로 부다페스트 시내는 조용했다. 독일군 대신 연합군 병사들이 부다페스트 시내를 활보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병사들과 거리를 둔 채 조용히 걸어 다녔다.

 하기사 헝가리인들 입장에선 독일군이나 연합군이나 똑같은 정복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게릴라 활동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그렇게 미친 듯이 퍼마시고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따뜻한 차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숙취에 시달리던 브랜슨 대령이 힘겨운 얼굴로 들어오더니, 상상도 못한 말을 꺼냈다.

 "제군들, 좆됐네."

 "무슨 일입니까, 대대장님?"

 "오후까지 짐 싸서 출발하라는군. 열차를 타고 슬로바키아로 갈 걸세."

 슬로바키아는 갑자기 왜? 우리가 거길 왜 가? 나를 비롯한 부하들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브랜슨 대령이 지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러시아인들이 협정을 깨고 움직이진 않는지 감시할 병력이 필요하다는군. 그 영광스러운 임무에 당첨된 게 우리 부대고. 그러니까 내 말 알아들었으면 당장...."

 브랜슨 대령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닥에 한바탕 토사물을 쏟아내고 말았으니까.

 ***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기 직전, 독일과 맺은 휴전조약을 깨고 공격을 감행한 소련군은 독일의 항복 선언 이후에도 꾸준히 전진을 계속, 영미의 경고장을 받을 때까지 슬로바키아의 절반을 먹어 치우는 데 성공했다.

 허나, 우리의 스탈린이 겨우 슬로바키아 절반에서 만족할 리가 없었고 소련군은 연합군이 오기 전에 은근슬쩍 전진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를 재깍 눈치챈 연합군 사령부에서 소련에 엄중히 항의했고, 소련군 감시를 위해 급히 병력을 파견하기로 했다.

 여기에 포함된 부대들 중 하나가 내가 소속된 제7전차연대였다.

 독일군과 싸우면서 제법 이름을 알린 정예부대이니, 소련군이 느끼는 부담감도 다른 부대들보다 더할 것이란 상부의 판단이리라.

 정작 불필요한 임무를 떠맡은 우리는 귀찮기 짝이 없었지만.

 "하~ 부다페스트는 구경도 못 해 봤는데 난데없이 슬로바키아로 가라니, 암만 네임드 부대라지만 정말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냐?"

 "내 말이. 씨발, 다른 놈들 보내면 어디 덧나냐? 맨날 우리만 보내."

 "좆같은 빨갱이 새끼들 때문에 우리까지 뭔 고생이야?"

 "조금만 참아라, 새끼들아. 나도 귀찮지만 어쩌겠냐? 전쟁하러 가는 게 아닌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본토에서 보내주기로 한 장비와 인원도 아직 절반 밖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라 그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병사들도 귀찮아 죽겠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전투가 아니라 감시가 목적인지라 마음만큼은 편했다.

 헝가리 국경 바로 뒤에 있는 루체네츠에서 열차는 정지했다. 열차에서 장비를 내리고, 동쪽으로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우리는 목적지에 당도했다.

 "보리스, 정지."

 대대의 선두에 위치해 있던 나는 한 무리의 병력이 이동 중인 모습을 보곤 곧바로 대대장에게 이를 알렸다.

 "여기는 뻐꾸기. 둥지 응답 바람."

 -둥지 수신. 뻐꾸기, 무슨 일인가?

 "1시 방향에서 이동 중인 병력 발견. 이쪽으로 오고 있다. 아무래도 소련군 같다."

 내가 발견한 병력들의 정체는 소련군이 맞았다.

 소련군도 우릴 발견한 듯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계속 되었다. 브랜슨 대령은 즉각 전차들을 일렬로 배치해 포탑을 돌리라고 지시했다. 단, 장전은 하지 말고. 오인사격에 대비하여 공축 기관총 총탄도 모두 빼내라고도 했다.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관총 약실 커버를 열어 탄띠를 빼내던 닉이 말했다.

 "정작 저놈들이 먼저 쏘면 우리는 그대로 당하는 거 아닙니까?"

 "그야 당연하지."

 "그럼 적어도 탄약은 장전해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대장님 말씀 못 들었냐, 이 멍청아. 오사날까봐 미리 빼두는 거잖아."

 게이츠 원사가 도중에 끼어들어 닉을 야단쳤다. 하지만 닉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소련군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그대로 당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럴 일은 없었다.

 "러시아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우리한테 장난 따윈 치지 않겠지. 저놈들은 북괴랑 다르거든."

 "북괴가 뭡니까?"

 "있어, 말도 안 통하는 또라이놈들."

 아, 씨발.

 완전히 고친 줄 알았는데 또 튀어나왔네.

 말을 함부로 내뱉은 혀를 깨물어서 혼내주고 있는데, 어느새 소련군이 100m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 정도 거리면 조준할 필요도 없이 대충 쏘기만 해도 맞는 거리였다. 장갑이 영국 전차들 중에 가장 두꺼운 센추리온이지만, 100m라면 방어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소련군은 아군과 불과 50m를 남겨두고 정지했다. T-34에 걸터앉은 소련 병사들의 얼굴 표정까지 눈에 보이는 거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2차대전의 모습들 중 하나인, 엘베강에서 서로 만나 악수하는 미군과 소련군 같은 장면은 없었다. 서로가 아무 말 없이 상대편을 응시하며 멈춰 섰을 뿐.

 과거에 나로 인해 촉발된 케임브리지 간첩단 사건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대위님, 저놈들 좀 보십쇼."

 뜻밖의 물건을 발견한 게이츠 원사가 말했다.

 "저놈 저거, 4호 전차 아닙니까?"

 T-34 전차들 사이로, 누가 봐도 독일제인 물건들이 간간이 보였다. 분명 독일군으로부터 노획한 것들이리라.

 "3호, 4호 전차에 돌격포까지...... 많기도 해라."

 "판터도 있네. 저놈들, 저걸 어떻게 구했지?"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소련군의 신형 전차들이었다. 여기서 보리라곤 생각도 못한 전차들 다수 섞여 있었다.

 "잠깐. 저거, T-43이잖아? 저놈이 왜 있는 거야?"

 눈에 띄는 T-34들은 T-34/76이라 부르는 76mm 주포 장착형들 뿐, T-34/85는 한 대도 없었다.

 대신 T-43이 다수 있었는데, 포탑은 내가 아는 T-34/85의 그것이었다.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여기의 소련은 T-34 대신 T-43으로 갈아타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기동성에선 T-34보다 딸려도, 방호력은 T-34보다 훨씬 나았으니 말이다.

 "소대장님, 저 돌격포처럼 생긴 못생긴 놈 좀 보십쇼."

 "그놈 참 더럽게 못생겼네. 주포는 또 왜 저렇게 굵어?"

 소대원들이 말한 놈은 SU-152였다. 못생긴 외형과 달리, 152mm 주포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라 별명이 맹수사냥꾼(Зверобой, 즈베라포이)이었던 놈이다. 정작 본인이 잡은 독일 중전차들보다 독일 중전차들에게 당한 놈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은 비밀.

 내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IS-2였다. 흔히 '스탈린 전차'로 알려진, 소련군 최강의 중전차.

 122mm 주포를 탑재한 거대한 포탑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조차 화력과 방어력에서 티거를 압도한다고 평한 전차만큼,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군도 우릴 향해 포탑을 돌렸지만, 역시 발포하지 않았다. 먼 길을 오느라 지친 모양인지, 녀석들은 전차에서 내려 솥을 걸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밥을 먹으려는 것 같았다.

 소련군이 밥을 먹기 시작한 뒤에야 우리 쪽에도 밥차가 도착했다. 일단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주포를 겨냥한 채 밥을 먹는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다시 전차에 탑승하여 상대방을 감시했다.

 ***

 슬로바키아에서 영국군과 소련군이 서로 대치 중일 때,

 베를린에선 역사에 길이 남을 이벤트가 열렸다.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통령 각하."

 한때 히틀러가 업무를 보고 차를 마셨던 총통 관저에서, 처칠은 루스벨트를 환하게 맞이했다.

 "매우 근사한 곳이군요. 새로 마련한 집입니까?"

 "당분간은요. 워싱턴에서 베를린까지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힘들긴요. 어차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아래 친구들이 다 해주는걸요."

 처칠과 루스벨트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을 때, 불청객-처칠과 루스벨트 입장에서-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많이 늦었습니다."

 "아, 드골 장군."

 "어서 오시오."

 앞의 두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한 키.

 둘보다 나이도 적고, 사용하는 언어도 유일하게 다른 드골은 자신에 대한 경계심이 어린 눈빛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마치 만난 것 자체만으로 달갑지 않다는 표정들.

 드골 역시 이들과 만나는 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선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서방 연합군의 주역 3인방이 모두 모였으니 회의가 열릴 차례였다.

 회의가 시작되기 무섭게, 드골은 자신의, 프랑스의 몫을 주장했다.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가 어떤 희생과 굴욕을 치러야 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말이다.

 "우리 프랑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우선, 자르를 독일에서 분리해 프랑스에 합병시키고, 라인란트 지역 또한 독일에서 분리시켜 자체적인 정부를 가진 독립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드골은 독일이 프랑스에 지불해야 하는 수억 달러가량의 배상금과 더불어 전후 프랑스의 재건을 위해 억류된 독일군 전쟁포로 중 100만 명을 동원하는 것, 서부 루르 지역의 산업시설들을 뜯어 프랑스로 이전하는 것과 독일 서부 및 남부 지역에 프랑스군이 50년간 주둔할 권리까지 주장했다.

 프랑스군의 주둔 비용은 전부 독일인들의 세금으로 유지될 예정이었으며, 이에 반발하는 독일인들은 프랑스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할 계획이었다.

 당연히 처칠과 루스벨트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을 넘어서 냉담했다.

 "너무 무리한 요구요, 장군. 그랬다간 독일 전역에서 게릴라들이 판치는 광경을 보게 될 거요."

 처칠의 말.

 "이미 프랑스군 점령지에서 독일인들에 대한 가혹행위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군이 투항하는 독일군 포로들을 무단으로 처형한 사례까지 다수 발생했다고 들었소."

 루스벨트의 말.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독일이 프랑스에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두 분 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드골은 처칠과 루스벨트의 냉담한 반응에 속으로 당황하면서도 겉으론 당당한 척 연기했다.

 어설픈 변명은 오히려 상대방의 반감만 더 키울 뿐. 차라리 이런 때일수록 강하게 나가야 한다.

 하지만 드골은 몰랐다. 자신의 방법이 이들에겐 더 역효과를 낼 뿐이라는 점을.

 드골이 강하게 나오자, 앵글로색슨족 2명도 강하게 나갔다.

 "솔직히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둔 공이 뭐가 있소? 전부 다 우리 미국과 영국이 도와줘서 겨우 해낸 것들 아니오."

 "프랑스인들 전체가 흘린 피보다 대영제국의 아들들이 흘린 피가 더 많다는 것은 다섯 살짜리 아이도 아는 사실이오. 대영제국의 여자들이 흘린 피까지 합치면 격차가 더 크고!"

 이미 이 회담의 주역이자 결정권자는 미국과 영국이었지 프랑스가 아니었다.

 프랑스가 낄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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