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233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233화
제4장 회담 (2)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듯이 휴식을 요청한 헥토스 국왕으로 인해 회담이 중단되자 이레스는 바로 오두막을 빠져나와 거대한 돌덩어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미 생각하고 있던 것이냐?”
뒤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공, 레이온 왕자를 바라보았다.
“생각이요?”
“…….”
되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 레이온 왕자가 그의 옆에 서는 순간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엘프들의 지원 요청.”
“아아.”
이제야 질문을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이레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유실리안 제국이 엘프들을 공격했다는 것도, 그들이 정령검이라는 무기를 제작하고 있다는 것도.”
“…….”
“솔직히 말하면 유실리안 제국은 현재 제국 중 최하위에 위치한 나라죠. 아무리 전쟁을 하고 싶어도 다른 제국이 침략하지 못할 명분이 필요한데 그 명분을 만들어 테라인 왕국을 공격하기까지는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엘프를 도와 동맹을 맺자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정령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유실리안 제국이 플레티안 제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떠올랐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유실리안 제국이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힘을 되찾기 전에 공격하는 방법을요.”
“그것이 엘프를 이용하는 것?”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이온 왕자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용한다고 보기는 힘들죠. 정령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 엘프들은 힘을 키우고 제국을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힘을 키우는 시간을 줄이도록 도와준 것이니까요.”
“…….”
“…….”
“어쨌든 이용한다고 생각되는데.”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요.”
작게 미소를 그리며 중얼거린 이레스가 이번엔 숲 속을 바라보았고 레이온 왕자가 힐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후에 다시 정면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명분을 가지고 있다 해도 꼬투리를 잡고 공격할 수 있는 나라도 있을 텐데?”
“큭.”
이레스가 레이온 왕자의 질문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뒤에 오히려 되물었다.
“왜 멕케인 공작이 아닌 크리스 님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
그의 말대로 이번 회담은 크리스가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멕케인 공작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맞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멕케인 공작이 아닌 크리스가 회담에 참여했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미 움직이고 있군.”
“예. 현재 멕케인 공작님은 왕국 주위에 자리한 다른 나라와의 거래를 위해서 벌써 움직이고 계십니다.”
* * *
끼이익.
거대한 대전의 문이 열리는 순간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수십, 수백의 백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발견한 멕케인 공작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기사들이 만들고 있는 좁은 길을 통해 왕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치 모든 귀족들을 내보내고 기사들로 채운 듯이 대전을 가득 채운 채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던 멕케인 공작이 왕좌로 올라서는 계단의 앞까지 도착했을 때였다.
쉬이익!
죽이기 위해서라는 듯이 양옆에서 검이 찔러 들어오더니 그의 턱 아래에서 멈추어 섰다.
“그만.”
“…….”
멕케인 공작이 자신에게 검을 겨눈 두 기사, 테라인 왕국과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세 왕국 중 하나인 베이반 왕국의 마스터 살레반 공작과 데놈 후작을 번갈아 바라본 후에 베이반 국왕을 향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테라인 왕국 멕케인 가문의 가주 멕케인 공작이 베이반 왕국의 주인을 뵙습니다.”
“…….”
40대 중반의 사내, 베이반 국왕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멕케인 공작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테라인 왕국의 공작께서 무슨 일인가?”
베이반 왕국과 테라인 왕국은 외교 관계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부딪칠 일이 없을뿐더러 동맹을 위해 서로를 향해 사신을 보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였다.
중립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든지 명분이 있고 틈만 보이면 테라인 왕국을 침략하는 데 앞장설 왕국이라는 뜻이었다.
멕케인 공작이 베이반 국왕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테라인 왕국의 대표로서 베이반 왕국과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거래라…….”
베이반 국왕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팔걸이를 두들기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거래를 뜻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전쟁입니다.”
“…….”
천천히 고개를 든 멕케인 공작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고 있는 베이반 국왕의 모습에 똑같이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어갔다.
“테라인 왕국은 몇 년, 아니 1년 안에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이반 왕국과 10년간의 휴전 기간에 대해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휴전.
전쟁을 일시 중단한다는 이야기였다. 허나 베이반 국왕은 휴전보다는 테라인 왕국의 전쟁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전쟁을 치른 이후, 10년간의 피해 복구 시간이 있다고 하여도 만약 전쟁을 통해 마스터가 목숨을 잃게 되면 그 10년은 너무 부족한 시간이 된다.
그것도 유실리안 제국이라는 거대한 적을 앞둔 테라인 왕국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들이 공격할 나라가 어딘지 너무 궁금했다.
“호오. 유실리안 제국과 외교 관계가 나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쟁을 치른다라…….”
베이반 국왕이 재미있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더니 멕케인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와 전쟁을 치른다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는가?”
“유실리안 제국입니다.”
“재미있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유실리안 제국을 1년 안에 공격한다?”
“…….”
“테라인 국왕이 노망이 든 것인가?”
멕케인 공작이 입가에 그린 미소를 유지한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은 존재합니다.”
“피해 복구 기간을 무시할 수 있는 명분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명분을 걸고 전쟁을 벌인다면 다른 나라가 테라인 왕국을 공격하지 못할 터인데 휴전 거래라…….”
“테라인 왕국은 확실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크하하하하!”
멕케인 공작의 말에 대전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트린 베이반 국왕이 웃음을 멈추며 물었다.
“10년의 휴전 기간을 위해 내미는 카드는?”
“유실리안 제국의 영토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자신감이 과하군.”
“제국 간의 전쟁이 종결된 이후의 전쟁입니다.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흐음. 차라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테라인 왕국을 건드리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멕케인 공작이 위험한 발언을 하는 베이반 국왕을 빤히 바라보다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테라인 왕국의 사람이 아니라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
너무나 당당하게 동의하는 멕케인 공작이었다.
베이반 국왕은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기 시작했고 작은 미소를 그리고 있던 멕케인 공작은 품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두 마스터 중 한 사람, 살레반 공작에게 내밀었다.
“전해주시겠습니까?”
“…….”
서류를 받는 대신 물끄러미 멕케인 공작을 바라보던 살레반 공작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베이반 국왕을 바라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서류를 건네받았다.
“읽어봐라.”
“예.”
서류를 받는 순간 베이반 국왕의 명령이 떨어졌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한 살레반 공작이 대전을 가득 채울 정도의 큰 목소리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바드렌 왕국과 칼렌 왕국, 네이반 왕국은 테라인 왕국이 유실리안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유실리안 제국의 영토 일부분을 받는 것을 통해 10년간 테라인 왕국과 휴전을 결정했음을 알리며 만약 테라인 왕국이 전쟁을 치르는 도중 제3의 나라가 테라인 왕국을 공격할 시…….”
놀란 듯이 입을 꾹 다문 살레반 공작의 모습에 베이반 국왕이 멕케인 공작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다시 명령을 내렸다.
“끝까지 읽어라.”
“……테라인 왕국을 공격할 시, 그 나라를 향해 연합군을 결성하여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몰살시키는 것에 동의한다.”
“…….”
대전 안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둘러싸였고 기사들의 시선은 베이반 국왕에게, 베이반 국왕은 멕케인 공작에게 고정되었다.
멕케인 공작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베이반 국왕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베이반 왕국을 제외한 테라인 왕국과 근접해 있는 모든 나라가 동의하였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
“연합군의 공격에 전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왕국처럼 유실리안 제국의 영토를 받겠습니까?”
* * *
회담이 끝나고 왕국으로 돌아가는 길.
저벅저벅.
묵묵히 헥토스 국왕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헨들릭스 공작이 자신의 국왕의 등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움직이실 겁니까?”
“고민 중입니다. 생각보다 매력적이니까요.”
“…….”
헥토스 국왕의 말대로 너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지원을 해주었을 경우 함께 전투를 벌이지 않은 인근 왕국보다 더 많은 양의 유실리안 제국의 영토를 나눠준다.
전쟁 자체도 그렇게 많은 피해를 입을 거 같지 않았다.
이미 유실리안 제국은 플레티안 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니 그 전쟁이 종결된 직후에 침공을 한다면 큰 피해가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만약 큰 피해를 입더라도 얻게 되는 보수였다.
“제국의 영토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테라인 왕국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매력적인 것……. 엘프와의 동맹입니까?”
“…….”
헥토스 국왕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문물이 아닌 다른 이종족의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자신의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뛰어난 정령사이자 뛰어난 궁수인 엘프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유실리안 제국의 영토를 받지 않는다 쳐도 엘프와 동맹을 맺는 것 자체만 두고 생각을 한다면 헥토스 왕국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이야기였다.
“오만이면 충분하겠지요?”
“……십만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제안에 더해서 말하는 헨들릭스 공작의 대답에 헥토스 국왕이 걸음을 늦추고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십만의 병력이라면 현재 헥토스 왕국의 절반이나 되는 군력입니다.”
“하지만 3년 전, 테라인 왕국은 십만이 넘는 병력을 지원군으로 출정시켰습니다.”
“……도움을 갚는다는 것이군요.”
동맹국이고 혈맹처럼 맺어졌다고 해도 상대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은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였다.
도움은 어떻게 보면 빚이라고 볼 수 있었으며 상대방이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빚이라 느끼기 때문이었다.
헥토스 국왕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은밀하게 십만의 병력을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흐린 헥토스 국왕이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산 아래로 보이는 테라인 왕국의 성도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제국과의 전쟁이 이루어졌을 경우 헨들릭스 공작님이 사령관을 맡아주십시오.”
“…….”
헨들릭스 공작이 처음으로 멈칫하며 바라보았고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걸음을 멈춘 헥토스 국왕이 그를 돌아보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지원군으로서 병력을 보내기에는 그들은 두 명의 마스터와 한 나라의 유일한 왕자가 움직였으니 피해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어도 그의 걸맞은 인물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