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3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37화
승부의 시간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쌍권총을 들어서 두 포인트를 조준했다.
하나는 헤이싱의 머리. 이건 헤이싱의 주의를 끄는 공격이다.
또 하나는 헤이싱을 둘러싸고 있는 오러 보호막의 윗부분.
타앙, 탕!
헤이싱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제자리에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 피한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발이 오러 보호막의 윗부분을 파손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실프가 AW50F를 발사했다.
타아아앙!!
내가 쏜 총탄으로 찢겨져 나간 오러 보호막의 틈새로 12.7㎜ 탄환이 파고들었다.
퍼어억!
“크어억!”
헤이싱의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됐다!’
나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헤이싱은 털썩 쓰러졌다. 등에서 붉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치명상이었다.
‘보통은 신체 일부가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일격인데. 오러 마스터라 그런지 육체가 단단하구나.’
즉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헤이싱의 육체에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이걸로 나의 승리였다.
나는 쌍권총으로 헤이싱을 겨누며 가까이 다가갔다.
헤이싱이 들고 있던 힐링포션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큭……!”
헤이싱은 밀려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간신히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보며 누운 헤이싱은 내가 겨누고 있는 권총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진 거군…….”
“그래.”
“이렇게 일찍 죽을 줄은 몰랐는데…….”
헤이싱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죽음을 빨리 받아들이네?”
“싸움 중반부터…… 내가 말렸지…… 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
‘그렇군.’
나도 그랬다.
중간부터 내가 이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확히는 오러 보호막을 찢을 정도의 위력을 내는 사격술을 터득했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탄력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익힌 스킬과 훈련과 경험이 총망라된 듯한 완벽한 싸움을 했다.
반면, 헤이싱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타입인 나를 상대로 만나는 바람에 시종일관 주도권을 빼앗겼다.
“하나만…… 묻지.”
“물어봐.”
“그때 네가 말한…… 쿨럭!”
말하다가 헤이싱을 피를 토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무술가…… 이름이 강천성이라고 했나?”
“그런데?”
“혹시 장티엔성 아니냐?”
“모르겠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들어보지 못해서. 아무튼 상해 출신이고 번자권과 팔괘장의 달인이었다.”
“팔괘장…… 그럼 맞구나…….”
헤이싱은 기가 찬다는 듯이 클클 웃었다.
“어릴 적 잘 아는 동네 형이었는데……. 같이 무술을 배우는 사이였는데…… 지도까지 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지.”
헤이싱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참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도 저승에 있나. 하하…… 모두 거기서 만나겠군. 그래…… 누구나 결국은 거기서 만나게…….”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젖었다.
목에 손을 가져다댔다. 맥이 잡히지 않았다.
강천성과 아는 사이였다니 의외였다.
그런 인연이 있었구나.
이런 녀석도 그리운 어린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나는 헤이싱을 처치했다.
초토화가 되다 못해 높이가 절반 이상 깎여 내려진 언덕 위에서 나는 멍하니 섰다.
언제까지 이런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막 바로 죽일걸.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들어서.’
기분이 못내 찜찜하고 슬펐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싸움은 계속해야지. 아직 우리가 이긴 것이 아니니까.
나는 하늘에 떠 있는 실프를 불렀다.
그리고 누워 쏴 자세로 저격 준비를 했다.
타앙!
조금 활약한다 싶은 해적은 무조건 쐈다.
특히 머리가 검고 피부가 황색인 적은 무차별로 쏴 죽였다. 중국 시험단의 타락한 시험자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명이나 죽였을까?
다시 시작된 저격에 해적 측은 헤이싱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기세 좋게 항구를 침략했던 해적들은 썰물처럼 후퇴를 개시했다.
나는 놈들이 배를 타고 항구를 떠날 때까지 저격을 멈추지 않았다.
배를 전부 파괴해서 도망 못 가게 할까 싶었지만 그건 관두기로 했다.
나도 힘이 거의 바닥난 참이었다.
도망갈 길을 잃은 중국 측이 필사적인 각오로 반격에 나선다면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땡땡땡―! 땡땡땡―! 땡땡땡―!
타종이 연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항구 수비군의 뜨거운 함성 소리도 울려 퍼진다.
우리가 승리한 것이었다.
파아앗!
바로 옆에 시험의 문이 생성되었다. 시험이 클리어된 것이다.
위잉, 위잉.
교신기가 울렸다.
받아보니 차지혜였다.
-무사하십니까?
“네, 지혜 씨도 무사하죠?”
-예, 시험의 문이 옆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헤이싱을 처지하신 겁니까?
“예, 간신히요. 저도 시험의 문 나타났어요.”
-돌아가기 전에 교신기와 인공근육슈트를 돌려드려야겠습니다.
“그럼 우선 여관에서 봬요.”
-예.
나는 데포르트 항구로 달려갔다.
항구는 번잡했다.
도시 밖으로 피난을 떠나 있던 사람들이 승리의 타종 소리를 듣고서 돌아오고 있던 것이다.
나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그 틈에 끼어서 조용히 항구 안에 들어섰다.
하지만 내가 나타나자 병사들이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영웅님이다!”
“저분께서 우릴 승리로 이끌어 주셨어!”
“오딘 울펜부르크 백작님의 수하야!”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로 쏠렸다.
“와아아아!”
“만세―!”
“영웅님 만세!!”
사람들은 그저 나를 보며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갑자기 주목을 받자 부끄러워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피했다.
사람들은 양옆으로 길을 비켜주면서도 박수치고 환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개선장군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묵던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예.”
차지혜는 이미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내게 내밀었다.
인공근육슈트에서 그녀의 살 내음이 나는 것 같아서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왜 그러십니까?”
“예? 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냄새가 나서 그렇습니까?”
“크헉! 아, 아니에요! 나쁜 냄새가 아니……!”
거기까지 말한 뒤에야 나는 내 스스로 자폭했음을 깨달았다.
“나쁘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끄아아아악!’
그녀의 사무적인 어조가 나를 더욱 쪽팔리게 만들었다.
어쩐지 그녀가 살짝 웃은 것 같은데, 내 착각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럼 나가 있을 테니 김현호 씨도 옷을 갈아입으시죠.”
“예…….”
차지혜가 밖으로 나가 있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을 느끼며 인공근육슈트를 벗었다.
슈트와 교신기를 모두 가공간에 넣은 후에 다시 차지혜를 불러들였다.
“석판 소환.”
차지혜는 석판을 소환하고 이어 말했다.
“시험을 끝내겠다.”
파아앗!
그러자 다시금 시험의 문이 생성되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차례로 안으로 들어섰다.
***
뿌우우― 뿌우―
“축하합니다!”
아기 천사가 나팔을 요란하게 불며 반겼다.
“레퍼토리가 너무 뻔한데. 다른 건 없냐?”
내가 묻자 아기 천사가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폭죽이라도 터뜨릴게요.”
“마음대로 해라.”
“그건 그렇고, 시험자 김현호. 이야, 이번에도 대활약을 하셨네요?”
“대활약을 하지 않으면 못 깨는 시험만 주고 있잖아.”
“그래서 그게 불가능했던가요?”
“……가능하니까 살아남았지.”
“거봐요. 불가능한 시험은 주지 않는다고 몇 번을 얘기해요.”
문득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말이야.”
“맞아요.”
“……?!”
“댁이 생각하고 있는 그 설마가 맞아요.”
아기 천사는 내 생각을 읽고서 선수를 쳤다.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거였다.
이번 시험에서 내가 강해진 만큼 다음 시험의 난이도도 더 어려워지는가?
답은 예스.
이 악랄한 시험 체계는 내가 얼마나 성장할지도 전부 염두에 두고, 간신히 클리어할 정도의 난이도를 제시한다.
“더불어 시험자 차지혜도 요번에 꽤 카르마를 많이 얻으셨던데, 그 점도 전부 감안될걸요? 카르마 보상 잘못 받으면 큰일 나요.”
나는 얄밉게 웃는 아기 천사에게 총을 쏘고픈 충동이 들었다.
“자자, 그럼 돌아가서 편히 쉬세요. 아쉽지만 100일 뒤에 또 뵙죠!”
이번 휴식 시간도 100일인 모양이었다.
***
현실로 돌아왔다.
노르딕 시험단 본부의 지하에서 깨어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얼마나 성과를 얻었는지 한번 볼까?’
타락한 시험자도 많이 죽였겠다, 시험도 완벽하게 클리어했겠다, 카르마를 얼마나 얻었을지 기대가 컸다.
석판을 소환하려고 할 때였다.
쾅쾅쾅!
누군가가 밖에서 거칠게 문을 두들겼다.
“현호! 문 열어 현호!”
마리 요한나였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문을 열어주자,
와락!
마리가 비호처럼 덤벼들어 내 품에 안겨들었다.
“보고 싶었어!”
나무늘보처럼 내 목에 매달린 마리는 내 허리를 두 다리로 감고 날렵하게 등 뒤로 이동하는 재주까지 부렸다.
“마리 씨는 어때요? 시험은 클리어하셨어요?”
“응! 계속 오딘 옆에 붙어 있으나 지겨웠어.”
하기야.
마리의 시험은 오딘의 신변 보호였다. 오딘이 무사히 돌아왔다면 마리의 시험은 클리어된 것이었다.
“김현호 씨!”
오딘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찬가지로 시험을 마치고 나온 오딘은 반갑게 날 보았다.
“해적들은 물리치셨소?”
“예, 그리고 헤이싱을 처치했어요. 헤이싱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그러자 오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카르마 총량 세계 13위라는 헤이싱 말이오?”
“13위요?”
“그렇소. 1년 전 중국 시험단의 발표에 따르면 그랬소. 타락한 시험자가 되어서 그 후로는 카르마를 얻지 못해 서열이 떨어졌지만, 한때는 8위에 랭크되었던 인물이오.”
그 정도로 거물이었을 줄이야.
하긴 그 정도였으니 리창위의 라이벌이 되었겠지.
“중국 시험단 내에서 리창위의 독주를 견제하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졌었는데, 설마 그런 자를 처치할 줄이야!”
오딘은 놀랍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이제 8회차인 나였다.
그런 내가 세계 서열 톱10에 회자되었던 거물과 싸워 이겼다니 신기할 법도 했다.
‘헤이싱이 세계 서열 13위였던 말이지?’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꼼수나 잔수작이 아닌, 정면 승부로 헤이싱과 맞붙어 이겼기에 더욱 그랬다.
이제는 나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강자가 된 것이다!
“헤이싱이 죽었다면 중국 시험단은 리창위의 지배체제가 되겠구려.”
내 생각도 그랬다.
의도치 않게 나는 리창위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었다.
나로서는 시험을 클리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만 결국 리창위에게도 이득이 돌아가고야 말았다.
‘그래도 나 역시 전보다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나는 헤이싱을 죽였다.
리창위의 입장에서도 얕볼 수 없는 강자였던 헤이싱을 죽일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었다.
리창위도 이제 나를 얕볼 수 없다.
또한 목적을 이룬 리창위의 입장에서는 굳이 나와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리창위가 중국 시험단을 장악하고 나면 더 이상 중국 측에서 나를 음해하려 들 일은 없을 터였다.
‘그보다 카르마를 얼마나 얻었나 확인해 봐야겠군.’
나는 석판을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