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3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35화
“헤이싱이 똑똑했다면 작전을 중단하고 회군해야 합니다.”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차지혜가 의견을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나 한 사람에게 입은 피해가 그 정도예요. 더 피해 입을 것을 피하고 싶다면 작전을 중단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그자의 성격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차지혜가 설명했다.
“애당초 공격 나온 것도 지난번의 실패로 받은 질책의 빌미를 타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마도, 리창위가 의도적으로 압력을 넣었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우습게도 리창위는 내게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번에 나와 한 번 마주하고서 무언가 믿음이 생긴 것일까?
내가 헤이싱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를 거는 듯한 행보였다.
“아무튼 그렇다고 헤이싱에게 사정을 봐줄 필요도 여유도 없습니다. 이쪽은 되도록 철저하게 해적 격퇴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헤이싱을 살아 보내지 않는 게 좋겠군요.”
“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빈센트는 묵묵히 노를 저었다.
그리고 마침내 항구 선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 왔습니다!”
빈센트가 기분 좋게 소리쳤다.
“와아아아!”
“왔다!”
“빈센트 아저씨!”
등대 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등대에 모인 어부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사히 돌아온 걸 확인하고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돛단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중년 사내가 장교들을 거느린 채 성큼성큼 병사들 사이로 걸어왔다.
바로 아젠 연대장이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군복도 머리도 아주 깔끔해서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오셨소.”
“예.”
“다치신 곳이 없어 보여 다행이오. 가신 일은 어찌 되었소?”
“해적선 32척 중 9척을 격침시켰습니다.”
“9척이나?”
아젠 연대장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정말이오?”
“설마 거짓말을 할까요?”
“연대장님!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늙었다고 제 눈을 무시하시진 않으시겠지요?”
빈센트가 나서서 말했다.
아젠 연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내린 자네의 눈을 어찌 무시하겠는가. 어땠는지 말해주시게.”
“정말 대단했습니다! 가지고 계셨던 기다랗고 이상한 무기가 불꽃을 뿜을 때마다 놈들의 마스트가 하나씩 뚝뚝 부러지고, 결국 배가 기울어 침몰되었지요.”
빈센트는 신이 나서 자신이 직접 본 싸움을 설명했다.
“제 돛단배가 정령의 힘으로 쑥쑥 나아가고, 정말 제 평생에 이보다 더 신기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빈센트는 나를 가리키며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분은 그 헤이싱과도 싸우셨습니다!”
“설마 그 해적단 총수 헤이싱 말인가?!”
“예! 그 헤이싱 놈이 바다 위를 펄쩍펄쩍 뛰어왔는데, 이분께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헤이싱과 크게 한판 싸우셨지요. 하늘과 바다를 오가면서 싸우는데 정말……!”
빈센트가 떠드는 말을 들으면서 아젠 연대장과 병사들의 얼굴빛이 놀라움으로 물들어갔다.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점점 존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젠 연대장은 내 손을 꽈악 잡았다.
“정말 감동했습니다! 이 나라가 하지 못한 일을 단신으로 해내시다니! 경은 영웅입니다!”
“별말씀을요.”
“놈들의 기세가 크게 꺾였을 겁니다. 경 같은 영웅이 이 항구에 있다는 것을 놈들도 똑똑히 알고 있을 테니까요.”
“뭐, 확실히 사기가 많이 죽긴 했을 겁니다. 워낙 큰 혼란을 겪어서 그걸 다 수습하지도 못했을 테고요.”
침몰된 배에 탔던 해적들을 구조해 주고, 무너진 대형을 제정비하는 등 수습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습니다.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해적들은 공격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 말에 아젠 연대장도 동의했다.
“물론 방심은 금물입니다. 저희는 오늘 기필코 놈들을 격퇴하여 다시는 이 항구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 겁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째 상황이 리창위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아무튼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싸우는 와중에 타락한 시험자를 대거 사살해서 카르마를 대량 획득할 찬스 말이다.
아까의 싸움에서도 5명이나 죽였지만 다다익선 아닌가.
***
아젠 연대장의 지휘 하에 다들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홀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저격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타락한 시험자를 죽여서 카르마를 얼마나 땄나 봐야겠군.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33
-카르마(Karma): +16,500
-시험(Mission): 해적의 침공을 막아라.
-제한 시간(Time limit): 무제한
‘우와!’
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려 16,500카르마!
아까 그 한 번의 전투로 얻은 성과였다.
해적으로 활동하며 흑마법사 조직과 협력까지 하는 악질들이라 마이너스 카르마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럼 해적단의 우두머리인 헤이싱을 죽인다면 대체 얼마나 더 카르마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보다 더 의욕이 샘솟았다.
‘어찌 보면 나도 그놈들하고 비슷한가?’
놈들은 사람을 해쳐서 마정을 얻고, 나는 그놈들을 죽여서 카르마를 얻는다.
이젠 대물 저격소총에 맞고 신체 일부분이 날아가 버리는 끔찍한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한 방에 사살했다는 쾌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무장, AW50F.”
나는 AW50F를 소환해 땅에 얹어놓고 엎드려쏴 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나쁜 놈들이니까.
죽일 놈들 죽여서 이득 보는 게 뭐가 나빠?
……그런 생각이 점점 내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문득 의문이 든다.
이 세상에 시험이 완전히 클리어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레나 관련 산업에 대거 투자를 한 자본가와 정치가는 당연히 마정을 더 이상 획득할 수 없는 상황을 원치 않겠지.
중국 시험단의 행동이 가장 노골적일 뿐, 사실은 거의 모든 나라 기관이 그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투자자들만의 생각일까?
나는 시험자 중에서도 다수가 클리어를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으로 인하여 강력한 힘을 손에 넣고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시험자라는 신분!
그것은 자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선택받은 존재라는 자부심을 주는 것이다.
만약에 모든 시험을 클리어해서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시험으로 인해 얻었던 스킬들도 전부 사라져 버린다면?
내가 다시 평범했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세월을 보내던 그때의 무기력한 나로.
지금처럼 모두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걸 견딜 수 있을까?
돈은 문제가 아니다.
시험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두려움이란 바로 그런 점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타락한 시험자들은 그걸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런 길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지혜 같은 능력자는 몰라도 말이지.’
원채 시험자이기 전에도 능력이 있었던 차지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과거의 내가 두렵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까봐 무섭다.
그럼에도 나는 시험을 클리어할 것이다.
이혜수.
이준호.
강천성.
3회차에서 죽어버린 내 동료들. 그들은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살아남은 나다.
그걸 생각해서라도, 시험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땡땡땡―
데포르트 항구에 타종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멀리 해안선을 바라보니 해적함대가 나타난 것이 보였다.
앞에 일렬로 선 5척의 해적선은 방어 마법이 둘러져 있었고, 그 뒤로 나머지 해적선들이 따르는 모습이었다.
내 저격에 대응한 포메이션으로 보였다. 놈들도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다.
‘하는 수 없지.’
일단 해적선 마스트를 노리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좀 더 싸움을 지켜보면서, 강자가 나타나면 즉각 저격할 생각이었다. 해적단의 강자란 타락한 시험자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양측이 싸움을 시작했다.
해적들이 배에서 뛰어내려 상륙을 시도했다.
선착장을 비롯해 바다에서 들어오는 길을 전부 차단한 병사들이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해적들이 속출했다.
해적들의 무작정 상륙하려는 공격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해적들 사이에서 당황한 기색이 언뜻 느껴졌다.
‘그렇구나. 데포르트 항구에서 이렇게 저항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야.’
그동안 한 패거리인 앗셀 집정관과 데커 연대장의 도움으로 거의 무혈입성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그 두 사람의 죽음을 아직 모르는 해적들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일일 터였다.
맹렬한 화살공세에 해적들의 상륙이 주춤하자, 아젠 연대장이 명령을 내린 것인지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얼마든지 덤벼―!”
벌써부터 이긴 것 같은 쩌렁쩌렁한 함성 소리. 아젠 연대장이 해적들을 상대로 기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심리전을 펼친 듯했다.
아무튼 시작이 좋았다.
해적단은 나름 머리를 써서 우선적으로 방어 마법이 걸린 선두의 5척만 먼저 상륙을 시도했다.
상륙이 끝나면 다시 다른 배들이 방어 마법을 걸고서 상륙을 시도하는 그런 방식으로 보였다.
‘마법사가 5명 정도 있는 모양이군.’
내 저격으로 배가 피해 입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는데, 그 작전은 큰 맹점이 있었다.
일시에 전 병력이 내리지 않고 5척씩만 상륙을 시도하니, 항구 수비군이 쏘는 집중 궁시에 맥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이윽고 해적단 측에서도 헤이싱이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뒤에 숨어 있던 모든 해적선이 해안가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걸 기다렸다.’
나는 방어 마법이 둘러져 있지 않은 해적선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실프에게 소리차단을 시키지 않았기에 총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한 해적선의 앞쪽 마스트가 왼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타아아앙!
이어서 뒤쪽 마스트까지 부러져 버렸다.
선체(船體)를 못 가누고 기울어진 해적선은 옆에 있던 다른 해적선과 충돌하였다.
“와아아아!”
항구 수비군이 다시 한 번 함성을 질렀다.
타아앙― 타앙― 타아아앙―!
나는 계속해서 저격을 했다.
같은 방법으로 2척이 더 부서져 버렸다.
물론 해적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해적들이 일거에 쏟아지며 개미 떼처럼 육지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항구 수비군이 화살을 퍼부으며 저항했지만, 결국 해적들은 육지에 이르러 병사들과 충돌했다.
방패와 창을 들고 앞에 도열한 병사들이 해적들을 맞아 싸우기 시작했다.
항구 수비군이 훨씬 질서정연했지만, 해적들은 기세등등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거친 해적들과 지금껏 제 기능을 제대로 못했던 항구 수비군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해적선들의 마스트를 쏘아서 부서뜨리는 데 몰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항구에서 한 인영이 훌쩍 점프해 공중을 날았다.
스코프로 자세히 바라보니 얼굴이 보였다.
바로 헤이싱이었다.
헤이싱은 엄청난 도약으로 단숨에 수비군의 머리를 뛰어넘고 항구에 상륙했다.
그리고 훌쩍훌쩍 건물들을 뛰어넘어가며 하늘을 날듯이 이동했다.
헤이싱은 내가 있는 언덕으로 똑바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