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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2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7화

 

리창위라는 내 말에 차지혜와 마리가 하던 일을 멈췄다.
“내게 무슨 일이지?”
먼저 반말을 했으니 나 역시 반말을 하기로 했다.
-만나지.
“내가 당신을?”
-그렇다.
“싫은데?”
-싫어도 나오게 할 방법은 많아. 그냥 말로 할 때 나오는 게 좋지 않겠나?
“…….”
인질을 잡아서 불러낼 수도 있다 이건가. 한국아레나연구소가 중국 편이니 내 가족 신상도 금방 알아내겠지.
-오늘은 이야기만 할 거다.
“그럼 당신이 이리로 와.”
-뭐?
“내 집에 오라고. 이야기만 할 건데 어때. 밖에 나가봐야 춥고 돈 들고.”
그러자 리창위는 코웃음을 쳤다.
-좋다. 그리로 가지.
“인터폰 하라고. 잡상인은 못 들어오거든.”
리창위는 대꾸 없이 통화를 끊었다.
나는 차지혜에게 말했다.
“이리로 온대요. 차지혜 씨는 어쩌실래요?”
“같이 보죠.”
“괜찮으시겠어요? 상대는 지혜 씨를 죽인 그 자식이잖아요. 그리고 아직 신분도 감춰야 하시고…….”
“어차피 언제까지고 제 존재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김현호 씨를 감시하다 보면 늦든 빠르든 제 존재는 드러납니다. 이미 알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리 씨는요?”
“볼래!”
마리가 씩씩하게 외쳤다.
이럴 땐 든든하군.
셋이 함께 있으니 리창위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만반의 태세를 다 갖추자.
나는 가공간에서 인공근육슈트 3벌을 꺼냈다.
우리는 인공근육슈트로 갈아입었다.
또한 실프와 카사에게 AW50F를 주면서 건너편 오피스텔 건물 옥상에서 저격 준비를 하고 있도록 했다.
모든 태세를 완비했을 때, 리창위가 도착했다.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풀어놓고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까.
끼익―
문을 열고 나타난 리창위.
리창위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손님 대접이 형편없군. 제대로 문을 열고 환영해야지.”
“손님도 손님 나름이지.”
안으로 들어온 리창위는 거실에 있는 차지혜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넌?”
차지혜는 말없이 리창위를 응시하기만 했다.
자신을 살해한 상대와 마주했다.
그럼에도 두려움도 분노도 보이지 않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침착성이 대단해 보였다.
“하하핫! 내 손에 죽어서 시험자가 된 건가? 이거 대단한 우연이군!”
“내 시체를 바다에 버렸더군.”
차지혜가 덤덤히 말했다. 리창위는 유쾌하게 웃었다.
“하핫, 그래그래! 부하들이 너를 돌에 매달아 바다에 수장시켰는데. 시험에서 돌아와 보니 바다 속은 아니었나?”
“해변이었다. 그리고 내 지갑과 차키를 훔쳐갔더군.”
“쯧쯧, 워낙 천한 놈들이라. 미안하게 됐군. 내가 보상하지.”
리창위는 뜬금없이 아이템백을 소환하더니, 안에서 금괴 하나를 꺼냈다.
“이만하면 됐겠지.”
“충분하다.”
차지혜는 잠자코 금괴를 건네받았다.
재미있어 하는 리창위나 아무렇지 않아 하는 차지혜나 괴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리창위는 배짱 좋게도 거실 소파에 편안히 앉았다.
지금쯤 실프가 놈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을 터였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지?”
내가 물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널 죽이거나 반쯤 죽여서 데려가려 했는데 말이지.”
그따위 소리를 본인 앞에서 잘도 하는군. 자기가 더 강자라 이건가.
“해보시지?”
“큭큭, 그럴까 싶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
“……?”
“이제 7회차일 테지?”
“그렇다.”
“고작해야 7회차인데 넌 너무 강해졌어. 이상할 정도로 빠른 성장이야. 노르딕 시험단도 너를 보호하는 분위기고.”
“…….”
“오딘이 나에게 경고씩이나 하면서까지 널 보호하려는 걸 보면, 단순히 치유 능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리창위의 뱀 같은 눈빛이 나를 응시한다.
가공간.
전자기기를 수납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알면 과연 어떤 반응을 할까?
물론 절대로 가르쳐 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무슨 제안?”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힘으로 안 되니까 이젠 좋은 말로 회유를 하겠다는 수작 같다.
리창위는 차지혜와 마리를 곁눈질했다.
“둘만 이야기할 수 있겠나?”
“가능하다. 실프!”
-냐앙.
건너편 건물 옥상에 있던 실프가 내 옆에 나타났다.
“둘이서만 대화할 수 있게 소리를 차단해 줘.”
-냐앙.
실프가 힘을 발휘했다. 한 줄기의 바람이 리창위와 나를 감싸고 지나갔다.
“이제 됐다.”
“편리하군.”
리창위는 실프를 쳐다보았다. 실프는 내 어깨 위에서 하품을 한다.
“이제 말해봐.”
“나와 손을 잡자.”
“뭐?”
순간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지금 뭐래? 손을 잡자고?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 안 하고?”
“그리 멀리 왔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손해는 우리 중국만 봤지, 너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을 텐데.”
“차지혜 씨를 죽였잖아!”
내가 화를 냈다.
이놈들은 대체 사람 목숨을 뭐로 아는 거야?
“하지만 결국 살아 있잖나. 내가 보기엔 생전보다 지금이 더 좋아 보이던데.”
“그래서 잘못한 게 없다고?”
“우린 총 6명이 죽었지. 그만큼 넌 카르마를 얻어서 강해졌을 테고. 지금쯤 정령술을 상급까지 찍지 않았나? 그랬을 것 같은데.”
“…….”
“그러니까 피차 과거는 그만 따지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난 중국을 믿지 않아.”
날 납치하려 했다.
아레나에서 온갖 악독한 짓을 자행하며 돈벌이를 하는 놈들을 신뢰할 수 없다.
“중국? 내가 언제 중국과 협력해 달라고 했던가?”
“무슨 뜻이지?”
“중국이 아니야. 나와 손잡자는 거지.”
나는 놀라 리창위를 바라보았다.
리창위는 차갑게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나? 어째서 이런 강한 힘을 갖고도 남의 지배를 받아야 할까?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 최고 통치자의 목도 언제든 따버릴 수 있는데.”
“쿠데타?”
“다르지. 권력구도를 좀 올바르게 바꿔보자는 거야.”
“미친…….”
“시험자는 매번 목숨을 걸고서 아레나를 다녀온다. 그러면서도 권력자와 자본가에게 지배받으며 돈벌이에 이용당하지. 그게 더 미친 것 아닌가?”
“그래서? 같이 손잡고 나라 하나 무너뜨려 보자고?”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야.”
리창위가 말을 이었다.
“중국의 공산당 간부들은 우리 시험자들을 유용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면서도 또한 두려워하지.”
당연하지.
시험자는 마음만 먹으면 수백, 수천을 살해할 수 있는 괴물들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시험자를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터였다.
바로 이 리창위 같은 생각을 하는 놈이 나타나는 걸 막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은 나를 시험자들을 통솔하는 최고 책임자로 임명했으면서, 또 다른 시험자로 하여금 나를 견제하는 대항마가 되게 했지.”
“파벌인가.”
“시험자들이 두 파벌로 나뉘어서 서로를 견제케 해서 딴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거지.”
“…….”
“가족을 인질로 잡아두거나 하는 방식도 쓰지만, 그것이 가장 핵심적인 통제수단이다.”
“그래서, 널 견제하는 상대 파벌을 나더러 없애 달라고?”
“이해가 빠르군.”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아레나에서 손쉽게 놈들을 죽일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그놈들 대부분은 타락한 시험자이니 죽이면 죽일수록 넌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는 중국 시험단의 적대를 받지 않도록 해주지. 원한다면 김중태 소장도 처치해 주겠어.”
그건 좀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무슨 뜻이지?”
“그래서 널 방해하는 파벌을 없애고 권력을 차지하면, 그다음에는 뭘 할 거냐고.”
“뭐, 별것 있나? 지금처럼 열심히 돈 벌며 사는 거지.”
그 대답에 나는 냉소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지. 역시 제안은 거절한다.”
“바보 같은 생각이군. 네 입장에서도 큰 이득이 될 텐데 거절한다고?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의아해하는 리창위에게 내가 이어 말했다.
“너희는 분명히 시험이 클리어되는 걸 방해하겠지. 지난번처럼 내가 시험을 해나가면 반드시 또 충돌할 거야.”
내가 계속 말했다.
“다행히 지금은 파벌로 나뉘어 있고 윗대가리는 아레나를 조금도 모르는 권력자들이지. 그런데 너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지면 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그리고…….”
나는 이를 갈며 말했다.
“가치관의 차이로 큰 이익을 거절하는 게 바보 같나? 난 너희처럼 쓰레기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과 조금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사람을 해쳐서 돈 버는 놈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군?”
리창위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겁먹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렇다.”
“그럼 이제 대화는 끝난 것이군.”
그 순간, 리창위의 몸에서 막대한 오러가 피어올랐다. 오러를 끌어올리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 또한 급히 소리쳤다.
“실프, 융합!”
-냥!
실프가 내 몸속에 들어왔다.
리창위가 소파에서 벌떡 몸을 튕기며 나에게 손날을 뻗었다. 놀랍게도 그의 손날에 오러가 머금어져 있었다. 마치 손을 검처럼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람의 가호!”
바람의 가호를 펼친 후, 회오리를 일으켜 내 몸을 둘러싸버렸다.
바람의 칼날로 온몸을 두르는 느낌으로 힘을 펼쳤다.
콰아앙!
쩌렁쩌렁한 충돌 소리와 함께 리창위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정령술 상급 1레벨. 거기에 마스터한 바람의 가호로 3배쯤 증폭된 위력을 가진 회오리였다.
제아무리 리창위라 해도 맨몸으로 덤볐으니 튕겨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리창위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소파에 딛고 서서 균형을 잡은 리창위의 오른손에는 언제 소환했는지 장검이 들려 있었던 것!
파아앗!
장검에서 폭사되어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
마리와 차지혜가 내 곁에 다가와 양옆에 섰다.
리창위와 우리 셋은 대치한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리창위는 무감정한 눈길로 스윽 우리를 훑어보았다.
오러 블레이드로 감싸인 검을 아래로 내려뜨린 채, 리창위는 현관 쪽으로 걸었다.
우리는 길을 비켜주었다.
“아레나에서 보지. 피차 그게 좋겠군.”
“언제 어디든 상관없다.”
내가 답했다.
리창위는 피식 웃고는 무섭게 살기 띤 눈빛으로 날 노려본다.
그는 오러 블레이드를 없애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휴우.”
그제야 융합을 해제하고 실프를 돌려보낸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싸울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민간인이 많이 사는 건물에서 시험자가 싸워 소란을 일으키면, 아무리 한국아레나연구소가 중국에 친화적이더라도 참아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냥 겁만 줬다는 거네.”
“반응을 살핀 겁니다.”
차지혜의 의견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내가 두려워하는지 기꺼이 맞서는지 간을 봤겠지. 그래서 내가 겁먹지 않고 맞선 거다.
실은 무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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