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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2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4화

 

마리가 꼭 엄마를 만나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두 사람을 내보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였다.

[엄마: 다 왔어 아들. ♡]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답장을 보냈다.

[나: 어떻게 벌써 와?]
[엄마: 차로 왔지. ㅎㅎ]

엄마는 가까운 거리를 택시 탈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 누나도 있어?]
[엄마: 현주, 현지 다 있어.]
[나: 누나는 또 왜?!]
[엄마: 같이 현지 보러 부천 왔지.]

대충 상상 간다.
웬만한 기업들의 전반기 공채 시즌이 끝났는데도 아직 취업 소식은 없는 현지.
둘이서 협공해서 현지를 닭 장사의 세계로 입문시키려 했으리라.
누나의 채찍과 엄마의 당근이라는 양면 전술 앞에서 애처롭게 저항했을 현지의 모습이 안 봐도 비디오다.
‘가만…….’
현지가 내 집에 있는 이 두 여자를 보면 또 무슨 오해를 할지 모르는데?!

[나: 지금 어디야?]
[엄마: 이제 엘리베이터 타.]

나는 다시 한 번 마리를 설득했다.
“마리 씨,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네?”
“알았어.”
마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현호 엄마한테 잘할게!”
“끄아악!”
나는 머리를 싸쥐고 절규했다.
그때였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차지혜가 입을 열었다. 마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이었다.
“간단해요?”
“가족분들은 마리 요한나 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
하지만 나한테 찰싹 붙어서 아양을 떠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가족들에게 오해와 충격을 줄 수 있을 텐데?
“요한나 씨는 정신장애 탓에 정신연령이 어리고 현호 씨를 아버지처럼 따른다고 하십시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덴마크 교포 사업가로 사업차 한국에 왔고, 현호 씨는 제 경호를 맡았다고 하면 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두 사람이 제 집에 있는 이유는요?”
“요한나 씨가 제 먼 친척인데, 현호 씨를 너무 좋아해 떨어지려 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신세 지게 됐다고 하죠.”
나는 감탄이 나왔다.
저렇게 거짓말이 술술 나오다니!
“이 집은요?”
“덴마크에 있는 동안 박진성 회장의 목숨을 구해주고 선물받았다 하십시오.”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저기, 이미 가족들은 제가 등산 도중 실족한 진성그룹 이사를 구해준 대가로 취직한 줄 알아요. 근데 이번에는 회장을 구해줘서 집을 얻어요?”
가족들의 불신 어린 눈초리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냥 우기면 됩니다. 사실여부를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 어떻습니까?”
“…….”
확실히 그건 그랬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나는 정신줄을 놔버렸다. 이젠 될 대로 되라 싶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려 퍼졌다.
문을 열자 우리 집안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들~!”
“어, 어…….”
“어머머! 집 좀 봐! 세상에!”
엄마는 안으로 진입하며 드넓은 거실에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다가 거실에 있던 두 여자와 마주쳤다. 뒤따라 들어온 누나와 현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세요?”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호 엄마다! 전 현호 아내예요!”
골이 빈 마리가 나서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이 아레나의 언어를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내가 즉시 나섰다.
“이쪽은 차지혜 씨라고 덴마크에서 오신 사업가이셔.”
“덴마크?”
비로소 차지혜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크리스티나 차, 한국 이름은 차지혜입니다. 덴마크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업무차 한국에 왔다가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째서 이 야심한 시간에 우리 아들 집에 계시는지…….”
내가 말했다.
“진성그룹 쪽 손님이셔. 내가 경호를 맡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까 내 집에서 묵게 됐어.”
“어쩌다 보니까?”
엄마의 표정이 손주를 원하는 부모의 얼굴로 돌변했다.
그리고 현지가 쓰레기 보듯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현지의 시선을 피했다.
차지혜는 사무적인 어조로 엄마의 기대감을 무너뜨렸다.
“이쪽은 마리 요한나로 제 먼 친척 동생입니다. 마리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인데, 현호 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실례 불구하고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엄마는 알 수 없는 언어(아레나 언어)로 재잘재잘 지껄이는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조금 불편해 보이네요. 예쁜데 안타깝게도.”
그런데 그때였다.
“Was machen Sie Geschafte machen(어떤 사업을 하십니까)?”
가만히 우리를 의혹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누나가 말했다.
‘뭐, 뭐야?’
나는 깜짝 놀랐다.
대체 뭐라고 한 거야? 설마 누나가 덴마크어까지 할 줄 아는 거야?!
차지혜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멀뚱히 섰다.
“…….”
“…….”
차지혜와 누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설마 방금 제 말을 못 알아들으신 건가요?”
“아뇨, 왜 굳이 한국말로 묻지 않으신 건지 의아했습니다만.”
“어쨌든 제 질문에 답해보시죠?”
“너무 의아한 나머지 뭐라고 말씀하신 건지 못 들었습니다.”
“다시 묻죠. Was machen Sie Geschafte machen?”
“발음이 안 좋으셔서 못 알아듣겠군요. 그냥 한국말로 해주십시오.”
“제 덴마크어가 서투르다는 건가요?”
“네.”
“실은 덴마크어가 아니라 독일어였는데요.”
“너무 발음이 안 좋으셔서 덴마크어인지 독일어인지 분간이 안 갔습니다만.”
대, 대단하다, 차지혜! 저렇게 뻔뻔할 데가!
누나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Ich bin die Frau des Hyun-ho(전 현호의 아내입니다)!”
뜬금없이 마리가 독일어로 소리쳤다.
누나는 차지혜에게 물었다.
“저 여자 말이 사실인가요?”
“마리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말씀드렸듯 제정신이 아닙니다.”
“저 여자가 방금 뭐라고 말했는지 말씀해 보시죠.”
“워낙 헛소리를 많이 해서 마리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저렇게 잡아떼면서도 표정 하나 안 변하는 차지혜가 이젠 두려울 지경이었다.
“Ich bin die Frau des Hyun-ho!”
마리는 다시 스스로를 가리키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댁은 좀 닥치고 있으란 말이야, 이 미친 여자야!!’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이제 귀담아 들으셨겠죠?”
“말씀드렸듯 마리는 제정신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두 여자의 싸늘한 대결에 마리를 제외한 모두가 벙 쪄버렸다.
“어, 언니. 저 여자가 뭐라고 한 거야?”
현지가 쪼르르 다가가 물었다.
누나가 말했다.
“자기가 현호의 아내라는데.”
“뭐?!”
현지가 금방이라도 덤벼들어 물어뜯을 것처럼 나를 쏘아보았다.
“아, 아냐!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줄래?”
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허둥지둥 대꾸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 손을 펴 보이며 독일어로 계속 신 나게 재잘거린다.
누나가 말했다.
“결혼반지도 있다는데.”
“그, 그건…… 길거리에서 사준 것뿐이야. 하도 사달라고 졸라서……!”
“제차 말씀드렸듯 마리는 제정신이 아니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차지혜는 뚝심 있게도 변함없이 사무적인 어조로 말한다. 예술적인 뻔뻔함이었다.
그러자 누나는 독일어로 마리에게 뭐라고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도리도리 젓고는 뭐라고 말한다.
마리를 내쫓아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내쫓았어야 했다!
누나는 차지혜에게 말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치고는 의사소통이 원활하군요. 저 여자는 당신이 한국인이며 덴마크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마리가 가끔 절 미워해서 그런 소릴 하곤 합니다. 나중에 혼내야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덴마크어도 독일어도 모르는 순수 100% 한국인으로 보이는데요.”
“왜 저를 그렇게 의심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 의심스럽다면 제 신분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차지혜는 방에서 자신의 여권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덴마크에서 발급해 준 그 여권은 당연히 덴마크 국적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권 위조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어요.”
누나가 또 싸움을 건다.
“제 여권이 맞습니다. 자꾸 그러시니 불쾌합니다만.”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네요. 덴마크분이 덴마크어도 독일어도 모르시니 이상할 수밖에요.”
“그나저나 아직 성함도 못 들었습니다.”
차지혜는 멋지게 말을 돌렸다.
“……실례했네요. 김현주라고 합니다. 현호의 누나예요.”
“반갑습니다, 현주 씨.”
차지혜가 손을 내밀자 누나도 무심코 손을 뻗어 악수를 했다. 누나는 계속 추궁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저기…….”
가만히 있던 엄마가 나섰다.
“말씀하십시오.”
“거짓말은 그만 두시고 사실대로 말해주시기 않겠어요? 우리 아들과 어떤 관계이신가요?”
엄마가 물었다.
차지혜는 한동안 침묵했다.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사실 전 현호 씨의 애인입니다.”
나는 딸꾹질을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방금은 어째서…….”
“현호 씨가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님, 형님, 아가씨.”
“왜 거짓말을??”
엄마는 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저희는 불륜…….”
“그만―!!”
내가 절규했다.
결국 나는 차지혜를 애인이라고 소개해야 했다.
민정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애인이 생긴 게 민망해서 비밀로 하려 했다고 둘러댔다.
“흥, 웃겨! 저 여자 때문에 민정이를 찬 거였어?”
현지는 쓰레기 보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거 아니래도.”
“민정이한테 다 말할 거야.”
“이르지 마!! 카드 뺏는다!”
내 호통에 현지는 찔끔했는지 한발 양보한 눈치였다.
“Ich bin die Frau des Hyun-ho!”
“아들, 그럼 저 여자는?”
“……저 여자는 정말 미친 거 맞아.”
“Ich bin die Frau des Hyun-ho!”
마리는 시끄럽게 독일어로 외쳐대고 있었다.
그제야 혼돈이 수그러들었나 싶었다.
“아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호화로운 집에서 사는 거야? 등본 보니까 아들 집이던데?”
“그, 그건……!”
혼돈이 또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이젠 이를 어찌할 거야!”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뚱뚱한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쨍그랑!
노인이 집어던진 술병이 눈앞의 사내의 머리에 맞고 깨졌다.
그러나 젊은 사내는 상처 하나 없었고, 심지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냉정했다.
젊은 사내는 광채가 흐르는 눈을 조금도 깜빡거리지 않은 채 노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기세에 압도당한 노인은 헛기침을 했다.
“내가 흥분했군.”
“진정하시죠. 흥분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젊은 사내가 말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흠흠, 알겠다. 그런데 그보다 이를 어쩔 셈이냐? 목적을 완수하기는커녕 벌써 그놈 때문에 8명이 죽지 않았느냐?”
“간단합니다.”
젊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제 사로잡긴 틀렸고, 죽여서 응징을 해야지요. 김현호도, 그를 도운 오딘도 깡그리 다.”
“그게 말처럼 쉬우냐?”
“제가 나서면 됩니다.”
젊은 사내의 호언장담.
그런데 노인은 수긍했는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젊은 사내의 이름은 리창위.
혼돈이 또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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