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2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3화
“허어, 대단하구려.”
벽 끝까지 날아가 부딪친 오딘이 부스럭거리며 일어섰다.
“괜찮으세요?”
“그렇소. 그런데 아무래도 검이 없이는 김현호 씨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소.”
하기야.
나도 이렇게 위력이 강할 줄은 몰랐다.
내 몸에 강력한 회오리를 둘러버리면 그야말로 아무도 접근을 못하겠지.
‘한번 해볼까?’
휘이이잉!!
파아아아앗―!
자연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발출되더니, 강력한 풍압이 내 주위를 감쌌다.
나를 중심으로 지름 3m 크기의 회오리가 형성되었다.
‘신기하다!’
실프의 능력이 내가 마음먹는 대로 발현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회오리를 칼날처럼 만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오싹했다. 주변 모든 것을 찢어발길 수 있다.
실프와 융합을 해제한 뒤, 나는 이번에는 카사를 소환했다.
“카사, 융합하자.”
-멍!
카사가 신 난다는 듯이 나에게 뛰어들었다.
화르르르!
내 온몸에 시뻘건 불길이 피어올랐다.
다행히 입고 있는 옷이 홀랑 타버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불길은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다.
불꽃을 찰흙처럼 빚으며 온갖 모양을 만들어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네요.”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검을 들고 싸워보고 싶소.”
“하하, 사양할게요.”
결국 오딘과의 대련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상급 정령술의 강력함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노르딕 시험단 본부에 머물며 상급 정령술을 시험해 보았다.
일단은 실프와 카사를 모두 내 몸에 융합시킬 수 있는지 시도해 보았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실프가 융합되면 카사가 튕겨 나오고, 카사가 융합을 시도하면 실프가 튕겨 나갔다.
결국 서로 나와 융합하겠다고 투덕투덕 다투는 것을 말려야 했다.
상급 정령술과 사격의 결합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융합된 상태에서는 권총이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데릭은 검을 휘둘러 겁화를 일으켰지만, 나는 방아쇠를 당겨서 총알을 쏘는 방식이라 그걸 흉내 낼 수 없었다.
차라리 손을 휘둘러 불길을 일으키는 편이 낫지 굳이 총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구나.’
굳이 융합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실프와 카사는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면서 더 강력해져 있었다.
카사가 작약의 폭발력을 극대화해 탄환을 힘껏 밀어내고, 실프가 탄환을 회전시켜 관통력을 높인다.
그러한 정령사격술의 효과가 더 커졌다.
탄약보정 스킬 마스터까지 더해져서, 이제 내가 쏘는 닐슨 H2는 더 이상 권총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게 되었다.
전차 장갑도 권총 가지고 뚫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 다한 셈이었다.
대물 저격소총 AW50F 역시 정령사격술로 더 강해졌음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내가 쏘는 AW50F는 이게 소총인지 바주카포인지 헷갈릴 지경!
“바주카포? 그런 소총이 정말 있긴 있지.”
총기 전문가인 닐슨 아슬란이 내게 말했다.
“20㎜구경의 대물 저격소총이 몇 종 있는데 그쯤이면 거의 바주카포 급이지. 네가 그런 괴물을 쓴다면 걸어 다니는 마사일 기지나 다름없을걸.”
구경 20㎜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12.7㎜인 내 AW50F도 충분히 괴물 같은 위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20㎜면 대체 어느 정도일까?
“당장은 그렇게까지 미친 저격소총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가진 AW50F로도 충분히 만족하는걸요.”
“그건 그럴 테지. 저격소총으로 와이번까지 잡는 놈한테 20㎜까지는 필요 없겠군. 드래곤이라도 잡으러 갈 것도 아니고.”
이로서 나는 전투 패턴을 확립했다.
원거리 저격은 AW50F.
다수를 상대로는 닐슨 H2 2정.
일대일은 정령 융합.
특히 정령 융합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요소를 더 발견했다.
실프와 융합한 채 바람의 가호를 사용하자 발휘할 수 있는 힘이 2배로 증폭된 것이다!
바람의 가호도 기본적으로는 정령술에 근원한 스킬이니 두 힘이 시너지를 발휘한 것으로 보였다.
현재 바람의 가호는 중급 1레벨.
비슷한 스킬인 불꽃의 가호는 초급 1레벨이었다.
‘둘 다 레벨 올리는 데 카르마가 많이 들지 않는 합성스킬이야. 이걸로 정령 융합 시 두 배 위력을 낼 수 있으면 엄청난 이득인데!’
일단은 중급 1레벨인 바람의 가호를 마스터까지 몇 카르마가 필요한지부터 확인해 보았다.
-바람의 가호(합성스킬)을 마스터하는데 필요한 카르마를 보여드립니다.
-바람의 가호(합성스킬): 신체를 통해 강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사용자의 집중력과 스킬레벨, 정령술의 스킬레벨의 영향을 받습니다.
*마스터: 하루 3시간.
-마스터까지 4,100카르마가 소모됩니다.
-잔여 카르마: +5,600
‘4,100카르마라…….’
지금 남은 카르마가 5,600이니 충분히 올릴 수 있었다.
마스터하면 쿨타임 없이 하루에 3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니,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좋아. 일단은 바람의 가호부터 올리자.’
나는 석판에 대고 외쳤다.
“바람의 가호를 마스터하겠다.”
파앗!
석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4,100카르마로 바람의 가호(보조스킬)을 마스터까지 올립니다.
-잔여 카르마: +1,500
그러자 체내의 자연의 기운이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
아무래도 카사보다 실프를 활용할 일이 더 많다 보니 바람의 가호에 집중 투자한 것이다.
‘한번 위력을 다시 시험해 봐야지.’
나는 실프와 융합된 상태에서 바람의 가호를 시전했다.
그리고 손바닥 위해 작은 돌풍을 만들었다.
그런데,
콰콰콰콰콰콰!
돌풍은 마치 드릴처럼 미친 듯이 회전했다.
‘헐.’
살짝 일으켰을 뿐인데 이 정도의 위력이었다.
바람의 가호로 인하여 증폭된 위력이 거의 3배 수준이었다.
‘상급 1레벨에 위력이 3배로 증폭된다면 데릭보다도 강력한 위력을 낼 수도 있겠어.’
다만 아쉬운 것은 정령 융합 상태에서는 무기 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
총 같은 원거리 무기는 의미가 없었고, 무기는 다뤄본 적이 없어서 안 쓴다.
일전에 살짝 배워본 복싱이나 엘프들과 즐겼던 술래잡기만 응용할 뿐이었다.
물론 그냥 막 싸움을 한데도 나는 무술의 달인 수준의 몸놀림을 발휘할 터였다. 운동신경 상급 1레벨 덕분이다.
‘이번 휴식 시간에는 킥복싱을 더 연마해 봐야겠다.’
차지혜에게 배우면 될 것 같았다.
***
나는 마리와 차지혜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스위스를 거쳐야 했는데, 차지혜의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내가 선물한 와이번의 마정을 노르딕 시험단에 팔고, 470만 스위스 프랑을 입금 받기로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53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도 차지혜는 마리와 함께 외국인으로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신분과 함께 국적을 잃어버린 차지혜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작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아 했지만 말이다.
“이제 돈도 많으신데 집 한 채 사셔도 되지 않나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겠습니다.”
“……예?”
“김현호 씨 댁도 충분히 편안합니다만. 혹시 제가 함께 있는 게 불편하신 겁니까?”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마치 ‘난 너 때문에 죽었는데 넌 내가 귀찮은 거야?’라고 묻는 듯해서 난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습니다. 한동안은 신세 지겠습니다.”
“그, 그러세요.”
“현호, 나는?”
마리가 불쑥 물었다.
“며칠 있다 집에 돌아가세요.”
내가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며 대꾸하자, 마리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잔뜩 삐쳤음을 내게 어필했지만, 이미 마리에게 내성이 생긴 나는 가뿐하게 무시해 주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마이 홈이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손님방은 차지혜가 쓰고 있었는데, 마리를 어디서 재워야 좋을지 고민이었다.
“난 현호랑 자면 돼.”
“…….”
난 즉시 PC를 켜고 인터넷에서 가구업체를 찾아 작은 침대를 주문했다. 배송·설치비를 더블로 주는 대신 당일 배송을 약속받았다.
그리하여 전광석화로 서재로 쓰던 내 방에 침대가 설치되자 마리는 더더욱 심통이 난 얼굴이 되었다.
그날 저녁은 한국에 처음 온 마리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경복궁을 둘러보며 관광을 하는데, 마리가 자꾸만 내 옆에 찰싹 붙어서 곤란하게 만들었다.
“어머, 애인이 외국인이네.”
“우리나라 남자가 백인 여자랑 사귀는 경우도 있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여자는 또 누구지?”
좌 차지혜, 우 마리를 대동하고 경복궁을 다니는 나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두 여자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찰싹 붙어서 치근덕거리는 마리 때문이었다.
피곤해진 나는 한정식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고 냉큼 돌아왔다. 참고로 마리는 처음 잡아본 젓가락을 기막히게 잘 썼다.
그런데 그날 밤…….
위잉, 위잉.
습관적으로 교신기를 찾던 나는 뒤늦게야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엄마였다.
“여보세요?”
-아들, 살아 있기는 해?
“응, 잘 살아있지. 엄마야말로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아들, 엄마 완전 외로워서 죽어 가고 있어. 고독사 할 것 같아.
“고독사 같은 소리 하네. 듬직한 누나가 곁에 있잖아?”
-현주 걔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필요한 말이나 혼담 주선해 오란 말 외엔 일절 입을 열지 않는다니까.
“…….”
나도 현지도 없으니 엄마가 외로워할 만도 했다.
누나야 뭐 곁에 있는 사람을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게 특기이고.
-그나저나 아들 요새 외국 다닌다면서?
“응, 오늘 돌아왔어.”
-그럼 지금 부천이겠네?
“그렇지.”
-아들 집이 정확히 부천 어디야?
“현지 사는 원룸은 알아?”
-알지. 몇 번 가봤고.
“거기서 가까워. 걸어서 금방이야.”
-어머, 그래?
갑자기 반색을 하는 엄마.
이 어투는 마치 현지가 날 함정에 빠뜨렸을 때와 비슷했다.
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어머니.”
-왜 아들?
“소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응, 물어보렴.
“혹시 어머니께서 지금 현지의 집에 계시는지요?”
-호호호, 역시 눈치도 참 빨라.
‘당했다!’
그동안 가족들이 절대로 찾아오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잘 차단해 왔는데, 오늘 엄마한테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아, 근데 내가 곧 일 때문에 나가봐야 해서…….”
-호호, 핑계는 소용없어, 아들.
“크윽!”
엄마는 요사스럽게 웃었다.
-걸어서 금방이라고 했으니까 지금 갈게 아들.
“하, 하지만……!”
-현지도 아들 집에는 한 번도 못 가봤다던데, 왜 그렇게 피하는지 오늘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
“아니 근데 난 지금 일이 좀…….”
-있다 봐. 아들 집 주소는 어제 등본 떼서 확인했어.
그러면서 통화가 끊어졌다.
“…….”
나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런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다는 걸 가족들이 알면 여러 가지로 의문을 가질 텐데.
그럼 난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지금?
차지혜와 마리까지 있는데?!
나는 급히 두 사람을 거실로 불러 모았다.
“오늘은 호텔에서 지내주세요! 부탁할게요!”
“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엄마가 곧 온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마리는 눈빛을 빛냈다.
“현호 엄마 볼래!”
나는 암담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