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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58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58화

 

유럽을 돌며 여행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마리도 한국까지 쫓아와 내게 엉겨 붙었다.
“어디 가보고 싶은 데 있어요?”
내 물음에 마리는 활짝 웃으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현호 가족 보고 싶어.”
“…….”
“다시 인사드릴 거야! 한국어도 공부했어.”
“한국어를요?”
“안녕하세요, 마리 요한나입니다. 시어머님, 네 아들을 제게 주세요.”
정말로 깔끔한 발음의 한국어였다. 평소에 늘 듣던 아레나 언어가 아니라서 깜짝 놀랐다.
근데 뭔가 반말이 섞인 것 같은데.
“우리는 이미 깊은 관계입니다.”
“그만하세요.”
“임신을 했습니다.”
“그, 그만!”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인천공항.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나는 깊은 쪽팔림을 느꼈다.
이 와중에도 표정 하나 안 변하는 차지혜가 존경스러웠다.
일단 함께 부천의 집에 돌아온 뒤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외국에서 돌아왔으니 가끔 인사는 해줘야지.
-아들! 한국 왔어?
“응.”
-매정한 아들. 가끔 집에도 좀 오고 그래.
“알았어, 근데 지혜 씨랑 요한나 씨도 같이 있어.”
-요한나 씨면 그 미친……?
“응, 똘기 충만한 그 여자.”
-호호, 잘됐네. 그럼 다 같이 한번 오지 그래?
“근데 그 여자가 어설프게 한국말을 배웠어. 무슨 소리를 해댈지 몰라.”
-그러니? 재미있겠네, 어서 데려오렴.
……역시 엄마였다.
-근데 그 여자랑은 아직 사귀니?
“응.”
이젠 거짓말이 아니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엄마. 며느리와 손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긴 했어. 전처럼 생각 없다고 잘라 말하지는 않을 거야.”
-아들은?
“에이, 나야 당연히 결혼하고 싶지.”
-저, 정말이지? 아들! 정말 아들 독신주의자 아니지?
“지혜 씨 앞이라서 그렇게 말한 거지, 설마. 어떻게든 꼬드겨서 결혼해 내고야 말 테니 두고 봐.”
-호호, 우리 아들 파이팅! 아니, 안 되면 일단 사고부터…….
“끊을게.”
-그래그래, 엄마가 또 흥분해서 너무 멀리 갔네.
“알면 됐수다.”
그렇게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허억!”
나는 하마터면 기절을 할 뻔했다.
차지혜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언제 오셨어요?”
“10분 전부터입니다.”
“짐은 벌써 다 정리하셨어요?”
“예.”
마리 때문에 한 방을 못 쓰게 된 그녀는 손님방에서 짐을 풀었는데, 벌써 정리를 끝낸 모양이었다. 군바리 출신이라 그런 게 분명하다.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들었다.
“바, 밥 먹죠. 배 안 고파요?”
나는 황급히 부엌으로 도망쳤다.

***

다음 날, 우리는 함께 천안으로 갔다. 가족들과 만나 다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현지도 천안에서 지내며 인터넷 쇼핑몰 창업을 준비 중이라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모이겠구나.
차지혜와 마리까지 시끌벅적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미리 예약해 놓았던 뷔페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3층짜리 빌딩 한 채를 다 쓰는 커다란 레스토랑이었는데, 지하주차장으로 가니 주차장 관리인이 기겁한 얼굴을 했다.
우리가 타고 온 차가 차지혜의 하얀색 람보르기니였기 때문이다.
앞서 지하주차장에 들어간 차들은 주차요원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주차요원은 우릴 보더니, 곧장 1층의 빈 주차공간을 찾아 안내해 주는 것이었다.
‘VIP를 위해 지하 1층에 자리를 남겨놨나 보네.’
이런 특별 대접이라니!
역시 이래서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다.
예약한 룸도 VIP룸이었다.
“아들!”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 엄마가 우릴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쿠, 누가 보면 엄마 칠순잔치 하는 줄 알겠다.”
“칠순은 아직 멀었거든!”
엄마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누나와 현지도 있었는데, 현지는 종업원이 가져다준 식전 빵을 오물오물 토끼처럼 먹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또 뵙습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차지혜와 마리도 인사를 했다.
엄마는 차지혜와 악수를 나누고는 마리와도 손을 맞잡으며 웃었다.
“요한나 씨 이제 한국어도 하시네?”
“네! 한국어 잘해요!”
“호호호, 그래 보인다. 정말 똑똑하신가 봐.”
“헤헤, 저 똑똑해요!”
엄마는 이런 손녀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마리를 귀엽게 바라본다.
“우리 요한나 씨 한국말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싶네. 말해봐요. 요즘은 어때요?”
자상하게 묻는 엄마.
마리는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임신했어요!”
현지가 식전 빵을 먹다가 사례가 들렸다. 누나는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엄마 또한 다리에 힘을 잃고 비틀거릴 뻔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그냥 내키는 대로 말할 뿐이니 마음에 담아두실 것 없습니다.”
차지혜가 수습을 시도했다.
“엄마가 될 거예요!”
“그, 그만 좀!”
나는 한참을 말린 뒤에야 앵무새처럼 맘대로 지껄이는 걸 멈춘 마리였다.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엄마가 내게 물었다.
“요한나 씨와는 아무 사이 아닌 게 맞지?”
“응.”
“어휴, 다행이다.”
아무리 손주가 급해도 며느리의 정신 상태는 소중한 모양이로군.
우리는 요리 코너에서 접시에 각종 요리를 담아오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것저것 각자의 근황을 얘기했는데, 누나의 경우가 가관이었다.
“아니, 언니는 대체 뭐가 문제야? 언니 보고 첫눈에 반했대서 소개팅시켜 준 남자한테 어떻게 하면 차이는 건데?”
현지가 누나한테 소개팅을 시켜준 모양이었다.
뭐, 누나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서 혹한 남자들이 또 있었나 보지.
“그 이유를 알면 내가 벌써 결혼을 했지. 대체 남자들은 뭐가 문제인 거야?”
누나는 이를 으드득 갈며 투덜거렸다. 꽉 쥔 주먹에서 피라도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누나의 소개팅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안 봐도 훤하지.
일단 늘 타고 다니는 벤츠 C클래스 쿠페로 한 번 기죽였겠지.
그다음은 171㎝의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즐겨 신는 하이힐로 남자를 높이에서 뭉갰고.
다음은 상대를 제압하는 듯한 눈빛과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차가운 말투로 확인사살!
범접을 못하겠다는 느낌과 함께 남자는 깨갱 하고 내뺀다.
그리고 끝. 누나는 여전히 노처녀.
“에휴, 우리 현주는 남편을 태국 같은 데서 돈 주고 사와야 할지도 모르겠네.”
엄마의 투정에 현지가 깔깔거리며 배꼽 잡고 웃었다.
누나는 굴욕감이 부르르 떨었다.
“누나.”
“왜?”
“그 남자 직업이 뭐였어?”
“회사원.”
“직장은?”
“나도 아는 곳인데 그럭저럭 건실한 회사더라.”
“남자 생긴 건 어땠고?”
“딱히 흠잡을 데 없었지.”
“근데 그런 얘기를 남자한테 했어?”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누나한테 내가 말했다.
“나도 잘 아는 회사다, 좋은 직장 다니신다, 잘생기셨다, 칭찬했냐고.”
“칭찬씩이나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쯧쯧.”
나는 혀를 찼고, 현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나처럼 잘난 여자한테 칭찬을 받으면 남자는 감격해서 열정을 보였을 텐데.
정말 신은 누나에게 모든 걸 다 주고 성격만 빼앗은 모양이었다.
나는 현지를 바라보았다.
“자, 현지야. 네가 견본을 보여봐.”
남매라 그런지 죽이 척척 맞았다. 곧바로 현지가 애교모드로 돌변한 것이다.
“오라버니~! 돈 잘 벌지, 잘생겼지, 하여간 능력자! 가여운 현지한테 용돈 좀 주세요!”
“오냐.”
나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주었다.
“꺅! 오라버니 대박 멋져!”
현지는 돈을 받으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
누나는 보기만 해도 오글거렸는지 불끈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더러 그런 짓거리를 하라고?”
뭐, 현지는 너무 심하긴 하지.
아무튼 간에 현지는 아는 오빠를 더 소개시켜 주겠다고 재잘거리며 누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기분이 상해 있던 누나는 아양 떠는 현지의 말에 또 넘어가 그 남자는 누구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누나의 환심을 사려고 작정한 현지. 인터넷 쇼핑몰 잘 운영하려면 누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개나 소나 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라도 사업체인데 법적인 문제가 한두 가지일까.
결국은 뭔가 일이 생길 때마다 누나한테 쪼르르 달려가 이건 어떻게 하냐고 묻는 일이 다반사가 될 터였다.
그걸 빤히 예상하도고 순순히 인터넷 쇼핑몰을 해보라고 한 누나도 사실 알고 보면 관대한 사람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부천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득 스마트폰이 진동을 했다.
‘누가 전화했지?’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확인해 보았다.
의외의 인물이었다.

[유지수]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내가 갓 2회차 시험자였을 때 이미 19회차의 베테랑이었던 유지수였다. 금발로 염색한 헤어스타일이 금세 떠올랐다.
팀 동료 두 명은 남자였는데 한 명은 차진혁이었던가? 또 한 사람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 유지수 팀은 25회차쯤 되었겠군.
“여보세요.”
-오랜만이네?
“예.”
나이는 동갑인데 그녀는 반말하고 나는 존대하는 이상한 관계는 여전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예, 제 입장에서는 4년쯤 지나지 않았나 싶네요.”
-나도 대충 그 정도야. 이제 갈수록 전 세계 시험자들의 시험 기간이 일치하는 추세거든.
“그간 별일은 없었죠?”
-시험자에게 별일이 없었겠어?
“그도 그러네요.”
-너야말로 완전 별일이 있었나 봐. 세계 랭킹 7위? 미친 거 아냐?
“다 제가 천재인 덕이죠.”
-웃겨! 얼마 전까지 풋내기였던 주제에!
내 덕살 좋은 대꾸에 유지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무튼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예, 덕분에요.”
내가 3회차 시험에서 팀 동료를 전부 잃고 돌아왔을 때, 유지수와 차진혁 등이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주었다.
한국아레나연구소로부터 버림받기 전에 아레나 관련 자료들을 전부 챙기라고 말이다.
사소한 조언이었지만 지금도 그때 챙겼던 자료를 유용하게 참고하고 있으니 은인은 은인인 셈이었다.
“도와드릴게요.”
-으, 응?
“곤란한 일이 있으셔서 연락하신 거잖아요.”
-완전 족집게다. 어떻게 알았어?
“아까 별일 있었냐는 질문에 말을 돌렸잖아요.”
-와, 눈치 짱이네.
유지수는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실은 좀 난처한 입장에 처해서 네 도움을 받고자 연락했어. 갑자기 이런 용건으로 전화해서 미안.
“사과는요. 저도 그동안 연락을 못해서 죄송하네요.”
-전화로는 좀 그렇고, 한번 만날까?
“그래요. 어디세요?”
-강남.
“저희는 부천으로 가는 길이에요.”
-저희? 너 말고 또 누구 있어?
“예, 두 사람이요. 그중 한 명은 반가운 얼굴일 거예요.”
-그래? 알았어. 그럼 우리가 부천으로 갈게.
“그래요? 뭐하면 저희가 강남으로 가도 되는데.”
-아냐아냐. 부탁하는 우리가 그리로 가야지.
아무튼 약속을 잡아놓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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