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5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51화
무인도에 돌아와 다시 한가롭게 이틀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삐이이이익―!”
바다에서 놀고 있던 갈큇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일곱째입니다.”
옆에 함께 누워 있던 차지혜가 말했다.
‘헐, 어떻게 한눈에 알아본 거야? 주인인 나도 헷갈리는데.’
차지혜의 동물 사랑은 기이할 정도였다.
아무튼 일곱째의 반응을 보니 뭔가가 나타났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이윽고 다른 아홉 마리의 갈큇발 독수리도 똑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제야 나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AW50F를 소환했다.
차지혜도 갑옷과 쌍곡도로 무장하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
실프를 시켜서 무인도 주변을 정찰했다.
그리고 나는 실프가 마음속으로 전달해 주는 충격적인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 떼가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헤엄을 치는 듯 마는 듯 버둥거리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숫자의 좀비 떼!
그리고 한 청년이 유유히 걸음을 옮기며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좀비 떼들이 다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을 한 괴이한 청년은 좀비 떼를 밟으며 걸었다.
족히 수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좀비 떼.
그리고 그 무리의 주인으로 보이는 심상치 않은 청년.
‘이게 진짜 시험이었구나.’
왜 해적군도 토벌 같은 쉬운 시험이 주어졌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쉬운 시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적군도에 저런 놈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좀비 떼예요. 숫자가 장난이 아니네요.”
“예, 저도 보입니다.”
“좀비 떼를 밟고 걸으면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놈이 있어요. 얼굴을 창백하고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여요. 해적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고요.”
“흑마법사로군요.”
“예,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의 좀비 떼를 거느린 걸 보니 심상치 않아요.”
“이번 9회차 시험의 타깃이 저 흑마법사라고 생각해 보면, 보통 거물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6인의 대사제의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6인의 대사제요?”
“시험은 시험자의 실력을 보고서 난이도가 결정됩니다. 현호 씨와 제 성장 정도를 감안한다면, 6인의 대사제의 한 사람 정도는 나와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군.
나는 차지혜의 추측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쉬운 시험을 내줄 리가 없었다.
특히 이런 싸움이라면 우리가 간신히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상대가 적으로 주어질 터였다.
“바다에서 싸우는 편이 좋겠어요. 육지에서는 저 많은 좀비 떼를 대적할 방법이 없어요.”
“좋습니다.”
내 의견에 동의한 차지혜는 휘파람을 불렀다.
그러자 갈큇발 독수리 첫째가 쏜살같이 달려와 차지혜 앞에 착지했다.
차지혜는 훌쩍 뛰어서 첫째의 등 위에 올라탔다.
길고 날씬한 두 다리로 목을 감싸서 몸을 고정한 채 쌍곡도를 뽑아 들었다.
“가자!”
“삐이익!”
첫째는 차지혜를 태운 채 날아올랐다.
무인도에서 지내면서 차지혜는 갈큇발 독수리들과 곧잘 어울려 놀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저거였다.
그녀는 첫째를 자신의 전용 탈것으로 훈련시킨 것이다.
물론 동물조련 중급 5레벨로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통역사처럼 차지혜의 말을 전달해 줘가면서 훈련을 도왔다.
이제는 내 도움 없이도 첫째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차지혜였다.
‘어째 나보다 더 잘 다루는 것 같단 말이야.’
아무튼 나 또한 실프를 소환한 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좀비들은 수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죽은 시체라 그런지 물속에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영선수처럼 능숙하게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저 좀비 떼와 싸워 지형적인 이점을 얻으려면 해상 전투밖에 답이 없었다. 이쪽은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변수는 저 거물급 흑마법사로 보이는 청년.
놈의 흑마법이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혜 씨! 흑마법사를 노리세요. 제가 지원할게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이라 정신없었지만, 실프의 능력으로 인해 내 말은 차지혜에게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알겠습니다!”
차지혜의 목소리 또한 실프를 통해 내게 속삭이듯 전달되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지난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흑마법사는 근접전에 약했다. 그리고 근접 타격은 차지혜의 역할이었다.
하늘을 날고 있으니 흑마법사 청년의 위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나는 AW50F를 놈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실프의 힘을 가득 담아 쏜 1발!
터어어엉!
흑마법사 청년을 감싼 검은 장막이 나타나 총탄을 막아냈다.
하지만 실프의 힘이 탄착점까지 유지되는 강력한 일격이었기에, 검은 장막도 찢어졌다.
그 틈에 차지혜가 첫째를 타고서 빠르게 급강하했다.
다시 한 번 흑마법사 청년이 검은 장막으로 몸을 보호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콰지직!
또다시 12.7㎜ 탄환이 검은 장막을 깨부쉈다.
그와 동시에,
파아아앗!
첫째와 함께 급강하한 차지혜가 곡예를 펼쳤다.
첫째가 흑마법사 청년의 바로 위에서 거꾸로 몸을 뒤집었다.
두 다리로 첫째의 목을 감싼 채 거꾸로 매달린 차지혜가 멋지게 쌍곡도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분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청년의 머리통.
성공이었다.
단 일격에 흑마법사 청년을 살해한 처치한 것이었다.
‘근데 너무 쉬운데?’
차지혜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상승하면서, 차지혜는 아무 감흥 없는 눈길로 흑마법사 청년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좀비 떼들이 잘려나간 청년의 머리통을 받아 들고 전달했다.
전달에 전달을 거듭한 끝에 청년의 몸뚱이에 다다랐다.
머리가 잘린 흑마법사 청년의 몸은 태연자약하게 좀비들이 건네준 머리통을 받아 들고 목에 붙였다.
흑마법사 청년은 스윽 나와 차지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차갑게 웃는다.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군.”
나는 기가 막혔다.
‘뭐야, 저놈은?’
저놈도 언데드라도 되는 걸까? 사람이 머리가 잘리고도 멀쩡하다니!
‘설마 아무리 공격을 가해도 멀쩡한 거 아냐?’
나는 한번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한 손으로 AW50F를 조준하고, 다른 손으로는 권총 닐슨 H2를 꺼내 들었다.
두 개의 총기를 실프의 도움을 받아 흑마법사를 향해 조준했다.
두 개의 방아쇠를 일제히 당겼다. 약간의 시간차로 AW50F가 조금 더 빨리 불꽃을 뿜었다.
타탕―!!
12.7㎜ 총탄이 흑마법사 청년의 검은 장막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찢겨 나간 틈바구니로, 닐슨 H2가 쏜 357매그넘탄이 파고들었다.
퍼억!
심장이 있는 놈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버렸다.
“꺽!”
청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총탄에 터진 가슴께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저건 누가 봐도 즉사 감이었다.
‘심장이 작살났는데도 사나 보자.’
나는 흑마법사 청년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흑마법사 청년은 구부정하게 몸을 숙인 채 가슴에서 피를 콸콸 쏟아냈다.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그런데 그때, 청년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이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흑마법의 주문인가?’
이윽고 뒤에 이어진 말은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아레나 언어였다.
“운명이여, 너를 거슬러 영원을 가져옴이여, 억겁토록 숨 쉬리라.”
쏟아져 바다를 붉게 물들이던 피가 역전됐다.
다시 역류하여 청년의 뚫린 가슴으로 모여들었다. 산란기의 연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가슴이 아물었다.
흑마법사 청년은 나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웃는다.
“고통을 잊은 지 이미 오래. 내 몸뚱이는 오래 전부터 의미 없는 무감각의 덩어리였지.”
‘괴물 같은 놈…….’
나는 자꾸만 되살아나는 놈에게 치를 떨었다.
아무리 여기가 아레나라지만, 저런 비상식적인 경우를 보고도 놀라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을 유린하게 놔두는 취미도 없다. 이젠 내 차례가 된 것 같은데, 시험자 김현호.”
“……?!”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순간, 머릿속으로 리창위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놈이 저놈들과 결탁했겠지.’
시험자에 대해서도 발설했을 테고, 나에 대한 정보도 아는 대로 나불댔겠지.
이번에는 흑마법사 청년이 먼저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렇게 놔둘 까보냐?
‘그 주둥이에 총알을 먹여주지.’
나는 다시 AW50F와 닐슨 H2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 타앙―!!
쩌렁쩌렁한 총성과 함께 날아간 두 발의 총탄.
한 발은 검은 장막을, 또 한 발은 목을 찢어발겼다.
목이 폭발하면서 몸뚱이에서 머리통이 분리되어 떨어졌다.
이번에도 좀비 떼가 떨어져 나간 머리통을 주워 들고 전달에 전달을 거듭했다.
그런데 기괴하게도 분리된 상태에서도 청년의 머리통은 계속 주문을 외고 있었다.
폐가 목구멍을 거쳐 입까지 공기를 전달하지 않음에도, 머리통은 끊임없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좀비가 청년의 목 위에 머리를 얹어주었다.
비로소 흑마법사 청년의 말이 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불꽃의 영광, 춤추는 폭염에 타오른, 잿더미의 잔해.”
주문이 끝난 순간,
화르르르르르륵―!!
흑마법사 청년의 양손에서 검은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지옥에서 새어나온 듯한 불길한 검은 불길은 주변에 있는 좀비들부터 집어삼켰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마치 좀비들을 장작 삼아 잡아 삼키며, 불길은 점점 커져갔다.
좀비 떼를 수없이 포식하며 덩치를 키운 검은 불꽃은 비로소 나를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피해요!”
나는 차지혜에게 경고를 한 뒤, 실프를 시켜서 신속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 검은 불꽃 또한 나를 쫓아 불기둥을 이루며 쫓아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높게 날아도, 아무리 멀리 이동해도 불길은 계속해서 나를 집요하게 쫓아왔다.
‘따돌리기는 불가능한 건가?’
나는 잠시 실프를 시켜서 흑마법사 청년을 살펴보았다.
실프가 영상을 내게 보내왔다.
검은 불꽃은 놈의 두 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저 두 손을 없애 버리면 불꽃도 끊기겠군.’
나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바람의 가호!”
바람의 가호가 펼쳐지면서, 실프와 융합했을 때와 비슷하게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회오리로 내 온몸을 둘러싸 보호했다. 그리고 흑마법사 청년을 향해 돌진했다.
콰콰콰콰―!!
검은 불꽃이 똑바로 나를 덮쳤다.
나는 회오리로 불꽃을 해치며 흑마법사 청년을 향해 쏜살같이 날았다.
흑마법사 청년은 오히려 환영한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 간다, 개새꺄!’
AW50F를 집어넣고 닐슨 H2를 한 정 더 꺼내 쌍권총으로 무장태세를 전환했다.
검은 불꽃을 뚫고서 나는 마침내 흑마법사 청년에게 접근했다.
대략 8~9미터쯤.
실프의 도움 없이도 명중률 100%를 갖게 되는 사격 스킬의 적용 범위 10미터 이내였다.
“먹어라!”
타타타타탕!
나는 쌍권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총탄은 흑마법사 청년에게 닿지 않았다.
검은 불꽃이 총탄을 전부 집어삼켜 버린 탓이었다.
‘그럼 검은 불꽃이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면 되지!’
나는 더더욱 놈에게 다가갔다.
마침내 둘 사이의 거리가 1미터 이내로 좁혀졌다.
우리는 코앞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새꺄?”
나는 지척에서 권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