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4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47화
“어차피 말 안 해줄 거잖아.”
“에이, 혹시 모르잖아요.”
히죽거리는 아기천사.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입을 열었다.
“혹시 두 세…….”
“안 가르쳐 줘요.”
“이 새끼야!”
나는 닐슨 H2 2정을 꺼내 난사했다. 아기천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슉슉 움직여 모조리 피했다.
“저 망할 자식을……!”
“농담이고요.”
아기 천사는 얼굴에서 장난기를 거두고 진지해졌다.
아기 천사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생각이 맞아요.”
“……!”
“키포인트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시험자 김현호 당신.”
“…….”
“당신의 선택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약속하죠. 시험자 김현호의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거나 바꾸지 않을 거예요.”
파아앗!
시험의 문이 나타났다.
아기천사는 조용히 문을 가리켰다.
“가세요. 정답을 구해보세요.”
“답은 하나냐?”
“글쎄요.”
아기 천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하나죠. 시험자 김현호는 한 사람이니까요.”
“…….”
차지혜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도 아기 천사에게서 등을 돌린 채 뒤따라 들어갔다.
새하얀 빛이 눈부시게 시야를 물들였다.
***
데포르트 항구의 여관방이었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그렇구나. 이제 막 해적을 물리친 직후였지.’
데포르트 항구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동안 그들을 괴롭혀 왔던 해적들을 압도적으로 물리쳤으니 당연했다. 그간의 울분이 환희로 폭발한 셈이었다.
“시험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차지혜가 물었다.
“아, 확인해야죠. 석판 소환.”
파앗!
석판이 소환되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40
-카르마(Karma): +600
-시험(Mission): 해적군도를 토벌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364일 23시간
해적군도 토벌?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어려운 임무가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헤이싱은 물론이고 그 일당이 깡그리 죽어버렸는데, 해적단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단,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리창위였다.
패배한 해적단과 함께 복귀한 헤이싱 일파를 몰살시켰다면, 리창위는 아직 해적군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길잡이 스킬이 리창위의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바다 쪽.
바로 해적군도가 있는 방향이었다.
“시간이 많으니 일단은 기다릴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차지혜도 리창위가 해적군도에 있다는 것을 감안한 눈치였다.
문득 차지혜가 제안했다.
“그럼 그동안 복종시킬 맹수를 찾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우리는 아만 제국에 서식하는 강한 맹수를 찾아보기로 했다.
뭐, 나선 김에 드라이브도 하고 말이다.
해적단과의 싸움에서 맹활약한 우리는 이 항구에서 아주 잘 알려져 있었다.
여관 앞에 몰려와서 영웅들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간신히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 여관주인이 대단해 보였다.
“뒤로 살짝 나가죠.”
“예.”
우리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실프!”
-냐앙!
소환된 실프가 차지혜와 내 몸을 하늘로 띄워 올렸다.
“어어?”
“저기 날아간다!”
“영웅님들이다!”
“어딜 가시는 거야!”
“잡아―!”
사람들이 지상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내가 잘못 들었나? 방금 누가 잡으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데포르트 항구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인근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제 슬슬 드라이브를 해볼까요?”
“좋습니다.”
실프를 쓰다듬고 있던 차지혜의 눈빛이 변했다. 역시 고양이와 자동차를 참 좋아한단 말이야.
“꺼내, MSM-2!”
파앗!
전장 3.3m, 전폭 1.84m의 콤팩트한 슈퍼카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운전석으로 향하던 차지혜가 흘깃 나를 보더니 빙 돌아 보조석으로 이동했다.
차를 한 바퀴 돈 차지혜에게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방금 자연스럽게 운전석을 차지하려 들었죠?”
“아닙니다.”
“방금 차를 한 바퀴 돌았잖아요.”
“차에 이상이 없는지 둘러보았습니다.”
“거짓말. 시선이 운전석에 고정되어 있던데요?”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예술적인 포커페이스.
물론 그녀의 얼굴색을 변하게 하는 게 내 요즘 취미였다.
“운전 맡길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죠. 그냥 제가 할게요.”
“우, 운전은 제가 해도 됩니다만.”
살짝 말을 더듬는 차지혜.
“해도 된다면, 안 해도 되는 거죠?”
“제가 하겠습니다.”
“아녜요. 그냥 제가 할게요.”
“…….”
차지혜는 살짝 불만이 어린 눈빛으로 날 빤히 응시했다.
“운전하고 싶으세요?”
“……네.”
비로소 순순히 인정했다.
“쓰담쓰담 한 시간.”
“30분.”
“역시 제가 운전할게요. 아레나의 오프로드를 질주하는 맛이 궁금해지네요.”
“……좋습니다.”
차지혜는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그 옆에서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슥슥 쓸리는 머릿결이 기분 좋다.
손맛이 참 좋다.
좀처럼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더 각별하다니까.
내 손길에 부끄러워하던 차지혜는 이내 운전에 몰두해 버렸다.
덕분에 나는 30분이 넘었음에도 계속 쓰다듬고 있을 수 있었다. 체력보정 중급 5레벨이라 팔이 아프지도 않거든.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그만 하라고 차지혜가 지적할 무렵, 나는 문득 교신기가 생각났다.
‘아, 교신기로 사람들한테 물어봐야겠다.’
나는 가공간에서 교신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수신 대상은 바로 엘프들이었다.
-음, 그러니까 이 숫자는 킴인가?
더듬더듬 당황하는 엘프들의 연장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킴입니다.”
아직도 교신기 사용법에 서투르군.
-어머, 그렇구나. 잘 지냈니?
“예, 갈색산맥은 어때요?”
-우린 늘 잘 지내지. 동족의 숫자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단다. 이쪽이 살기 좋다는 소문이 동족들 사이에서 돌고 있거든.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이게 다 킴 덕분이지. 그런데 무슨 일이니?
“안부도 여쭐 겸 궁금한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 언제든 물어보렴.
“갈색산맥에 서식하는 강한 맹수 없나요? 괴물들 말고요.”
-물론 있지.
“뭐죠?”
-갈색산맥 최남단 지역에 갈큇발 독수리들이 서식한단다.
“갈큇발 독수리요?”
“아레나에서 가장 사나운 맹금류 짐승입니다. 괜찮군요.”
옆에서 차지혜가 말했다.
“그럼 그리로 가죠. 차로 달리면 금방일 거예요.”
“좋습니다.”
먼 길인데 차지혜는 좋아하는 기색을 아주 살짝 내비쳤다. 운전을 실컷 하게 돼서 그런 듯했다.
“조만간 갈색산맥에 들를게요.”
-어머, 그러니? 잘됐다!
연장자 어머니는 대단히 반가워했다. 나 또한 가슴이 따듯해졌다.
아무 계산 없이 날 환영해 주는 곳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
교대로 운전하면서 내내 대륙을 질주했다.
도중에 괴물들을 만날 때마다 족족 총으로 쏴 죽여서 연료로 쓸 마정을 확보해 두었다.
타이어도 특수한 재질로 된 건지,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질주하는데도 타이어는 좀처럼 상하지 않았다. 122억이나 하는 슈퍼카니 이 정도는 해야지.
국경을 넘을 때는 차를 가공간에 넣어두고 실프로 하늘을 날아서 껑충 건너뛰었다.
그리고는 다시 차를 꺼내 타고서 질주.
우리는 무려 보름 만에 대륙 남쪽에 위치한 갈색산맥에 이르렀다.
“엇? 킴?!”
“킴이군! 잘 있었나?”
갈색산맥에 이르자 영역을 순찰하던 남성 엘프들이 반겼다.
엘프들과 수년간 함께 했던 터라 다들 아는 얼굴이었다.
소나무 마을, 단풍나무 마을, 측백나무 마을을 잇달아 돌며 인사를 하다가 마침내 느티나무 마을에 도착했다.
“실프, 카사!”
-냥!
-왈!
“자, 뛰어놀아!”
두 정령이 쏜살같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의 엘프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귀엽다, 상급 정령이다, 킴의 정령이다 등 다양한 찬사가 터져 나왔다.
어린 엘프들이 실프와 카사 뒤를 우르르 쫓아갔고, 어른 엘프들은 우리를 맞이했다.
“킴!”
“아예 돌아온 거야?”
“아내도 함께 왔군.”
“음? 아내가 하나 더 있지 않았던가?”
엘프들과 실컷 인사를 나누다가 어머니들에게 갔다.
“왔구나.”
연장자 어머니가 대표로 차분하게 반겨주었다.
“죄송합니다. 아예 온 건 아니고, 갈큇발 독수리를 몇 마리 포획하는 게 주목적이라서…….”
“그래, 킴이니까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렴. 대단히 강하고 흉포한 짐승이니까.”
“예.”
“그런데 네 안에 깃든 자연의 기운이 매우 커졌구나. 상급 정령술을 터득했니?”
“예, 운이 좋았습니다.”
“대단하구나! 우리 엘프들도 너처럼 정령술이 빨리 늘지 못하는데.”
어머니들의 얼굴에 감탄과 경악이 어렸다.
본격적으로 어머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갈큇발 독수리에 대해 어머니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지식을 덧붙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덕분에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갈큇발 독수리는 비행형 괴물들을 제외하면 가장 몸집이 큰 맹금류라고 한다.
갈큇발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는 바로 길고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 때문. 놈들에게 붙잡히면 웬만한 맹수들도 살점이 통째로 뜯겨져서 즉사한다고 한다.
암수 한 쌍이 함께 평생을 살면서 새끼들을 키운다. 암수 한 쌍이 함께 사냥을 하면 웬만한 대형 괴물도 사냥한다고.
‘한 놈만 잡으면 남은 가족들이 불쌍해지겠구나.’
나는 암수 한 쌍과 새끼들을 통째로 포획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가보죠.”
“예.”
웬만한 괴물도 사냥할 정도로 강한 갈큇발 독수리들이 나에게 길러지면 어떻게 변할까?
내 성장촉진 마스터에 의해 몸집이 3배로 커지면서 힘도 3배 이상이 되겠지.
그만하면 웬만한 시험자들도 업신여길 수 없는 수준이리라!
차지혜와 나는 갈색산맥 남부를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갈색산맥의 숲 속 풍경이 펼쳐지자 기분이 좋았다.
생명의 나무들이 세 그루나 있는 대자연 속에 들어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내 체내의 자연의 에너지가 충만해졌으니까.
한참을 걸은 끝에 우리는 갈큇발 독수리들의 서식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삐이익―!”
“삐이이익―!”
흔히 들었던 매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하늘을 울렸다.
좋은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너도나도 덤벼드는데, 그냥 실프를 시켜 싹 다 잡아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온 가족을 통째로 잡아야 하니까.’
아버지나 어머니가 사라지면 남겨진 새끼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어서 그런가, 나는 그런 쪽으로 참 관대한 것 같단 말이야.
나는 실프를 시켜서 강력한 회오리로 우리를 둘러싸 보호하게 했다.
갈큇발 독수리들은 회오리에 접근할 엄두를 못 내고 물러섰다.
나는 차지혜를 보며 말했다.
“둥지를 찾으러 가볼까요?”
“예.”
우리는 갈큇발 독수리의 둥지를 찾아 나섰다.
보통 둥지를 절벽의 돌출된 바위틈에 짓는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찾아가 보면 되겠지.
우리는 여유롭게 사냥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