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4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42화
-청와대 측이랑 얘기 좀 했어.
“청와대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참, 이 사람 박진성 회장이었지.’
동네 노인네 대하듯이 해서 상대가 누군지 깜빡했다. 이 영감님은 대한민국 넘버원의 재벌이었다.
-김중태 소장 실각할 거야.
“정말요?”
김중태 소장.
바로 내 신상정보를 중국에 팔아넘기고, 차지혜의 죽음에도 일조한 썩어빠진 놈 아닌가.
그런 놈이 실각할 거라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처음으로 나라 잘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군.
-지금까지는 중국 시험단과의 관계 우호가 중요해서 중국통인 김중태 소장을 신임했지. 청와대는 아레나 사업의 패권을 중국이 가질 거라고 판단했거든. 근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리창위가 중국 시험단을 장악했죠?”
-알고 있네?
“그놈이 나한테도 손잡자고 제안한 적 있었으니까요.”
-이 자식이, 그런 일 있으면 좀 우리 측에도 얘기를 해줘야 할 게 아냐!
박진성 회장이 벌컥 성질을 냈다.
“병도 나았겠다, 이제 아레나에 관심이 없으실 줄 알았죠.”
-미래 산업이 될지도 모르는 분야에 관심이 없는 게 말이 돼?
“미래 산업 같은 소리 하십니다. 제가 시험을 전부 클리어하고 끝장을 내버릴 거예요.”
-네 말대로 된다 해도 이미 지금까지 전 세계에 확보된 마정의 개수가 몇 개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야?
“꽤 많겠죠?”
-무지 많다, 이놈아. 더 이상 마정 확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온다 해도 마정의 가치는 여전히, 아니,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게다.
그야 그렇지.
마정에 담긴 마력은 현대 과학 기술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니까.
그게 아니면 굳이 다른 에너지 자원을 놔두고 마정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략 무기 개발에 쓰이든 우주개발에 쓰이든 마정은 반드시 중요한 곳에 쓰이게 되어 있어. 설령 더는 마정을 구할 수 없게 되더라도, 이미 지금까지 확보된 마정들이 그런 일에 쓰인다.
그래서 진성그룹도 시험자들을 스카우트해서 마정을 확보 중이지.
잘은 모르겠지만 마정 응용 기술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보다 헤이싱을 죽인 게 너지?
“그 얘기도 들으셨어요?”
-나도 중국 측에 심어놓은 소식통이 있어, 이놈아.
박진성 회장은 얕보지 말라는 듯이 핀잔을 하곤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네 덕에 리창위를 견제하던 헤이싱 일파가 전멸하고서 중국 시험단이 반 토막이 나버렸어.
“전멸이요?”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헤이싱을 내가 죽이긴 했다.
해적들과 싸우면서 타락한 시험자를 꽤 사살한 것도 사살이다.
하지만 헤이싱을 따르는 일파가 전멸할 정도는 아니었을 터였다.
-헤이싱의 죽음을 알자마자 리창위가 헤이싱 일파를 전부 살육했다는군.
“……!”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헤이싱이 죽자마자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일을 벌이다니.
리창위의 잔인성과 과감성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그렇게 중국 시험단 숫자는 절반으로 줄고, 중국 공산당도 더 이상 리창위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지. 오히려 리창위에게 살해당할까 봐 벌벌 떨며 눈치를 본다는군.
헤이싱 일파를 모조리 살육한 행보만 보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그 점까지 노려서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렇게 중국 시험단이 맛이 가버렸으니, 우리도 더는 아레나 사업과 관련해서 중국 쪽 라인에 설 필요가 없어졌어.
“중국이 아레나 사업의 패권에서 멀어졌다고 판단한 거네요.”
-그렇지.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되고서 나도 이때다 싶어서 청와대에 연락했어. 대통령이랑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는데, 그 김에 네 얘기도 했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 얘기를 해주다니!
나름대로 날 신경 써준 박진성 회장의 호의가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덤으로 차지혜 그 여자 얘기도 했어. 그 여자 신분도 곧 회복될 거야.
“우와, 감사합니다!”
-조금 전보다 더 좋아하네. 정분났냐?
“…….”
이 영감님, 눈치가 귀신이군.
사실 이제 와서 김중태 소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나였다.
더 이상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차지혜에 대한 좋은 소식이 내 일처럼 기뻤다.
물론 차지혜 본인은 이 소식을 듣고도 심드렁할 테지만 말이다.
-아직 장담할 수는 없는 단계에 있지만, 아레나 관련 사업과 관련해서 우리 그룹과 정부 간에 중요한 결정이 있을 거야.
“그래요?”
-그게 확정되면 너한테도 정부에서 사람이 찾아올 테니 그리 알도록 해.
“예.”
그렇게 통화는 종료되었다.
나는 차지혜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렇습니까.”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차지혜는 예상대로 덤덤한 표정이었다.
“안 기쁘세요?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던 신분이 다시 복권되는데.”
“딱히 상관없습니다만.”
“사망처리 되면서 잃었던 재산이나 친구도…….”
“집 한 채가 있긴 했습니다만, 이제 와서는 딱히 관계없습니다.”
“그럼 김중태 소장은요? 그 양반 실각한다는데 그건 기쁘죠?”
차지혜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기쁘길 원하십니까?”
“그야 물론이죠.”
“기쁩니다.”
살짝 웃어 보인 차지혜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다 끓인 된장국을 식탁에 옮겼다.
“…….”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내가 기뻐졌다. 언제 봐도 참 묘한 여자다.
그날 저녁, 나는 의외의 인물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셨나?
“……리창위.”
-지난번에는 신세 졌군.
“본의 아니게 말이지.”
-하하하. 나도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대단하시군. 역시 세계 7위의 랭커다워.
“…….”
짜증나는군.
헤이싱 일파가 전멸하고서 중국 시험단이 반 토막 났다지만, 리창위라는 강력한 리더가 탄생했다.
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것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공산당 간부들이 좌우하는 중국 시험단보다, 아레나의 현장에서 지휘할 수 있는 리창위의 중국 시험단이 훨씬 더 무섭다.
-어쨌건 덕분에 당신도 7위씩이나 할 정도로 재미를 봤으니 상부상조한 셈이군.
“참 듣기 싫은 단어로군.”
-하하, 너무 그렇게 까칠할 필요는 없잖나. 개인적으로는 당신에게 유감이 없거든.
“…….”
-이제 중국 시험단이 당신을 노리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사람 일이 다 그렇듯, 살다 보면 어찌 변할지 모르지만 말이지.
“다시는 충돌할 일이 없기를 바라지.”
-동감이야. 그럼 잘 지내시게, 은인이여.
나는 거칠게 통화종료를 터치했다.
‘은인 같은 소리 하네.’
헤이싱을 처치하면서 얻은 게 워낙 많지만, 그래도 리창위라는 놈은 영 찜찜하다.
“리창위입니까?”
차지혜가 물었다.
“예.”
“리창위와 충돌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동감이에요.”
“아뇨, 기분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위험합니다.”
나는 의아해져서 차지혜를 바라보았다.
“잊으셨습니까? 리창위는 헤이싱 일파의 시험자들을 전부 살육했습니다.”
“예, 참 위험한 놈이…….”
순간 나는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헤이싱 일파.
당연히 다들 타락한 시험자였을 것이다.
그들은 전부 죽였다면……!
“자신의 마이너스 카르마를 상쇄하고도 한참 남을 정도의 카르마를 얻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얻은 카르마로 스킬의 레벨을 올렸겠네요.”
“그럴 겁니다.”
그럼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 인간이었는데 힘까지 더 강해지다니.
“정말로 부딪칠 일이 없길 바라야겠네요.”
***
박진성 회장의 연락을 받은 지 사흘째 지났을 때였다.
-김현호 씨?
진성그룹 제3비서실의 이정식 실장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실례지만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인데요?”
-청와대 관계자가 만나길 원합니다. 회장님께서도 합석하실 겁니다.
“언제요?”
-되도록 오전 중이면 좋겠다고 합니다만, 시간은 괜찮으십니까?
“예, 상관없어요.”
청와대 관계자라니 조금 호기심이 든다. 과연 누굴까? 뉴스에서 본 사람일까?
-그럼 한 시간 뒤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뇨, 장소를 말해주시면 알아서 찾아갈게요.”
-자주 가셨던 산장입니다.
“또 거기예요?”
-아무래도 조용히 만나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서 나는 차지혜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비서실장일 겁니다. 청와대에서 아레나 관련 일을 챙기는 사람은 김병호 비서실장입니다.”
“그래요?”
뉴스와 신문을 안 본 지 통 오래돼서 그런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도 청와대 비서실장이면 굉장히 높은 사람이겠지.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는데 잘됐습니다. 제 차로 가죠.”
“좋죠.”
우리는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차지혜의 하얀색 람보르기니를 타고 나섰는데, 도로에서 차들이 길을 비켜주고 절대 끼어들지 않는 기적이 벌어졌다.
인도를 걷던 사람들도 다들 눈길을 주었다.
차가 좀 화려해야 말이지.
‘나도 차 한 대 더 뽑을까?’
차지혜의 차를 보니 어쩐지 내 포르쉐 카이엔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람보르기니는 씽씽 달려서 산장까지 금세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이정식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이랑 김병호 비서실장님은요?”
“두 분은 먼저 사냥하러 가셨습니다. 회장님께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길잡이 스킬도 있어서 박진성 회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생명의 불꽃으로 건강해졌다지만, 노인네가 가면 얼마나 멀리 갔겠는가.
우리는 금방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 두 노인네를 발견했다.
풍채가 있고 부쩍 건강해 보이는 노인은 박진성 회장.
키가 훤칠하고 마른 체격의 노인이 김병호 비서실장인 모양이었다.
“어 왔어?”
박진성 회장이 알은체를 했다.
“간만에 뵙네요.”
대충 인사를 나누고는 김병호 비서실장을 응시했다.
“그쪽이 김현호 씨로군요. 허허, 생각보다 더 젊은 분이시네.”
“예,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어서 차지혜와도 인사를 나누는 김병호 비서실장이었다.
“아, 그쪽이 그 차지혜로군?”
“그렇습니다.”
“사정은 들었습니다. 정부를 대표해서 사과드립니다.”
김병호 비서실장은 차지혜에게 고개 숙여 사죄를 표명했다.
“괜찮습니다.”
차지혜는 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정말 어디까지 쿨한 거야, 이 여자는!
“자자, 이러지 말고 뭐라도 한 놈 잡자고.”
박진성 회장이 채근했다.
그러고 보니 두 노인네는 사냥개도 한 마리 끌고 나왔군. 사냥개는 연신 코를 땅에 대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실프.”
-냐앙!
내 말이 떨어지자 실프가 나타났다.
김병호 비서실장이 화들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사냥감을 찾아봐.”
-냥!
실프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난 웃으며 말했다.
“얼른 끝내고 본론에 들어가죠.”
실프는 30분 만에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라니는 김병호 비서실장이 쏜 엽총에 죽었다.
일찌감치 사냥을 끝내고 산장에 돌아온 우리는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일단 두 분께 폐를 끼친 김중태 소장은 소장 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곧이어 비리수사가 이어질 겁니다.”
“예, 그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아레나 분야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진성그룹과 연대를 맺기로 하였습니다.”
그 말을 받아서 박진성 회장이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우리 쪽 아레나 사업체와 한국아레나연구소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뜻이야.”
한국아레나연구소와 진성그룹의 아레나 사업체가?
놀란 내게 김병호 비서실장이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거듭날 조직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 랭커이신 김현호 씨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