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8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80화
“어서 날 죽여라.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그 말에 술탄 사록도 5인의 대사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평생을 바친 사명이었다.
수백 년에 걸친 아만 제국의 숙명이었다.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선조이시여, 다른 방도는 없는 것입니까?!”
술탄 사록이 절규했다. 자신의 조급함이 대사를 그르쳤다는 죄책감에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완전해야 했다.”
카자드는 모든 걸 내려놓은 허망한 얼굴로 말했다.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욕망조차 하지 않은 채 오직 지성으로서 군림하는 영원불멸한 지배자여야 했다. 인간의 전쟁과 분란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평화를 이끌려 하였다.”
“아, 알고 있습니다, 선조님! 저희는 오직 그것만을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선대 폐하!”
“선대 폐하!”
대사제들이 엎드려 소리치며 울었다.
카자드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 부족하구나. 너무나 위험한 욕망이 남겨졌구나. 이래서야 내가 부활한 의미가 없다. 어서 날 죽여라. 아니다, 내 손으로 직접 해야겠다.”
그러면서 카자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파아앗―
흑마력이 손에 모여들었다.
“아, 안 돼!”
술탄 사록이 절규했다. 대사제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애간장을 태웠다.
카자드는 그 손을 자신의 머리로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멈칫.
손이 도중에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절규를 하던 술탄 사록도 대사제들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카자드를 바라보았다.
“아니지…….”
카자드의 나직한 독백.
카자드는 떨리는 눈으로 흑마력이 고밀도로 밀집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흑마력을 거두고 자신의 손을 빤히 응시했다.
“이 손의 온기…… 손 안에 흐르는 따듯한 피…….”
“서, 선조시여……?”
술탄 사록이 멍한 얼굴로 자신의 수백 년 전 선조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다는 건 얼마나 존귀하단 말이냐? 내가 살아생전에 모든 것을 누렸어도 가질 수 없었던 딱 하나인데! 이 아까운 것을 어찌 쉽게 버릴 수가 있단 말이냐?”
“서, 선대 폐하?!”
대사제들은 당혹했다.
그제야 모두들 일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자드는 클클거리며 웃었다.
“그래, 살아 있으니까 살아야지. 완벽하지 않은들 어떠하냐?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선조 폐하, 하지만 방금 전에 하신 말씀은…….”
그러자 카자드는 흠칫했다.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빛이 맑게 돌아온 카자드가 웃음 짓던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빌어먹을, 벌써 욕망에 빠지고 있구나! 어서 날 죽여라! 어서!”
“제, 제 무례를 용서하소서!”
일의 심각성을 가장 잘 파악한 나이든 대사제가 흑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불꽃의 영광,
춤추는 폭염에 타오른,
잿더미의 잔해!”
화르르르르륵―!
나이 든 대사제의 두 손에서 지옥에서 새어 나온 듯한 시커먼 불꽃이 쏟아졌다.
“무, 무슨!”
아직도 대업에 미련이 남은 술탄 사록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대사제는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이를 악물고 양손을 카자드에게 뻗었다.
“용서하소서―!!”
화르르르르!!
검은 불꽃이 파도처럼 카자드를 덮쳤다.
카자드는 무방비 상태로 담담히 검은 불꽃을 맞이했다.
하지만…….
검은 불꽃이 지척까지 다가와 그의 육신을 잿더미로 만들려는 순간이었다.
“크하악!”
카자드가 입을 쩌억 벌렸다.
놀랍게도 검은 불꽃이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불꽃을 전부 빨아 먹어 버린 카자드는 불같은 눈으로 대사제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나를 죽이려 해?!”
“서, 선대 폐하……!”
“돌려주마. 크하아악!!”
화르르르!
카자드의 입에서 검은 불꽃이 튀어나와 대사제를 향했다.
“허억!”
대사제는 다급히 방어마법을 펼쳤다. 검은 불꽃은 방어마법에 막혔다.
하지만 검은 불꽃은 점점 강해졌다. 점점 거세게 타오르더니 끝내 방어를 깨뜨리고 대사제를 덮쳤다.
“끄아아아아……!”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나이든 대사제는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자드는 재밖에 남지 않은 대사제의 잔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잔해에서 빛의 입자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스르륵 나타나 카자드가 뻗은 손으로 모여들었다.
죽은 대사제의 영혼이 남긴, 영혼의 파편이었다.
대사제가 남긴 영혼의 파편은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카자드는 손에 있는 영혼의 파편 가루를 날름날름 핥아 먹었다.
“크흐흐흐, 맛있구나. 이 얼마나 달콤한지!”
술탄 사록은 공포로 얼어붙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피 맛을 본 굶주린 맹수처럼, 카자드는 다른 대사제들을 응시했다.
“서, 선대 폐하께서……!”
“실성을 하셨다!”
“막아야 돼!”
대사제들은 저마다 흑마법을 펼쳤다.
그때, 카자드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퍼어억!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대사제의 지척에 나타난 카자드가 주먹을 휘둘렀다. 펀치에 맞고, 놀랍게도 대사제의 얼굴이 통째로 터져 버렸다.
단숨에 대사제 한 명을 즉사시킨 그의 주먹에 붉은 피와 함께 흑마력이 넘실거렸다.
“크하하하하하!”
카자드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한 대사제가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언데드 괴물들을 잔뜩 꺼냈다.
하지만 카자드는 억센 두 팔로 괴물들을 우악스럽게 잡아 뜯고 뿌리치며 다가와 대사제의 목까지 잡아 뜯어버렸다.
“에잇, 귀찮구나. 한꺼번에 죽어라!”
카자드가 호통과 함께 흑마력을 일으켰다.
넘실넘실 뿜어져 나온 흑마력이 세 줄기의 로프처럼 변해서 3인밖에 남지 않은 대사제들을 덮쳤다.
“끄어억!”
“커헉!”
“카아악!”
흑마력 로프가 세 대사제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꿀렁꿀렁, 흑마력 로프와 연결된 대사제들이 입 밖으로 자신의 흑마력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아무리 버둥거려보아도 소용없었다.
“아으으…….”
“내, 내 흑마력이…….”
“선대…….”
흑마력을 모조리 빨려 버리자 앙상한 육체만 남겨진 대사제들은 풀썩 쓰러졌다.
“그간 수고들 많았다. 은총을 내려주겠다.”
그리 말하며 다가간 카자드가 그들의 목을 하나씩 짓밟았다.
우드득! 빠직! 콰지직!
목뼈가 분질러져 죽은 대사제들.
카자드는 또다시 영혼을 파편을 빨아들여 게걸스럽게 핥아먹었다.
“맛있구나. 정말 맛있어. 생명이란 역시 존귀한 것이야.”
카자드는 홀로 살아남은 술탄 사록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술탄 사록은 흠칫했다.
“흐흐흐, 나의 후손 사록 푼 아만. 너만 남았구나.”
“서, 선조시여…….”
“염려 말아라. 설마 내가 너를 죽이겠느냐?”
“그,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지!”
“대, 대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술탄 사록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족한 영혼력을 탐하는 부작용이 생겼어도, 본래의 목표는 잊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암, 대업! 이루어야지! 세상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내 지배하에 놓겠다.”
그러면서 광기 어린 웃음을 짓는 카자드 푼 아만.
술탄 사록은 일말의 불길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육각형 방에서 나왔다.
방 바깥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두 사람이 나오자 영문을 몰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득 카자드가 손을 왼쪽으로 뻗었다.
술탄 사록은 설마 카자드가 이 자리에 있는 사내들까지 죄다 죽이고 영혼의 파편을 먹으려는 걸까봐 가슴이 철렁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내들은 모두 타락한 시험자들. 쉽게 죽여 없애기에는 아직 쓸모가 많았다.
다행히 카자드의 손은 사내들을 향한 게 아니었다.
파직!
손에서 흑마력 한 줄기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천장 구석에 숨겨져 있던 어떤 동그란 구슬을 맞췄다.
구슬이 바닥에 추락해 균열이 갔다.
“서, 선조시여, 저건……?”
“심연의 구슬이다. 심연의 눈동자의 일반 마법 버전이지.”
심연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흑마법.
심연의 구슬은 바로 그 심연의 눈동자를 일반 마법으로 변형시킨 마법이었다.
심연의 눈동자와 달리 마법을 펼치는 데 구슬이 필요하지만, 대신 시전자의 수준에 따라 먼 거리에서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곳을 일반 마법사가 감시하고 있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카자드는 그쪽으로 다가가 반으로 쪼개진 심연의 눈동자를 주워들었다.
쪼개진 구슬을 빤히 들여다보며, 카자드는 피식 웃었다.
“호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석관과 마법진을 위협한 그놈이로군.”
통치 시스템 마법에 얽혀 있는 기록을 전부 읽은 카자드는 불과 얼마 전에 의식 도중 습격 받은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 그 배신자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술탄 사록은 데이나 리트린을 떠올리며 오싹함을 느꼈다.
설마 그 뒤로 줄곧 이곳을 감시하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직 마법은 끊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지.”
“그, 그럼……!”
놀란 술탄 사록을 무시하고 카자드는 구슬에 대고 말했다.
“안녕하신가.”
구슬은 반응이 없었다.
카자드가 다시 말했다.
“내가 카자드 푼 아만이다. 내가 보일 테지? 내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 감시한 성과가 꽤나 크시겠군.”
카자드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도 지금 이걸 통해 너를 보고 있거든. 이제는 좀 당황했나? 갈색산맥 인근 지역이군. 내 기억에 거긴 엘프들이 사는 곳 근처인데, 아직도 엘프들이 거기 있겠지? 그래, 엘프들이 생명의 나무를 키우는데 그게 참 탐나는…….”
파직!
구슬이 스스로 깨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심연의 구슬 시전자가 마법을 끊어버린 것이다.
깨진 구슬 조각을 휙 버리며 카자드가 말했다.
“많이 당황했나 보군. 아무튼 그 쥐새끼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났다.”
“어떤 생각이신지요?”
술탄 사록이 물었다.
“엘프들이다. 그놈들이 생명의 나무를 키우지. 참 맛있는 생명력을 듬뿍 품고 있는 그것 말이다. 그걸 전부 내가 먹어 치워야겠어.”
술탄 사록은 화들짝 놀랐다.
엘프들을 공격하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카자드의 입에서 군침이 질질 흘렀던 것이었다.
욕망에 대한 절제를 전혀 하지 못하는 모습.
어째서 카자드 푼 아만이 아직 제정신이었을 때 자신을 죽이라고 했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포해라. 이제부터 엘프는 인간의 노예다. 같은 동등한 인격체일 수 없다. 전부 잡아다 노예로 쓰고, 생명의 나무는 내가 차지할 것이다.”
“하, 하지만 선조시여. 지금은 전쟁 문제로 대륙 모든 국가와 대립 중인데, 굳이 이런 시점에서 엘프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는…….”
“닥쳐라.”
“……!”
“나는 인류 사상 가장 위대한 지배자다. 넌 잠자코 내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다. 알아들었느냐?”
“네, 네…….”
탐욕으로 이성까지 마비된 모습.
부활한 카자드 푼 아만은 본인이 제정신일 때 했던 말처럼 괴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