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7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77화
갈큇발 독수리들이 가져다주는 마정의 양이 상당했다.
맹금류라서 그런지 활동 반경이 굉장히 드넓었다.
우리 영지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까지 이곳저곳 괴물들 서식지를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냥을 했다.
마치 생태계에 천적 없는 포식자를 풀어놓은 것처럼 독수리들은 괴물들을 싹쓸이했다.
덕분에 뜬금없이 찾아온 영지의 평화. 아레나에서 인간이 겪는 가장 큰 문제인 괴물들의 습격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지혜가 영지 업무와 군대까지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통치 또한 중심이 확실히 잡혔다.
당연히 나에 대한 영지의 여론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나로서는 달리 할 일이 없어 노트북으로 게임하고 가끔씩 독수리들이 물어다준 마정이나 헤아리고 있다가 이미지가 좋아진 격이었다.
“저도 몰랐는데 제가 꽤 좋은 영주라면서요?”
늦은 시각에 함께 잠자리에 들자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옆에 누워 있던 차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새로운 영주로 집권하자마자 독수리들이 활약해 주었으니 시작부터 좋은 흐름을 탄 겁니다.”
“그래야죠. 이래나 저래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밖에 없잖아요.”
“계속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사건을 또 만들어야겠습니다.”
“그게 어떤 사건인데요?”
“이 일대 지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예, 오딘 씨의 울펜부르크 백작가와 바스티앙 자작가의 전쟁이 있었죠.”
어찌 잊겠는가?
바스티앙 자작가는 라이칸스로프 실버 씨족, 갈색 산맥의 엘프들을 노리던 흑마법사와 연대를 맺고서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오딘이 이끄는 울펜부르크 백작가에게 패배하여 몰락하였다.
이 영지의 본래 주인이었던 헤인스 자작가는 그 바스티앙 자작가와 친밀한 관계였다.
이 일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연관이 깊은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바스티앙 자작가를 몰락시켜버린 울펜부르크 백작가와 떡하니 서로 영지를 맞대고 있는 이웃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헤인스 자작가가 떠나버린 지금도 이곳 영지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뒤숭숭한 분위기를 타파하려면 일단 영지의 안보 측면에서 영지민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경직된 경제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그만큼 세수도 증대됩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울펜부르크 백작가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요.”
오딘과 친한 사이인데 그깟 문제야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예 이참에 엘프들도 한데 엮어서 삼각동맹을 맺자.’
동맹에 엘프들도 끼워 넣으면 그만큼 대외적으로 영지가 안전해지는 것이다.
갈색 산맥에서 번성 중인 엘프들이 한 편인데 누가 우리를 건드릴까?
생각 난 김에 나는 다음 날 곧바로 교신기록 연락을 취했다.
-좋소.
-그래, 킴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
오딘도 갈색 산맥의 어머니들도 찬성을 했다.
***
“오랜만이군, 킴.”
멋진 중저음을 가진 이 엘프는 바로 데릭이었다.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데릭.”
“수고는. 네가 보낸 독수리를 타고 금방 왔는데. 그나저나 언젠가는 갈색산맥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예 이곳에 정착한 것이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내 아내가 아주 섭섭해한다.”
“하하하,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어차피 가까운 거리라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는데요, 뭘.”
“그도 그렇군. 모두들 널 보고 싶어 하니 자주 놀러오도록 해라.”
“네, 하지만 늘 저만 찾아갈 게 아니라, 여러분도 좀 이곳에 놀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곳에?”
데릭이 의문을 표했다.
아무래도 엘프인 그로서는 그들의 영역인 갈색산맥을 떠나 이곳에 오는 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내가 말했다.
“울펜부르크 영지나 이곳이나 이제 여러분과 한편이 되었잖아요. 엘프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무리가 이곳에서 함부로 활동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우리의 영역 바깥을 함부로 돌아다니기에는 위험이 많지. 일부러 내가 대표로 온 것도 혹시라도 내 아내가 위험해 처할 까봐서다.”
“그 마음 알죠. 하지만 오히려 엘프들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서라도 엘프들의 대외활동이 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
내가 데릭에게 설명했다.
“지금까지처럼 갈색산맥에만 틀어박힌 채 배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끝내 엘프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을 바꾸지 못해요.”
“인식이라…….”
“예, 인식이요. 인간 또한 엘프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이유가 왜일 것 같나요?”
“인간이 우리에게 이로웠던 적은 손꼽을 정도다. 킴 너를 제외하면 대부분 우리에게 해코지를 하려 들었을 뿐이지.”
생명의 나무를 노렸던 재래 결사대나 엘프를 노예로 팔려는 사냥꾼들…….
엘프가 인간을 적대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엘프가 우리를 경계하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째서 그런 태도를 취해야 했는지 모르지 않지 않으냐.”
“당연히 알죠. 하지만 결국 그렇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갑니다.”
“그도 그렇지.”
“차라리 이번 동맹을 계기로, 저희들 인간 사회에 진출하심은 어떠신가요? 사냥한 짐승이나 열매나 약초를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하면서 교류를 해보면 어떨까요? 서로 만날 기회가 늘수록 편견도 사라질 거예요.”
내가 계속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인간들 중에서도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착한 사람도 있어요. 여러분이 보다 열심히 교류를 나누면서 착한 인간을 한편으로 만들어 나가는 거죠.”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본 데릭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다. 이 세상은 인간의 것이 아닌데, 우리는 너무 우리 영역에만 갇혀 지내는 것 같군.”
“그래요. 조금 우악스러운 비유이긴 하지만, 짐승들도 영역이 넓어야 그만큼 먹이도 많아지고 생존에 유리해지잖아요. 여러분도 밖으로 나와 보다 많은 것을 접하면, 엘프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점점 많아지게 될 거예요. 오늘의 이 동맹처럼 말이죠.”
“돌이켜보면 우리들이 지금껏 많은 위기를 타파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킴 너라는 인간을 만난 덕분이지. 네 말이 옳다.”
“하하, 바로 그거예요.”
“알겠다. 돌아가 아내에게 말해보도록 하겠다. 여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아마 네 말에 찬성하지 않을까 싶다.”
때마침 울펜부르크 백작가 쪽에서도 오딘이 내가 보낸 갈큇발 독수리를 타고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동맹 협약을 맺었다.
영주 직인과 엘프들의 경우 데릭의 서명이 적힌 협정서를 나눠 갖고서, 이 동맹 사실을 영지에 널리 선포했다.
이로써 아렌드 왕국 남부 지역의 강자인 울펜부르크 백작가와 갈색산맥을 지배하는 엘프들이 우리의 편이 된 것이다.
이는 이 일대에서 헤인스 영지를 위협할 세력이 사라졌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영지의 평화!
대외관계도, 괴물 출몰 등의 치안 문제도 해결되자 우리 영지는 차지혜의 예견대로 활발해졌다.
두려움의 요소들이 해결되자 영지민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여행자와 상인들이 통행이 대폭 늘어나면서 통행세의 세입도 껑충 뛰었다.
그리고 갈색산맥의 엘프들 측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연장자 어머니는 내 의견에 찬성을 나타내셨다.
-아직까지 자유롭게 인간의 영역을 돌아다니는 건 꺼려지지만, 적어도 네가 말한 대로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거래는 시도해 볼 만하구나.
이 사실을 차지혜에게 말하자 그녀는 아이디어를 냈다.
“엘프들과 거래를 할 수 있는 교역소를 설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역소요?”
“갈색산맥에 괴물이나 짐승의 가죽이나 각종 약초 등 고가에 거래될 수 있는 특산물이 풍부합니다. 교역소를 설치하면 엘프들과 거래하려는 상인이 많이 모여들 겁니다.”
“우린 그 상인들에게 교역소를 이용하는 대가를 받으면 되겠네요.”
“예, 더불어 물정에 어두운 엘프들이 불리한 거래를 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괜찮네요. 교역소 그거 한번 추진해 보죠.”
“알겠습니다.”
차지혜는 수석 집무관 에드워드에게 교역소 설치 건을 전담케 했다.
에드워드는 갈색산맥과 인접한 지역에 교역소를 건설하는 한편, 대형 상단과 접촉하여서 교역소에 대한 이야기를 알렸다.
갈색산맥을 꽉 쥐고 있는 엘프들과 거래할 수 있다는 말에 크게 관심을 보이는 굵직한 대형 상단이 여럿 되었다.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엘프들로부터 어떤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거냐고 여러 상단에서 궁금해합니다.”
에드워드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내가 답했다.
“갈색산맥에서 구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가능하지. 그럼 상단들이 구매하고 싶어 하는 물건들을 조사하도록 해. 내가 그것을 엘프들에게 가르쳐 주어 교역소에 많이 준비케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역소.
갈색 산맥 측에서는 남성 엘프들이 준비한 물건을 잔뜩 가지고 교역소에 나타났다.
대형 상단의 직원들과 일반 상인들이 잔뜩 모여서 교역소는 곧 인산인해가 되었다.
에드워드가 직접 교역소 관리를 총지휘하며 엘프들이 사기를 당하지 않게 감독하였다.
교역소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었다.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인하여 세수(稅收)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외부에서 사람이 많이 모여들자 우리 영지의 상공업자들도 덩달아 호황을 맞이했다.
다만 문제는 엘프들이 그렇게 물건 팔아 돈을 벌어봤자 딱히 쓸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괴물이 많고 험한 갈색산맥이다 보니 철제 무기류는 많이들 샀지만, 그래도 필요한 무기를 전부 사고도 돈이 왕창 남았다고 한다.
-돈을 어디에 써야 좋겠니? 우리는 인간과 달리 이게 딱히 필요하지 않는데.
연장자 어머니가 교신기로 통신을 걸어 물어본 말이었다.
지금껏 자급자족을 해온 엘프들로서는 무기류를 제외하고 딱히 필요한 게 없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 돈으로 노예가 된 엘프들을 구하세요!”
내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힘있는 대형 상단에게 의뢰해 귀족가문들이 데리고 있던 엘프 노예를 사서 데려오게 하는 것이었다.
내 의견을 듣자마자 연장자 어머니는 그 즉시 실행에 옮겼다.
여러 귀족 가문과 끈이 닿아 있는 대형 상단이 엘프들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최근 아렌드 왕국은 국왕 알세르폰 3세의 명에 의해서 엘프 노예 매매 단속이 엄격해진 분위기였다.
괜스레 왕실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은 가문들이 엘프 노예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예로 붙잡혀 있었던 노예들이 하나둘 해방되어 갈색산맥의 품에 안겨졌다.
덕분에 교역소가 활성화되고서 갈색산맥의 엘프들 숫자는 나날이 늘어났다.
물론 우리 영지의 세수 증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험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