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7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75화
사람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나 리트린이 찾아왔다.
“안녕하셨습니까.”
이 흑발의 백인 미청년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어디에 계셨던 거죠?”
“가까운 곳에 비어 있는 민가가 있어서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민가요? 이 세계의 민가라면 지내기가 꽤 불편하셨겠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곳에서 10년을 지냈더니 어디든 쾌적합니다.”
그 말에 영문을 모르는 우리에게 데이나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데이나 리트린.
아레나에서의 그의 여정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마법학회에서 마법을 익힌 후에 대사제 아프리트의 접촉을 받아 그의 제자로 들어가 그들의 조직에 잠입했다.
종속의 인이 새겨졌지만 듀얼 서클이라는 특수스킬로 마법과 흑마법을 병행했다.
의심 많은 스승 아프리트의 24시간 감시를 견뎌내며 암약. 끝내 대사제까지 되어 5년간 그들 조직의 최고위 간부로 지냈다.
“재래 결사대는 대륙 정복을 달성했던 수백 년 전의 술탄 카자드 푼 아만이 직접 만든 비밀 조직입니다.”
“저희나 아렌드 왕실도 거기까지는 대충 추측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조직이 술탄 카자드 본인이 직접 만든 집단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아마 중국의 진시황 같은 경우를 상상하셨겠지요? 하지만 술탄 카자드는 조금 다릅니다. 말년에 불노불사를 위해 흑마법에 손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대단한 흑마법사였지요.”
“그래서 대륙 정복이 가능했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술탄 카자드의 휘하에 수많은 마법사가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가 흑마법사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데이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떤 뛰어난 마법사도 감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흑마력을 잘 갈무리했다는 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역사에도 야사에도 흑마법과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차지혜가 문득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죽을 뻔하셨군요.”
“……?”
“만약 그날 의식으로 술탄 카자드가 부활했다면, 술탄 카자드가 리트린 씨가 숨기고 있던 마나를 감지하지 않았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군요.”
데이나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정말로 살 수 있는 길을 택한 거였어요. 천만 다행입니다.”
“아무튼 놀라운 이야기입니다만, 저희로서는 그게 사실인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사실이라면 리트린 씨 본인과 아프리트까지 두 명의 대사제를 없애신 셈이니 약속이 지켜진 게 되는군요.”
차지혜의 말에 데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증거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무장!”
데이나는 뜬금없이 웬 단검을 소환했다.
카르마를 주고 산 아이템인 모양이었다.
흑요석처럼 검은 빛깔로 광택이 흐르는 고급스러운 단검이었다.
“이걸 선물로 드리지요. 대사제 아프리트를 죽였던 그 단검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데이나에게서 검정색 단검을 받았다. 하지만 단검의 칠흑 같은 칼날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석판 소환, 이 단검의 정보를 보여줘.”
그러자 석판에 단검에 대한 설명이 나타났다.
-흑혈단검: 흑마법으로 특수 제작된 단검. 검신이 흑마력과 접촉하면 출혈을 유도하는 저주가 발동되기 때문에 흑마력을 지닌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카르마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아이템 중에 이런 것도 있었나요?”
“아니요.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리트린 씨가요?”
“예, 다 완성한 뒤에 언제든 소환하고 해제할 수 있도록 아이템화했지요. 그래야 스승에게 들키지 않고 말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걸 만들 정도로 흑마법에 정통했단 말인가?
마법을 익힌 시험자들도 결국은 본인이 마법에 대해 공부한 게 아니라, 카르마로 스킬을 구매했을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데이나는 정말로 마법과 흑마법 이론에 정통해 있었다.
아레나 세계의 일반적인 마법사들처럼 말이다.
‘저래서 세계 랭킹 1위인 건가. 정말 대단하구나.’
어찌 보면 시험자이기 전부터 이미 뛰어난 무술가였던 리창위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레벨의 스킬을 익힌 시험자와 비교해도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역량 말이다.
나는 흑혈단검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데이나에게 물었다.
“혹시 이 단검으로 몇 사람이나 죽이거나 상처를 입혔나요?”
“그걸로 죽은 사람은 아프리트뿐입니다. 그때 외에는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나는 가공간에서 첫째를 꺼냈다.
“빼액?”
“자, 냄새를 맡아봐.”
첫째는 흑혈단검에 주둥이를 가까이 가져다 대며 킁킁거렸다.
“이 냄새의 주인을 추척해 볼 수 있겠니?”
첫째는 말없이 한쪽 날개로 데이나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 말고, 칼날에 배인 피 냄새를 추적해 봐.”
첫째는 다시금 칼날에 배인 피 냄새를 맡았다.
피는 닦았어도 누군가를 찔렀다면 분명 칼날에 피 냄새는 남아 있을 터였다.
첫째는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피 냄새가 안 나니?”
첫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피 냄새는 맡을 수 있는데, 그 피 냄새의 주인은 추적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동물추적 스킬이 적용 불가능하다면 이유는 한 가지.
냄새의 주인이 이 세상에 없을 때뿐이었다.
“확실히 말씀대로 이 단검에 찔린 사람은 죽었네요.”
“방금 하신 건 스킬입니까?”
“예, 냄새의 주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어디에 있어도 추적이 가능합니다. 추적 못 하는 걸 보니 죽었네요.”
“당연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프리트는 죽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단검에 죽은 사람이 대사제 아프리트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차지혜의 지적이었다.
데이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아만 제국 내부 동정을 살펴보면 제 말이 사실이라는 정황 증거가 여러 가지로 나타날 겁니다. 예를 들면, 궁전 돔을 뚫고 탈출한 침입자가 있다는 소문도 접할 수 있으실 테고…….”
“그리고요?”
“제가 그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가짜 영혼을 일부 흡수했습니다. 그 탓에 부활 의식을 치르는 데 필요한 생명력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럼 다시 부족한 생명력을 보충하려 하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빠른 시일에 영혼의 파편을 모으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물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해적단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해적단과 손잡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학살?”
“그겁니다. 정확하게는 전쟁을 벌이겠지요. 일반적인 학살보다 전쟁이 훨씬 영혼의 파편을 모으기 유리합니다. 적군은 물론 아군 전사자의 영혼의 파편까지도 모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전쟁 중이라면 민간인 학살이 빈번하게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권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아레나.
전쟁으로 흥분한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일은 그리 드문 광경이 아닐 터였다.
어쩐지 퍼즐 조각이 맞아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험(Mission): 제한 시간 동안 아만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라.
아만 제국의 침공에 대비해야 하는 시험과 2년의 제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 이유.
그것은 데이나 리트린의 이번 시험과 맞물린다.
어찌 보면 데이나가 시험을 클리어했기 때문에 아만 제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만 제국은 오래 전부터 군비를 비축해왔는데, 본래는 술탄 카자드를 부활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대륙 정복에 나설 계획이었을 겁니다.”
데이나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술탄 카자드의 부활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분명히 주변의 이웃 국가를 침공할 텐데, 국력이 약한 나라부터 타깃이 될 겁니다.”
“이곳 아렌드 왕국은 어떤가요?”
“아렌드 왕국은 최강국인 아만 제국도 얕보지 못하는 강국입니다. 아마 당장은 침공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갈색산맥에도 주의를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지혜가 내게 말했다.
“아, 그러네요. 엘프들의 생명의 나무가 가장 좋은 타깃일 테니.”
데이나 때문에 잃은 가짜 영혼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의 나무를 노릴 터였다.
데이나가 말했다.
“갈색산맥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현재 갈색산맥의 엘프들이 생명의 나무를 세 그루나 보유했다는 사실을 재래 결사대도 알고 있습니다. 엘프들이 꽤 강성하지만 반드시 노릴 겁니다. 보통 일이 아니니, 아마 대사제가 직접 움직이겠군요.”
“그러고 보니 대사제들의 인상착의와 이름을 모두 아시겠네요?”
“당연합니다. 5년간이나 대사제 노릇을 했는데요.”
데이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갈색산맥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대사제들이나 재래 결사대의 주요 인물들의 움직임은 제가 지금도 매일 체크하고 있습니다.”
“매일 어떻게 말이죠?”
“길잡이 스킬을 중급 1레벨까지 올렸습니다. 방향뿐만 아니라 거리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들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것입니다.”
보통 초급 1레벨에서 더 올리지 않는 게 정석인 길잡이 스킬을 중급까지 올렸다니.
재래 결사대에서 10년간 암약했다는 이야기까지, 그가 얼마나 용의주도한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데이나가 계속 말했다.
“이번 회차 시험 기간 동안은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분께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신다고요?”
“예, 아직 여러분의 신뢰도 완전히 얻지 못했으니 여러 가지로 도움을 드리면서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도 상당하니 시험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야 당연했다.
적의 심장부에서 10년이나 활동했던 사람인데 알고 있는 귀중한 정보가 한두 가지겠는가?
게다가 세계 랭킹 1위 시험자의 원조였다.
차지혜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유지수 씨 팀의 시험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겠습니까?”
“어라? 정말 그렇네요.”
생각 난 김에 나는 유지수와 차진혁을 불렀다.
내 부름을 받고 온 두 사람은 내가 데이나를 소개해 주자 화들짝 놀랐다.
“데이나 리트린? 그 세계 1위?”
“진짜야? 실물로는 처음 본다!”
그런 두 사람에게 데이나는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반갑습니다.”
“에헤헤, 반가워요. 너무 잘생기셨다.”
유지수는 잘생긴 데이나에게 꼬리를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나는 두 사람의 시험에 대해 설명하며 아는 게 없는지 물어보았다.
“루마드 집정관의 배후를 조사하는 시험이라고요? 루마드 집정관이라…….”
“그자는 라만 시의 집정관이에요.”
“라만 시? 아, 그럼 대충 짐작은 가는군요.”
데이나가 말했다.
“라만 시는 아렌드 왕국 북부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유사시 군사적 충돌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아렌드 왕국 내부에 우리와 내통하던 거물 귀족이 두 명 있었는데, 루마드 집정관은 그 둘 중 한 사람과 밀서를 주고받았을 겁니다.”
“그, 그게 누군데요?”
“현 아렌드의 국왕 알세르폰 3세의 이복동생인 콘월 공작과 아렌드 북부 지역의 변경백 센델스 백작입니다. 아마 센델스 백작이겠군요.”
어째 유지수 팀의 시험이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았다. 이거 내 도움이 필요 없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