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6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64화
우리는 적당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씩 차를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고, 집에 있을 땐 대련도 했다.
차지혜와 마리가 한편이 되어서 나를 공격했는데, 마스터에 이른 운동신경과 동체시력 스킬이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팽팽한 대결이 되었다.
밥도 먹고 TV도 보며 노닥거리다가 밤에 심심해지면 아레나에서 수여받은 영지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다.
한국아레나연구소는 물론이고 노르딕 시험단으로부터도 데이터를 제공받아서 많은 정보를 공부할 수 있었다.
일단은 데이터를 태블릿PC에 저장해 놓고 두고두고 보기로 했다.
아레나에 가서도 볼 수 있는데 급하게 공부할 필요는 없지. 내가 원래 공부에 영 젬병인 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충분히 입증됐고 말이다.
그러면서 임철호 소장과 박진성 회장에게서 꾸준히 연락이 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아레나 사업자인 맥런 회장과의 접촉이 점점 가시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맥런 회장의 한국 입국 사실이 임철호 소장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다.
며칠 뒤, 한국아레나연구소에서 보낸 차량이 도착했다.
차량을 타고 인근 군부대의 헬기장에 도착, 헬기를 타고 한국아레나연구소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께서도 반가워하십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데이나가 나서서 인사를 했다.
맥런 회장은 뒤에서 씨익 웃어 보였다.
다른 수행원은 없이 오직 데이나 리트린만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다들 모이셨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아니면 연구소 바깥은 좀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렇게 내게 물어본 임철호 소장은 영어로 맥런 회장에게도 물었다.
맥런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로 둘러싸인 연구소 섬의 해변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데이나는 친절하게도 영어를 모르는 내게 아레나어로 말해준다.
“바람을 쐬고 싶어 하시는군요.”
“네…….”
차지혜는 물론 마리까지도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터라, 나만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정말 난 공부와는 인연이 아닌 모양이다.
임철호 소장은 함께 연구소가 위치한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이곳저곳을 설명했다.
나이 든 아저씨가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감탄이 나왔다. 역시 엘리트는 다르구나.
임철호 소장과 맥런 회장이 연구소 외부 정경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김현호 씨?”
데이나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예, 리트린 씨.”
“최근의 성장세가 놀랍더군요.”
“운이 많이 따랐거든요.”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특별한 스킬을 여러 개씩 보유했으니 말입니다. 정령술이나 생명의 불꽃처럼, 이번에도 무언가를 얻으신 모양이지요?”
“예.”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굳이 숨길 필요야 있나. 어차피 협상하면서 보여주게 될 텐데.
가공간으로 전자기기를 아레나로 반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안 보여주면 된다.
내가 노르딕 시험단과 함께 아레나에 인공위성까지 들여놓을 계획이란 걸 알면 아주 기절초풍하겠지?
“카르마 보상으로 고를 수 있는 평범한 보조스킬들은 아닐 테고, 아마도 특수스킬이겠군요.”
정확하게 짚는군.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데이나가 문득 말했다.
“저도 마정을 현실세계에서 만들어내고자 마법적인 모든 시도를 해보았습니다만, 전부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수로 아레나가 아닌 곳에서 마정을 구할 수 있는 겁니까?”
“아레나에 서식하는 동물을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내 말에 데이나는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윽고 놀란 얼굴로 묻는다.
“그게 가능합니까?”
“예.”
“저도 나름대로 시도해 본 게 많은데, 마법으로 아무리 보호조치를 취해도 작은 벌레, 하다못해 식물의 씨앗 하나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지요.”
“제게 특별한 스킬이 하나 있는데, 아이템백과 동일한 수납 효과를 갖는 스킬입니다. 스킬의 레벨을 올리니까 살아 있는 생명체의 수납이 가능해지더군요.”
전자기기도 수납할 수 있지만 그건 알려줄 필요가 없지.
“그럼 괴물들도 가져올 수 있겠군요?”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괴물은 가져오고 싶지 않네요. 지구에 괴물이 서식하게 만들기는 꺼림칙하니까요.”
“정말 신기한 스킬입니다. 아마 당신의 특수스킬은 그런 스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겠군요?”
음, 근데 왜 자꾸 일방적으로 꼬치꼬치 캐묻니?
나는 대답 대신 역으로 질문했다.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리트린 씨는 현재에도 시험을 클리어하고 계시나요? 아니면 시험 클리어를 미뤄서 타락한 시험자가 되셨나요?”
나도 가르쳐 줬으니 너도 그 정도 비밀은 가르쳐 달라는 요구였다.
데이나는 웃으며 답했다.
“4회째 클리어를 미루고 있습니다. 아직 얼마 안 되지만 마이너스 카르마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요.”
공식 통계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카르마를 보유했다면, 그만큼 굉장히 많은 시험을 클리어해 왔다는 뜻이었다.
아마 데이나 리트린은 나보다 훨씬 더 시험의 최종 목적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더는 클리어하지 못하고 미루고 있는 것이겠지.
거기서 더 나아가면 모든 시험이 종료될지도 모를 정도로, 그는 최종 목표에 다다른 것이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마법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지.
그의 메인스킬이 마법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맥런 회장이 한국에 왔다는 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겠지?’
상원의원까지 해먹은 맥런 회장이 그 정도 맥락도 못 읽었을 리가 없다. 곧바로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마정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줄 테니, 함께 시험을 공략하자는 우리 뜻을 알고서 한국에 왔을 것이다.
“실프.”
-냐앙?
허공중에 나타난 실프가 나에게 얼굴을 부비부비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주변에 보는 사람이 있나 봐줄래?”
-냥.
실프는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근을 한 바퀴 슥 보고 돌아온 실프는 고개를 저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데이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가장 궁금하셨던 걸 보여드릴까요?”
“꼭 보고 싶습니다.”
데이나도 싱긋 웃었다. 정말 할리우드 영화배우처럼 멋진 웃음이었다.
나는 흘깃 뒤에 있는 차지혜를 바라보았는데, 다행히 그녀는 데이나의 멋진 미소에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리도 데이나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이 나만 바라보며 빨리 뭔가 신기한 걸 보여 달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가공간에서 갈큇발 독수리 셋째를 꺼냈다.
이미 성체인 첫째와 둘째, 여섯째와 일곱째는 지나치게 커져서 내 성장촉진 스킬의 존재를 들킬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아직 평범한 갈큇발 독수리의 평균치 크기인 새끼들 중 셋째를 꺼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새끼지만 데이나가 그런 사실까지는 모를 테니까.
“삐익?”
갑자기 밖에 꺼내진 셋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스터한 동물조련 스킬을 통해 나는 셋째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었다.
의아함과 호기심.
주인인 내가 곁에 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갈큇발 독수리로군요.”
데이나는 놀란 얼굴로 셋째를 바라보았다. 셋째도 데이나를 보며 뭘 보냐는 듯이 빤히 바라본다.
셋째는 곧 이놈 쪼아도 되냐는 듯이 날 바라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셋째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동물 조련 스킬을 익히셨습니까?”
“예, 마스터죠.”
“재미있는 보조스킬을 배우셨군요.”
데이나는 셋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셋째는 불쾌하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려서 피했다.
데이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뻗었던 손을 내렸다.
묘하게도 셋째는 데이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차지혜를 처음 봤을 때도 온순했던 녀석이 말이다.
“우와! 우와아아아!”
흥분에 찬 이 고함 소리는 바로 마리였다.
마리는 셋째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이거 현호 거야?!”
“네.”
“나! 나, 나 만져볼래! 아니, 안아볼래!”
“마음대로 하세요.”
“헤헤헤!”
마리는 냉큼 셋째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데이나를 대할 때와 달리 순순히 마리를 받아들이는 셋째.
이를 보며 나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려야 했다.
‘설마 남자를 싫어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셋째가 수컷이긴 하지.
“김현호 씨? 그건 대체…….”
맥런 회장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임철호 소장이 이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갑자기 거대한 독수리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의아할 만도 했다.
맥런 회장도 셋째를 놀라운 눈으로 보며 뭐라고 영어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데이나 또한 영어로 대답하며 맥런 회장에게 설명을 해주는 눈치였다.
맥런 회장이 다시 뭐라고 말했고, 데이나는 내 쪽을 바라보며 통역했다.
“회장님께서 위험하지 않다면 저것을 만져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하세요.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요.”
맥런 회장은 조심스럽게 마리가 껴안고 있는 셋째에게 다가갔다.
맥런 회장의 오른손이 셋째의 머리를 향했는데, 부리에 쪼여 크게 다칠까봐 두려운지 손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셋째는 그냥 무덤덤하게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내 명령이 있으므로 아무 거부 반응도 하지 않고 허용한 것이었다.
그다지 불쾌감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상하네?’
데이나가 만지려 할 땐 불쾌해하더니, 맥런 회장의 손길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아유가 뭘까?
남자를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틀린 셈이므로, 나는 더더욱 궁금해졌다.
데이나에게 무언가 셋째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이 있다는 뜻인데 말이지.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볼 문제는 아니므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알게 되겠지.
셋째의 머리를 쓰다듬던 맥런 회장이 내게 뭐라고 말했다.
물론 난 못 알아들었고, 옆에서 차지혜가 친절하게 통역해주었다.
“어떤 동물이든 가져올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동물이면 뭐든지. 다만 부피에 한계가 있으니 너무 큰 동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고개를 끄덕인 차지혜는 맥런 회장에게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거기에 임철호 소장도 추가적으로 영어로 뭐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중간중간에 ‘Big rate’라는 단어가 들리는 걸 보니, 빅 래트를 사육하다가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양이었다.
유심히 셋째를 보며 이야기를 들어본 맥런 회장은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데이나가 통역했다.
“회장님께서는 어떤 대가를 바라냐고 물으십니다.”
“제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데이나는 싱긋 웃고는 맥런 회장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맥런 회장은 씩 웃고는 임철호 소장에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임철호 소장이 말했다.
“들어가서 제대로 협의해 보자고 하십니다.”
“그러죠.”
나는 셋째를 가공간에 집어넣었다. 우리는 연구소 건물 안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