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96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96화
갈색산맥은 전운이 감돈 지 오래였다.
갈색산맥의 모든 엘프를 통틀어 최고 연장자이자 최강의 전사인 데릭이 비상령을 선포한 까닭이다.
평상시에는 어머니들의 회의로 이끌어지는 엘프 사회였으나, 데릭이 비상령을 선포한 순간 모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고 전사인 데릭이 비상령을 선포했다면 그건 무조건 엘프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와 어린 엘프들은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통제되었고, 네 마을의 남자들이 전부 모여서 방어선을 구축했다.
강도 높은 정찰 체계를 구축해 갈색산맥 구석구석을 통제 하에 놓았고, 그렇게 갈색산맥은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이보게 데릭, 너무 이르게 비상령을 선포한 게 아닌가? 비상체계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하면 긴장감이 풀어지게 돼.”
연배가 비슷한 전사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데릭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온다. 이제 곧, 조만간이야.”
“인간들 측도 카자드 푼 아만인가 하는 놈이 출발한 건 직접 목격한 건 아니지 않은가.”
“보지 않아도 아는 거겠지.”
“그게 무슨…….”
“믿게. 나도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데릭은 일전에 마주쳤던 심연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심연의 눈동자를 통해 들려왔던 그 목소리!
그 목소리와 그 안에 서린 사악한 기운은 매우 음습하고 불길했다.
데릭은 대번에 자신의 전 생에 걸쳐 최대의 적을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비상령만 내려지고 적은 안 나타나서 젊은 녀석들이 조금 의아해하겠지. 하지만 킴 일행이 도착하면 분위기가 또 바뀔 테니 염려 놓게.”
“뭐, 그렇다면야. 데릭 자네 의견에 따라야지.”
“우리야 지금껏 그랬듯 자네 판단을 믿지.”
데릭은 자신의 오랜 친우인 베테랑 전사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누가 오는군?”
데릭이 앞을 보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후에 한 젊은 엘프가 헐레벌떡 달려와 수풀을 해치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단풍나무 마을의 오르가입니다. 적이 출현했습니다!”
“카자드 푼 아만이냐?”
단풍나무 마을의 젊은 전사 오르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언데드 군세입니다. 아주 많습니다!”
“뭣?”
베테랑 전사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데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은 이건가. 뭐, 온다고 예고해 준 셈이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군. 위치는 어디냐?”
“단풍나무 마을 북서쪽 30킬로미터쯤입니다.”
“알겠다. 그쪽으로 합류하겠다.”
“예!”
오르가가 떠나고서 데릭이 친우들에게 말했다.
“양동일지 모르니 만에 하나를 대비해 최소한의 인원만 마을 방어에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가지.”
“그러겠네.”
베테랑 전사들이 전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각자 정령을 불러 퍼뜨렸다.
곧 엘프들이 데릭에게 집결하기 시작했다.
십여 명씩 모이고 또 모여서 금세 수백여 명의 인원이 되었다.
그동안 갈색산맥이 번성을 이루어서 전사의 숫자가 많아진 엘프들이었다.
데릭은 쌍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가자!”
“예!”
데릭이 앞장서서 달렸다.
그 뒤를 엘프 전사들이 뒤따랐다.
매우 빠른 속도였다.
***
“이것을 보십시오.”
갈큇발 독수리를 타고 날아가는 와중에도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던 데이나가 문득 내게 말했다.
“뭔데요? 줘보세요.”
데이나가 노트북을 내게 던졌고, 실프가 그것을 날렵하게 받아 내게 건네주었다.
노트북 모니터의 영상에 개미 떼처럼 징그럽게 몰려가는 언데드 군대가 보였다.
그런데 그 언데드 군대는 일전에 보았던 저급한 좀비들과 달랐다.
골격밖에 남지 않은 해골 병사들.
그러나 갑옷과 투구와 장창으로 철저하게 무장을 한 정예 병력이었다.
보폭도 일정하고 행렬이 칼같이 일치하는 절도 있는 진군.
“스켈레톤입니다. 매우 오래전에 죽어 해골밖에 남지 않은 이를 되살려내는 네크로맨시죠.”
“그게 가능한가요?”
“신경도, 두뇌도, 활용 가능한 장기 부위가 아무것도 없으니 순전히 조종하는 네크로맨서가 흑마력으로 간단한 행동강령을 입력시켜야 합니다. 저렇게 질서 정연하게 행군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요. 이족보행 로봇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저렇게 많다는 건…….”
“그게 가능한 사람은 아마 세상에 한 사람뿐이지요.”
나는 침음을 삼켰다.
“저 언데드 군세는 엘프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카자드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하죠.”
갈색산맥에 이르러서 느티나무 마을에 도착했다.
바로 연장자 어머니가 있는 갈색산맥 엘프들의 중심 마을이었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생명의 나무가 싱그러운 기운을 풍기며 우리를 맞이했다.
“킴!”
내 교신을 받고 마중을 나와 있던 어머니들이 우리를 반겼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렇다마다.”
“다 킴 네 덕이야.”
“이런 일만 안 생겼으면 더 잘 지냈겠지.”
어머니들은 너도 나도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가공간에서 시험자들을 잔뜩 꺼내놓기 시작했다.
“엇?”
“여긴 갈색산맥인가?”
“벌써?”
“방금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정말 신기하네.”
가공간에서 나온 시험자들이 굉장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자마자 갈색산맥에 도착한 셈이니 말이다.
엘프들 또한 허공에서 쑥쑥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어린 엘프들은 눈을 반짝거리는 것이, 여자들의 제지만 아니었으면 이쪽으로 달려와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볼 기세였다.
“도착했구려.”
오딘이 나에게 다가왔다.
“네, 지금 카자드가 부리는 언데드 군단과 엘프 전사들이 싸우고 있어요.”
“카자드는 아직 안 나타났소?”
“예, 그래서 카자드가 출현할 때까지는 우리는 이곳에 대기하는 걸로 정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좋겠소. 언데드들과 뒤엉켜 싸우다가 공격을 받으면 형세가 불리해지니 말이오.”
그때 연장자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내게 물었다.
“킴, 우리 그이는 괜찮을까? 한번 알아봐 주지 않을래?”
그녀는 남편인 데릭이 언데드 군단과 싸워서 무사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늘 남편의 강함을 굳게 믿고 있던 연장자 어머니의 평소 태도를 생각하면 이례적이었다.
“그렇게 할게요. 리트린 씨?”
“예, 지금 형세를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데이나는 노트북을 통해 정찰위성이 밝혀주는 갈색산맥의 전투 현황을 보여주었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득시글거리는 언데드 군단들 진군이 어딘가에서 멈췄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폭발과 폭풍과 해일이 난무했다. 엘프 전사들이 부리는 정령의 위력이었다.
“제 착각인가요? 생각보다 언데드들이 없어지는 속도가 더딘 것 같은데.”
내가 의문을 표했다.
일전의 좀비 떼를 일격에 몰살시켰던 데릭의 힘을 떠올리면 지금은 너무 더뎠다.
“다른 자도 아닌 카자드가 부리는 언데드 군단입니다. 지금껏 보았던 언데드들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그, 그럼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거니?”
연장자 어머니가 물었다.
다른 어머니들도 웅성거렸다.
나는 고민 끝에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 엘프 전사들이 밀려 버리면 더 큰일인데요. 우리도 참전을 해야겠어요.”
“으음…… 아무래도 그래야겠군. 엘프들의 방어선이 와해되면 언데드 놈들이 각 마을을 덮칠 거요. 그땐 네 개의 마을을 모두 지키기 위해 우리도 분산되어야 하고…….”
오딘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언데드 군단과의 싸움에 참전하기로 했다.
나는 일단 가공간에서 갈큇발 독수리들을 모조리 꺼냈다.
총 12마리.
갈퀴바람과 발톱강화 두 가지 특수스킬 레벨을 마스터까지 올린 녀석들이었다.
하늘을 날며 폭격기처럼 칼바람을 무한대로 날려 공격할 수 있으니,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는 상당히 도움이 될 터였다.
역시 여기다가 카르마를 투자하길 잘했다.
일단 독수리들부터 먼저 날려 보내 엘프들을 돕게 했고, 우리도 다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함께 이동하면서 데이나가 내게 말했다.
“미리 양해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카자드가 나타나지 전까지는 되도록 힘을 아껴야 합니다.”
“하긴, 카자드를 상대할 만한 마법사는 데이나밖에 없죠.”
“단지 수준 문제만이 아니고, 제 특수스킬에 대해서는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네, 듀얼서클이라고 하셨죠? 한 몸에 두 가지 에너지를 다룰 수 있다는…….”
“예, 그중 저는 흑마력을 송두리째 포기하고 대신 영혼력을 얻었습니다. 그 영혼력과 마나를 융합하니 흑마력과 상극이 되는 효과가 발휘되더군요.”
데이나의 설명에 따르면, 죽은 카자드를 보관하고 있던 석관(石棺)은 엄청난 방어 장치가 겹겹이 새겨져 있었는데, 데이나의 그 듀얼서클에 격렬히 반응했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서 데이나는 자신의 듀얼서클이 카자드를 쓰러뜨릴 유일한 무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카자드가 나타날 때까지는 힘을 쓰지 마세요. 제가 경호를 해드리죠.”
“감사합니다.”
전투 현장에 도착했다.
콰르르릉!
콰아앙! 퍼엉!
정령들이 일으키는 요란한 굉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엘프 전사들은 정령들과 함께 밀려드는 언데드 군단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찰위성의 사진으로 보았지만, 실제로 보니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놈들이었다.
“가자! 놈들을 해치우는 것보다는 방어선이 밀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오딘이 소리쳐 지시했다.
시험자들이 일제히 엘프들을 도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삐이익―!”
“삐이이익!!”
12마리의 갈큇발 독수리가 선회하면서 공격을 퍼부었다.
퍼퍼퍼퍼펑!
콰지직! 파직―!
발톱을 할퀼 때마다 날카로운 갈퀴바람이 쏘아져 나가 언데드들을 한 마리씩 격퇴했다.
그렇게 12마리가 일제히 갈퀴바람을 쏘며 언데드 군단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건 현대전의 폭격기와 같은 역할이라, 언데드 군단의 대열을 흐트러뜨려 혼란을 주었다.
마스터까지 레벨을 올린 까닭에 독수리들은 무제한으로 갈퀴바람을 퍼부었다.
나는 데이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에 서서 쌍권총을 양손에 들었다.
무차별로 쌍권총을 난사하며 가까이 접근하는 스켈레톤들을 파괴했다.
총알이 발사될 때마다 두개골이 박살 나며 스켈레톤들이 쓰러졌다. 탄약보정 스킬 덕에 위력이 강해진 총알은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두 마리씩 꿰뚫었다.
몰려오는 스켈레톤들의 숫자는 내가 쌍권총을 쏘는 속도를 압도했다.
차지혜까지 쌍곡도로 마구 베어 넘기며 나를 보조해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력소모는 최대한 아꼈지만 단순하게 반복되는 전투가 정신력을 조금씩 갉아먹을 즈음이었다.
우리의 참전 덕에 흔들리던 엘프 전사들의 방어선은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그때,
“북서쪽으로 약 1.5킬로미터!”
가만히 있던 데이나가 뜬금없이 소리쳤다.
“예?”
“전 흑마법을 다뤄봤던 터라 언데드 군단을 조종하는 흑마력의 흐름을 역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아……!”
“흑마력의 흐름의 중심은 북서쪽 1.5킬로미터 부근에 있었습니다.”
데이나는 보기 드물게 식은땀을 흘렸다.
“제가 흑마력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 추적했다는 사실을 그자도 눈치챘습니다. 역시 괴물입니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으로 옵니다.”
카자드 푼 아만이 오고 있었다.
이제 최종 결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