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9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95화
‘분명히 현실에서 죽은 시체를 내가 확인했는데?’
리창위는 헤이싱과 여자 시험자를 보며 의문을 느꼈다.
아레나에서 죽어 시체가 없어져도 현실 세계에서는 시험자의 시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리창위는 헤이싱이 죽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해적군도에서 헤이싱 계파를 몰살시켰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도 그들의 시체까지 확인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헤이싱도 여자 시험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적개심만 깃든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오랜만이군?”
리창위가 말을 건넸다.
헤이싱은 대꾸가 없었다. 대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투태세를 갖춘다.
여자 시험자도 이것저것 보조 마법을 헤이싱에게 걸어주며 싸울 준비를 마친다.
그제야 리창위는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대사제 한 놈이 가짜 영혼의 구슬로 살렸구나.”
해적군도에서 김현호에게 살해된 대사제가 있다는 걸 기억해 낸 리창위였다.
그 대사제가 저 둘을 부활시킨 것이리라.
‘영혼의 구슬이 상당량이 들어갔나. 자아는 구축되지 못했지만 이성은 남아 있군.’
헤이싱과 여자 시험자가 살아생전에 가장 적대한 사람은 김현호도 누구도 아닌 바로 리창위.
그런데도 진즉에 공격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것은 절호의 기회를 계속 엿볼 정도의 판단력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리창위가 김현호에게 정신 팔린 틈을 타서 흑마법사들부터 처치한 것 또한 절묘한 판단력이었다.
“하지만 안 되셨군. 네놈의 어떤 공격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리창위는 냉소를 지었다.
그가 입고 있는 흑색 갑주의 이름은 용린갑.
그 자체로 풍부한 마나가 응축되어 있다는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갑주였다.
헤이싱 계파를 몰살시키고서 엄청난 카르마를 손에 넣은 리창위는 이 용린갑을 카르마 보상으로 구매했다.
권법을 토대로 하는 헤이싱의 공격은 모조리 용린갑에 깃든 방어 마법에 막힌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발목이 잡혀서 짜증은 나지만, 차라리 지금 마주쳐서 다행이군. 하마터면 후환을 남겨놓을 뻔했으니 말이야.’
결정적인 순간에 습격을 받았더라면 더 곤란할 뻔했다.
리창위는 눈앞의 두 사람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라만 시로 가기로 했다.
파앗!
마침내 헤이싱이 덤벼들었다.
리창위도 거침없이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두 사람의 신형이 그 중간에서 만났다. 헤이싱이 오러가 응축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헤이싱은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두르는 것을 한 템포 늦췄다.
일단 용린갑의 방어 마법으로 헤이싱의 공격을 튕겨낸 뒤, 그 빈틈을 노려 일격을 선사할 의도였다.
쩌어엉!
헤이싱의 오러 피스트가 용린갑이 발동한 방어 마법을 깨부쉈다. 오러 마스터의 일격을 막을 정도의 방어력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방어 마법이 한 차례 공격을 받아내면서 벌어준 약간의 시간차!
그것은 오러 마스터들의 싸움에서는 매우 긴 시간이었다.
여유 있게 헤이싱의 일권(一拳)을 피해낸 리창위는 마침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거칠게 가르고 지나갔다.
공격을 펼친 직후라 방어할 틈이 없었지만, 헤이싱은 디딤 발로 오러를 발출해 단숨에 뛰어올라 피했다.
공중에서 반 바퀴 회전하며, 헤이싱은 오러를 오른발에 실어 리창위를 후려쳤다.
쩌어어엉!!
이번에도 용린갑의 방어 마법이 이를 막았다.
그 틈에 리창위는 여유 있게 뒤로 한 보폭 물러났다.
“놈, 소용없다.”
리창위는 냉소를 지으며 검으로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간격이 벌어짐으로서 무기를 가진 리창위에게 유리한 거리가 되었다.
촤촤촤촤촤악!
속사포 같은 찌르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펼쳐졌다.
헤이싱도 초고속으로 회피하면서 신형이 여러 개로 보일 지경이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검풍이 공기를 찢으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용린갑의 성능에 힘입어 리창위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그 또한 타이밍 좋게 마법으로 보조하는 여자 시험자 때문에 번번이 승부를 결정지을 기회를 놓치곤 했다.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져서 리창위가 불쾌감을 느낄 때였다.
번자권 특유의 빠른 펀치로 일관하던 헤이싱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속사포 같은 주먹질로 위협해 리창위의 시선을 잡아 끌더니, 돌연 빠른 스피드로 달려와 밀착될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것이었다.
놀란 리창위는 급히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때, 헤이싱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 오른손은 방어 마법에 막히지 않고 리창위의 용린갑 어깨 쪽 표면에 접촉됐다.
방어 마법이 발동되지 않자 놀란 리창위.
그리고…….
뻐어어억!
일순간 강한 힘이 오른쪽 어깨에 전달되었다.
“끄헉!”
리창위의 신형이 뒤로 붕 떴다.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의 와중에도 간신히 균형 감각을 발휘해 착지했지만, 리창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침투경?”
충격을 내부로 전달하는 무술의 요령이었다.
용린갑의 방어 마법이 발동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용린갑 표면에 접촉할 때까지는 위력이 실리지 않은, 해가 될 만한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접촉 순간 침투경을 발휘해 리창위에게 충격을 입혔다.
이미 살아 있는 않은 남자.
비록 자아를 잃었지만 생전의 무술 실력은 사라지지 않은 헤이싱이었다.
“이놈이!”
리창위의 얼굴이 분노로 차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이싱은 잠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묵직한 손맛.
그리고 일순간 고통에 차올랐던 리창위의 얼굴 표정.
헤이싱의 눈빛이 독사처럼 스산해졌다. 놈을 죽일 방법을 알아냈다는 표정이었다.
***
“오딘 씨, 리트린 씨로부터 얘기는 들었나요?”
나는 라만시로 날아가면서 교신기로 오딘에게 연락했다.
-경황이 없어 못 들었소. 타락한 시험자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라면 이미 우리도 알고 있소만?
“그게 아니에요. 카자드가 움직였어요!”
-뭐요?!
오딘의 목소리에 경악이 어렸다.
“타락한 시험자들과 싸우지 말고 바로 멤버들 데리고 라만 시에서 빠져나오세요. 놈들은 작전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시험자들에게 맡기고요!”
-알겠소!
연락을 마치고 나는 첫째를 조종해 비행 속도를 높였다.
혼돈에 휩싸인 라만 시의 정경이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실프, 작전 멤버들 중에 싸우고 있는 시험자가 있나 찾아봐!”
-냐앙!
명령을 받은 실프가 라만시로 하강했다.
지금쯤 오딘의 지시에 따라 작전에 참석하는 31인은 라만 시에서 철수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시험자가 있다면, 타락한 시험자들에게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이 싸우고 있는 경우뿐이었다.
혹은 타락한 시험자만큼 강한 아만 제국군 소속의 무인이라든지 말이다.
-냥!
실프가 돌아와 앙칼지게 소리쳤다.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대물 저격소총 닐슨 R3를 소환해 조준했다.
실프가 꼬리로 총구를 움직여 정밀한 조준을 해주었다.
저격 스코프를 통해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은 덩치가 큰 동남아인. 내가 아는 멤버의 얼굴이 아닌 걸로 보아, 동남아 쪽의 타락한 시험자로 보였다.
그 상대는 공교롭게도 마리 요한나였다.
동남아인은 옆구리에 깊은 자상을 입었는지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마도 암습에 실패해 완전히 숨통을 끊지 못한 건지, 마리는 이리 저리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스코프의 십자선이 동남아인의 머리에 고정되었다.
싸움 중이라 격렬히 움직이는 동남아인이었지만, 그 움직임에 따라 실프도 조준 방향을 수정하고 있었다.
타아앙!
우렁찬 총성과 함께 동남아인의 머리가 폭발해 버렸다.
머리를 잃고도 모자라 사지가 뜯겨 나간 몸뚱이가 땅바닥에 힘없이 뒹굴었다.
이에 깜짝 놀란 마리였지만, 이내 내 도움인 걸 알아챘는지 하늘을 향해 키스를 보냈다.
피식 웃은 나는 계속해서 싸우는 작전 멤버들을 도와 타락한 시험자와 강력한 아만 제국의 기사를 다섯이나 처치했다.
내 저격에 의하여 피해를 입자 타락한 시험자들 측의 움직임이 멎었다. 내 존재를 알아챈 그들은 으슥한 곳에 숨기 바빴다. 사실 그러라고 일부러 총성을 차단하지 않은 것이다.
잠시 후 오딘의 교신을 받았다.
-모두 빠져나왔소. 라만시의 동쪽 1킬로미터 지점에서 봅시다!
“네, 빠진 사람은 없나요?”
-피해는 없소. 31명 모두 무사하오.
다행이다.
작전은 차질이 없군.
타락한 시험자 놈들도 내 저격 탓에 움직임이 위축됐으니, 이 틈을 타서 비밀리 갈색 산맥으로 이동하면 될 듯했다.
라만 시에서 동쪽으로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작전 멤버들이 보였다.
오딘, 마리, 그리고 정찰위성을 컨트롤하던 데이나까지 포함된 총 31명이었다.
그들도 하늘에서 점차 하강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꽉 잡아요!”
지금부터는 곡예비행을 할 거거든!
“염려 마십시오.”
차지혜는 양팔로 내 허리를 꽉 두른 채 바짝 밀착했다.
나는 그대로 멤버들을 향해 하강했다.
오딘이 먼저 움직였다.
나를 향해 훌쩍 도약한 것이다. 오러 마스터인 그의 도약력은 단숨에 우리가 있는 상공까지 이르기에 충분했다.
그대로 날아온 오딘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오딘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짝, 하고 손이 마주친 순간 오딘이 사라져버렸다.
내 가공간 안으로 들어간 것.
이윽고 다른 시험자들도 저마다 한 명씩 점프해서 나와 손을 마주쳤다. 그때마다 시험자들이 하나씩 가공간에 수납되었다.
그런 도약력이 없는 마법사형 시험자들은 비행 마법 등으로 날아서 같은 방식으로 가공간으로 들어갔다.
“안녕, 현호!”
그 와중에 마리는 손을 마주치는 대신 내 목을 끌어안는 장난기를 보였다.
마지막은 데이나.
비행 마법으로 날아온 데이나는 내가 손을 내밀자 고개를 저었다.
“독수리를 한 마리 더 내주십시오. 함께 비행해서 가겠습니다.”
“왜요?”
“카자드가 먼저 우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카자드의 기습 공격에 대응할 만한 수준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좋아요.”
나는 가공간에서 둘째를 꺼냈다.
둘째는 내 지시에 따라 데이나를 등에 태웠다.
예전에는 내 갈큇발 독수리들이 데이나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거부감을 표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거부감의 원인은 바로 흑마력이었던 듯했다.
이젠 데이나에게 흑마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으니 더 이상 꺼리지 않는 것이었다.
“꽤나 강행군이 될 거예요.”
갈색산맥까지 쉬지 않고 날아야 하므로 내가 경고했다.
“염려 마십시오.”
데이나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하긴, 누굴 걱정하겠는가. 세계 랭킹 1위의 궁극의 시험자인데.
“우리가 빠졌는데 이쪽의 전쟁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만 제국군의 모든 병력과 군수물자의 동향과 배치 상태가 요약된 정보를 아렌드 왕국 측에 넘겼습니다. 그걸 갖고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의 운명이겠지요.”
“그러네요. 자, 그럼 가죠!”
우리는 그 길로 곧장 갈색산맥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라만시의 정경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