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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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90화
일주일 남짓에 불과했다.
그 시간 동안 아만 제국군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태가 발생했다.
대륙 정복을 시작하기 위해 아렌드 왕국 방면을 비롯해 각 국경지대에 배치된 군단들이 보급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일주일도 안 된 시간 동안 무려 13차례의 습격을 받았다.
대륙 정복을 위해 어마어마한 대병력이 동원된 만큼 수송되던 군수물자도 엄청난 수량이었는데, 습격을 받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타지(他地)도 아닌 아만 제국 내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아만 제국 왕궁의 대전회의.
전쟁을 계획하고 주도한 술탄 사록은 옥좌 팔걸이를 거칠게 내려치며 역정을 냈다.
대소신료들은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수그릴 뿐이었다. 그들이라고 어찌 된 영문인지, 어떤 대책을 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째서 놈들이 아군의 보급로를 이토록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냐!”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시험자들의 습격에 대비해 보급로를 매번 수송 때마다 변경하곤 했다.
그럼에도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절묘하게 습격을 받았다.
더 기가 찬 것은 생존해서 패퇴한 수송부대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하나같이 적은 보지도 못했고, 하늘에서 불꽃의 비가 내렸다는 것이었다.
동일한 공격 패턴.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뜻이었다.
“설마, 그 배신자 녀석인가?”
짧은 시간 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귀신 같이 움직이며 습격한 인물.
술탄 사록은 자연스럽게 부활의 의식을 훼방 놓고 대사제 아프리트를 살해했으며, 자신까지 농락한 데이나 리트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대사제와 리창위의 공격을 뚫고 유유히 달아나버린 그 엄청난 실력이라면 이런 일도 가능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한 추측에 반대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 녀석은 아니다.”
“허억!”
술탄 사록은 화들짝 놀랐다.
대소신료들도 갑자기 대전 한복판에 등장한 노인의 모습에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동요는 곧 멎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저 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장대한 체격.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마법진이 옷 밖으로 드러난 팔뚝과 목에 한가득했다.
바로 3대 술탄 카자드 푼 아만이었다.
아직 널리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술탄 사록을 비롯한 아만 제국의 핵심 인물들에게는 그의 부활이 알려져 있었다.
“서, 선대 폐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요?”
술탄 사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만 제국의 절대 권력자인 그도 그의 앞에서는 작아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카자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법적 장치로 이루어진 통치 시스템을 조종해 그를 술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토록 철저하고 무서운 안배를 수백 년 전에 미리 해놓은 괴물이었다.
“마법이라면 나라 전체에 깔린 내 감시망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만 제국 곳곳에 뻗어 있는 통치 시스템.
그것을 지배하는 카자드는 아예 통치 시스템 자체를 자신의 오감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었다.
“내가 감지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정령술이지. 정령술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기 때문에 내 이목을 피할 수 있지.”
“정령술이라면, 김현호라는 그 시험자 녀석입니까?”
“그럴 거다. 아니면 갈색산맥의 그 나이든 엘프 전사이거나.”
카자드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상대는 정규군으로 상대하기 어려우니, 우리도 그에 걸맞은 전력으로 응전해야지.”
“하지만 선조 폐하께서도 놈의 위치를 알기 어렵다고 하시니 무슨 수로 그 간악한 놈을 처치해야 합니까?”
“아렌드 왕국 방면으로 군량과 물자를 수송해라. 그동안 차질이 빚어왔던 만큼 대량으로 수송한다. 놈이 이를 노리고 접근하면 그때 사냥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송부대에 재래 결사대 쪽 전력을 잠복시키겠습니다.”
“전부.”
“……예?”
놀란 술탄 사록에게 카자드가 말했다.
“전부 보내란 말이다. 흑마법사들과 우리 편 시험자들까지 전부 전선에 투입해라. 저쪽에서 시험자들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할 의지를 보인 이상, 우리도 가만히 전력을 썩힐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
“선조 폐하, 하오나 놈들이 선조 폐하를 노리고 침입해 올지도 모릅니다.”
“크하하―!!”
카자드가 광소를 터뜨렸다.
“나를 잡으러 이리로 와 준다면야 그것처럼 고마울 데가 있나. 놈들을 전부 죽여서 영혼을 잘근잘근 씹어 삼켜주면 그만 아니냐!”
“그, 그렇긴 합니다만…….”
술탄 사록은 대사제들을 단숨에 몰살시켰던 카자드의 전율적인 강함을 떠올리고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누가 감히 저 압도적인 괴물에게 대적할 수 있을까?
대전에 모인 대소신료들의 얼굴색도 공포로 창백하게 물들어 있었다.
현 술탄과 수백 년 전에 죽었다가 부활한 전 술탄의 대화.
대륙 최강국의 대전회의에서 버젓이 오가기에는 너무나 광기에 차 있었다.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이제 돌아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심연의 구슬을 통해 데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요?”
-이번에 출발한 수송부대에 흑마법사들과 리창위 일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 병사로 위장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리창위를 비롯한 몇몇 타락한 시험자의 얼굴은 안면 인식 프로그램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역시 정찰위성이 있으니 이렇게 편하구나.
“절 잡으려고 미끼를 던진 거네요.”
하마터면 함정에 빠질 뻔했으니 다행이었다.
-겸사겸사 그동안 보급에 차질을 빚었던 만큼 많은 물자를 수송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흑마법사들과 리창위 일당이 전선에 투입될 듯합니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네요.”
-예, 카자드가 갈색산맥을 향해 움직여야 비로소 우리의 계획이 완성되는 것이지만요.
“어쨌든 놈들을 끌어냈으니 이제 돌아갈게요.”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그 전에 놈들한테 인사나 하고 갈게요.”
-다시 당부드리겠습니다만, 가까이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염려 마세요. 가까이 접근할 일은 없으니까요. 수송부대 위치를 불러주세요.”
-거기서 북서쪽으로 계속 올라가시면 됩니다.
데이나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첫째를 조종해 북서쪽으로 비행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위험한데 굳이 적들이 판 함정에 찾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함께 타고 있던 차지혜가 물었다.
물론 나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려서 스릴을 즐기는 취미 같은 건 없었다.
“먼 거리에서 저격만 몇 번 해줄 거예요. 그럼 오는 내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저격을 경계하느라 피곤할 거 아녜요.”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작전입니까. 확실히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리창위 같은 월척을 낚으면 더 좋고요.”
북서쪽으로 계속 비행하니, 어느덧 데이나가 말했다.
-가까워졌습니다. 지금부터는 조심하십시오.
“대략 거리가 어느 정도인가요?”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알겠어요. 무장!”
파앗!
대물 저격소총 닐슨 R3가 소환되었다.
구경 20㎜의 강력한 위력에 탄환보정 스킬과 정령술이 합쳐지면 5,6킬로미터 거리에서도 능히 시험자를 처치할 수 있는 살상력을 낼 수 있었다.
저격 스코프로 보니 길게 늘어진 수송부대의 행렬이 보였다.
확실히 데이나의 말처럼 어마어마한 물량을 운반하고 있었다.
“실프, 리창위를 향해 겨눠 줄래?”
-냐양.
실프는 살랑거리는 꼬리로 총열을 휘감아 방향을 조정해 주었다.
스코프를 통해 리창위의 모습이 보였다.
먼 거리라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리창위가 확실했다.
일반 병사로 위장한 리창위는 수송부대의 행렬 틈바구니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좀 더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려볼까.’
나는 먼 거리에서 그들을 계속 지켜보기만 할 뿐,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송부대의 행렬이 정지했다.
병사들은 몇몇만 주변을 경계하고 나머지는 휴식을 취했다.
내가 예의주시하던 리창위 또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눈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좋아!’
나는 검지를 방아쇠에 가져다 댔다.
“실프, 카사, 준비해.”
-냐앙.
-멍.
실프와 함께 새로 소환된 카사도 내 어깨에 앉아 저격을 준비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실프가 소리를 차단했기 때문에 총성은 없었다.
쉬이익― 파악!
맹렬하게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간 20㎜ 철갑소이탄.
거의 박격포 수준의 위력을 가진 철갑소이탄이 리창위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스코프를 통해 총알이 무언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부딪친 것이 보였다.
‘방어 마법?’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리창위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경계했다.
그와 함께 있던 다른 타락한 시험자들도 총알이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 적중된 소리에 너도 나도 전투태세를 갖췄다.
‘뭐지?’
나는 리창위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러 보호막으로 내 저격을 막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언제 어디서 저격해 올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평소에 24시간 내내 오러 보호막을 펼쳐놓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놀란 리창위의 얼굴을 보면 본인 스스로도 내 저격을 알고 막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차지혜가 물었다.
“실패했어요. 방어 마법 같은 게 펼쳐져 있더라고요.”
“미리 알고 방어 마법을 펼친 건 아닐 겁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더 이상해요. 대체 무슨 수를 쓴 걸까요?”
-아이템일 겁니다.
대답은 데이나가 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심연의 구슬에서 데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어 마법이 새겨진 마법갑옷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법갑옷?”
-예, 하지만 보통은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직접 시동어를 외쳐야 방어 마법이 펼쳐지는 구조입니다. 공격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방어 마법이 발동되는 마법갑옷은 없습니다.
“그럼 저건 뭐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송부대에 비상이 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마법갑옷이 아닙니다. 리창위가 지난번에 대량으로 얻은 카르마로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그 말에 비로소 나는 대충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전에 리창위는 중국 시험단을 장악하면서 헤이싱 계열을 몰살시켰다.
타락한 시험들을 대량으로 죽임으로서 자신의 마이너스 카르마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카르마를 획득했다.
그 카르마로 바로 저 방어 마법이 새겨진 어떤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것이다.
‘나와 싸울 때를 대비한 모양이군.’
스킬이 아닌 방어를 위한 아이템을 선택하다니. 역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저격이 무섭긴 했던 모양이었다.
“녀석이 골치 아픈 아이템을 손에 넣었네요.”
-그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소득입니다. 이제 무리하지 말고 돌아오십시오.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나는 첫째를 조종해 재빨리 방향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5킬로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저격하고 바로 도망쳤기 때문에 놈들은 날 쫓아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