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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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8화
제갈문
건성으로 했다.
휘적휘적 걸어가 무성학에게 건네받은 검을 그냥 손 가는 대로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파는 무성학의 초식이 끝낸 순간과 똑같았다.
경악, 그리고 경의에 가득 찬 시선.
무성학이 애써 그 감정들을 감추며 말했다.
“제, 제법이구나. 좋은 자질을 가졌어. 약속대로 은자 5냥을 주마.”
무신은 무성학에게 은자 5냥을 받아 단상에서 내려왔다.
수백의 관생이 숙덕거렸다.
개중에는 우러러보는 시선도 있었으니 과연 무신이 지금 얼마나 놀랄 일을 한 것인지 알 만했다.
만약, 성의껏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대미문의 입문자가 나타났다며 학관이 한바탕 뒤집어졌을 것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저게 재능이구나…….”
건성으로 했음에도 급기야 재능이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으니까.
앞서 무성학이 언급한 자질이란 말도 마찬가지였다.
무신은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재능 있다는 소리를 다 들어보는군.’
재능.
사실 그 뒤에 22만 년의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좌측에 있던 관생 하나가 손을 든 건 바로 그때였다.
“저도 해보겠습니다!”
칼칼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신장은 6척 정도로 무신과 비슷했는데, 용모나 복장에 귀품이 넘쳐흘렀다.
성큼성큼 단상으로 올라가는 남자를 보며 무신이 흥미롭단 눈을 했다.
허장호.
파천에서 알아주는 명문, 허씨 집안의 장남이었다. 고약한 성격을 가졌으나 실력 하나는 출중했다. 여타 관생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파천검을 따냈었으니까.
무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넘어졌지, 저놈.’
무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초식을 밟아나가던 허장호가 삐끗하더니 그대로 코를 처박았다.
회귀 전에는 누구도 웃지 않았다. 나서서 시도라도 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무신이 보여준 모습과 대비되어 순간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큭큭 웃음소리가 들렸다.
허장호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무성학은 웬일인지 웃지 않았는데, 슬쩍슬쩍 곁눈질로 무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법이란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더니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입문자가 기초 검술의 초식을 흉내 냈다는 게.
“지금부터 조 배정이 있겠다!”
겨우 정신을 차린 무성학의 지시에 따라 무신은 세 번째 조로 이동했다. 회귀 전과 같았다.
그리고 ‘두 남자’ 역시 함께였다.
한 명은 허장호.
다른 한 명은… 무신의 시선이 다시 그 남자에게 향했다.
여전히 뻘뻘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왜소한 체격의 바로 그 남자에게.
‘어찌 보면 배춘삼보다 더 중요한 인연이 되겠군.’
무신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허장호를 지나 그 남자의 옆에 다가섰다.
과연,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니 허씨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될 ‘진짜 명문’의 냄새가 났다.
제갈문.
남자는 오대세가라 불리우는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령의 사남이었다.
지금은 단지 그 정체를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검술을 하고 싶었으나 세가의 반대로 열여덟까지 억지로 학문만 떼다가… 결국 야밤에 몰래 도망쳐 파천학관에 입관했다… 였지.’
우습게도 그러한 제갈문의 선택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었다. 검술을 하고 싶었단 일념과 다르게 재능은 형편없었으며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선량한 성격도 문제였었다.
특히 후자의 영향이 컸었다.
‘선량하게 행동하다간 어느 순간 칼 맞는 거야. 그게 강호의 법칙이니까.’
무신은 마치 제 일처럼 제갈문에게 동감했다.
눈곱만큼도 없던 재능에 살인은커녕 피조차 제대로 못 보던 비실한 성격.
그 역시 그랬었으니까.
‘여기서 이 녀석을 도와준다.’
동병상련의 이유가 아니었다.
동정?
그따위 달갑지도 않은 감정이야 아무렇지 않게 쳐낼 수 있었다.
제갈세가.
그 덕을 보기 위해서였다.
야반도주했다고는 해도 직계 혈통의 자식이니 옆구리에 껴놓으면 언제든 써먹을 거리가 있었다.
오대세가의 입지가 큰 강호에선 특히 더더욱.
물론 하루 종일 붙잡고 있겠다거나 비기를 전수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인연.
그것이 만들어질 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무신이 제갈문의 등을 두드렸다.
“반갑습니다. 최무신이라 합니다.”
***
허장호.
이번 파천학관 교육에서 교관들의 관심은 단연 그를 향해 있었다. 개차반이란 말은 있어도 실력 하나는 그만큼 출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입관식과 함께 급변했다.
무성학을 따라 기초 검술 13개 초식을 흉내 낸 자.
무성학이 혀를 내둘렀다.
‘흉내 내는 수준에 그쳤다고 해도 어떻게 입문자 따위가… 어디 숨어서 기초 검술만 연습했나.’
정말, 어디 숨어서 기초 검술만 수백 년 연습했음을 그가 알 리 없었다.
***
“검술의 가장 기본은 찌르기와 베기에 있다.”
세 번째 조 교관으로 배치된 무성학을 보며, 무신은 교육용으로 지급된 목검을 바짝 꼬나 쥐었다. 진짜 입문자들처럼 무인으로서의 걸음마를 떼겠다는 게 아니었다.
감각.
망령일 때의 그것을 지금 이 육신에 익히는 것이다.
“이것이 찌르기다.”
무성학의 동작은 교관답게 정교했다. 딱히 흠잡을 데도 없었고 자세 자체가 유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법’일 뿐이었다.
찌르기만 1억 번을 넘게 한 무신의 눈에는.
“먼저 이 동작을 끝낸 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겨우 찌르기 하나에 뭐 이리 거창할 것 있겠느냐마는, 이곳은 입문자들의 시작점.
작은 동작도 찬찬히 진도를 빼야 한다.
실제로 벌써부터 허덕이는 관생이 부지기수였다.
개중에는 제갈문도 있었다.
일찍이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던 무신이 스리슬쩍 입을 열었다.
“동작이 깔끔하시군요.”
“정말입니까?”
“제가 평가할 그릇은 못 되겠지만 그리 보입니다.”
쩔쩔맸다.
찌르기가 아니라 그냥 검만 쭉 뻗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제갈문의 실력이었다.
그런데 무신은 칭찬만 늘어놓고 있었다.
‘이게 이 녀석을 위한 길이다.’
칭찬은 외려 독이 되어 자만으로 번질 수도 있음을 무신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제갈문은 달랐었다.
칭찬 때문에 무려 5년이나 늦게 검술에 눈을 떴었다.
아무리 못해도 잘했다 잘했다 말해주던 스승님 덕에 이런 자리에 오를 수 있었소.
제갈문이 무림맹에 들어가며 남긴 인사말이었다.
시장판에서도 나올 만큼 아주 유명한 일담.
무신은 그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사실은 재능이 없었다기보다 끌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잘해보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는 무신에게, 제갈문이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은자 5냥을 받은 우등생이라면 평가할 그릇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며 꾸벅 목례를 해 보였다.
목례.
제갈세가 사람에 있어 그 행동의 의미는 컸다.
단순히 좋게 본다는 것보다…….
‘어쩌면 내가 저 녀석의 스승이 될지도 모르겠군.’
무신은 피식 웃으며 목검을 들었다.
손아귀에 잡히는 느낌.
망령의 숲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휘두르고 나니 아주 딴판이었다. 느려도 너무 느렸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좀 나아졌어.’
사흘을 넘어갈 즈음에야 무신의 입가에 비로소 만족스럽단 미소가 떠올랐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측정 불가’라는 등급에 어울릴 정도는 되었다.
제갈문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는데, 회귀 전과 달리 눈빛만큼은 매서웠다. 나름대로 기반이 쌓여간단 방증이었다.
같은 날 오후.
잠깐 무성학이 빠진 사이 허장호가 다가왔다.
“입관식 날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너보다 더 완벽하게 초식을 펼쳤을 텐데 말이야.”
무(武)의 세계에 만약이 어디 있단 말인가.
끝났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설령 넘어지지 않았다 해도 애초에 허장호는 ‘완벽하게 초식을 펼쳤을’ 수준이 못 되었다.
난다 긴다 해봤자 그도 결국 입문자니까.
쳐다보기는커녕 듣지도 않는 무신에게 그가 두고 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오늘 시험에서 벽을 느끼게 해주지. 너와 나는 근본부터 달라. 난 파천 제일의 허씨 집안 장남…….”
무신이 무미건조하게 입을 뗐다.
“자신 있단 놈이 뭐 그리 혓바닥이 길어?”
“이, 이 새끼가 미쳤…….”
마침, 무성학이 돌아왔다.
“자, 예고한 대로 시험을 실시하겠다!”
허씨 집안의 장남이 아무렴 잘나봤자 교관 앞에서 우쭐댈 만큼은 아니었다.
허장호가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시험은 아주 간단하다! 관생들이 지난 사흘간 수련한 그 목검으로! 날 찌르면 된다!”
교관을 찌르라는 것.
근본 없는 시험이었으나 의아해하는 관생은 아무도 없었다. 말만 검이지 그래봤자 나무 막대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관생들이 날 찌르는 그 순간의 자세, 그리고 위력 등을 기반으로 시험을 평가하마.”
“교관님을 뒤로 밀리게 하면… 가산점 주십니까?”
“물론. 얼마든지 주마.”
어느 관생의 질문에 무성학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빙긋 웃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 말 그대로였다.
대다수의 관생이 그저 무성학을 ‘찌르기만 하는’ 행위에 그쳤다.
그나마 나았던 관생은 살짝 흔들리게 하는 정도였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거구 중의 거구.
하나의 벽.
거기다 이류와 일류를 오가는 실력자를 이제 막 검에 입문한 자들이 뭘 어떻게 하겠는가.
“미, 밀려났어!”
“와!”
그런데 허장호가 일을 냈다. 무성학을 반걸음 뒤로 밀려나게 한 것이다.
겨우 반걸음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느냐마는, 관생들과 무성학의 차이를 감안하면 가히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과도 같았다.
입만 쩍 벌리고 말을 채 잇지 못하는 관생들.
괜한 반응이 아니었다.
“좋았어!”
허장호가 이것 보라는 듯 주먹을 들어 올리며 무신을 흘겼다. 너 따위는 역시 나한테 안 된다는 듯 갖가지 조롱과 오만이 한데 섞여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이 무신의 차례였다.
무성학이 무신을 호명하며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허장호. 하북팽가만큼은 아니라지만 역시나 허씨 집안이라 힘 하나는 장사로군. 거기다 자세도 나쁘지 않았어.’
자존심을 구긴 무성학은 덤덤한 얼굴로 걸어 나오는 무신을 쳐다보았다.
기초 검술 13개 초식을 흉내 냈던 관생.
그러나 별 기대는 들지 않았다.
‘입관식 일은 내 칭찬해 주겠다만, 지금은 맘먹은 대로 안 될 거다. 힘이라는 건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야.’
무성학이 이미 목검을 꼬나 쥐고 있는 무신에게 말했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시작해라.”
“예.”
대답과 동시에 튀어나간 무신이 그대로 목검을 내질렀고, 요란한 폭음과 함께 일순 정적이 흘렀다.
“커헉!”
무성학이 저만치 벽까지 날아가 처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