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6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6화
파천
머리통이 잘려 나간 파천 멧돼지가 꾸엑꾸엑 피를 토했다. 수풀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내 곧 고깃덩어리가 된 그것을 바라보며 무신이 중얼거렸다.
‘내공도 내공이지만…….’
측정 불가의 등급에 이르는 베기.
그 덕도 컸다.
‘반응속도가 말도 안 돼.’
더 놀라운 점은, 원래의 몸에 적응하지도 않았는데 방금 전 수준이었단 것이다.
무신의 입꼬리가 귓불까지 올라갔다.
‘재밌군.’
이미 만들어둔 길을 걸어가기만 하는 것.
재밌는 정도가 아니라 짜릿했다.
‘아무튼 이걸로 주머니 좀 채워야겠어.’
파천 멧돼지도 보통 멧돼지처럼 냄새가 역하고 질기기도 질겨 고기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었으나 다른 한 가지.
가죽에 쓸모가 있었다.
무두질을 안 해도 될 만큼 촉감이 부드러운 것이다.
물론, 가죽 벗기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이세계 짬이 얼만데.’
무신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놈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발목까지 싹둑 잘랐다. 선천지기가 있었으니 손만 갖다 대도 충분했다. 그리고 목덜미와 다리 위를 그어 쭉 잡아당기자 가죽만 쭉 분해됐다. 핏기가 가시지 않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에겐 향기롭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못 받아도 은자 4냥이야.’
은자 4냥은 이세계 주민들의 한 달 생활비에 해당되는 거금이었다.
무신은 가죽을 들쳐 메고 북쪽을 따라 걸었다.
파천(派川).
파천 멧돼지의 이름을 있게 한 그곳을 첫 정착지로 쓸 생각이었다.
가까운 거리도 거리거니와 회귀 전에도 갔던 곳이라 연이 많았다.
특히…….
‘그 노인이 파천에 있지.’
회귀 전엔 쳐다보지도 않았던 존재.
아니, 외려 꺼려했던 존재.
그러나 이번엔 갖은 수를 써서 그의 환심을 살 것이다.
‘오랜만이군. 파천.’
은자 4냥과 그 노인 생각에 무신은 한나절도 더 걸릴 거리를 반나절 만에 주파했다.
대문짝만하게 걸린 파천 문패를 보며 그가 회상에 젖었다.
멧돼지를 겨우 따돌리고 늦은 밤에야 발견했던 곳.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메! 저게 뭐야?”
무신이 비로소 파천 안으로 들어서자 길 가던 주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작업복에 작업화.
막일 복장 때문이 아니라 그의 등에 걸린 큼지막한 가죽 때문이었다.
몇몇 주민들이 가죽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거 파천 멧돼지잖아?”
“정말이네? 가죽이 시꺼먼 것을 보니 틀림없어!”
“혼자 잡았나?”
“에이, 설마.”
갖가지 시선이 몰려드는 가운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사내 하나가 냅다 달려가 물었다.
“이보시오.”
“예.”
“그거 혼자 잡은 거요?”
혼자 잡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몰려들 게 뻔하기에 무신은 당연하다는 듯 ‘일행들과 같이 잡았습니다’하고 답했다.
그러자 사내가 ‘그러면 그렇지. 수고하쇼’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쳐다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혼자 잡았든 같이 잡았든 파천 멧돼지 가죽이 저렇게 통째로 실려 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무신은 시끌벅적한 입구를 벗어나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봐, 형씨! 그거 팔려는 거야? 내가 잘 쳐줄게!”
“이쪽으로 오시오! 내 반 배 더 쳐줌세!”
“그짝은 다 사기꾼 천지야! 무조건 정가보다 많이 줄 테니 이리 와, 이리!”
흔치 않은 상품.
장사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무신에게 달려들어 팔을 벌렸다. 경쟁을 넘어 서로 주먹다짐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정말 가관이 따로 없었다.
무신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장사치를 찾았다.
은자 4냥을 예상했던 게 순식간에 은자 6냥에 동 700문으로 껑충 뛰어 있었다.
“은자 6냥에 동 700문이면 진짜 난 남는 것도 없소.”
장사치들 세 치 혀야 은자 10냥짜리도 1냥짜리로 둔갑 시키는 도술과 다름없었다.
무신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은자 8냥 아니면 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무신이 장사치의 말을 툭 끊었다.
“아니면 딴 데 가고.”
“아니기는! 자자, 여기 은자 8냥!”
여전히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하이에나들.
혹여나 빼앗길까 장사치가 얼른 무신의 주머니에 은자 8냥을 넣어주었다.
무신이 그제야 가죽을 내려놓았다.
“잘 쓰시오.”
“흥정 잘하시는구먼.”
볼멘소리를 내는 장사치를 뒤로하고 무신은 시장을 빠져나왔다.
두둑한 주머니를 안고 그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4층으로 된 객잔이었다.
“만두에 탁주 하나만 내주시오.”
“저쪽 가서 기다리쇼. 금방 내드리리다.”
“들고 나갈 겁니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객주에게, 무신이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만두랑 탁주에 환장하는 사람이 좀 있어서.”
객주가 이내 주문한 음식을 건네주자 무신은 그길로 객잔 밖 세 번째 골목을 찾았다.
광장 근처라 행인들이 붐비는 곳임에도 유난히 발길이 뜸한 지점이 하나 있었다.
무신이 만두와 탁주를 가져갈 곳이었다.
“어르신.”
산발된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에 헤진 옷.
얼마나 안 씻었는지 다가가기 열댓 걸음 전부터 악취까지 풍기는 노인이 맨바닥에 벌러덩 곯아떨어져 있었다.
무신이 파천에서 환심을 사야 할 바로 그 노인이었다.
“저, 어르신.”
무신의 말에 반응한 건 노인이 아닌 근처를 지나던 행인들이었다. 냄새나는 늙은 거지한테 뭣 하러 말을 붙이느냔 눈치였다.
‘나도 회귀 전엔 저랬지.’
무신은 행인들을 뒤로 하고 노인의 코앞에 만두와 탁주를 내려놓았다. 당연히 탁주는 마개를 따놓은 채였다.
말보단 행동이라더니 노인이 금세 눈을 떴다.
“날이 찹니다, 어르신.”
어안이 벙벙하게 음식과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무신은 땡전까지 몇 푼 떨어뜨렸다. 객잔에서 하루 정도는 묵을 수 있는 액수였다.
노인이 만두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말했다.
“건실한 청년이로구먼.”
“별말씀을.”
허겁지겁 만두를 먹어치우고는 벌컥벌컥 탁주를 들이키는 노인을 보며, 무신은 급기야 겉옷까지 벗어주었다. 늙은 거지가 불쌍해 알량한 선심을 베풀려는 게 아니었다.
이 노인은…….
배춘삼.
한때 개방의 방주로도 거론됐던 무인이었다. 지금은 쇠퇴해 일선에서 빠졌다고는 해도 써먹을 요소가 많았다.
절세무공이라는 개방의 타구봉법?
개방에 입단?
검신까지 올랐던 마당에 그것들은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무신은 다른 것을 얻고자 했다.
정보.
그가 기억하는 차후 15년간의 기연이나 인연은 대부분 굵직한 것들뿐이었다. 당연하다. 차후 15년이라 해봤자 결국 다 삼류무사의 도주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해서, 배춘삼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보 수집에 한해서는 사파의 하오문도 가볍게 찍어 누른다는 개방의 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오늘 하루로는 안 돼.’
회귀 전, 배춘삼의 정체를 밝힌 자가 무려 석 달이나 그에게 만두를 던져줬다고 했다. 지금은 만두에 더해 탁주까지 얹었으나 분명 하루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빈 접시를 만들고는 다시 드르렁 코를 고는 배춘삼.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다면 어디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든 했을 것이다.
무신은 ‘이러다 입 돌아가십니다. 따뜻하게 주무십시오’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접시에 엉겨 붙은 만두피를 보니 그제야 배가 출출했다.
“만두랑 탁주 하나.”
다시 객잔에 들린 무신은 만두를 세 접시나 먹어치우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22만 년 만에 먹는 것인데도 어쩜 그 맛이 하나도 안 변했다.
‘염병, 당연한 거잖아.’
무신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때.
거나하게 술을 들이키던 손님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무슨 일인지 객잔 밖이 소란스러웠다.
‘그걸 하는 거군.’
무신도 손님들을 따라 객잔을 나섰다.
손님들을 비롯한 수십의 행인들이 어딘가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힐끔 고개를 드니 검을 든 두 남자가 그 안에서 으르렁대는 게 보였다.
짐작대로였다.
‘저놈…….’
심지어 왼편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익숙하기까지 했다.
무신으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치욕을 줬던 자이기 때문이었다.
무신은 일단 지켜보았다.
“셋!”
두 남자 외곽에 서 있던 자가 힘껏 목청을 높였다.
“둘!”
그러자 두 남자가, 정확히는 오른편 남자만 이를 바짝 물며 검집 위에 손을 갖다 댔고.
“무!”
무(武)란 말과 동시에 두 남자가 검을 뽑아… 서걱!
오른편 남자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싱겁구만.”
왼편 남자가 비릿하게 입꼬릴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탈탈 손을 털며 이미 고깃덩어리가 된 오른편 남자의 머리통을 밟았다.
구경꾼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발검전(拔劍戰).
먼저 검을 뽑아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지 저처럼 아예 ‘살상’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왼편 남자는 그로도 모자라 머리통까지 짓밟고 있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선 분개할 만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백태길. 퇴출당했다고는 해도 한때 혈교의 밥을 먹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자. 괜히 거슬렸다가 제 목도 떨어져 나갈까 두려운 거겠지.’
무신이 이토록 잘 알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역시 두려워 벌벌 떨었으니까.
바로 지금 이 상황에서.
“어이, 거기 허우대!”
백태길이 누군가에게 검을 뻗으며 소리쳤다.
무신을 향한 말이었다.
회귀 전과 똑같이.
당시와 다른 곳에 서 있었으나 복장이 워낙 눈에 띄어 똑같이 지목을 받은 듯했다.
“뭔가 불만인 표정인데?”
회귀 전에는 살인이란 게 익숙지 않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의였다.
“불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보시지. 왜? 못 나오겠어? 하여간 나서지도 못할 것들이 뒤에서 쑥덕거려요.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회귀 전이었다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무신이 빙긋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지금은 아니었다.
“응?”
막상 무신이 튀어나오자 구경꾼들보다 백태길이 더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무에 무 자도 모를 것 같은 용모.
방금 죽은 오른편 남자에 비해 형편없는 근골.
뭘 믿고 나서는 것일까.
백태길이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하수들이 이래서 문제라니까. 자기가 하면 다를 줄 알아요.”
뭐라 떠들든 말든 무신은 죽은 오른편 남자에게서 검을 빼내 들었다.
백태길과 똑같은 검.
발검전에 쓰일 도구였다.
백태길이 ‘심판! 이놈 검 들었으니까 이제 무르는 것도 없어!’하고 소리치며 다시 무신을 쳐다보았다.
“재미난 사실 하나 알려줄까? 내가 혈교에 있을 때 발검 짓만 100만 번을 넘게 했어. 등급? 어느 정도 같아? 크큭. 네놈이 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야.”
백태길의 이죽거림을 끝으로, 우물쭈물하던 심판이 결국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상대가 검을 잡은 이상 발검전은 시작해야 했다.
“셋!”
100만 번의 발검.
횟수 자체는 높이 살 만했다.
“둘!”
그러나…….
“무!”
백태길이 발검은커녕 검집에 손을 가져가기도 전에, 이미 검을 뽑은 상대가 그의 목을 잘랐다.
100만 번의 100배를 발검만 한 자의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