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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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화
백운격
중급 검술의 초식은 정확히 159개.
교본을 직접 보고 해도 어려운 걸 전부 기억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기억했다.
‘검술 실력이 없으면 암기 실력이라도 좋아야지.’
물론, 세세하게는 몰랐다.
‘부분적으로만 알아도 돼.’
교본이란 것도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
거기에만 치중하면 틀에 갇혀 다른 초식을 쓰기 어렵다.
해서 무신은 ‘변형 초식’을 섞었다.
말 그대로 틀은 지키되 동작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중급 검술의 수준에 맞는 초식을 사용하면 상승경지에 크게 문제는 없어.’
당연히 해당되는 변형 초식을 알고 있었다.
무신은 곧장 수련에 들어갔다.
나무가 열 뼘도 훨씬 넘게 자랄 때까지.
이제, 수십 년은 기본이었다.
‘되고 있어.’
빠르거나 느리게.
거칠거나 부드럽게.
무겁거나 가볍게.
검을 뻗는 일련의 동작들이 모두 초식의 흐름에 맞춰갔다.
‘기반을 다지는 게 이래서 중요하구나.’
1억 번이 넘는 찌르기와 베기로 키운 초식의 정석.
발검을 이용한 시작점.
모든 초식의 동작은 결국 거기서 파생된다.
완벽을 추구하며 보낸 십 수 년의 세월이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베기와 찌르기에도 변형이 있었어.’
중급 검술에 들어간 지 47년째 되던 날이었다.
무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걸 왜 여태 몰랐지.’
베기라고 하면 단순히 베기에 그치는 줄 알았고, 찌르기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변형, 정확히는, 변칙적인 수가 있었다.
당기며 베고.
꺾으며 베고.
밀며 베고.
쓸며 베고.
찌르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을 조금만 틀어도 전혀 다른 동작이 나왔다.
“너는 기교가 없어.”/(이탤릭체)
이세계에서 어느 무사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염병. 없는 걸 알았으면 알려주던가.’
무신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무사를 씹으며 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갔다.
베기와 찌르기.
질리도록 했던 그것들에게서 새로운 맛이 났다.
무인에게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변형 초식에 써먹어도 되겠는데.’
무신은 당장 실행에 옮겼다.
놀랍게도, 초식에 각이 서는 느낌이었다.
‘너무 섞으면 오히려 거칠어질 수 있으니까…….’
적당하게.
‘역시 교본이 다가 아니었어.’
변형 초식을 쓰지 않았다면 베기나 찌르기의 변칙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무신은 잠깐 머리를 식히며 그다음을 생각해 보았다.
‘고급 검술에도 응용할 만해. 그리고… 그것도 써보자.’
그것.
명맥은 최고의 검술에 속하나 습득률이 너무 낮아 최악의 검술이라고도 불렸던 그것.
역시나 변형 검술의 일종이었다.
내로라하는 무인들도 죄 실패한 마당에 한낱 삼류무사였던 자가 뭘 할 수 있겠느냐마는, 무신은 자신 있었다.
될 때까지 하면 되는 거니까.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나무에 유난히도 많은 열매가 맺힌 날.
무신은 159번째 중급 검술의 마지막 초식을 끝냈다.
홀가분하기보다는, 역시 지쳤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일류무사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이윽고 울리는 알림 앞에서 머리 아픈 것쯤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이세계에서 우러러만 보던 경지.
그곳에 오른 것이다.
‘진짜 꿈만 같네.’
뺨이 있으면 꼬집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무신은 철검을 단단히 쥐고 초원을 향해 휘둘러보았다.
차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람을 맞은 듯 휘날리는 초원의 모양새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차.’
아주아주 가끔 찾아오는 상승경지.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무신은 얼른 철검을 양손에 올렸다.
허공에 떠오르기 좋도록.
‘볼 때마다 놀랍군.’
이내 섬광과 함께 철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날이 좀 더 예리해지고 검병에 어떠한 문양이 새겨졌다.
흐릿하다가 점점 선명하게.
무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자?’
그 순간.
음성이 아닌 언어로 알림이 떠올랐다.
[7급 사자(使者)의 검]
동시에, 검에 불그스름한 빛이 번졌다.
콰쾃!
어안이 벙벙한 무신에게 불현듯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가만 보니 이거…….’
저승에 도착했던 날.
‘유리’란 이름의 사자가 갖고 있던 그 검과 똑같았다.
‘정말 사자들이 쓰는 검이라고?’
무신의 눈살이 파르르 떨렸다.
‘목검이나 철검도 저승의 무기였단 거야, 그럼?’
단정 지을 순 없으나 그럴 공산이 컸다.
그리고 애당초 이곳은 격리되었을 뿐이지 저승이란 세계의 한 일면이었다.
‘잠깐, 잠깐.’
무신은 7급이란 숫자, 아니, 직급에 집중했다.
다른 직급도 한 번 본 적이 있어서였다.
1급 석영.
어쩌면 1급 사자의 검도 있지 않을까.
역시 단정 지을 순 없으나 마찬가지로 그럴 공산이 컸다.
‘아직 이룰 상승경지가 많으니까.’
성취가 따르면 자연스레 능률이 오르기 마련이었다.
고귀한 사자들의 검을 직접 손에 쥔단 사실이, 무영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이런 검은 처음인데.’
검신에 휘감긴 불그스름한 빛.
화려했다.
그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더 높은 사자의 검은 어떨까.’
괜한 기대에 젖던 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일류무사의 첫걸음.
다음을 보기는 너무 일렀다.
[훗.]
수십 년 전에는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이번에는 들었다.
집중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무신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필히 ‘누군가’의 목소리라 생각하며.
그러나 역시 허탕이었다.
‘망할.’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알림.
육두문자를 쏟던 무신은 문득 소름이 끼쳤다.
‘이거 설마…….’
귀신이 아닐까 싶어서.
그러나 무신은 곧 맥없이 웃었다.
귀신이라고 하면, 사실 죽어 망령이 된 그가 가장 귀신스러웠다.
‘싯팔. 귀신이든 아니든 관음증이 있는 건 분명해.’
***
저승 명부관리부.
석영은 철지난 명부를 정리하다 무심코 ‘한 망령’의 기록에 집중했다.
‘최무신. 이 망령의 다음 운명은 무엇이었을까.’
환생이었다.
다음 운명이란 것은.
고위직인 석영에겐 그 내용을 까볼 권한이 있었다.
‘응?’
그가 무테안경을 치켜 쓰며 다시 한번 내용을 확인했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참 지지리도 기구해서.
‘환생하자마자 죽을 팔자라니.’
그는 쯔쯧 혀를 차며 무신의 기록을 보관함에 넣었다.
‘그래도 환생하면 회생의 기회라도 있지 거기는…….’
어차피 ‘이미 영구적으로 소멸했을 존재’였다.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
고급 검술의 초식은 의외로 적었다.
128개.
개수로만 보면 중급 검술보다 반 배 가까이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초식이 길었다.
‘몇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어.’
해서 기억해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무신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변형 검술 위주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백운격(白雲擊).
구름의 자유로운 몸짓을 본떠 만든 것인데, 추구하는 바와 달리 수련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수준급 검술과 기교.
거기에 재능을 필요로 하는 탓이었다.
물론, 무신에겐 그 세 가지가 없었다.
특히 재능이.
그러나 중급 검술도 똑같이 재능을 요구했다.
그런데 넘었다.
‘시간이 약이야.’
노력이란 것은 재능보다 훨씬 위대한 자리에 있었다.
시간만 받쳐준다면.
‘가보자.’
풍성하다 못해 시야 한 면을 전부 가릴 만큼 자라난 열매를 뒤로하며 무신은 검을 쥐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망령이 무슨 숨을 고르겠느냐마는, 무(武)를 위한 준비였다.
그러니 망령이건 인간이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후아.’
시작은 고급 검술이었다.
보고 따라 해도 힘든 것을 기억에만 의존하려니 여기저기서 헛발을 딛기 일쑤였다.
간결하게 끊어야할 동작도 자꾸 늘어졌다.
그러나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똑같았어. 베기든 찌르기든 기초, 초급, 중급 검술이든 전부 다.’
틀리면 고치고.
고쳐서 익히고.
익혀서 숙달되도록 반복하고.
그사이 열매도 늘 그래왔듯이 맺고 떨어지길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떨어진 나뭇잎이 허공에 휘날렸다.
359년.
나무가 자라도 한참 자라 있었기에 나뭇잎은 저 위에서부터 떨어졌다.
아래서 보면, 흡사 구름이 떠다니듯.
그때.
무신이 백운격의 초장을 밟았다.
솨아아아아아아아!
마침 바람이 분 것도 우연이었을까.
그러나 그에겐 풍경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느릿해 보이는 구름이 실상은 벼락처럼 빠르다.’
백운격의 오의.
무신은 그 첫 번째 격(擊)을 터뜨렸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삭!
빨랐다.
순식간에 초원의 한 길이 갈라졌다.
쾌검(快劍).
백운격을 익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검술이었다.
그런데 무신의 얼굴은 썩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느려.’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었다.
앞선 격은 분명 빨랐으나 겨우 전자에 한할 뿐이었다.
‘백운격의 1할도 안 돼, 이 정도는.’
무신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 구름을 이룬 나뭇잎과 전장을 그리는 바람을 따라 검에 빠져들었다.
자그마치 763년.
고급 검술과 백운격의 모든 초식에 ‘완벽’을 새겨 넣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무신은 정말 간만에 검을 내려놓았다.
이상하게 숨이 찼다.
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귀신도 한 천 년 묵으면 사람이 된다더니 내가 진짜 사람이 됐나.’
물론, 기분 탓이었다.
망령이므로 숨이 찰 일은 없었다.
그러나 천 년.
무신이 망령의 숲에서 그 긴 시간을 보낸 건 사실이었다.
‘살아 있는 역사구나, 내가.’
기분이 묘했다.
‘후우.’
무신은 이내 다시 일어섰다.
그의 귓전에 상승경지의 알림은 들어오지 않았으며 검의 변화 또한 없었다.
당연했다.
절정(切情), 혹은 검치(劒痴)라 불리우는 경지.
그것은 삼류나 이류, 그리고 일류의 경지처럼 검술 교본만 뗀다고 될 게 아니었다.
아예 성질이 다른 ‘한 가지’를 더해야 했다.
‘할 수 있다, 무신아.’
숙달하다 못해 몸에 배어버린 고급 검술과 백운격.
그러나 일류에서의 상승경지를 위한 행보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