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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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화
시험
실체 없는 풀이 초원을 이루고 있었다.
생동감이 전혀 없었다.
‘여긴 어디지?’
무신은 섣불리 발 한번 내딛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초원.
저만치 앞에 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박혀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나무에도 실체가 없었다.
그때.
[망령의 숲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치 언령처럼 어떠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어왔다.
딱딱하고 기계적인.
마치 이세계에서의 ‘알림’ 같았다.
‘시험을 설명해 주는 장치인가.’
무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망령의 숲이란 이곳의 이름에 주목했다.
실체 없는 초원과 나무 한 그루.
정말, 딱 어울렸다.
[이곳은 저승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습니다.]
석영의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홀에 들어왔으니 격리란 말이 이해는 갔다.
그러나 왜 그래야 되는지는 의문이었다.
‘굳이 격리할 필요까지 있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무신은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조심스럽게 초원을 거닐었다.
여전히 걷는 느낌은 없었으나 무언가 자유로운 느낌은 들었다.
특히, 저기 저 나무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분위기가 좀 오싹한 것만 빼고.’
어느 정도 심신이 안정된 그에게 다시 알림이 이어졌다.
[이곳에서의 시험을 통과하면 회귀가 가능합니다.]
회귀.
무신은 그 말에 가던 걸음도 멈추고 반응했다.
반드시 이뤄야 할 과업이었다.
[단, 실패할 시에는 영구적으로 소멸됩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으나 이미 다 알고 들어온 곳이었다.
괜히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무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다 할 설명도 해주지 않고 바로 시험을 시작한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이곳에서 29만 년을 지내십시오.]
29만 년?
잘못 들었나 싶었다.
[29만 년이 지나면 시험은 자동으로 통과, 당신이 원하는 기점으로 회귀가 가능합니다.]
다음 알림도 29만 년이란 터무니없는 숫자를 그대로 가리켰다.
무신은 떨떠름하게 웃었다.
‘뭔 소리야?’
아직도 제 귀를 의심하는 그를 아랑곳 않고 알림은 계속 제 할 말만 이어갔다.
아주 차분하게.
[도중에 포기를 원하시면 ‘포기’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알림이 ‘물론 그렇게 할 경우에는 시험 실패로 간주, 영구적으로 소멸됨에 유의하십시오’라는 뒷말을 붙였을 때.
무신은 차마 입도 떼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알림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고요만이 흐르는 초원.
무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29만 년을 지내라고?’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커녕 조선이나 고려로 올라가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29만 년이란 시간은.
무신은 제 볼을 꼬집었다.
그러나 실체도 없는 곳이 꼬집힐 리 만무하며 애당초 이곳은 저승이었다.
잠을 자지 않으니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이럴 리가 없어. 진짜 시험이 있을 거야.’
헛된 바람이었다.
떠나간 알림은 돌아오지 않았다.
죽어버린 인생처럼.
‘하.’
무신은 허탈한 눈으로 초원 위에 주저앉았다.
조금도 감이 안 잡혔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29만 년을 지내야 돼. 시험에 통과하려면.’
도중에 포기할 수 있는 방법까지 읊어주며 알림은 모든 해답을 알려주었다.
상이 차려졌으니 그저 숟가락만 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숟가락을 들 힘이 없었다.
정확히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나 혼자…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막 처음 봤을 때야 어느 정도 경치로 보였지 지금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곳이었다.
거기다 생명체라고는 오로지 그 혼자.
가슴에 비수가 꽂힌 느낌이었다.
‘두 번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무신은 한동안 엉덩일 떼지 못했다.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망령인 주제에 앉고 일어섬에 무슨 제약이 있겠느냐마는, 심적인 타격이 그만큼 컸다.
그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것은 정체 모를 바람이 뺨을 할퀴고 지나갈 즈음이었다.
어째서 바람이 느껴졌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포기는 못 해. 불가능하더라도 포기는 절대 못 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더 우선이니까.
다시 살아야 하니까.
‘해보자.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거야.’
해보고 포기하나 해보지 않고 포기하나 어차피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영구적 소멸.
그럴 바에야 전자가 나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29만 년을 지내느냐는 것.
답은 금방 나왔다.
검술(劍術).
15년을 이세계에서 살아온 무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는 이곳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
시간.
조금만 더 검술을 연마할 수 있는 시간.
지금, 그 시간을 얻었다.
‘얻어도 29만 년이나 얻은 게 문제지만… 알 바 /뭐야(아니지)/.’
부정적인 것에 취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었다.
무신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검이 없어.’
맥이 빠졌다.
화룡점정이라 하면 너무 과분한 표현이겠으나 그만큼 중요했다.
검객에게 검이라는 것은.
‘제기랄.’
무신은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다간 없는 채로 팔만 휘둘어야 할 판국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저게 어디야.’
여전히 덩그러니 박혀 있는 나무 한 그루.
그는 냅다 달려가 적당한 길이에 잘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가지 하나를 골라 꺾었다.
실체가 없는 탓에 꺾는다기보다는 떼어낸다는 것에 더 어울렸다.
당연히 촉감도 없었다.
‘좋아.’
겨우 나뭇가지가 무슨 검이 될 수 있겠느냐마는, 중요한 건 어떤 검을 드느냐가 아니었다.
어떻게 쓰느냐지.
무신은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후아.’
포석은 깔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그도 결국 사람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그는 피식 입꼬릴 말아 올렸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포기’라 외치면 그만.
걸릴 게 없었다.
‘시작해 보자, 무신아.’
무신은 나무를 등지고 나뭇가지, 아니, 검을 들었다.
무게감이 전혀 없었다.
그냥 허공을 쥔 기분이었다.
휘익.
그러나 휘두르면, 그 느낌이 생생했다.
검술을 하고 있다는 게.
‘시간은 많아. 성급할 필요 없어.’
시간이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폭발해도 될 수준이었다.
‘기본기부터 다지자.’
이세계 진입과 동시에 상승 경지도 이루는 이들과 달리 무신은 초장부터 허덕였다.
찌르기와 베기.
걸음마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것이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대한민국 출신의 평범한 남성이 검을 다룰 수 있다면, 그게 더 기이한 일이었다.
나중 가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습관을 잘못 들였어.’
정확하지 않은 동작.
속성으로 배운 그것이 손에 배어버린 탓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치는 거야.’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몸은 몰라도 머리는 정확한 동작을 기억하고 있었다.
삼류무사였었어도 검술 교본은 늘 열심히 봤으니까.
무신은 심호흡을 한 후, 가볍게 검을 내질렀다.
휘익.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낯설었다.
그래봤자 하루 이틀일 텐데 그새 검술이란 것의 감각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관할 바 없었다.
몇 번만 검을 움직이면 금방 돌아올 감각이었다.
‘아냐. 틀렸어.’
한참 찌르고 베고를 반복하던 무신은 잠깐 텀을 가졌다.
감각은 돌아왔다.
분명, 익숙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익숙하기 때문에 틀렸다.
‘익숙하다는 건 정확하지 않은 동작을 하고 있단 뜻이야.’
무신은 나뭇가지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찌르고 베는 일련의 동작.
시선은 정면에 두면서 노림수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것.
교본을 머릿속에서 굴리며 팔을 뻗었다.
이어 횡으로 휘두르기까지 했다.
감각이 익숙하지 않았다.
수북이 쌓인 첫눈을 밟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거야.’
무신은 쾌재를 부르며 계속해서 기본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깊숙이 박힌 돌부리가 천재지변 속에서도 온전하듯 깊숙이 배인 습관도 잘 빠지질 않았다.
됐다 싶으면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무한한 굴레의 연속.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15년을 그렇게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잘됐어.’
무신은 오히려 이 상황을 반겼다.
기본기 숙달.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소모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기본기 하나만큼은 그 어떤 무사보다 뛰어나지겠어.’
적안룡(赤眼龍) 마준환.
수기검(收氣劍) 남궁천.
백영(白影) 유설.
검으로서 이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들의 이름을 곱씹으며 무신은 기본기 숙달에만 열중했다.
물론, 휴식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망령.
하루 스물네 시간 늘 그 상태 그대로니까.
‘어후.’
무신으로서는 당연히 고역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샜는데 피곤하지 않아 또 밤을 지샜달까.
그게 몇 날 며칠 반복되니 미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미친 것일지도 몰랐다.
‘미치지 않고선 못할 짓이지, 이거.’
무신은 쓰게 웃으며 하던 일을 이어갔다.
찌르고.
베고.
숨을 고르고.
찌르고.
베고.
숨을 고르고.
망령인 마당에 굳이 숨까지 고를 필요가 있겠느냐마는, 그 역시도 정확한 동작을 위한 과정이었다.
올바른 자세라고나 할까.
‘나아지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감각이 손에 뒤덮이고 있었다.
질리도록 배어 있던 예전의 감각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됐다.
이제는 된 것이다.
그러나 안주할 수는 없었다.
‘완벽해질 때까지는.’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밤낮은 없었으나 분명 흐르고 있었다.
‘저건…….’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나무에 열매가 맺혀 있었으니까.
‘시계 용도로 쓰면 되겠어.’
필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는 법.
그로 말미암아 계절, 나아가 한 해를 구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무신의 눈이 나무 꼭대기를 향했다.
‘열매가 맺힌다는 건 나무도 자란단 뜻이겠지. 그래, 무럭무럭 자라라.’
내심 궁금했다.
1천 년을 지새운 나무만 돼도 쉬이 그 끝을 볼 수 없는데, 29만 년을 지새운 나무는 어떠할까.
감히 쳐다볼 수는 있을까.
그러나 아직은 너무나 멀고 먼 이야기.
무신은 몸서리치며 한쪽에 내려놓은 검을 집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찌르기와 베기를 이어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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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000번.
미친 듯이,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검만 휘두르던 무신이 어느 순간 멈춰 섰다.
됐다.
정말 됐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올바른 자세.
그 자신이 이제는 하나의 교본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열매를 맺고 떨어뜨리고를 반복하던 나무가 다시 주렁주렁 몸을 불리고 있었다.
기본기 하나 익히는 데만 몇 년이 지난 것이다.
그러나 무신은 그저 기뻤다.
남는 게 시간.
디딤돌을 쌓았음이 더 중요했다.
바로 그때였다.
첫날 이후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알림이 다시 찾아온 것은.
[입문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입문?
눈을 부릅뜨는 무신의 앞에, 정확히는 그가 내려놓은 검 위에 섬광이 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검, 아니, 나뭇가지가 허공으로 번쩍 솟아올랐다.
콰지직!
이윽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말 앙상한 나뭇가지에 불과했던 것이 스스로 몸을 깎고 비틀더니 손잡이와 날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목검(木劍)이었다.
‘이게 대체…….’
검이라 불렀으나 검은 아니었던 것이 진짜 검으로 화하는 놀라운 기적.
무신은 꿀꺽 침을 삼키며 목검으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