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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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화
심판
무신은 눈을 떴다.
형태 없는 연기가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넘실거리는 게 마치 구름 같았다.
그는 그제야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형태가 없었다.
그도 저들과 같은 신세인 것이다.
망령(亡靈).
두 쪽으로 갈라졌던 배의 상처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고통도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죽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죽었구나… 내가 죽었어…….’
죽어도 진즉에 죽었어야 할 인생이었다.
그 지옥과 다름없는 세계에서 15년이나 버틴 것도 용한 일이었다.
사실, 그는 도망만 쳤다.
힘이 없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명줄을 이어야 했다.
그도 강해지고 싶었다.
우쭐대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질 못했다.
남들은 눈 감고도 익힌다는 기초검술에서조차 버벅였다.
‘하…….’
달라지고 있었다.
아주 약간씩이었으나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련이 남았다.
더 살고 싶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분명 예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죽었단 말인가!
“자자, 다들 이 앞으로 줄 맞춰 서세요!”
허망하게 서 있는 무신의 앞에서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망령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무신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곧 심판장으로 이동합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복장에 입술을 벌겋게 칠한 여자였다.
고양이처럼 앙칼진 눈매에 옷과 대비되는 하얀 피부는 제법 미인상이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불그스름한 칼이 눈에 띄었다.
“심판장은 무슨 심판장이야!”
어느 망령이 지시를 거부했다.
비단 그만의 반응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망령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난동을 부렸다.
“내가 왜 죽어! 나 안 죽었어!”
“시팔! 살해당했다고, 난! 이렇게 가면 너무 억울하잖아!”
“심판장이고 나발이고 다시 날 살려내!”
말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았다.
죽음이 억울하므로 다시 살아야겠다는 것.
이런 상황이야 익숙하다는 듯 저승사자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모든 건 운명에 따라 결정됩니다. 아무리 억울하게 죽었어도 그게 결국 당신들 운명이란 거죠.”
운명.
기나긴 인생을 그 단어 하나로 포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러나 옳은 말이었다.
당장 낳아준 부모와의 연도 운명이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무신 역시 동감했다.
‘죽었던 그 자리에 간 것도 내 운명이야. 가지 않으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안 갈 수 있었어.’
그러나 모든 망령이 그처럼 생각하진 않았다.
“네가 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대, 이년아! 뒤지고 싶어?”
한 망령이 사방팔방 날뛰며 저승사자에게 대들었다.
소란은 군중심리란 물살을 타고 금세 번졌다.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 그녀를 위협했다.
그녀가 같잖지도 않다는 듯 웃었다.
“실체도 없으시면서 뭘 어쩌시겠단 건데요? 당장 본인들 몸뚱이는 만질 수 있나요?”
정답이었다.
별 지랄 다 떨어봤자 정작 자기 몸도 못 가누는 병신이었다.
그녀가 허리춤의 검을 뽑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봐드리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이러시면 아예 소멸시킬 테니 그리 아세요.”
“지랄하지 마!”
살아 있을 적에 한 덩치 했을 것 같은 그 망령이 기어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검이 몇 배는 더 빨랐다.
차악!
딱 한 번 휘둘러졌을 뿐인데, 그 망령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 사라졌어!”
“저분은 소멸되셨습니다.”
무신이 물었다.
“소멸됐다니?”
“저승에서조차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죠.”
죽음 이후의 인생.
사후 세계.
그 소중한 기회마저 잃어버렸단 뜻이다.
영영 존재가 사라져.
저승사자가 ‘아차차’하고 말을 이었다.
“혹은 환생하거나.”
“환생?”
그 단어에 반색한 것은 비단 무신만이 아니었다.
아직 이승에 미련이 많은 대다수의 망령이 없는 귀를 쫑긋 세웠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죠.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다만…….”
그새 정렬한 망령들을 보며 저승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들 본래의 존재가 아니라 아예 인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그녀가 저 멀리 흑수림(黑樹林)을 가리켰다.
“저런 식물이 될지도 모르는 거죠.”
“뭐라구요?”
“말도 안 돼! 어떻게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살아가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차라리 나무가 나을 수도 있어요. 보이지도 않은 미생물 같은 것보다야.”
아무리 한 많은 인생을 살아왔더라도 충분히 감사해야 했던 것이다.
나무나 미생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웅성거리는 망령들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무신이었다.
“본래의 존재 그대로 환생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당연히…….”
망령들의 이목도 집중되는 가운데, 저승사자가 단호히 말을 이었다.
“불가능해요. 이미 끝난 운명이니까.”
무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정말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그때.
저승사자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끝난 운명을 돌이킬 순 있어요.”
“돌이키다뇨?”
“말 그대로예요. 인생의 어느 한 지점으로 돌아가는 거죠. 아, 회귀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시겠군요.”
무신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이 순간, 모든 망령이 그와 같은 반응일 것이다.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은 해요.”
가능은 하다는 것.
뉘앙스가 뭔가 모호했다.
“어떠한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어떤 시험인데요?”
“저도 몰라요. 해보질 않아서. 근데 중요한 건 무슨 시험이냐가 아니에요.”
“그럼?”
저승사자가 양손을 내저었다.
“여태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사후 세계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수천 년?
수만 년?
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룡이 뛰어다니던 때로만 계산해도 수천 년이나 수만 년은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아마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랜 기간일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함은… 포기하란 뜻과 같았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도 나쁠 건 없겠군요?”
“나쁠 건 없겠죠. 소멸이 두렵지 않다면.”
“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까 제게 당한 그 망령처럼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여기저기서 통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만, 무신은 궁금했다.
‘왜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을까? 어떤 시험이길래?’
호기심이 들었다.
다른 망령들은 ‘시발, 생존률 제로에 또 다른 운명을 맡기느니 그냥 팔자대로 살고 말지’ 하고 몸서리를 쳤으나 무신은 달랐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처음 이세계로 진입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만큼 이승에 미련이 남아도 너무 남았다.
다시 하면 달라질 인생.
그것을 쥐고 싶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저승사자가 정렬한 망령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신도 상념에서 벗어나 얼른 대열에 끼었다.
그는 걸음걸이가 낯설었다.
아니, 걸음걸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둥둥 떠다니는 구름.
딱 그 짝이었다.
행렬이 멈춘 것은 아치형으로 된 붉은색의 커다란 문 앞에서였다.
염라(閻羅).
양각으로 새겨진 그 글자가 저 내부는 어떤 곳이고 누가 있는지 대번에 알려주었다.
저승사자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손바닥을 보시면 번호가 있을 거예요.”
355,223.
무신의 번호였다.
“본인의 번호가 호명되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심판을 받는 건가요?”
어느 망령의 질문에 그녀는 ‘네, 크게 선과 악을 기준으로 당신들의 인생을 평가받습니다’ 하며 말을 이었다.
“선령이 되어 천국을 노려보세요.”
천국.
다른 의미로는 지상낙원.
어쩌면 이승에서의 인생보다 그곳에서의 인생이 더 나을지도 모른단 기대가 대다수의 망령들에게 뒤덮였다.
그러나 이어진 저승사자의 말이 그것을 처참히 깨뜨렸다.
“천국에 가더라도 실체가 없는 건 똑같아요. 이승에서 누렸던 기쁨은 절대 느끼지 못할 겁니다.”
보고.
만지고.
듣고.
먹고.
기본적인 욕구와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단 것이다.
인생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존재로 환생할 바에야 천국행이 백번 더 나았다.
대부분 망령들의 생각이 그랬다.
무신을 제외하고는.
‘환생이 아니라 그 시험을 치르고 과거로 돌아가면 되는 거잖아?’
그러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영구적으로 소멸된다.’
무신은 있지도 않은 아랫입술을 바짝 깨물었다.
긴장되거나 초조하면 으레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
“355,223 입장하십시오!”
무신의 번호가 호명됐다.
그는 아랫입술을 뜯다시피 깨물며 반쯤 열린 문 속으로 들어갔다.
쿵.
쾅.
쿵.
쾅.
이번에는 있지도 않은 심장 소리가 들렸다.
기분 탓일까.
‘저 사람이 염라인가.’
안내해 준 사자처럼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설화 속에서 보던 것과 확연이 달랐다.
말끔한 수트 차림에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무테안경.
손에 들고 있는 ‘명부(名簿)’는 막 포장지 뜯은 노트처럼 반짝거렸다.
“355,223… 최무신 님 맞습니까?”
심지어 존대를 썼다.
무신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1급 석영이라 합니다.”
1급 석영?
“염라대왕의 대리를 보고 있습니다.”
어쩐지 행색이 권위와는 좀 멀다 싶었다.
무신이 물었다.
“대리요? 염라대왕은 어디 가셨습니까?”
“일이 있으셔서 잠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잠깐이라면, 기다릴 만했다.
무신이 그러한 뜻을 밝히자 석영이 애매한 듯 입을 열었다.
“5년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럼 심판을 보류해 드릴까요?”
아이가 어른이 될 수도 있는 아주아주 긴 시간이 저승에선 겨우 잠깐인 모양이었다.
무신은 얼른 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석영이 ‘이승에서 살다 보면 5년이 길게 느껴지나 봅니다. 다들 그러시더군요’하고 명부를 폈다.
그리고, 늘어놓았다.
무신의 인생을 하나부터 열까지.
“기구한 운명이셨습니다, 최무신 님.”
기구하다 뿐인가.
곧 죽었어도 할 말이 없는 인생이었다.
이세계에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부터 무신의 인생은 꼬여 있었다.
“부모는 최무신 님을 낳자마자 도망가고… 보육원에 맡겨졌지만 학대당하고… 친구들도 잘 없으셨군요. 이해해 주질 않아서.”
“예.”
“그러다… 응? 차원이동을 경험하셨습니다?”
이세계 진입.
바로 그 일을 말하는 것이다.
“흔치 않은 일인데, 굉장히 귀한 경험을 하셨군요.”
계속 명부를 읽어가던 석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바닥이라 최하위 무사로만 머물렀다… 이런, 차원이동을 해도 운명이 바뀌지 않으셨다니.”
“아뇨.”
“네?”
그랬다.
최하위 무사였다.
그래서 도망만 치는 비루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꿈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선 무언갈 하겠단 꿈이 없었습니다. 일어설 수 있단 희망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에선 꿈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길이라 희망도 있었고요.”
“꿈과 희망을 가진 것만으로도 바뀐 운명이었다?”
“예.”
“그러셨군요.”
석영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명부를 보면 확실히 인생의 마지막 줄기에서 뭔가 발전될 듯한 싹이 트긴 합니다.”
내내 명부만 쳐다보던 석영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승에 미련이 많으시겠군요?”
“예. 많습니다.”
이승.
그리고 미련.
무신의 머릿속에 아까 저승사자의 말이 다시금 맴돌았다.
회귀(回歸).
그것이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출되는 결론은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만일 실패할 시에는 영구 소멸.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래서 여쭙는 말인데…….”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나 이세계에서나 의지 하나는 지독했던 무신은 기어코 그 이야길 꺼냈다.
“인생을 돌이킬 수 있단 말을 들었습니다.”
“유리가 그러던가요?”
안내해 준 저승사자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무신이 ‘예’하고 물었다.
“어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겁니까?”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왜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해야 더욱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만큼 의지가 깊다고 해석된달까.”
알고 도전하는 것과 모르고 도전하는 것.
확실히 의지의 깊이와 연관이 있기는 했다.
석영이 명부를 덮으며 말을 이었다.
“실패하면 영구적으로 소멸된다는 것도 들으셨을 테고… 그러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신은 잠자코 석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 마십시오.”
“실패할 게 뻔하단 거군요.”
“네.”
석영의 대답은 차가우리만큼 단호했다.
그러나 무신은 쉽사리 그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정말,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시작해 보고 싶으니까.
‘저승에서 망령으로 살아가든 환생으로 살아가든… 그게 의미가 있을까?’
내가 아닌 나는 죽은 존재일 뿐이었다.
어차피 죽을 존재라면, 그래, 목숨을 걸고라도 해보는 편이 나았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것?
무신이 그 처음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역시 실체 없는 주먹이었으나 웬일인지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기분 탓이래도 좋았다.
“하겠습니다.”
“네?”
석영은 믿지 못하겠단 투였다.
“후회하실 텐데요.”
“안 해도 후회할 선택입니다.”
“정말 하시겠다구요?”
“예.”
무신의 의지를 보았는지 석영이 목소릴 가다듬으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회귀를 위한 시험을 치르시겠습니까? 선택은 되돌릴 수 없어요.”
되돌릴 수 없는 선택.
그러나 이미 방향을 정했으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무신은 더 확고하게 답했다.
“예,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석영이 ‘좋습니다’ 하고 명부를 아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할 주문 같은 것을 외웠다.
잠시 후, 난데없는 바람이 몰아쳤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쿵!
거인의 발걸음처럼 지대가 진동하기까지 하더니 허공 위에, 정확히는 무신의 앞에 시꺼먼 홀 하나가 생성됐다.
“건투를 빕니다.”
석영의 말을 끝으로, 무신은 그대로 그 안에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