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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6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36화

진정한 위상

 

 

‘……!’

 

악구형은 눈을 부릅떴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정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자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심지어 저자는 검을 뽑지도 않았다. 팔짱 낀 채로 유유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뭐, 뭐 하는 놈이지?’

 

검을 뽑지 않았으니 검강이나 검기 등의 무위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악구형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무표정하게 있는 상대의 얼굴에 떠오른 저 안광.

소름이 끼쳤다.

살아생전 저리 줄기줄기 뻗는 살기를 본 적이 없었다.

 

‘주, 죽을지도 몰라.’

 

본능이 가리키고 있었다.

나서지 말라.

절대 나서지 말라.

마치 아버지의 말씀처럼 뼈저리게 와닿았다.

 

가주 악성권.

 

무려 창강이라는 최상의 경지에 도달해 있으며 머지않아 깨달음도 얻을지 모를 위인과 저 한낱 검객이 동일시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본능은 분명 그렇다 말하고 있었다.

순간적인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외려 이성이 악구형을 위기로 몰고 갔다.

 

‘저, 정신 차리자.’

 

몸으로는 느꼈을 뿐 눈으로는 보지 못한 탓이었다.

여전히 검집에 들어가 있는 검.

고개도 내밀지 않은 것에 기가 죽어 등을 돌린다 함은 악가의 무훈(武訓)에 어긋난다고 판단됐다.

악구형은 이를 바짝 물며 창을 고쳐 잡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동행한 무사들은 두 다리를 벌벌 떨고 있었다. 창은 진즉 바닥에 떨어뜨려 하나같이 다 맨손이었다.

악구형이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게냐!”

“예예!”

 

호통이 일순 그들의 이성을 깨워 다시금 창을 쥐도록 했다.

바로 그때였다.

검객이 검을 꺼내 든 것은.

 

“기회를 걷어차는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검객의 검에 무언가 희뿌연 것이 올라오고 나서야 악구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성?

그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버려야 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감히 범접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검객의 검에 몰아치고 있었다.

악구형도 물론 창에 내공을 주입할 줄 알았다. 아주 옅게나마 창강도 가능했다.

그러나 저 검객의 검만큼은 아니었다.

저것은 가히…….

 

‘마, 말도 안 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악구형이 스스로 창을 내던졌다.

악가 무사들?

기압을 견디지 못해 이미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결코 그들의 정신력이 낮은 게 아니었다.

저 검객이 그만큼 강한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무인으로서 꺼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러나 악구형은 살고 싶었다. 아니, 살아야 했다. 훗날 가주의 뒤를 이을 장남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급기야 고개를 숙였다.

무인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

패배를 인정함과 동시에 상대를 인정한단 뜻이었다.

 

“악구형. 너는 내가 검을 쓴다며 내게 창을 겨누려는 한량들을 크게 꾸짖었었지. 그때의 네 행실이 지금의 널 살린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것일까.

‘있지도 않았던 일’을 ‘진짜 있었던 일’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홀연히 자리를 떠나던 검객이 몇 발자국 못 가 다시 몸을 돌렸다.

 

“아, 그리고 충고 하나 하지. 너는 나한테 올 게 아니라 그 객잔을 갔어야 했다. 낮의 일에 대해 사과하고 은자가 됐든 땡전이 됐든 사례를 줬으면, 외려 사람들은 악가를 더 우러러봤을 것이다. 그게 너희 정파에서 그리 입이 닳도록 말하는 의이자 협이니까. 강호에서의 위상? 진정한 위상은 무인들이 아니라 세인들에게서 나옴을 명심하라.”

 

악구형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의표를 찔린 느낌이었다.

 

***

 

무신이 악구형을 살려준 이유에는 비단 회귀 전의 도움만 있지는 않았다.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무림공적.

 

오대세가에만 못 든다 뿐이지 악가는 강호 어디에 나가도 입지가 대단한 곳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사방팔방으로 쫓기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죄다 족치면 그만이지 않겠느냐마는, 강호는 무법지대.

입 떡 벌어지는 괴물들이 우글대는 곳이었다. 온전한 힘을 완성시키기 전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혹여나 악구형이 뒤통수를 칠 걱정?

 

‘천성이 고약한 놈은 아냐. 그리 말했으니 지도 깨달은 바가 있겠지.’

 

지레짐작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 겪어본 악구형의 성향을 현재에 대입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자정이 넘은 시각.

무신은 가까운 객잔을 찾았다.

낮에 갔던 바로 그곳이었다.

늦게까지 술을 퍼마시는 취객들 때문인지 예의 그 점소이가 이제 막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인사드리려고 했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아까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마가 무릎에 닿도록 연신 허리를 숙이는 점소이를 보며 무신이 ‘됐으니 방이나 하나 내줘. 큰 방으로’ 하고 말했다. 애초에 고맙단 말 들으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악철도가 거슬려서.

그뿐이었다.

점소이가 이내 열쇠 하나를 내오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괜히 저 때문에 악가로부터…….”

 

더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무신이 툭 말을 끊었다.

 

“괜찮으니 상관 마라.”

“그래도…”

“정 미안하면 화차나 한 잔 내와. 값은 네 주머니에서 까고.”

 

그깟 화차 몇 푼이나 한다고 얻어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본인이 내게끔 하여 ‘양손 벌벌 떨며 안절부절못해하는’ 지금 저 감정을 조금이나마 없애주려는 것이다.

먼저 방에 올라가 있는 무신에게 점소이가 곧 화차 한 잔을 가져왔다.

장미가 올라간 그것.

코를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도 그 향이 느껴졌다.

 

“가봐.”

“저…….”

“또 왜?”

 

점소이가 아까보다 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주무시면 언제쯤 일어나세요? 제가 시간에 맞춰서 아침을 해다 드릴게요.”

“그래? 그럼 동파육이랑 규화계로 부탁하지.”

 

농이었다.

동파육이야 그렇다 쳐도 아침 댓바람부터 언제 닭을 연잎으로 싸고 다시 또 진흙으로 감싸 규화계를 만들겠는가.

그런데 점소이가 일말의 고민도 않고 ‘네! 맛있게 해서 가져올게요!’ 하고 대답했다.

 

“됐으니 그냥 만두에 소면으로 내와.”

“아니에요! 꼭 그렇게 해드릴게요!”

 

의지가 얼마나 확고하면 눈에 쌍심지가 켜 있을 정도였다.

무신은 알겠다는 듯 그녀를 내려 보내고 파천의를 훌러덩 벗어 던졌다. 확실히 내구성은 좋아도 편의성은 영 별로였다. 일반 무복이 스무 배는 더 나았다.

기분 같아서야 당장 단잠에 들고 싶었으나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심법은 곧 호흡.

하루라도 멈추면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적어도 그의 생각은 그랬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내공이 단전에 축적되고 전신에 회전되는 일련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고서야 그는 가부좌를 풀었다. 몸이 외려 더 개운했다. 오랜 시간 수련한 무인들이 고작 몇 시간 자고도 온 종일 쌩쌩한 이유였다.

그는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아까 산동 분타주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악가가 혈교의 칠십혈천대에게 당한 일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거기까지는 회귀 전에도 들은 바가 있었다.

 

‘그 치욕을 갚으려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려 한다…….’

 

그러나 그 다음은 처음 안 내용이었다.

무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림맹은 이 시기에 악가를 위해 나선 적이 없어. 그렇다면 악가의 요청은 거절당했다고 보는 게 맞고…….’

 

이후는 얼추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가주 악성권은 항간의 소문대로 제 소속 무사만 이끌고 혈교를 치다가 죽은 게 맞았던 건가.’

 

알려지기로는 앓던 지병 때문에 사망한 것이었으나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구석이 많았다. 아무래도 혈교에게 두 차례, 그것도 가주까지 당했단 사실을 알리기 싫었을 것이다.

그럼 무림맹은 악가의 요청을 왜 거절했느냐.

그야 뻔했다.

 

정사대전.

 

자칫 그 지옥과도 같은 싸움으로 번지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었다.

악가 하나 살리자고 그 큰 위험을 감수하긴 꺼려졌겠지.

 

‘그나저나 칠십혈천대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들을 만나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고.

이유야 별것 없었다.

 

‘칠십의 교도 하나하나가 다 혈교 내 고수들로 이뤄져 있어.’

 

단순한 고수들이 아니었다. 죄다 검기 정도는 가볍게 구사하며 그 이상도 능히 해내는 괴물들이었다.

무신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혈교에서도 파악했겠군. 그날 죽간이 가리키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배후에는 누가 있는지.’

 

물론 배후라 하기에는 좀 애매했다.

무신도 사학도처럼 죽간을 장보도쯤으로 해석하고 간 것뿐이었다.

 

***

 

깊은 밤.

악구형은 벌써 몇 시진 째 검객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무인들이 아니라 세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의와 협… 틀린 말이 아니야.’

 

왜 진즉 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회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창을 뽑아든 건 나였어. 검객이 날 죽여도 할 말이 없었다고.’

 

그런데 검객은 그냥 갔다.

의표를 찌르는 말만 던지고서.

 

‘내가 참 미련하고 잘못된 행동을 했구나.’

 

***

 

이른 아침.

점소이가 정말 동파육에 규화계를 들고 왔다. 아마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준비했을 것이다.

독한 여자였다.

 

“참, 언제든 오시기만 하세요. 뭐든 그냥 드릴게요.”

 

무신이 동파육을 오물거리며 피식 웃었다.

 

“점소이에게 무슨 권한이 있다고?”

“객주님도 허락하셨어요.”

“주인장이?”

“네. 악철도를 그렇게 만들어준 게 너무 고마우시대요.”

 

대체 얼마나 골칫거리였으면 식탁이며 바닥이며 죄다 어지럽힌 이에게 외려 공짜 밥을 주는 것인가.

그러나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제가 험한 꼴 안 당한 것도 있구요.”

 

어제나 지금이나 무신의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점소이 빼내자고 굳이 검을 뽑아들지는 않았다.

라고는 해도 조금은 있었다.

약자의 설움.

강자의 횡포.

그것이 싫었다.

회귀 전부터 쌓인 감정이었다.

 

“아셨죠? 꼭 또 오셔야 돼요!”

 

그새 동산 위로 튼 태양.

무신은 신신당부하는 점소이를 뒤로 하며 객잔을 나섰다. 봄이 와도 벌써 온 터라 하늘이 푸르렀다. 솔솔 부는 바람이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어디론가 향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자가 그자야?”

“어어.”

“허, 놀랍구먼. 악철도를 잡다니.”

“나도 저만큼 강해지면 소원이 없겠어.”

“검기는 기본으로 쓰겠지?”

“검기뿐이야? 악철도가 쪽도 못 썼는데.”

 

길바닥 소문이야 하루면 번지는 법이었다. 거기다 보통 일도 아니고 악철도, 그리고 악가가 걸려 있었으니 관심은 더욱 대단했다.

해서 무신을 동경하는 시선만큼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다.

 

“악가에서 가만히 있을까?”

“듣자 하니 잘못은 악철도가 했는데… 위상인지 개뿔인지 모를 그걸 빌미로 분명 죄를 물으려 하겠지.”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해.”

 

그러나 무신이 떠난 직후.

어제 그 난리가 났던 객주에 ‘직접’ 나타났다.

악가의 장남 악구형이.

 

“어제 일에 대해 사과하러 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산동 서쪽의 깊은 골짜기.

무신이 어느 동굴 하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로군.’

 

앞으로 수년은 지나야 발견될 이 동굴에는 수십 개가 넘는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못해도 수백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들어가려는 이유.

간단하다.

모든 기관진식을 뚫고 동굴 끝에 도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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