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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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9화
사정
“종남파가 마교와 손을 잡았네.”
태청운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신은 망치에라도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띵했다.
마교(魔敎).
악한 것에 정도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파의 혈교보다 더 지독한 집단이었다.
마신을 숭배하는 것.
마공을 익히는 것.
두 가지만 봐도 그곳의 수준은 알 만했다.
“마교와 손을 잡아요?”
무신이 놀라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었다.
종남파도 결국 정파(正派)의 한 부류.
정(正)을 추구하는 자들이 어찌 마교와 같은 부류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게나 말일세. 도통 이해가 안 되더군.”
이해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금기이자 금역.
태청운이 설명하는 종남파는 지금, 정파의 저의와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악의 소굴과 다를 게 없었다.
“어떤 식으로 손을 잡은 겁니까?”
“정파의 정보를 내주는 대신…….”
거기까지만 들어도 이미 기가 찼다.
그런데.
“마교의 마공을 받았네.”
“허.”
신체의 일부를 훼손해야만 가능한 것.
남의 내공을 갈취하는 것.
포악해지기를 넘어 살육에 미치는 것.
사람을 지속적으로 죽여 정혈을 섭취해야 하는 것.
시체의 사기를 흡수하는 것.
사지가 굳는 것.
이성을 상실하는 것.
경우에 따라 다르겠으나 ‘보편적’으로 마공에 따라붙는 성질이었다.
그럼에도 받았다 함은, 정을 저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무인이길 포기한 것이다.
종남파는.
“그럼 종남칠응도 다 그 마공을 익혔던 겁니까?”
“그렇지. 확실히 예전보다 강해졌더군.”
무신은 그제야 떠올랐다.
거대 문파이기는 했어도 구파일방에는 못 미쳤던 종남파가 난데없이 극강 세력으로 급부상했던 그 시기가.
‘이상하긴 했어. 태선공 말고는 특출 난 무공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고수들이 줄지어 나온 건.’
무(武)라는 게 본래 무엇인가.
방향과 길만 다를 뿐 기나긴 수련을 통해 ‘정신과 몸’을 단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공은 그 의의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다.
아니, 벗어나다 못해 아예 해당되지가 않는다.
스스로를 다치게 하며 반인륜적 사고를 가져 그 정신과 몸을 다치게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시기 즈음해서 종남파에서 유독 무도(武道)를 포기한 자가 많이 나왔어.’
회귀 전에는 아리송했던 기억이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문득 스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살막을 사주해 유청하를 죽이려 한 화산파.
무신이 쓴맛을 다셨다.
‘정파에도 개새끼가 참 많아.’
무신은 정파를 추구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이세계 최강자.
즉,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오로지 그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마교나 사파쪽으로 발을 뻗을 생각은 없으므로 실상은 정파라고 봐야 옳은데… 우라질.
괜스레 머리만 복잡했다.
잔뜩 구겨지는 무신의 얼굴을 보며, 태청운이 다른 이야길 꺼내놓았다.
“얼마 전에 종남파에서 사람이 하나 찾아왔더군.”
이번에는 또 무슨 역겨운 일일까.
“마교 쪽으로 무공을 좀 넘겨주라고 말이지.”
정파의 정보를 주다 못해 무공까지.
간이고 쓸개고 아주 다 내주려는 모양이었다.
“무공을요?”
“태산화전부. 내게 열거부란 별호를 만들어준 부술일세. 그걸 마교에 전수해 주란 거야.”
태산화전부(太山火電斧).
들어본 바 있었다.
공통 부술이면서 각 문파의 비기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내는, 이를 테면 박룡검 등에 비할 수 있었다.
“태산화전부에 통달한 실력을 마교의 교도들이 익힐 수 있게 도움을 줘라, 뭐 이런 겁니까?”
“그런 셈이지.”
태청운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나야 당연히 거절했지. 헌데 그걸 빌미 삼아 이렇게 종남칠응까지 내려올 줄은 몰랐네. 다른 표국들은 우리 상동표국을 끌어내릴 생각에 흔쾌히 받아들였을 테고.”
“심란하시겠습니다.”
“후.”
태청운이 표물을 정리하고 있는 표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네가 없었으면 나나 저 표사들이나 전부 죽었겠지. 살았어도 사지가 멀쩡하진 않았을 거야.”
“아닙니다.”
“아니기는. 나 혼자서 종남칠응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네.”
몰살.
그리고 상동표국의 와해.
회귀 전의 기록은 분명 그러했다.
정말 무신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결말은 똑같았을 것이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라니요. 괜찮습니다.”
하고는 손까지 내젓는 무신에게, 태청운이 당치도 않다는 듯 반응했다.
“그냥 지나가는 건 무인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나네.”
도리라는 말까지 쓸 것 있겠느냐마는, 무신도 똑같았다.
구동의 무구점주 한길호.
그에게 회귀 전 입은 은혜를 얼마 전까지 갚고 오지 않았던가.
“많진 않지만… 이걸 받게.”
돈주머니였다.
무신은 한사코 거절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받았다. 슬쩍 열어보니 금자 대여섯 개가 뒹굴고 있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성에 찰지 모르겠네.”
“괜찮습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태청운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몹시도 불편해했다.
“내가 괜찮지 않아서 그러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갚도록 하지, 이 은혜는.”
“예. 표국 일을 하시니 마주칠 기회도 많을 겁니다.”
“표국 일은 아마… 관둘 수도 있을 것 같군.”
“예?”
“종남파에서 언제고 다시 날 죽이려 들지 모르니 말일세. 애꿎은 상동표국에 피해를 줄 수는 없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선 부득이하게 상동표국도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
태청운은 그 부분을 염려하고 있었다.
“아, 내가 말해준 사실은 굳이 함구하지 않아도 되네. 허나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어. 나를 쳤듯 종남파에서 자넬 가만 안 둘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괜히 미안하군. 정(正)을 저버리는 일을 알려주고 그걸 함구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사정을 설명하다 말씀해 주신 거잖습니까?”
외려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았을 사실을 듣게 된 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굳이 함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
해주.
거렁뱅이 동네라고도 불릴 만큼 빈민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어딜 가도 멀쩡한 건물 한 채 없으며 제대로 먹지조차 못 해 주민들 대다수가 피골이 상접했다. 의외로 구걸하는 이들은 적었는데, 어차피 다 같은 거지에게 받아먹을 게 무어 있겠느냔 이유였다.
‘가관이군.’
임시 표사 15일.
‘소기의 목적’을 위해 그곳에 잠깐 발을 디딘 무신이 혀를 끌끌 찼다. 도무지 사람이 살 구석이 아니었다. 당장 저기 저 객잔으로 보이는 건물만 봐도 기둥 하나가 반쯤 쪼개진 채 있었다.
주민들?
피골이 상접하다 못해 삶에 의욕이 없어 보였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정처 없이 거리를 서성였다. 그러다 무신을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아이고, 무사님!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먹을 것 좀 나눠주십시오!”
“땡전 한 푼만 주십쇼!”
평상복에 장신구 하나만 차도 부자 취급을 받는 게 바로 이 해주였다. 하물며 때깔 좔좔 흐르는 파천의에 멋스런 파천검을 착용한 무신은 오죽할까. 삽시간에 주민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나마 돈 달란 소리는 양호한 편이었다. 단검이나 식칼 따위를 들고 와 뒤통수를 찌르려는 이들도 있었다.
“퀘엑!”
한적했던 해주의 거리에 괴인들의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두 시진도 안 되어 열댓 구가 넘는 시체가 나뒹굴었다.
코 묻은 소녀들이 허리춤을 잡아끄는 경우도 허다했다. 돈을 받고 가랑이를 벌려주는 것이다.
“허억! 허억! 허억!”
실제로 거리를 지나다 보면 제 몸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그 소녀들과 헐떡거리고 있는 남정네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누가 보건 말건 길 한복판에서 일을 저질렀다.
가관을 넘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
그러나 모두가 비루하지만은 않았다. 가끔 가다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한 이들도 있었다. 부익부빈익빈 따위가 아니었다. 해주의 특성을 악용하려는 타지 사람들이었다.
마침,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개 같은 년이 어딜 도망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느 객잔 밖으로 나신의 여인이 사색에 질려 도망 나왔다. 음부 아래로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안 봤음에도 무슨 일을 당했는지 눈에 훤했다.
뒤따라온 이는 뱃살이 아랫도리를 가릴 만큼 비대한 자였는데, 오른손에 단검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몸과 다르게 발은 제법 빨라서 이내 여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아아악! 아아악!”
질질 끌며 여인의 뺨을 때리던 사내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객잔 밖을 쳐다보았다. 소란을 듣고 몇몇 주민들이 몰려 있었다.
“뭘 봐? 구경났어?”
몸은 저래도 분명 어디에서 한 가닥은 했을 사람이기에 주민들이 흠칫 놀라며 뿔뿔이 흩어졌다.
자리에는 그새 무신만이 남았다.
“넌 뭐야, 이 새끼야?”
“…….”
“안 꺼져?”
이제 보니 눈알에 초점이 없었다. 약을 먹은 모양이었다. 아무 대답도 없는 무신에게 사내가 급기야 단검을 치켜들었다.
남 일에 관심 갖지 않는 게 무신의 성격이었으나 지금은 그러기가 어려웠다.
동정?
알량한 영웅심?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가 시비를 거니 그 시비에 받아칠 뿐이었다.
“커, 커헉!”
무신은 그대로 쇄도해 사내의 목을 잘랐다.
구보전답을 구사하는 그였기에 사내가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약을 먹었을 테니 더더욱.
“꿰어으어어으엑.”
피가 터지는 목을 부여잡으며 사내가 헐떡거렸다. 삶에 대한 미련을 아직 못 버렸는지 남은 한 손으로 무신의 발목을 붙들었다. 그러나 이내 힘이 빠졌다. 미처 감지 못한 눈동자에 허망함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소스라치게 놀랐던 여인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신은 됐다고 손을 내저으며 객잔을 내려왔다. 여인이 졸래졸래 쫓아와 이름을 물었다. 궁핍한 해주에도 목숨 값을 귀히 여기는 최소한의 인정은 있는 것이다.
“무신이다.”
무미건조하게 답하는 무신에게, 여인이 넙죽 엎드려 어떻게든 갚겠단 말을 반복했다.
무신은 가서 옷이나 챙겨 입으란 말로 받아주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파천의에 묻은 사내의 피를 털며 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기분 나쁜 동네야.’
아마 있는 내내 이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
열뢰대섬검(裂雷大閃劍).
해주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그 교본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음 같아서야 각 문파의 정통검술이나 비기를 익히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직계 제자나 직계 혈통도 아닌 평범한 무사에게.
어쨌든 그 교본이 백운격이나 박룡격 등만의 단조로운 검술에 새로운 길을 터줄 것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분명 해주에 있기는 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몰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해천이 파천이나 구동에 비해 땅덩이는 좁아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려면 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열뢰대섬검이란 것은.
‘일단 골방 서고들부터 털고 그다음은…….’
중얼거리던 그가 일순 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