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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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8화
무쌍
덜컹거리는 마차.
주고받는 담소.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
마부의 목이 날아가는 직전까지도 무신이 ‘적’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였다.
“히이이이이이잉!”
주인 잃은 말이 미친 듯 날뛰었다. 고삐가 풀렸는지 어디론가 부리나케 도망가는 녀석도 있었다.
무신은 황급히 마차에서 내렸다.
얼이 빠져 있던 표사들도 그제야 허둥지둥 저마다의 무기를 꼬나 쥐고 상황을 살폈다.
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일었다.
전방에 보랏빛이 감도는 표식을 한 무사 일곱이 서 있었다.
‘종남파?’
언뜻 본 것이었으나 무신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보라색.
종남파를 뜻하는 상징이니까.
“뭐, 뭐야?”
당혹스러워하는 표사들의 외침 뒤로 사방에서 수십 대의 마차가 덮쳐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도 거진 40여 대.
문제는, 모두 초입에서 봤던 마차들이었다.
“저, 저것들이 우리 뒤통수를!”
“표, 표주님!”
표사이자 실질적 표주.
태청운이 이미 도끼를 번쩍 들고 살벌한 안광을 굴리고 있었다.
“다들 준비해!”
싸울 태세를 갖추란 것이다.
준비하란 말은.
표사들이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대열을 잡고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절반도 넘게 기울어져 있었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더니 초입에서도 못 본 표사들이 더 몰려와 있었다.
아주 제대로 작당을 한 것이다.
상동표국을 털어먹으려.
‘그러고 보니…….’
무신은 그제야 떠올랐다.
이맘때쯤 태청운이 의문사하고 결국 상동표국 전체가 와해됐던 것이.
‘여기서 태청운이 죽었군.’
검강에도 엄연히 등급이 나뉜다고는 하나 고수는 고수.
그런 자가 당할 정도라면, 저기 저 보랏빛 표식의 일곱 무사는 종남파가 분명했다.
종남파.
입지상으로는 구파일방에도 밀리지 않는 강호의 거대문파였다.
태선공(太先功)이란 특이한 심법을 다루는데, 그게 오늘날의 종남파의 입지를 만들어준 근원이었다.
내공을 폭발적으로 상승시켜…….
콰쾅!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일곱 무사님들께서.
‘허.’
무신이 혀를 찼다.
종남파인 것을 떠나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종남칠응’이 와 있었다.
종남칠응(終南七鷹).
종남파에서 가장 실력이 빼어난 일곱의 검객을 일컫는 말이었다.
종남삼검이나 그 위의 장문으로 넘어가면 그들도 한낱 하수에 불과하겠으나 여기서만큼은 전혀.
결코 구동까지 올 위인들이 아니었다.
‘태청운을 잡으려 저 정도 고수들을 끌어들였다?’
냄새가 나도 너무 났다.
외려 종남파에서 먼저 작업을 치자고 손을 뻗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그사이 사방으로 포위가 형성돼 있었다.
전방의 종남칠응.
좌우와 후방은 100명가량의 표사들.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제기랄! 우릴 죽이려고 작당을 했어!”
상동표국 표사들의 외침에 이미 ‘죽었다’하는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잔 소리가 안 나오는 게 다행이었다.
태청운의 낯빛은 당연히 어두웠는데, 단순히 이 상황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시선.
오로지 종남칠응만을 쫓는 그의 시선.
거기에 살기를 더해 분노까지 차 있었다.
‘과거에 종남파 소속이었을까.’
무신은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보며 진즉부터 빼 든 파천검을 들고 종남칠응을 쳐다보았다.
절망에 찬 상동표국 표사들과 달리 그의 얼굴은 굉장히 침착했다.
침착하다 못해 기대에 차 있었다.
간만의 전투.
백산왕을 잡은 이후로 줄곧 심법에만 매달려 마침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으니까.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무신을, 겁먹을 대로 겁먹은 상동표국 표사들이 말렸다.
“이쪽으로 오게! 자네가 나설 상황이 아니야!”
“저놈들은 우리가 맡을 테니 자넨 후방을 봐!”
“걱정 말게! 무조건 살아, 무조건!”
두 다리 벌벌 떨면서도 본인보다 남을 생각해 주는 그 마음에, 무신은 진심으로 감복했다. 얼음 바닥과도 같은 중원에도 얼마든지 사람다운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가 ‘본의 아니게 숨기게 된 힘’을 발현하며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무조건 삽니다, 우리.”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걸어 나가는 무신의 뒤로, 상동표국 표사들의 얼굴이 종전보다 더 경악스럽게 물들었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
태청운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살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자네…….”
지척까지 다가오기도 전에 태청운 역시 그 기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생처음 보는 광기(狂氣)였다.
“저것들부터 처리하시죠.”
“아, 알겠네.”
“제가 네다섯 놈 맡겠습니다.”
홀로 네다섯을 맡겠다는 것.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터무니없는 말이었음에도 태청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신이 종남칠응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잠깐 넋을 놓고 있었던 태청운도 얼른 전선에 합류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태청운의 부강에 지반이 요동쳤다.
상동표국 표사들뿐 아니라 적이 된 표사들 전부 눈을 끔뻑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종남칠응만은 외려 가소롭단 기색이었다.
콰콰콰콰쾃!
그들 역시 검강 정도는 가볍게 피울 수 있으니까.
종남칠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검술과 방대한 내공을 가진 적삼루(赤衫累) 권맹결이 비아냥대듯 중얼거렸다.
“오랜만이야, 태청운.”
오랜만이야.
역시 태청운은 종남파와 무언가 관계 있는 모양이었다.
하고 생각하는 무신을, 권맹결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바라보았다. 감히 종남칠응을 상대로 저리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자의 상판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 버러지는 뭐야?”
그러나 버러지의 검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솟구치는 순간.
권맹결이 기겁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비단 그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다른 종남칠응들도 허겁지겁 대응에 나섰다.
표사들?
아군이건 적군이건 죄 턱이 빠졌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입문 무사.
무(武)의 세계에서 가장 최하위에 속하는 계급이 검강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세의 고수만이 가능하다는 바로 그것을.
그러나 놀라기는 아직 일렀다.
겨우 일격에 종남칠응 대석라(大石喇) 고영소의 팔이 싹둑 잘려 나갔으며 그 다음 공격에 산도전(山濤展) 이학구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불과 두 번의 공격.
그런데 종남칠응 중 두 명이 바닥을 구르는 것이다.
물론, 입문 무사가 만든 일이었다.
그쯤 되자 같은 아군에 속하는 태청운도 어안이 벙벙해했다. 일단 싸우고는 있으나 도무지 집중이 안 되었다.
무쌍(無雙).
아닌 말이 아니라 정말 견줄 상대가 없었다.
권맹결?
일합은 넘겨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으나 생전 보지도 못한 극도의 쾌검에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환검과 중검을 거친 연계와 공통 검술 중 최상이라는 박룡격 등이 나올 즈음에는, 이미 무릎을 꿇은 후였다.
종남칠응의 최강검술이자 종남파의 5대 비기인 철선환응검(鐵線煥鷹劍)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나머지 종남칠응은 태청운에게 당해 살아남은 자는 권맹결만이 유일했다.
다만, 그 역시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었다.
“쿨럭!”
제대로 서지도 못할 이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 상대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사방의 표사들을 바라보았다.
가공할 살기.
표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전에.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상대가 광범위한 검풍을 일으켜 소동을 잠재웠다.
검강을 피우는 자의 그것이었으니 한낱 이삼류 무사들이 막아내기엔 너무 큰 타격이었다.
권맹결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는, 이제야 끝났다는 듯 어깨를 빙빙 돌리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썩 봐줄 만한 무골.
그러나 그뿐이었다.
강호 어디에서도 저와 같은 자의 소문은 듣지 못했다.
“네, 네놈 어디 출신이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쪽은 가능성이 낮다.
공통 검술만을 사용했고 애초에 그쪽 제자나 자제가 이깟 표국의 표사로 뛸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사파?
권맹결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상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권맹결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상대가 검부터 휘두르고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저승 출신이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전장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남았다. 단체로 언질을 받았는지 약조를 했는지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아니, 열 수가 없는 것이다.
종남칠응.
변방의 표사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강호의 고수들이 볼썽사납게 나자빠져 있는데, 과연 누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물론 태청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둘에 해당하는 종남칠응을 잡았으나 도무지 믿기 어렵단 기색이었다.
그가 도끼를 거두고는, 탈탈 옷을 털고 있는 이 상황의 장본인에게 다가갔다. 매우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무어라 입을 열어야 할까 머뭇거려졌는데, 장본인이 먼저 말문을 텄다.
태청운이 깜짝 놀라 반응했다.
“괘, 괜찮네!”
장본인.
종전의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까의 그 지극히 평범한 입문 무사가 돼 있었다.
혹, 꿈을 꾼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살짝 고개만 틀어도 종남칠응 일곱 구의 시체가 아직 핏기도 가시지 않은 채 있었다.
사방으로는 표사들의 시체가 산더미였다.
“다행입니다. 표주께서 둘을 잡아주시어 비교적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수월하게.
세상에 종남칠응을 상대로 그러한 말을 꺼낼 자는 눈앞의 이자밖에 없을 것이다.
태청운이 떠듬거리며 물었다.
“자네… 도대체 누구인가?”
검신으로 있으나 어쩌다 보니 입문 무사로 있게 된 검객.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대로 토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장본인, 아니, 무신이 덤덤하게 답했다.
“그냥 길 가던 무사입니다.”
이번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
열거부 태청운.
그는 과거 종남칠응보다도 더 높은 입지를 가졌던 종남파의 고수였다. 장문의 신임은 물론, 강호 전체를 따져도 그만한 실력자가 없었기에 사실상 차기 장문으로까지 내정돼 있었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서열 다툼과 내사에서의 시기와 질투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종남파에서 하산 후 여기 이 구동이란 변방의 지역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라는 것.
그게 태청운의 과거였다.
무신이 물었다.
“이해는 됩니다만, 하산까지 하셔야 했나 싶습니다.”
문파 간 세력 다툼이 치열하듯 문파 내에서도 그러한 일은 빈번하게 벌어지는 법이었다.
무(武)의 길을 걷기로 한 이상 피하지 못할 숙명.
게다가 탄탄대로였지 않은가.
명성으로든 실력으로든.
무신이 더욱 의아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이해 안 되기는 종남파가 더 그렇습니다. 세상에 하산했다고 종남칠응을 시켜다 목을 날리려는 경우가 어디 있답니까? 마교도 아니고.”
습격한 표국들이 역으로 종남칠응을 불렀을 가능성?
전무했다.
세상에 일개 표국 하나 잡자고 거대 문파의 일곱 고수들이 움직이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덧붙여, 가까스로 숨이 붙어 있던 권맹결에게 확인한 부분이기도 했다.
“맞네. 나의 행동도 종남파의 행동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지.”
“예? 아, 그런 뜻은…….”
“아닐세.”
태청운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하며 저기 저 서쪽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뗐다.
“사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네. 내가 하산한 것과 종남파에서 그런 나를 종남칠응을 보내면서까지 죽이려 한 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