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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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6화
무명
절벽에서의 추락.
회귀 전이었다면 어버버대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기껏 정신을 차렸어도 달리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삼류무사.
검기 하나 못 치는 이가 어찌 절벽의 무게를 견디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콰콰쾃!
무신은 온몸에 강기를 두르고 우경비를 비롯한 신법을 이용해 바닥에 착지했다.
정말,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착지였다.
그는 옷을 탈탈 털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쯤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었다.
솨아아아아.
잠잠하던 눈발까지 다시 불기 시작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따로 없었다.
그는 아쉬움을 삼켰다.
‘절벽에서 떨어져 백강초 때처럼 기연이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기연은커녕 내려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무신은 바짝 옷깃을 여미며 되는 대로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그러나 그새 해까지 저물어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우라질.’
절로 육두문자가 쏟아지는 그때.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까만 줄무늬가 죽죽 그어진 허연 바위가 저 멀리 우두커니 박혀 있었다.
무신의 고개가 의아하게 돌아갔다.
컸다.
아주 컸다.
‘집채만 하다’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시야 한 면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리로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바위는 더욱 커졌다. 바위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벽 같았다.
첩첩산중에 벽.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러다 그의 눈이 동태의 그것처럼 튀어나온 것은, 약 오십 보를 더 디뎠을 즈음이었다.
바위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 정말 옆으로, 그리고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바위도, 벽도 아니었다.
그것.
그가 그토록 찾던 바로 그것이었다.
백산왕(白山王).
영물로 불리우는 전설 속의 생물이 하늘을 지붕 삼아 몸을 뉘고 있었다.
설성산의 그 거센 폭풍도 놈을 집어삼키지 못했다.
‘…….’
무신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일이 갑작스레 해결되어서가 아니었다.
기연?
기쁘기는 하나 그 역시 아니었다.
위압.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그 감정을 느꼈다.
설성산의 입구에서 높이에 압도당했던 것처럼 가슴이 턱턱 막혔다.
그리고 하나둘 배춘삼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가능성은 희박하나 만약 백산왕을 만나게 된다면… 조심하게. 그냥 조심하게. 놈은 아주 무서운 존재니까.”
“그래, 나도 말은 파천의를 찾으면 찾을 수 있다고 했네만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
“직접 백산왕을 잡아 그 가죽으로 파천의를 만든다는 게.”/(이탤릭)
그랬다.
그게 파천의를 찾으면 찾을 수 있단 배춘삼의 말의 참뜻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자신 있었다.
영물의 위험성이야 회귀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봤다.
백산왕.
그래봤자 하얀 호랑이.
게다가 다른 영물에 비해 영기도 낮아 단전을 바닥내든 자연경을 바닥내든 해서 어떻게 해결…….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놈의 숨소리 한 번에 이가 떨렸다.
영기.
영험한 기운.
그 말의 저의를 알 것 같았다.
무신은 우선 놈과 거리를 벌렸다. 무턱대고 덤빌 상대가 아니었다.
스으으으으으으.
그리고 내공을 순환시켰다. 단전의 바닥이 드러나도록 한껏 끌어 올렸다.
콰쾃!
파천검이 스스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했다.
솨아아아아아아.
설성산에 부는 바람이 한데 모여 무신의 몸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연경의 그것.
그도 당연히 무리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 좀 편하자고 죽을 순 없잖아?’
체내, 정확히는 검 끝에 맴도는 내공의 양이 줄기줄기 검강을 뽑아낼 즈음에야 무신은 자연경의 그것을 관두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놈이 고개를 돌린 건 바로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철도 잘근잘근 씹어 먹을 듯한 아가리였다. 송곳니 하나가 족히 한 자도 더 돼 보였다. 매의 그것보다도 더 매섭고 날카로운 눈알에선 섬뜩한 안광이 터져 나왔다. 네 발로 우뚝 선 몸집은 엎어져 있을 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살랑거리는 꼬리조차 위력적으로 느껴졌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신은 꿀꺽 침을 삼켰다.
긴장은 아니었다.
방심하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이랄까.
그는 더욱 더 울부짖는 파천검을 꼬나 쥐고는 그대로 백산왕에게 달려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여타 무인들이었다면 줄기줄기 치솟는 검강을 보는 즉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러나 놈은 달랐다. 하등 꿇릴 것 없다는 듯 더 힘껏 아가릴 찢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재빨랐다.
저리 몸이 크면 조금 둔할 법도 한데 눈 깜짝할 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검강에 바위가 썰려 나가는 것을 보며 스리슬쩍 몸을 트는 등 조심성 있는 모습도 보였다.
무신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백산왕이 이 정돈데 한 수, 아니, 몇 수는 위라는 다른 영물들은 어떠할까.
지금의 힘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장담할 수 없으면 더 강해지면 되는 거고.’
무신은 잡념을 지우며 쾌검을 꺼내 들었다.
파괴력?
그야 그간의 운기조식으로 쌓인 내공과 자연경으로 끌어 모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쾃!
놈의 가죽은 웬만한 내공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다 알려져 있으나 무신의 검 앞에 종잇장처럼 짓이겨졌다.
푸슛!
허연 털 위로 붉은 피가 철철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울음소리에 고통이 어려 있었다. 심지어 초장과는 다르게 무신의 검에 움찔대기도 했다.
고로, 지금이 기회였다.
무신은 더욱 놈을 몰아쳤다. 우악스럽게 벌려진 놈의 아가리야 보신경을 이용해 가뿐하게 피했다.
콰콰콰콰쾅!
난무하는 검강 뒤에서 사위가 지진이라도 난 듯 뒤틀렸다. 여기저기서 바위가 굴러다니고 거센 눈발이 몰아쳤다.
그 반향을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하는 놈과 달리 무신은 차분하게 공격을 이어갔다.
콰콰콰콰쾃!
혈교의 사학도나 살막의 배준성에 비하면 분명 강한 상대였다.
그러나 결국은 놈 역시 호각조차 되지 못했다.
쿠웅!
채 한 시진도 안 되어 풀썩 나자빠졌다. 으르렁대던 아가리는 꺼억꺼억 가쁜 숨과 함께 철철 피만 쏟아낼 뿐이었다.
무신은 비로소 검을 거두었다. 뒤늦은 피로가 몰려왔다.
‘자연경은 진짜 못 할 짓이로군.’
까딱 과하게 썼으면 그대로 골로 갈 뻔했다. 아닌 말이 아니라 지금 온몸에 바늘이 박힌 것 같았다.
무신은 내공까지 모두 집어넣으며 놈에게 다가갔다. 그새 아주 숨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넌덜머리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만 아니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을.’
가죽.
거기에 최대한 손상이 덜 가게 하려 다리나 목덜미 쪽만 노린 탓이었다.
무신은 다시 검을 들었다. 그리고 놈의 가죽을 분리했다. 작업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몸집이 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만 빼면.
한 시진이 지나서야 겨우 작업을 끝낸 그가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핏기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그 영롱함이 느껴졌다.
과연 파천의 삼보라 칭할 만했다.
‘구동에서 잡았으니 파천의 삼보라 하긴 좀 그런가.’
이렇든 저렇든 그야 알 바 없었다.
‘이거 한 벌이 아니라 서너 벌도 더 나오겠는데.’
원체 거구였던 터라 가죽의 크기도 상당했다. 열댓 사람 줄줄이 누워 이부자리로 써도 될 수준이었다.
무신은 그것을 둘둘 말아 놈의 꼬리로 질끈 묶었다.
사냥의 성취보다도 우선 여기부터 내려가야…….
벌거숭이가 된 백산왕의 사체.
검강에 베여 내장과 피를 쏟아내는 그 속에 무언가가 번쩍이고 있었다.
‘……!’
내단이었다.
***
구동 동쪽의 한 의류점.
그곳은 변두리도 변두리거니와 건물 자체도 워낙 노후돼 왕래하는 손님이 하루에 서넛도 채 되지 않았다. 중심부에 의류점이 대거 생겨나면서 요샌 그마저의 손님도 아예 없다시피 했다.
“실력이 좋아봐. 위치가 어떻든 시설이 어떻든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가지.”
구동 주민들이 그곳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팔각수(八各手) 포원경.
그곳의 점주가 한때 패왕각의(霸王各衣)를 만들기도 했던 세기의 장인이란 것을.
어느 날.
그곳에 한 청년이 찾아왔다.
중원 어디서나 볼 수 평범한 무사였는데, 착용한 검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파천검.
포원경은 그것을 대번에 알아봤다. 파천의 삼보라 불리거니와 팔각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몇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무사가 무언가를 끌고 들어왔다.
까만 줄무늬가 죽죽 그어진 허연 털.
보기 드문 가죽이었다.
의아하게 바라보던 포원경이 눈을 부릅뜬 것은, 가죽에서 피어오르는 ‘영기(靈氣)’를 본 직후였다.
그가 떠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거 혹…….”
“예.”
넓이만 열댓 자도 넘을 것 같은 가죽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무사가 말을 이었다.
“백산왕 가죽입니다.”
***
같은 재료라도 어떤 손길이 닿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은 천차만별이게 마련이었다. 백산왕 가죽처럼 영기를 가지고 있는 재료라면 특히 더 노련함이 필요했다.
해서, 포원경을 찾았다.
“중원 바닥에 그 자만큼 실력자도 드물어.”/(이탤릭)
물론 배춘삼의 정보 덕이었다.
“내 이름을 꺼내면 단가가 좀 싸질 걸세.”/(이탤릭)
배춘삼.
실제로 그 이름 석 자 덕에 무신이 제작비로 지불한 은자는 겨우 20냥에 불과했다.
무려 파천의란 파천의 삼보를 만드는 대업에.
그런데 정작 제작자 본인도 아쉬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자네, 크게 될 상이로구먼.”
외려 무신의 미래를 점치며 흐뭇하게 웃기까지 했다.
크게 될 상.
회귀한다고 해서 ‘인상(人相)’이 변하진 않는 법인데, 포원경은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배춘삼도 비스무리한 말을 꺼냈었다.
“자네를 보면 자꾸 내 옛 스승이 떠올라.”/(이탤릭)
배춘삼의 스승.
그자가 누군지 알고 있는 무신으로서는 너무나 과분한 말이었다.
물론 포원경의 말 역시.
‘회귀하면서 얻게 된 힘 덕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인상이 변하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밖에는 해석이 안 되었다.
무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지난 며칠 새 묵고 있는 객잔을 찾았다.
‘삼보로 불릴 만하구나.’
그리고 다섯 벌의 백산왕 가죽옷을 바라보았다.
아니, 파천의를.
주인의 몸에서 벗겨져 특유의 영기는 거의 사라졌으나 속된 말로 때깔은 그대로였다.
보면 볼수록 눈과 손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매료되었다.
다만, 전체가 까맣게 도색됐다는 게 한 가지 흠이었다.
‘어쩔 수 없지.’
본래 상태로 노닐다간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세상에 파천의를 보고 눈 안 돌아갈 이 어디 있겠는가.
파천검?
그야 같은 삼보에 속할 뿐, 가치로는 파천의보다 몇 등급은 더 아래였다. 굳이 조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신은 파천의 한 벌을 몸에 걸치며 품에서 무언갈 꺼냈다.
작은 환 하나.
백산왕의 내단이었다.
무명(無名).
회귀 전의 기억과 배춘삼의 정보력을 더해도 정확히 무어라 설명이 어려웠다.
백산왕 자체가 백 년 가도 한 번 못 볼 만큼 워낙 드문데 그 내단이야 오죽하겠는가.
말하자면, 섭취한 이가 거의 전무해 파천삼이나 백강초처럼 효능이나 특징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이다.
희귀하기로는 만년하수오에도 버금가는 셈이었다.
‘내단도 영약처럼 피로가 쌓여 있으면 몸에 잘 안 받아서 여태 미뤄두긴 했는데.’
비단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부작용.
혹은, 독성.
혹시 모를 위험성을 염려한 탓이었다.
‘염려할 것까지는 없지.’
내단이란 결국 무엇인가.
영물의 몸속에 오랫동안 축적된 기를 뜻한다.
즉, 무인의 단전에 쌓이는 내공과 의의상으로는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바깥에서 축적된 내공을 내 단전 안으로 가져온다고 생각하면 돼.’
그로 인한 반발력을 없애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요, 독성이라면 독성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신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자연경.
그 힘 또한 바깥에서 안으로 들이는 일이니까.
판단이 서자 행동은 일사천리였다.
그는 백산왕의 내단을 덥석 집어 그대로 입속에 집어넣었다. 무취였던 것이 혓바닥 안에선 씁쓸한 맛이 났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 대여섯 번 씹어 꾹 삼켰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