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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5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5화

설성산

 

 

외팔이.

회귀 전에는 분명 그랬던 한길호가 양팔을 멀쩡하게 달고 있었다.

무신은 당황스러웠다.

회귀 전 구동에 온 시점은 앞으로 딱 한 달 후.

한길호가 그 사이에 팔을 잃었단 뜻이었다.

사고?

아니면 원한?

후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길호는 그런 걸 살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진짜 사고라도 당한 건가?’

 

회귀 전에 물어봤으면 의문을 가질 것도 없었겠으나 실례라 생각했다.

괜히 쓰린 상처를 꺼내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서.

 

“이쪽에 보시면 쓸 만한 무구가… 어! 그거 혹 파천검 아닙니까?”

 

의문에 쌓인 무신을 뒤로하고, 한길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명검이라지만 외관상으로는 보통의 검과 그렇게까지 차이가 없는 파천검.

과연 무구점주는 무구점주였다.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예, 맞습니다.”

“이야!”

 

한길호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파천학관에서 으뜸 학관생이 되신 모양이군요?”

“운 좋게 그리됐습니다.”

“운도 다 실력이 있어야 나오는 겁니다.”

 

한길호가 ‘헌데 파천검을 갖고 계시다면…’ 하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선 달리 살 물건이 없으시겠는데요? 제일 잘빠진 것도 파천검보단 못합니다.”

 

무신은 괜찮다며 그 제일 잘빠진 것을 보여달라 했다. 한길호가 의아해하며 꺼내오자 값을 지불하고는 그대로 다시 넘겨주었다.

 

“선물입니다.”

“예?”

 

구입한 검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점주에게 선물이랍시고 주는 손님.

한길호는 당연히 황당해했다.

 

“손님, 제가 지금 이해가 잘…….”

 

여차하면 검을 아예 환불해 줄 기세였다.

무신은 그럴싸한 이유를 댔다.

 

“입문 무사들이 오면 줄곧 도와주신다 들었습니다. 같은 입문 무사로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겁니다.”

“아, 아닙니다. 그까짓 게 무슨 도움이라고.”

 

결코 그까짓 게가 아니었다.

이 작디작은 무구점 하나 운영하는 본인 사정도 뻔한데, 생판 처음 보는 남을 도와준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사코 거절하는 한길호에게, 무신은 더욱 단호하게 나섰다.

 

“받아주십시오.”

 

한길호가 결국 어쩔 수 없이 검을 받아들었다. 그게 예의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검을 한쪽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술이라도 한잔 사드려야겠습니다. 이대론 죄송해서 잠도 못 자요.”

 

무신으로서는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안 그래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회귀 전에 미처 풀지 못한 회포도 풀고 좀 더 은혜도 갚…….

그때.

쾅!

족히 7척도 넘을 듯한 거구의 사내들이 문을 걷어차며 무구점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왕이라고는 해도 저따위 행동은 분명 불편할 것인데, 한길호는 그런 내색 없이 그들을 맞았다.

뒤따라 들어온 자까지 정확히 셋.

개중 가운데 있는 자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말했다.

 

“괜찮은 거 있으면 좀 내와봐.”

 

그러고는 진열된 검을 한쪽으로 쭉 밀며 당연하다는 듯 그 사이에 앉았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실례를 넘어 진상을 부리는 모습에 무신이 외려 더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신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한길호가 얼른 속삭였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예? 아니, 왜…….”

“살막입니다. 괜히 건드리면 복잡해져요.”

 

살막.

구동의 살막.

배준성이 당주로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무신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다. 도선유를 겁탈하려 했던 자들이 바로 그곳 소속이었으니까.

장한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뭘 꾸물거려? 얼른 내오지 않고.”

“예예!”

 

한길호가 부리나케 검 한 자루를 가져오자 장한이 ‘뭐,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네’ 하며 돈도 지불하지 않고 그 검을 가져갔다.

한길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돈은…….”

“나중에 줄게. 이름 달아둬.”

 

한길호가 종전보다 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게 벌써 네 번째십니다. 이번에는 주십시오.”

“뭐?”

“저도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인…….”

 

한길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한이 검을 뽑았다. 감히 제 말에 토를 다느냔 얼굴이었다. 그리고 한길호의 팔 쪽을 향해 가차 없이 검을 휘두… 턱.

무신의 파천검이 그 검을 막아섰다.

역시.

사고나 원한 따위가 아니었다.

쓰레기들에게 쓰레기 짓을 당했던 것이다.

 

“뭐야?”

 

장한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든 말든 무신은 한길호를 서너 걸음 뒤로 물리고서야 시선을 마주쳤다. 아주 토악질이 나와 미칠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이놈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일단은 참아야 했다. 남의 영업장에, 그것도 한길호의 자리에 괜한 피바람을 일으킬 순 없었다.

무신이 말했다.

 

“어디서 행패야?”

 

나지막한 무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한이 일순 움찔했다. 양옆에 있던 자들은 아예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신이 저도 모르게 내공을 발산한 탓이었다.

장한이 떠듬거리며 검을 내려놓았다.

 

“우, 운 좋은 줄 알아!”

 

장한이 한길호에게 으르렁거리고는 일당들과 함께 도망치다시피 무구점을 빠져 나갔다. 아마 머지않아 또 찾아와 더한 행패를 부릴 것이다.

팔 한쪽?

그때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목을 자를 공산도 컸다.

이참에, 아주 뿌리를 뽑아야 할 듯싶었다.

 

“술자리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예? 아, 예예!”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절 도와주신 건데 왜 소란…….”

 

무신은 한길호의 감사의 인사를 마저 듣지 못했다. 달아난 살막 일당을 따라나선 까닭이었다. 우경비에 구보전답만 써도 꽁무니야 쉽게 잡을 수 있었으나 그냥 내빼도록 두었다. 이래되나 저래되나 어차피 뒤질 목숨은 똑같으니까.

살막의 위치?

그거야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다.

구동 서쪽 외곽.

거기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뒷골목.

회귀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워둔 곳이었다. 혹여나 근처를 거닐다가 봉변을 당할까 싶어서.

물론 지금은…….

역으로 봉변을 줄 것이다.

 

‘58명이었나.’

 

굳이 문젯거리를 꼽자면 머릿수인데, 개중 십 수 명은 강호에서도 안 꿀릴 고수이기도 했다.

특히 당주 배준성.

그의 실력은 혈교의 사학도를 앞설 정도였다.

 

‘괜히 당주 자리에 앉은 게 아니지.’

 

그러나 그래봤자였다.

불과 두 시진 후.

그 많던 머릿수와 혈교의 사학도도 앞설 정도라는 자가 무신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쿨럭!”

 

피바다로 변한 살막의 본거지.

숨이 붙어 있는 자는 배준성이 유일했다. 그러나 장기를 크게 다쳐 금방이라도 명줄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가 꾸엑꾸엑 피를 토하며 물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감히 겁도 없이 홀로 살막의 문을 두드리느냐며 비아냥거리던 게 불과 두 시진 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숨을 구걸하는 한 마리 개새끼에 불과했다.

무신이 되물었다.

 

“왜 이러냐고?”

 

배준성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잘못이 있으면 시정하겠습니다! 그러니 목숨은 살려주십시오!’ 하고 급기야 무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고고한 학과도 같았던 살막 당주의 위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무신이 가장 먼저 죽인 당원을 한 명 가리켰다.

한길호의 무구점에 왔던 바로 그자였다.

 

“저놈이 나의 은인의 팔을 자르려 했다.”

“예?”

 

떠듬거리며 ‘어, 어쩌다 그런 일이…’ 하고 말끝을 흐리는 배준성에게, 무신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검을 사려면 돈을 내라.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뭐 그리 아니꼬웠는지 그대로 칼을 뽑더구나.”

“그, 그런 쳐 죽일! 진즉 말씀해 주셨으면 제 선에서 정리했을 겁니다!”

“네 선에서 정리라…….”

“예!”

 

무신은 기가 찼다.

 

“지금 내가 하는 말.”

“예?”

“여기 오는 순간 네 부하들에게 전달했다. 너는 당연히 그것을 들었을 테고. 허나 돌아온 대답은 이처럼 칼부림이었다.”

 

배준성이 다급하게 치고 들어왔다.

 

“저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 정말 전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애당초 들을 생각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무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차피 나도 처음부터 다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니 서로 입장이 똑같구나.”

“아니, 그 무슨… 결국 당원 몇 명이 벌인 일이잖습니까! 그 화를 왜 저희 전부에게 푸십니까?”

 

실핏줄 터진 눈알로 배준성이 그렇게 울부짖었다.

몇 명이 벌린 일.

그런데 피해는 전부에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준성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무신이 품 안의 손수건 하나를 매만지며 물었다.

 

“너는 그럼 왜 도선유를 겁탈하라 지시했지?”

“……!”

 

배준성이 못 들을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설마 그날 내 부하들을 죽인 게…….”

 

무신은 답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도선유 일도 그냥 그 아버지와 거래 하나가 틀어진 것에 불과하지 않았느냐? 헌데 왜 단체로 가 그 지랄을 떨었느냐 이 말이다.”

“그, 그것은!”

“입장 바꿔 생각하면 세상에 이해 안 될 일은 없다.”

 

하고는 무신이 검을 쳐들었다.

배준성이 당주의 체면이고 뭐고 울며불며 애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순간, 무신이 검을 멈추었다.

배준성의 바지춤에 누런 물이 흘려내려서?

불쌍해서?

안쓰러워서?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릴 거면 회귀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떠올라서였다.

 

“유청하를 죽이란 건 누구 사주야?”

 

확실하지 않은 일이었다. 정말 회귀 전 소문대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심쩍었다.

배준성이 유청하를 죽이려 자신에게 돈을 꾸려했다는 도회연의 말도 그렇고.

무신 스스로의 촉도 그렇고.

해서, 질문도 일부러 교묘하게 던졌다. 단순히 ‘혹시 유청하를 죽이란 사주를 받았나?’하면 배준성이 피해갈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미 겁에 질려 거짓을 토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 그걸 어떻게…….”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도, 도회연에게 들으신 거군요.”

 

배준성이 자문자답하며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려 했을 뿐입니다!’ 하고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음을 강조했다.

무신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누구 사주냐고.”

 

사주를 밝히지 않는 것은 살막의 절대 수칙이었다.

그러나 목구멍에 칼날이 닿아 있으면 절대라는 말도 다 허사에 불과할 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하는 배준성이 그 방증이었다.

 

“화, 화산파입니다!”

 

화산파.

무신은 왠지 알 것 같았다.

 

‘유청하. 화산파의 제자로 있다가 급작스럽게 해주로 하산. 설마 그걸 배신으로 간주한 건가.’

 

속사정을 모르니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살막과의 내통만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정파가 사파와 이런 식으로 고리를 만들다니. 같잖지도 않군.’

 

게다가 화산파였다.

정파의 으뜸 문파 중 하나이거니와 평소 의(義)와 선(善)을 문훈으로 내세우는 곳에서 그런 일을 벌이려 한 것이다.

무신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화산파에서 정확히 누구야?”

“거, 거기까진 저도 알지 못합니다! 참말로요!”

 

입에서 피를 튀겨가면서까지 소리치는 꼴을 보니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무신은 슬슬 매듭을 짓기로 했다. 피에 젖어 역한 내를 풍기는 곳에 더 이상 서 있기 싫었다.

무신이 검을 들자 배준성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 상태로 손과 발을 동시에 짚으며 도망쳤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뭐, 뭐든 하겠습니다! 아, 아니면 원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뭐든 하겠다.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주겠다.

무신으로서는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다.

 

“좋다.”

 

짤막한 무신의 대답에, 배준성이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무신의 검은 더 치켜 올라가 있었다.

 

“죽어라.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자 내가 원하는 것이다.”

 

거기까지였다.

 

***

 

강호의 여럿 거점 지역과 비교해도 하등 꿇림이 없는 구동.

그곳에도 유일한 흠이 하나 있었다.

 

“그 개 같은 살막 놈들 때문에 내가 두 다리 뻗고 잠을 못 자, 잠을.”

 

매일 같이 시장과 객잔 등을 어슬렁거리며 말썽을 부리는 살막 때문이었다.

말썽.

아니, 그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조금만 수틀려도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목을…….

 

정확히 550년 12월 19일 오전이었다.

구동 전역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 것은.

 

“사, 살막이 전부 죽었답니다!”

 

충격은 금세 환희로 바뀌었다.

핍박받던 이들에게 새 세상이 열린 것이다.

 

“내 그리될 줄 알았어! 적당히 깝죽대고 다녔어야지!”

“꼴좋다, 빙신 같은 놈들!”

“시체는 어디 있답니까? 저승도 곱게 보내주면 안 돼요, 이거!”

 

급기야 단체로 살막처를 찾아가 배준성을 포함한 모든 당원들의 시체에 꿀을 한 움큼씩 바르고는 근처 뒷산에 내던졌다. 누구 한 명 끔찍하단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이 한 짓에 비하면 외려 새 발의 피였으니까.

그리고 며칠 후 어느 객잔.

한참 술을 마시던 근처 무구점의 점주가, 파천검을 차고 있는 무사에게 물었다.

 

“혹… 소협께서 하신 일입니까?”

 

무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

 

구동 중심부에서 한참 떨어진 동쪽.

거의 대부분이 평지로 이뤄진 구동에서 유일하게 산지가 형성된 곳이었다. 그래봤자 산봉우리 몇 개가 불쑥 솟아난 정도였으나 개중 하나가 중원 전체에서 알아주는 고산이었다.

 

설성산(雪星山).

 

험난하기로는 북해의 엄동설한에 이르며 높기로는 천하제일의 경지에 이르니 걸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간다는 지독한 표국들도 그곳만은 꺼려했다.

 

‘여긴가.’

 

바로 그곳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무신이었다.

 

‘하, 환장하겠군.’

 

한 겨울의 산행.

장소는 하필이면 설성산.

벌써부터 고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신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배춘삼의 말대로라면 지금이 가장 적기이기도 했다.

‘그것’을 보기에.

다만, 꼭 볼 수 있다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천운을 얻어야만 간신히 볼 수 있다니… 모르겠다. 일단 가보는 거야.’

 

말만 그렇지 대비는 다 해두었다. 의식주를 기본으로, 설성산에 살림을 차려도 될 정도로 철저히 했다. 그러나 막상 발을 디디고 보니 과연 설성산은 설성산이었다.

 

별처럼 쏟아지는 눈.

 

소복하다 못해 집채만큼 쌓인 눈에 발 한번 제대로 내딛기 힘들었다. 내공을 쓰지 못했다면 아마 초행부터 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그렇게 몇 시진.

나름 애썼다고 생각했으나 정상은 아직도 저 멀리였다.

바위틈에서 쪽잠을 자며 며칠을 보낸 후에도 한 치 앞조차 깜깜하기만 했다.

문득, 정상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신이 피식 웃었다.

 

‘정상이 없는 산이 세상에 어딨어.’

 

정상이 없는 산.

그 말은 곧 무인에게도 끝이 없단 말과 같다.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마는, 검신에 도달해 직접 검의 끝을 쥐어보았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무신의 산행은 무려 보름간이나 지속되었다. 나날이 두터워지는 추위와 직각이란 말도 우스운 경사에 몸이 말이 아니었다. 내공을 빌려 써먹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호기롭게 설성산에 도전했다가 죽은 자가 한둘이 아니라더니 이래서였어.’

 

실제로 중간중간 발이 걸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부분 시체였다. 올라가는 이로서 올라가다 그렇게 된 이의 꼴을 보는 기분은…….

뭐랄까.

상당히 오묘했다.

물론, 무신은 그에 대해서도 이미 대비를 해두었다.

 

자연경.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만 운용하며 산행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효력이야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어둠뿐이던 시야에 드디어 정상의 끝머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높고 드높은 설성산의 마침표.

몰아치는 설풍과 턱턱 막히는 고산병도 마침표를 찍는단 흥분 앞에선 그저 한 마리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무겁게 디딘 그 걸음들이 모이고 모여 무신은 비로소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하!”

 

한껏 가슴을 펴며 들이키는 숨 한 번에 그간의 노고가 씻은 듯 날아갔다.

주체할 수 없이 커진 흥분은 급기야 그 지겹던 눈바닥에서 몸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었다.

산(山)의 끝과 무(武)의 끝.

정상에 오른 기분은 다 이렇게 무언가 고조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무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없었다.

 

그것.

 

보이지 않았다.

바위란 바위를 죄다 들쑤셔도 털 끝 하나 찾을 수 없었다.

 

“나도 장담은 못하네. 막상 갔는데 없을 지도 몰라.”/(이탤릭)

 

배춘삼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무신은 크게 낙담했다. 애당초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막상 현실이 되니 너무 상심이 컸다.

 

“하.”

 

잔뜩 들떠 있었던 흥분이 삽시간에 회의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혹시 몰라 한참을 있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게다가…….

 

“정상에 없으면 없는 것이라네.”/(이탤릭)

 

라고 했던 배춘삼의 말도 그제야 상기됐다.

무신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언제까지고 미련을 가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수십 년은커녕 백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놈을 바로 보겠다는 게 욕심이었지.’

 

괜한 일을 했단 자책보다는 그저 깨끗한 포기였다.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게.

설성산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도 하늘이 잠잠했던 그날.

결국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하산하던 무신은…….

 

“어어!”

 

난데없이 지반이 무너져 정상 바로 앞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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