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4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4화
보신경
유난히 튀어나온 서적을 빼기 무섭게, 드르륵 서고가 밀리며 또 하나의 방이 나타났다.
널찍한 공간.
그곳에도 종전의 방처럼 먼지 쌓인 서적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무신의 시선이 그 가운데 있는 탁상을 향했다. 범상치 않은 모양을 한 서적 세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범상치 않은 모양.
괜한 표현이 아니었다.
왜 그 무인으로서의 촉이라는 게 있지 않던가.
무신은 쩍쩍 거미줄이 쳐 있는 그곳을 헤치며 가장 위에 있는 서적을 하나 집어 들었다.
우경비(羽輕飛).
깃털처럼 몸을 가벼이 해 내달리는 신법이자…….
비급이었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비급.
그것은 일반적인 무공 교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읽기만 해도 깨달음을 얻어 빠른 시일 내에 통달 수준으로 해당 무공을 익히게 된다.
난해하기에 이해가 어려운 경우도 있으나 어떻게든 해석만 하면 결과는 동일하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이유.
원래 비급이란 것 자체가 문파나 세가 등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교본이다.
혹은 음지의 고수가 비밀리에 남겨놓거나.
특출 난 효과가 없었다면 대대로 내려주지도, 비밀리에 남겨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보도가 여기 있었군.’
진득하게 잡힌 미소가 무신의 입에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
검신에 이른 마당에 아무렴 비급이라도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검법과 신법은 엄연히 다른 성질이다.
게다가 무신은 신법을 익힌 적이 아예 없다.
‘실체가 없으니 몸을 쓸 수가 있어야지.’
마침 고민하던 차였다.
검술이야 하던 대로만 하면 그만이나 신법은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무지하기까지 하니까.
그런데 그냥 신법도 아니고 우경비란 비급을 얻었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탄탄대로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서적이 더 남아 있었다.
우경비를 내려놓고 그 아래 서적을 확인하던 무신은 저도 모르게 ‘허억’ 하고 숨을 삼켰다.
구보전답(九步電踏).
아홉 번의 걸음을 벼락처럼 내딛는 보법이었다.
동시에 우경비과 같은 비급.
유명 문파나 세가, 혹은 마교나 사파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그것이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아직이었다.
구보전답에 흠뻑 취해 있던 무신은 마지막 서적을 보고는 아주 말을 잃었다.
천라지경(天羅地境).
그 말 그대로 하늘의 그물, 즉 구름을 땅처럼 자유롭게 밟고 거니는 신법이었다.
몸이 그만큼 가벼워져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물론 천라지경 또한 비급 중의 비급이었다.
‘구보전답으로 보법을 잡고 우경비와 천라지경으로 신법을 잡으면… 당분간 그쪽 걱정은 없겠어.’
아귀가 척 맞아떨어지니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거기다 모두 비급에 해당되는, 이 엄청난 것이 어찌 이런 곳에 있단 말인가.
‘혈교 주술사가 몰래 빼돌려 숨겨두기라도 했나.’
대충 그렇게 추측이 됐다.
혈교 자체가 본래 보신경에 심혈을 기울이는 집단이기도 하니 이만한 비급을 가지고 있었을 공산도 컸다.
혹 아니라고 해도… 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든 저렇든.
익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좀 미뤄야겠군.’
본래는 죽간 일을 해결하는 대로 파천을 떠날 생각이었다. 파천검에 파천삼, 거기다 도선유도 해결해 더 이상 남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신은 세 개의 비급을 옆구리에 꼈다.
‘이걸 모두 익히고 나서 그곳으로 가는 거야.’
시일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읽기만 해도 절반은 도달하는 게 비급이란 것이며 이후 흘릴 땀이라고 해봐야 숙달에 지나지 않으니까.
다만 그 전에.
‘기본기부터 익혀두자.’
걷지도 못하는 자에게 달리기의 비법을 알려준들 아무런 의미도 없듯 보신경도 똑같다. 기본적인 수련은 해야 한다.
무신은 우선 자리를 옮겼다. 주술사의 방으로 추측되는 곳에서 나가는 것뿐 아니라 아예 산 자체를 내려갔다.
‘혈교 놈들이 오면 괜히 귀찮아져.’
당장은 몰라도 곧 혈교에서 사학도와 휘하 교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똑같이 없애 버리면 그만이겠으나 언제 올지 알고 마냥 기다리는가.
시간 낭비였다.
무신은 제법 떨어진 다른 산을 찾았다.
‘보신경 다지기에 산만큼 좋은 곳도 없지.’
수련은 간단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서 내달리고, 나무나 절벽을 타고 오르며 근력을 기른 후, 나뭇가지나 개울 돌다리를 건너며 몸의 균형을 잡는 것.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아침이나 식후 중간중간에는 귀곡심법을 이용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보신경 때문에 다른 걸 다 제쳐두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
그렇게 한 달.
보신경이래 봤자 그저 몸 가는 대로 내달리는 게 전부였던 무신은 어느 정도 경지를 이뤘다.
6척쯤 되는 사람의 머리를 뛰어 넘는 비월(飛越).
담장을 타고 넘는 월장(越墻).
검술로 따지면 거의 찌르기나 베기의 경지에 불과하나 본인 스스로는 매우 만족해했다.
‘회귀 전이었으면 1년도 더 걸렸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한 해를 꼬박 넘기고서야 간신히 비월과 월장에 통달했었으니까.
무신은 산중턱을 넘어 수풀이 돋아난 평지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제, 우경비에 들어갈 차례였다.
방법이야 외려 비월이나 월장보다 쉽다.
비급.
그걸 펼치기만 하면 되니까.
‘우경비가 이렇게 습득이 빨랐나.’
과연 비급의 힘은 놀라웠다.
불과 사흘.
일주일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우경비의 비기가 모두 머릿속에 들어왔다.
놀라운 한편, 신기했다.
무공을 몸이 아닌 눈으로 배운다는 게.
‘이제부턴 몸으로도 배워야 하지만.’
무신은 우경비 비급을 내려놓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수풀.
발목 아래까지만 아슬아슬하게 덮이는 그 높이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밟고 내달리기 딱 좋은 길이니까.
사삿!
몸이 가벼웠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뛰는 기분이었다.
보름쯤 지나고 나서는, 풀잎을 밟고도 전혀 눌리지 않는 초상비(草上飛)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정말 나풀거리는 깃털과도 같았다.
무신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무인으로서 상승 경지를 이룬다는 건 언제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보름.
그가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아무리 비급이 대단하다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끝냈다는 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골로 변한 무골?
그걸 감안해도 마찬가지였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망령의 숲에서 쌓은 감각이 진짜 없던 재능을 만들어낸 건가.’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천재도 밀어낸다는 것.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무신은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끝내고는 다음 비급을 펴 들었다.
구보전답.
우경비로 신법의 물꼬를 틀었으니 이제 보법도 같이 쌓아가는 것이다.
솨아아아.
구보전답 비급을 다 읽을 즈음해서는 산속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고 있단 뜻이었다.
‘이러니 혈교놈들이 그렇게 빠를 수밖에.’
그렇게 들어간 구보전답은 일보 내지 이보를 딛는 보통의 ‘걷기’를 정말 한 번에 구보를 딛는 ‘뛰기’로 만들었다.
우경비와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아직 엉성한 면이 많았기에 무신은 미친 듯이 그것에만 열중했다.
기간은 한 달로 이번에도 짧았다.
‘됐어.’
이후는 완벽했다.
타탓!
산 속을 내달리는 무신의 발걸음은 가히 전광석화였다.
범인이 보았다면 그저 무언가 지나갔구나 생각하고 말 것이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지막 비급, 천라지경을 읽어 내려갔다.
완독할 때가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호재였다.
눈을 뿌리기 위해 수많은 천라(天羅)가 생겨났으니 지경(地境)으로 응용하기가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뽀드득.
그 소리가 어느 날부터 그의 귓전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답설무흔(踏雪無痕).
진정한 고수들만이 오를 수 있다는 신법의 일면에 오른 것이다.
무신은 그제야 숨을 골랐다.
‘보법은 말할 것도 없고 신법도 아직 상승 경지가 남았지만 일단은 충분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아직 강호도 나가지 않은 자가 깃털처럼 몸을 가벼이 해 아홉 번의 걸음을 벼락처럼 내딛고 땅을 구름처럼 밟는 경우는 결코 없을 테니까.
무신은 어깨를 들썩이며 산을 나섰다.
목적지는 이제 그곳.
구동이 될 것이다.
‘강호로 나가는 거점이기도 하고. 배춘삼이 해준 말도 있고. 무엇보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
구동.
산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파천과 달리 평지가 대부분이라 예로부터 농지와 교통이 발달된 곳이었다.
풍부한 자원과 쉴 새 없는 유동 인구.
그곳에서 가장 이득을 취하는 집단을 꼽자면, 단연 ‘표국’이었다.
자원과 유동 인구를 싣고 근처 지역을 오가며…….
막 구동에 들어선 무신의 눈에 그런 표국 하나가 들어왔다.
상동표국.
구동에서 가장 규모가 큰 표국이었다.
해서 이따금 짐꾼이라 불리는 여타 표국과 달리 입지도 상당했다.
표사들의 실력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무신은 맨 앞에 있는 무사 한 명에 집중했다.
열거부(裂巨斧) 태청운.
과거 강호에서 이름을 날렸던 고수였다.
지금도 실력으로는 여전히 강호의 자격에 충분한데, 모종의 이유로 표사 일을 자처하고 있었다.
‘문파에서 무슨 일이 있다 들었는데.’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다.
이세계 진입 전 벌어진 일이었으며 배춘삼에게서도 그 부분은 듣지 못했다. 그쪽 개방에 들러 캐물으면 모를까.
무신은 해 지면 홍등가에 가겠다며 왁자지껄 떠드는 다른 표사들과 달리 과묵하게 고삐만 쥐고 있는 태청운을 뒤로하며, 구동의 남문에 들어섰다.
시장만 해도 몇 시진은 걸리는 부근이라 인적은 거의 드물었다.
그때.
“혼자 오셨소?”
쥐새끼 한 마리 안 지나갈 곳에 한 중년인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도 혼자 왔는데 같이 갑시다. 아시겠지만은 들어가려면 꽤 멀어.”
“…….”
“응? 왜 이리 말이 없으신가?”
흐리멍덩한 눈에 염소수염.
확실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바로 그자였다.
“아, 먼 길 걸어와 목이 타는 거구먼? 자자, 이거 하나 자시고 가시게.”
중년인이 품에서 작은 물병 하나를 꺼냈다.
어서 마시라는 듯 손을 흔드는 중년인의 몸짓에 따라 넘실거리는 저 액체.
마시면 몇 시간 사지가 굳는 독약이었다.
무신이 역으로 물었다.
“댁이 먹어보시오.”
“예? 아하하.”
중년인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전 목이 별로 안 말라서’ 하고 얼버무리자, 무신은 그대로 파천검을 뽑았다. 독약의 기운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더욱 흉흉한 예기를 뽐내고 있었다.
중년인이 당황스럽게 외쳤다.
“아, 아니, 왜 이러십니까!”
무신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중년인의 목을 벴다.
톡 떨어진 머리통이 무신의 발치에 맞닿았다.
그는 그것을 빈대떡 이기듯 짓밟았다.
‘이제야 좀 실감 나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암습.
이세계에선 일상이었다.
무신은 정말 빈대떡처럼 변한 중년인의 머리통에 칵 침을 뱉고는 다시 정처 없는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군.’
그가 구동 중심부에 당도한 때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던 표국들이 거의 사라질 즈음이었다.
벌써 밤.
그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좀 더 걸음을 서둘렀다.
안 되면 내일 만나도 좋으나 인내심이 한계였다.
눈구멍에 가시가 돋을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무구점.
구동 중심부 한편에 위치한 그곳에 들어서자 수십만 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신은 뚜벅뚜벅 점주에게 걸어갔다.
“뭐 찾는 거 있으십니까?”
들어가서 보니 점주가 계산대 밑으로 수그려 뭔가를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회귀 전의 그 사람임에.
삼류무사 한길보.
구동으로 오는 길에 들짐승을 떼로 만나 거의 빈사에 이르렀던 무신을 치료해 준 이였다.
치료비도 받지 않았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아니, 아예 없었던 무신에게 외려 돈을 찔러주었다.
그뿐인가.
휴식이 필요하다며 객잔을 잡아주었고 험악한 구동에 적응할 수 있게 이런저런 정보도 내주었다.
초입에서 만난 중년인의 정체도 그래서 알게 된 것이다.
무신은 이제라도 갚고 싶었다.
그때의 은혜를.
“괜찮은 무구 있으면 좀 보여주십시오.”
마음 같아선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하고 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지금은 회귀 후.
한길호가 자신에 대해 알 리 없었다.
“예예, 괜찮은 무구야 많지요. 일단 이쪽부터…….”
하고 계산대 밑에 수그리고 있던 한길호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무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