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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3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3화

뒤바뀐 운명

 

 

반 자 정도 되는 풀이 하나 나 있었다.

백색.

날카로운 정상의 바람에도 끄떡없는 줄기.

시큼한 냄새.

무신은 제 눈을 의심했다.

 

‘이건…….’

 

틀림없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나 파천, 아니, 중원 전체를 통틀어 이러한 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백강초(白鋼草).

 

범인이 먹으면 수년 간 기력이 폭증하고 무인이 먹으면 그에 더해 내공 순환이 비약적으로 좋아지는 영약이었다.

무신은 다른 의미에서 기가 찼다.

 

‘나한테도 기연이 오는구나.’

 

운이 좋으면 넘어지기만 해도 연이 닿는다더니 남 일 같기만 하던 이야기가 눈앞에 닥친 것이다.

무신은 좀처럼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회귀하면서 그 망할 운명이 좀 풀린 건가.’

 

저승.

거기서도 인정했던 비루한 운명.

그게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진짜 모를 일이야. 다음에는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우연히 그 아래 동굴에 들어가 공청석유라도 발견할지.’

 

공청석유는 백강초보다 몇 곱절은 더 귀하고 효력이 좋은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무신은 괜한 기대에 젖으며 백강초를 캤다.

한 줌.

두 줌.

세 줌.

흙을 파는 그의 손은 파천삼을 캘 때만큼이나 조심스러웠다. 백강초도 줄기는 몰라도 뿌리는 여느 풀떼기처럼 가느다랗기 때문이었다.

 

‘백강초는 뿌리에 효능이 있거든.’

 

이윽고 뿌리까지 더해 거의 한 자에 달하는 백강초가 그 진귀한 자태를 드러냈다.

무신은 감상할 것도 없이 바로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참을 만했다.

영약만 몸에 흡수시킬 수 있다면야.

 

‘뒷맛은 깔끔하네.’

 

효능은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백강초는 내공 증대가 아니라 내공 순환에 효능이 있는 영약이니까. 고로 심법을 같이 시행해야 돼.’

 

무신으로서는 외려 잘된 일이었다.

파천삼을 이용해 무골을 강골로 만들었겠다, 파천학관에서 어느 정도 감각도 익숙해졌겠다, 마침 지금이 딱 적기였다.

그것을 익히기에.

 

귀곡심법.

 

무신은 그길로 산을 내려와 본격적으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스으으으.

초장부터 놀랄 노 자였다.

기다렸다는 듯 단전에 내공이 감돌았다. 여타 무인이었다면 수년도 더 걸렸을 일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끝난 것이다.

 

‘망령이든 인간이든 일깨움 자체는 동일하니까.’

 

다만 불순물이 많았다. 많다 못해 철철 넘칠 정도였다. 그러나 백강초로 인해 순환이 좋아지면서 그것을 덜어내기도 한결 쉬워졌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단전을 타고 팔다리를 거쳐 온몸에 이르기까지 불과 세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해가 지고 다시 날이 밝을 즈음해서는 그 텀이 한 시진으로 크게 줄었다.

그렇게 며칠.

끼니를 걸러가며 한 탓에 핏기가 쪽 빠졌으나 전체적인 몸의 때깔은 외려 더 반짝였다.

스으으으으!

귀곡심법 특유의 거친 내공이 온몸에 휘감겨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을 형성했다.

발현.

순환력이 너무 좋아지면서 내공이 저 스스로 터진 것이다.

물론, 무신에게만 나타날 경우였다. 내공을 밖으로 빼내는 건 내공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

 

무신은 순환되는 내공을 단전에 쌓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어렵고 말고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자그마치 22만 년.

유림과의 대련을 제하더라도 거진 10만 년이 훌쩍 넘게 심법만 해왔다.

걸릴 게 있을 리 없었다.

·

·

·

이후 일주일.

·

·

·

한 달.

·

·

·

두 달.

·

·

·

거기서 다시 또 보름이 지나고서야 무신은 비로소 눈을 떴다. 텅 비어 있었던 단전에 내공이 가득했다. 오묘한 포만감이었다.

여기서 더 채우면 더 채울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무의미한 짓이 될 것이다.

육신의 한계.

내공이 아무렴 많아봤자 외공이 받쳐주지 못하면 외려 탈이 나게 마련이었다.

 

‘그래도 파천삼 덕에 무골이 강골로 바뀌어 이만큼이라도 축적한 거야.’

 

그렇든 저렇든.

무신이 두 달 하고도 보름 동안 축적한 내공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옅게나마 검강까지는 뽑을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쾃!

파천검 위에 뒤덮이는 흉흉한 기운.

검신을 뚫고 허공을 찌르는 그것은 분명 검강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사실 내공이 얼마나 축적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이제 막 입문에 들어간 무인이 검강을 뽑아낸다는 게 더 중요한 거지.’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수많은 무인들도 족히 십 수 년은 걸리는 게 검강이란 경지였다.

금술이나 영약을 뺀 순수한 ‘자질’과 ‘노력’만을 이용해.

무신은 어떤 의미에서 두 가지 모두 포함됐다.

22만 년의 노력.

그로 인해 회귀에 얻은 자질.

결코 틀린 해석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차피 외공은 금방 올릴 수 있어.’

 

강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앞서 말한 22만 년의 감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측정 불가 등급의 무공.

머리가 기억하는 만큼 손에 각인만 시켜준다면, 금세 축적될 내공의 양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슬슬…….’

 

무신은 기나긴 심법 수련을 끝내고 무언가를 펼쳤다.

대륙력 1550년 7월 15일 19시.

내일이면, 드디어 ‘그것’이 시작될 것이다.

 

***

 

파천 남부.

그 외딴 기슭에 혈교의 교도 17명이 운집해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하나같이 흉흉한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무리를 이끄는 자는 적발검(赤髮劍) 사학도였다.

그가 저 멀리 유독 수풀이 우거진 곳을 가리켰다.

 

“저쪽이다.”

 

그의 지시에 따라 교도들이 일제히 발을 내디뎠다.

살상을 주이자 업으로 삼는 혈교답게 이 고요한 야밤에 발소리 하나 울리질 않았다.

가공할 신법이었다.

 

“여기로군.”

 

목적지.

저 멀리 산의 정상을 끼고 나무와 수풀만 잔뜩 우거진 곳.

확실했다.

죽간으로 된 지도상에도 그리 나와 있었다.

 

“좋아, 여기서 대기한다.”

“예.”

 

소리 낮춰 대답하는 교도들을 뒤로 하며 사학도가 다시 죽간을 살폈다.

대륙력 1550년 7월 15일 19시.

이제 곧 있으면 ‘그곳’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게 끝까지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오래 전, 혈교를 배신한 주술사가 한 명 있었다. 부당하게 취득한 재물을 어딘가 몰래 숨겨두다 들키니 냅다 달아난 것이다.

당연히 오래 못 가 붙잡혔다. 주술을 부리는 게 아무리 대단해 봤자 극한의 상승 경지를 이룬 혈교 무사들의 추적을 따돌릴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사들이 거기서 크나큰 실수를 범했다.

주술사를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 것.

배신자는 무조건 처단한다는 게 혈교의 교리이나 조금 경우가 달랐다.

죽이더라도 빼돌린 재물의 위치를 알고 죽여야 했다.

망연자실한 와중에…….

 

‘지금 이 죽간이 나왔지.’

 

주술사의 집을 뒤지고 뒤져 발견한 물건이었다.

위치.

표식.

날짜.

누가 봐도 빼돌린 재물이 박혀 있을 지도였다. 단순한 지레짐작이 아니었다.

주술을 이용해 입구를 가리거나 감추는 것.

그게 원래 그 주술사의 특기였다.

 

‘듣기로는 탈교한 몇 놈이 또 다른 죽간을 들고 나갔다고 하는데… 제깟 놈들이 여기에 올 수나 있겠어?’

 

사학도가 휘하 교도들을 둘러보았다. 검기는 기본이요, 혈교의 고유 검법을 익힌 그야말로 고수들이었다.

탈교한 몇 놈이 무슨 수를 써도 감당 못 할 수준인 것이다.

백번 양보해 설령 교도들이 밀린다 한들…….

 

‘혈교 서열 37위인 나 사학도를 이길 자는 없지.’

 

강호에서라면 모를까 겨우 파천.

어디 저 허씨 가문의 가주 정도 되면 모를까 그 이하는 다 하룻강아지일 뿐이었다.

그때.

잠잠하던 공간에 대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허공을 찢는 그 날카로운 파공음을 따라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요란한 울림이 일었다.

쿵.

쿵.

쿵.

북소리처럼 진동하던 그것은 일각이 넘게 계속되었다.

 

‘뭐 이리 오래 걸려? 암기라도 걸어놨나.’

 

걸어놔도 상관할 바는 없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기 위해 굳이 이 많은 고수들을 끌고 온 거니까.

이후 다시 일각.

바람과 울림이 그치고 별안간 콰지직! 하는 굉음이 울렸다.

 

“저기!”

 

교도 하나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반쪽으로 쩍 갈라진 수풀.

그 뒤의 작은 입구.

사학도가 번쩍 손을 들었다.

 

“들어가!”

 

교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입구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6척쯤 되는 신장.

서슬 퍼런 검.

혈혈단신의 웬 검객이었다.

뒤에서 유유자적 걸어가던 사학도가 교도들을 물리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뭐야?”

 

교도들의 것보다 더 예리한 듯한 검도 검이요, 이제 보니 무골도 제법 상당했다. 얼핏 봤는데도 우직한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뿐.

사학도가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당장 머릿수로만 따져도 무려 17명과 1명의 차이였다.

 

“탈교한 놈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야밤에 산행하다 우연히 우릴 만난 건가? 참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구나.”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사학도를 아랑곳 않고 검객이 중얼거렸다.

 

“적발검 사학도… 였나.”

“강호와 한참 떨어진 이 파천 바닥에도 내 이름을 아는 자가 있다니.”

 

사학도가 ‘이거 영광이구만’ 하고 덧붙이며 조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교도 하나에게 지시했다.

귀찮다는 듯 손을 휙휙 저으며.

 

“죽여.”

 

사학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 검객이 어떤 검을 들었고 어떤 무골을 가졌든 간에 숙련된 혈교의 고수를… 처억!

교도의 머리통이 사학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놀란 사학도가 고개를 돌렸을 즈음에는, 이미 서넛의 교도의 목이 더 날아간 후였다.

 

“저, 저게 무슨!”

 

쩍 벌어진 사학도의 입은 좀처럼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교도들의 죽음?

그거야 방심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될 수준이었다.

그러나…….

콰콰콰콰콰쾃!

검객의 검에 맺힌 ‘검강’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우라질!”

 

얼빠진 교도들을 뒤로하고 사학도가 급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의 검에도 이내 검객의 그것과 같은 기운이 줄기줄기 휘감겼다.

혈교 서열 37위의 전력.

마실 왔다 생각한 곳에서 무려 검강에 이르는 힘을 꺼내 들게 된 것이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이냐!”

 

마교나 정파의 함정이 의심스러웠다. 탈교한 놈들이 죽간을 넘겨줬거나 빼앗겼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가능성.

달리 생각하면 전혀 없었다.

기껏 파놓은 함정에 달랑 한 명의 무사를 보낼 곳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사학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갈기갈기 찢어주마!”

 

난데없이 절세고수를 만났으나 사학도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외려 자신 있어 했다.

교도들의 혈교 고유 검술.

그보다 더 진보된 혈림대투왕검(血淋大鬪王劍).

얼마 전 통달한 그 검술, 아니, 그 비기가 온몸에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

그의 검신이 붉게 타올랐다.

극도의 쾌(快).

벼락처럼 달려가 상대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유린하는…….

 

보지도 못했다.

혈림대투왕검에 바빴던 게 아니라 정말 상대의 공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커헉!”

 

사학도의 뱃가죽에 검객의 그 서슬 퍼런 검신이 꽂혀 있었다. 강철도 짓이긴다는 검강이니 오장육부가 터지는 것쯤이야 시간문제였다. 두 다리는 이미 지탱 능력을 잃었고 목구멍에선 꾸엑꾸엑 핏덩이도 쏠려 나왔다.

그가 꺽꺽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처억!

검객이 남은 교도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산 중턱이다 보니 퇴로도 없어 어느 한 놈 살아나가질 못했다.

혈교 교도 17명의 떼죽음.

이 일은 이제 어떻게 기록될까.

 

“누, 누구냐 넌…….”

 

겨우겨우 입을 떼는 사학도에게, 검객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길 가던 과객이다.”

 

***

 

죽간.

무신은 그게 아무래도 혈교 놈들의 품에서 나왔다는 게 좀 걸렸다. 놈들이 탈교했다고는 해도 다른 교도들이 모른단 보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해서, 아침 일찍부터 ‘그곳’을 찾았다.

결과는…….

그가 17구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하니 적발검 사학도가 올 줄이야.’

 

혈교 서열 37위에 해당하는 자였다.

승부는 쉽게 끝났으나 결코 쉬운 승부는 아니었다. 앞뒤 안 맞는 말이라기보다는,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전력을 쓴 상대였다.

 

‘그나저나 이놈이 차후 서열 11위까지 올라갔던가. 그래서 웬만한 무인들도 범접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실력 있는 자를 죽였다는 것.

짜릿했다.

회귀 전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존재였으니까.

 

‘신기하군.’

 

성장의 발판이 될 사학도와 그 교도들의 시체를 뒤져 금물을 빼낸 무신은 ‘석 달 전에는 없었던 입구’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과연 주술의 힘은 놀라웠다.

 

‘저 짓이 가능한 건 주술사밖에 없지.’

 

입구는 어린애나 들어갈 만큼 매우 작았다. 머리가 거의 땅에 닿도록 몸을 구부려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곳은, 방.

정말 평범한 방이었다.

오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여기저기 먼지가 풀풀 쌓여 있었으나 방이란 그 형태만은 온전했다.

무신이 ‘염병’ 하고 육두문자를 쏟았다.

 

‘장보도가 아니었나.’

 

객잔 1인실 정도의 넓이.

특별할 게 없었다.

외우기는커녕 읽지도 못할 주술서들이 사방팔방 굴러다니는 것을 빼고는.

 

‘응?’

 

미련이 남아 한참 방을 뒤적거리던 무신의 눈에 이상한 것이 하나 들어왔다.

유난히 볼록 튀어나온 서적 하나.

먼지 때문에 거뭇거뭇한 다른 서적들과 달리 겉면도 깨끗했다.

콰쾃!

무신은 혹시 모를 암기에 대비하며 손에 강기를 주입했다. 그리고 힘껏 서적을 잡아당겼다.

 

‘……!’

 

정말 회귀 이후로 운명이 뒤바뀐 것일까.

백강초.

그것에 이은 또 다른 기연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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