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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1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21화

인연

 

 

자신을 주겠다는 것.

도선유의 말에 당황한 이는 무신보다도 외려 도회연이었다.

 

“선유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게냐?”

“드린 말씀 그대로예요.”

 

그 나이답지 않은 것이야 죽은 흑포인의 머리통을 보며 ‘이게 수급이란 거군요?’ 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또 다른 면이었다.

도선유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무신을 향해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제 뜻을 내비쳤다.

 

“저도 드릴 수 있어요. 여기 이 금자와 드넓은 땅에 더해서.”

 

도선유가 ‘물론…’ 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금자와 땅만큼 가치 있을 수는 없겠지만… 대신 전 항상 유효해요.”

 

항상.

그리고 유효.

아리송한 말에 무신은 그녀의 입만을 주시했다.

도회연이야 이미 얼이 빠져 있었다.

 

“호위 무사 제안을 받지 않으셔도 얼마든지 절 드릴 수 있어요.”

 

앳된 목소리였으나 그 의중만은 결코 어리지 않았다.

진중했고 확고했다.

무신이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첫눈에 반했어요.”

 

첫눈.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도 수십 줄 운율을 박아 넣는 게 저 나이 대 소녀들이었다.

뺨이 불긋하게 달아오른 그녀에게 무신이 말했다.

 

“도움 받은 은혜를 남녀 간 감정으로 착각하고 있구나.”

 

도선유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구분은 할 줄 알아요.”

 

어린애 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도선유는 지금 한 명의 여자로서 눈앞의 남자에게 제 진심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무신도 이제는 그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열다섯.

그녀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설령 그녀가 한 오라기 없는 나신이 되어도 그의 눈에는 그저 ‘소녀’일 뿐이었다.

조혼?

이르면 열다섯이 아니라 열둘 열셋에도 가는 문화?

알 바 무엇인가.

 

“나는 너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가 아니라는 것.

그게 중요했다.

도선유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던 것처럼 무신도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그 마음 접도록 하여라.”

 

여지를 남기면 상대의 입장에선 자꾸 미련이 남게 마련이었다.

무신의 어투가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너 자신을 내어준단 말은 그렇게 함부로 꺼낼 게 아니다.”

“함부로 꺼낸 건 맞지만…….”

 

무신의 거절에 잠자코 앉아 있던 도회연이 더 아쉬운 눈치를 보이는 가운데, 도선유가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절 드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가버린 걸 어떡해요.”

 

그래봤자 그 몇 시간 부대낀 것에 어찌 저토록 안달복달할 수 있겠느냐마는, 조혼에 더해 얼굴 한번 못 본 이와 일평생도 살아가는 게 이세계의 풍습이었다.

그 몇 시간 부대낀 것.

어쩌면 천일야화가 될지도 모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기 이 도선유에게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대화가 이어져 봐야 열다섯 소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넣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무신은 그 길로 도씨세가를 나섰다.

그의 주머니에 도회연이 ‘이 또한 사례입니다’ 하고 준 금자 2냥이 더 들어 있었다.

원화에 빗대면 약 1억 원.

이세계에서 보통 주민이 몇 년을 일해도 못 모을 액수였다.

그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도선유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손에 목련이 그려진 손수건 한 장을 든 채.

 

“검객님! 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그 정도 지칭도 못 받아줄 만큼 무신이 정 없는 사람은 또 아니었다.

 

“그래.”

 

도선유의 신장은 5척 반이 조금 안 되는 정도였다. 무신보다 거의 한 뼘은 더 작았다.

그녀가 빠끔히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걸 반으로 좀 찢어주시겠어요?”

 

무신은 이유를 묻지 않고 도선유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두 개가 된 것을 돌려받은 그녀가 주름 없이 곱게 펴 다시 반쪽을 그에게 건넸다.

이제 보니 목란 아래에 글자가 하나 박혀 있었다.

 

도선유.

 

멀뚱히 그것을 바라보는 무신에게, 도선유가 제 손에 들린 나머지 반쪽을 펴 보였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최무신.

 

어린애 글씨였으나 핏물이 튀어도 지워지지 않을 듯 그 의미만은 선명했다.

도선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와 나의 징표예요.”

“징표?”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아주 나중에나 볼 거 같아서요. 혹시나 오라버니가 날 기억하지 못하면 이걸 꺼내 보여줄 거예요.”

 

무신이 빙긋 웃었다.

 

“너는 날 기억할 거 같으냐?”

“그럼요.”

“어떻게 확신해?”

 

도선유가 대답은 않고 대뜸 ‘조금만 몸을 낮춰주실 수 있어요?’ 하고 물었다.

무신이 의아해하며 상체를 조금 숙였다.

그제야 둘 사이의 눈높이가 맞춰졌다.

그러자…….

그녀가 그대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확신해요, 이제.”

 

***

 

과연 제갈세가는 제갈세가였다.

기초 검술 13개 초식에서 가장 정석이 되는 자세들만을 ‘아주 정확하게’ 암기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작을 하나 외우면 끝나는 게 아니라 동작 안에서 또 몇 가지로 나뉘어. 그 몇 가지에서 다시 또… 염병, 이걸 어떻게 하란 거야?”

 

어느 관생의 중얼거림이었다.

비단 그를 떠나 대부분의 관생이 초식을 펼치기는커녕 그 이론에서부터 버벅거렸다.

무신이 제갈문에게 다가갔다.

 

“대단하십니다, 진 소협. 그렇게까지 외우는 건 아마 교관들도 쉬이 못할 겁니다.”

“아닙니다. 대단할 것까지야.”

 

참말이었다.

제갈문은 ‘서고에 틀어 박혀 달달 검술 교본을 외운 무신을 제외하면 누구도 하지 못할 일’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줄곧 학문만 읊던 사람이라?

그렇다기보다는…….

 

“저는 검술이란 것에 자질이 없는 모양입니다.”

 

암기.

그것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기본기를 다루고 관생들끼리의 대련을 거처 기초 검술에 들어가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제갈문은 벌써 보름이 넘게 일선(一線)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무신이 대뜸 물었다.

 

“학문 하나 떼는 데 보통 얼마나 걸리십니까?”

“예? 짧아도 몇 개월은…….”

“학문도 그만큼을 하시는데 겨우 보름하고 검술에 자질을 운운하시면 그건 너무 욕심이십니다.”

 

제갈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무신이 이어 말했다.

 

“초식을 모두 암기하셨으니 구부 능선은 이미 넘으셨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진 소협.”

 

사실 제갈문이 옳다.

그 간단한 기초 검술의 첫 번째 초식을 보름 동안 붙들고 있단 것은, 자질의 부재를 의미한다.

무신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나 남들보다 느릴 뿐이지 불가능한 게 아니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이후 제갈문은 독기를 품고 수련에 열중했다.

불철주야.

뭐에 홀린 사람처럼 교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 결과에 따라 관생들의 앞날이 바뀔 것이다.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대륙력 1550년 4월 말.

무성학의 지시에 따라 관생들은 파천학관의 마지막 과정에 들어갔다.

그간 익힌 기초 검술의 초식을 펼치는 것이다.

 

“와아……!”

“최 소협은 우리랑 다른 사람 같아.”

 

가장 먼저 결승점을 밟은 관생은 바로 무신이었다.

심지어 무성학에게 ‘내가 감히 판단할 수가 없다’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초식은 완벽했다.

유력한 으뜸 학관생으로 꼽혔던 허장호는…….

무성학이 끌끌 혀를 찼다.

 

“형편없구만.”

 

아닌 말이 아니라 아주 맛이 가 있었다.

1합도 버티지 못한 대련.

그때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실전도 아니고 승패에 뭐 그리 연연하겠느냐마는, 한낱 입문자에게 가문의 비기가 밀렸으니 상심이 클 만도 했다.

무신은 고개를 떨군 허장호를 뒤로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제갈문의 차례였다.

 

‘많이 나아졌군.’

 

당연히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수준을 생각하면 가히 일취월장이란 말에도 어울렸다.

게다가 지금 이 과정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문.

그 자격이 되는가만 보는 것이다.

 

“진갈문. 정말 많이 나아졌다.”

 

단 한 번도 제갈문을 칭찬한 적 없었던 무성학이 박수갈채를 보낼 정도였다.

제갈문의 눈시울이 붉게 젖었다.

 

“감사합니다.”

 

입은 무성학을 향하고 있었으나 눈은 무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꾸벅 목을 숙였다.

역시 무신을 향해서.

 

“다 최 소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회귀 전, 기초 검술은커녕 기본기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던 제갈문은 결국 입문의 경지를 따냈다.

기초 검술은 아직 다듬을 게 많다고 해도 시작이 반 아니겠는가.

금방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수료 당일.

제갈문이 제 정체를 밝혔다.

 

“그게 정말입니까?”

 

무신은 신들린 연기로 ‘이미 다 알고 있는’ 제갈문의 말에 반응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제갈문이 ‘혹여나 세가의 추적이 있을까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고 이해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저 멀리 북쪽을 가리켰다.

 

“강호에 나오시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예? 저를 왜?”

 

또 모르는 척 묻는 무신에게, 제갈문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모르시겠으나 최 소협은 제게 큰 은인입니다.”

 

은인.

무신이 제갈문에게 쌓고자 했던 관계였다.

 

‘이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이뤘군.’

 

무신은 ‘무인의 행보를 시작했으니 다시 부모의 허락을 받아볼까 합니다’ 하고 떠난 제갈문을 뒤로하고 무성학을 찾았다.

이제, 보다 더 큰 목적을 이룰 때였다.

 

“으뜸이 된 관생에게 드리는 상물이온데…….”

 

무성학에게 무신은 여전히 하북팽가의 자제.

무성학이 굽실거리며 무언가를 꺼냈다.

 

“하북팽가의 가보에 비하면 많이 달리겠으나 적어도 이 근방에선 최고로 쳐주는 물건입니다.”

 

고고한 학의 그것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그저 덩그러니 탁상 위에 놓아져만 있는데도 그 고귀함이 손아귀에 감기는 듯했다.

 

파천검(派川劍).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다는 파천의 삼보(三寶) 중 하나였다.

 

***

 

벌써 한 달 보름째였다.

그 반 백 일에 달하는 기간 동안 무신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찾아갔다.

 

“저 왔습니다, 어르신.”

 

배춘삼.

이제는 무신의 발소리만 들려도 배춘삼이 먼저 반응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워져 있었다.

평소처럼 만두에 탁주를 곁들이던 배춘삼이 문득 물었다.

 

“자네, 어른을 공경하라 배워 날 돕는다 했지?”

“예.”

“하지만 조금 이해가 안 되는구먼.”

 

컬컬한 목소리에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공경이란 것도 결국 무언가 추구되는 게 있어야 나오는 성질 아니겠는가?”

“추구요?”

 

배춘삼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지 않는다, 이 말일세.”

 

틀린 말이 아니었다.

특히 ‘남을 신경 쓰다 외려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이 이세계 안에서는 더더욱.

배춘삼은 그 부분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신은 덤덤하게 반응했다.

 

“그렇군요.”

 

배춘삼이 무언가 실망한 투로 물었다.

 

“자네도 그렇단 겐가?”

 

지금 이 갑작스러운 대화.

회귀 전의 기억에 전혀 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무신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비위 맞춰주는 것이야 삼류무사 시절에 질리도록 해왔던 것이니까.

 

“아니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단 걸 지금 막 알았습니다. 공경에 대가라니. 우습지도 않는 심보로군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무신에게, 배춘삼이 ‘정말 올바른 관념을 가지고 있구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제는 무언가 됐다는 듯 입을 뗐다.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지.”

 

늘 흐리멍덩했던 배춘삼의 눈이 매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배춘삼이라고 하네.”

 

개방 방주의 후보로도 거론됐던 절세고수 배춘삼.

그 이름 석 자가 드디어 본인 입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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