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0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0화
무덤
당신들이 약하단 생각은 안 드오?
성격 좀 있는 자였다면 당장 검을 뽑아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굴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다.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속으로만 삼켰다.
한 명이 절반을 잡을 동안 다섯 명이 나머지 절반을 잡았다는 것.
무신의 말이 옳다. 그들은 그보다 약하다. 심지어 결과에서도 밀렸다. 그들이 잡은 루캉 중 일부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에 반해 무신이 잡은 루캉은 전부 숨이 떨어져 있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침묵은 방우돈과 우청길이 대뜸 호들갑을 떨면서 깨졌다.
“대단하구려, 최 대협!”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까 쿠르번인지 구르번인지 그 마물놈은 다친 게 아니었을 거요! 그냥 최 대협의 실력이 굉장했던 거야!”
언뜻 상대의 실력을 인정할 줄 아는 통쾌한 무인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강자에게 빌빌대는 기회주의자들에 불과했다. 15년을 삼류무사로 살았던 무신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입에 침이나 좀 닦고 말하던가 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죽은 루캉들을 돌아보았다.
겉은 영락없이 개새끼인데 속은 정말 마물이란 말에 딱 어울렸다. 툭 튀어나온 어금니가 마치 단검처럼 길고 단단했다. 보아하니 무신을 제외하고는 다들 저것에 한 군데씩 물려서 피를 좔좔 흘리고 있었다. 마형추만 유일하게 멀쩡했다. 확실히 이중에서는 실력자였다.
마침 그 실력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최 대협, 어디서 왔다 했지?”
“파천에서 왔소.”
“딱히 출신은 없다 했고?”
“그렇소.”
마형추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혹, 어디서 폐관수련이라도 하다 온 거 아니요?”
“했지.”
무신은 솔직하게 답했다. 전부 사실대로 말해도 어차피 안 믿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응? 정말이오?”
“그렇다니까.”
“얼마나? 한 30년?”
연거푸 물음표를 던지던 마형추가 ‘아니지. 최 대협 나이가 있는데 어찌 30년을 했겠어’하며 자문자답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대충 10년은 한 모양이오?”
“그 정도로 되겠소?”
“그럼… 15년?”
무신의 나이가 올해로 스물여섯이었다. 15년이 되려면 11살 때부터 폐관수련을 한 셈이 되니 마형추 딴에는 많이 쳐준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기준이었다.
무신은 기나 긴 회귀의 세월을 거친, 일종의 초월자였다.
“22만 년 했소.”
“무, 무슨 만 년?”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 마형추와 달리 다른 이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무신이 그저 농을 친 것으로 본 모양이었다. 역시 사실을 고한들 아무도 믿는 자가 없었다.
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못 믿으면 어쩔 수 없고.”
“못 믿으면이라니? 세상에 22만 년 동안 폐관수련했단 걸 누가 믿소?”
22만 년에 이렇게 성을 내는데 얼마 전에는 산 채로 저승까지 갔다 왔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신은 몹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의문을 해결하자고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순 없었다.
“후, 어쨌든 다들 고생 많았소.”
마형추가 남들 따라 무신의 말을 대충 농으로 넘기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루캉들의 사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여전히 의구심에 가득했다. 빈말이든 아니든 이제는 무신의 실력을 인정하는 두 용병과 달리 그는 아직도 뭔가 미심쩍은 모양이었다.
그와 의뢰인 둘.
세 사람 사이에 묘한 시선이 오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조건, 반드시, 기필코 뭘 해야 한다는 소리 없는 대화가 오갔다.
무신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나오려나’ 하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강호 바닥에서 믿을 자 제 자신뿐이라더니 과연 옛말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마형추가 말했다.
“아직 끝은 아니오. 계속 마물이 나올 테니 경계를 늦추지 마시오.”
경계.
앞으로가 아니라 당장 지금부터 해야 함을 무신 혼자 느끼고 있었다. 동굴에서 나오기 직전, 무형의 화살을 쐈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야를 널리 밝혔다. 폐허. 여기도 저기도 모두 폐허의 연속. 그런데 유독 생기가 넘치는 곳이 있었다. 꿈틀거리며 성난 이빨을 드러내고, 이내 밖으로 뛰쳐나오기까지 불과 찰나였다.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피하시오들!”
“이런!”
“저게 뭐야!”
그들의 반응은 그보다 곱절은 더 느렸다.
제 발이 천리호정보다 빠르다 자랑했던 서예림은 우습게도 어깻죽지 한쪽을 내줬다. 화살은 보통의 그것보다 수십 배는 강력했기에 그녀의 살갗을 모두 터뜨려 안의 허연 뼈를 고스란히 밖으로 돌출시켰다. 분수처럼 터지는 피의 향연 아래 그녀가 고래고래 울부짖었다.
그대로 두면 어깻죽지가 아니라 목이 뚫릴 것이다. 무신은 강기를 두르고 그녀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등 뒤로 숨겼다. 마형추들과 같은 족속을 뭣 하러 살리겠느냐마는, 그녀는 이번 일의 열쇠였다. 그녀가 있어야지만 마물의 산물을 얻는 게 가능하다.
그는 그녀에게 ‘뒤에 얌전히 있어. 뒤지기 싫으면’ 하고 속삭이며 검풍을 날렸다. 아가릴 벌리고 화살 같은 것을 쏘아대던 작은 마물들이 우르르 썰려 나갔다. 말 그대로, 정말 썰려 나갔다. 놈들은 루캉보다 몸집이 작았기에 버틸 여건이 더 안 되었다. 그냥 온몸이 죄 터져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수가 문제였다.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했고, 또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문은 이번에도 땅속이었다.
그는 ‘염병, 땅속에 살림을 차렸나’ 하고 육두문자를 삼키며 있는 힘을 죄다 끌어모았다. 그리고 광범위한 검풍을 발동했다. 범위가 커질수록 위력은 수직 하강 하지만, 저까짓 두더지들에겐 수직 하강 된 것도 치명타였다. 놈들이 그새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얼떨떨하게 서 있는 마형추에게 물었다.
“저놈들은 무슨 마물이오?”
“배, 뱅갈이오.”
“뱅갈… 특이한 이름이군.”
무신이 잡은 뱅갈의 수는 자그마치 500마리도 넘었다. 그런데 이름이 특이하단 게 다였다. 내색은커녕 이내 관심을 껐다. 사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급기야 실소를 터뜨리는 마형추에게 재차 물었다.
“뭐 재미난 일이라도 생각났소?”
“아, 아니오.”
염라가 나타나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은 자가 벌벌벌 말을 더듬는 꼴은 제법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무신을 제외하고는 다들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 역시 입만 열지 않을 뿐, 온몸을 떨고 있었다. 맹수를 만난 사슴의 모습이 저러할까.
무신은 알 것 같았다. 두려움. 초조. 그리고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입술. 회귀 전 매일 같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꿈에서도 적이 쫓아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난 적도 많았다. 회상임에도 그 기억이 생생했다. 다시는 되풀이하기 싫었다. 그는 주먹을 말아 쥐며 높이 고개를 들었다.
뱅갈로 인해 미처 다 보지 못한 폐허의 전경.
색달랐다. 심지어 신기했다. 지리적으로는 분명 백야평야 안인데, 전혀 다른 환경을 띠고 있었다. 혀를 내두르며 ‘이런 땅이 숨겨져 있단 것도 놀랍고, 그걸 찾아낸 주술의 힘도 놀랍군’ 하고 생각하는 그를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서예림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무신은 먼저 걸어가기 시작하는 두 용병과 마형추들 몰래 그녀에게 속삭였다.
“꼭 갚아라.”
“네?”
“감사하면 꼭 갚으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냥 해본 말이었다. 이미 마형추들과 한통속일 그녀가 ‘도움 한 번’ 받았다고 그들을 배신할 리 없었다. 그렇게 가벼운 관계였다면 애당초 이곳에 함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신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모두에게 말했다.
“뭣들 하시오? 갑시다.”
무신은 은연중에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두 용병이야 오히려 본인들이 나서서 그를 그렇게 취급했고, 마형추들도 스리슬쩍 가운데 자리를 내주었다. 강한 자가 중심이 되는 것. 강호의 법칙이었다.
대신 지시는 여전히 마형추만의 몫이었다. 괴상한 지도를 펴 들어 방향을 정한 그는 서예림을 시켜 중간중간 주술을 외우도록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별안간 시꺼먼 길 하나를 세운 것은 약 일각을 걸어갔을 즈음이었다.
뱅갈 500마리를 보고도 눈썹만 살짝 흔들렸던 무신조차 그때는 흠칫 놀랐다. 쩍쩍 갈라져 있던 땅이 세 자쯤 넓이로 시꺼멓게 변했으니 아무 반응도 안 하면 그게 이상한 사람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방우돈은 아주 기겁을 했다.
“이, 이게 뭐요?”
“산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오.”
“산물이 있는 곳?”
마형추가 주위를 살피며 답했다.
“1천 년 전의 마물들은 딱 한 지점에 묻혀 있소. 이 길은 그 지점, 그러니까 마물들의 무덤으로 데려다주는 나침반인 셈이지.”
“그렇구려.”
“무덤은 아까 동굴의 연장선이라 봐도 좋소.”
“연장선?”
“방금 말했다시피 1천 년 전의 마물들이 묻혀 있는 장소요. 화산파의 고수도 잡았던 놈들이 죽어 있는데 어디 멀쩡히 있겠소? 여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최악의 기관진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요.”
마형추가 ‘아차차’ 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요, 말이. 기관진식이라기보다는 놈들이 죽어 남긴 마력이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고 봐야겠지.”
“피해라… 구체적으로 좀 알 수 있소?”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나 이를 테면 이런 거요.”
마형추가 갑자기 몸을 돌려 방우돈의 목에 검을 겨눴다. 서슬 퍼런 날과 파르르 떨리는 목젖 사이의 거리는 불과 종이 한 장이었다. 방우돈은 거기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을 뿐더러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마형추가 그대로 검을 내리며 말했다.
“까딱하면 바로 골로 갈 수 있소. 지금 이렇게.”
“…….”
“걱정 마시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당할 이유가 없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말.
무신은 기가 찼다. 회귀 전, 정신을 못 차려서 그가 그 모양 그 꼴이 된 게 아니었다. 눈이 시뻘개질 정도로 온 신경을 기울였지만 작은 암투 하나 따돌리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결국 힘이다. 위기는 힘이 있어야지만 벗어날 수 있다. 정신? 그저 희망을 연장시켜 줄 뿐이다. 적어도 강호에선 그렇다.
그는 ‘방우돈이 방금 전 아무런 대응을 못 한 것도 똑같아. 마형추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야’ 하고 확신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이어갔다. 분명 시꺼먼 길 위에 폐허가 배경으로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방이 꽉 막힌 지하 통로로 들어와 있었다.
두 용병만이 오두방정을 떨었다.
“내,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어, 어이, 주술사! 네가 한 거냐?”
대답은 서예림 대신 마형추가 했다.
“이 역시 동굴처럼 밝혀지지 않은 지점이라 생각하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주위가 확 바뀌오?”
“착각하나 본데, 바뀐 게 아니오.”
“그럼?”
“방금 말했잖소. 동굴처럼 밝혀지지 않은 지점이라고.”
밝혀지지 않은 지점.
원래부터 존재했던 곳이 주술에 의해 숨겨진 곳.
결국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곳도 1천 년 전에 존재했던 곳이니 마형추의 말처럼 바뀐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방우돈과 우청길도 그 점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뛰다가 발견한 동굴과 걷다가 갑자기 들어온 지하통로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고.
두 용병이 하도 시끄러운 탓에 무신은 이미 다 아는 내용임에도 화제를 돌리고자 물었다.
“1천 년 전의 이곳은 어떤 곳이었소?”
“마교의 본거였소.”
현재는 산서성.
과거에는 마교의 본거.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는지 두 용병의 눈이 그새 또 초롱초롱 빛났다.
“히익! 그럼 무림맹과 여타 연합이 작당하고 마물을 여기에 묻은 거요? 마교도 같이 없애 버리려고?”
“흐음, 속사정은 나도 잘 모르오.”
무신도 그 부분에 대해선 잘 몰랐다. 항간에는 마물을 불러들인 게 사실 마교란 소문도 있었는데, 역시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말이 안 되었다. 그랬다면 차후 마물이 중원을 침입하게 될 때, 마교는 피해를 안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도 다른 문파처럼 똑같이 무너졌다. 마교가 아무리 우둔해도 믿는 도끼에 제 발등이 찍히진 않았을 것이다.
툭.
그 순간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뒷선에서 난데없이 집채만 한 덩어리가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집채.
몸집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기운의 크기였다. 무신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것은 몹시 거대했다.
마형추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까 내 말했지! 까딱하면 골로 갈 수 있다고! 그게 바로 지금이오! 준비들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