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8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8화
마물
무신도 마물을 상대하긴 처음이었다.
회귀 전의 그는 마물은커녕 영물도 못 잡는 하수였으며 애당초 마물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1천 년 전을 끝으로 중원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부분은 오늘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이번 일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사방팔방에서 마물이 쏟아진다. 그것이 중원 전체를 잠식하기까지 채 일 년도 걸리지 않는다. 1천 년 전처럼 무림맹이 도산하고 마교 또한 반파되는 가운데… 아직은 먼 미래였다. 1551년 여름을 지나고 있는 지금은 말이다.
무신은 본인을 마상이라 소개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복면을 써 자신을 꽁꽁 감추고 있지만, 저자가 몰락한 백상교(白象敎)의 전대 교주 마형추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이 마흔다섯에 등 뒤로 검은 반점이 있다는 것까지도. 모를 수가 없었다. 저자는 회귀 전 상당한 유명 인사였다. 이번 일로 마물의 산물을 얻게 되면서.
무신은 ‘그 산물을 가져가려 내가 이번 일에 참여한 거고’ 생각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호오, 마물을 상대할 자신이 있소?”
마형추였다. 무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조금 의심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 무리 중에서 무신이 가장 어렸으며 풍기는 기운도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무골이 괜찮았는데 그도 방우돈에 비하면 범인 수준이었다. 우청길? 그의 무골은 오히려 더 형편없었지만, 배경이 대신 증명했다. 산서악가에 버금가는 하북우가라는 창술의 명가. 게다가 그는 현백창(玄魄槍)이란 절세의 무기까지 들고 있었다.
무신은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자신 있으니 재촉하는 거 아니겠소?”
그가 여유를 보이는 이유야 뻔했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무골은 사실 파천삼을 먹은 강골이었으며 출신은 하북우가 따위가 명함도 못 내밀 저승의 망령의 숲이었다. 현백창 100자루가 모여도 꿈쩍 안 할 흑라신검이란 무기까지. 마형추는 결코 알지 못하겠지만, 그는 모든 면에서 초절정고수 이상이었다. 그러나 구구절절 떠들 필요가 있을까. 그는 다른 이유를 댔다.
“뭐가 그렇게 의심스럽소? 초절정고수들만 뽑으려고 백야평야에 강기도 터뜨려 놓고선.”
무신의 말에 방우돈과 우청길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흠칫 놀랐다.
무신은 ‘뻔하지 않소?’ 하며 입은 두 사람에게, 눈은 마형추에게 던지며 말했다.
“멀쩡한 말이 죽을 정도로 사방에 살기가 깔려 있었는데 그게 초절정고수들을 추리려는 거 아니면 뭐겠소?”
“추려? 그럼 우리 말고도 온 사람이 더 있었단 말이오?”
“못해도 스물은 되었을 거요.”
그렇게 말하며 무신은 아예 입도 마형추에게 주시했다.
마형추가 재밌단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맞소. 추리는 작업을 했소. 최 대협의 말처럼 스무 명은 족히 되었지.”
“허어.”
입을 쩍 벌리는 방우돈과 우청길을 뒤로하며 무신은 원래 하려던 말을 했다.
“어쨌든 그 작업을 뚫고 들어온 사람이니 날 의심할 게 없다 이 말이오.”
“에헤, 의심하진 않았소.”
“안 그런 자가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오?”
뼈를 찌르는 말에도 마형추는 ‘내가 언제 그랬소?’ 하는 식으로 딱 잡아뗐다. 별것도 아닌 것에 억지를 부리니 무신은 조금 부아가 치밀었다. 모가지에서 피가 터져봐야 바른대로 고할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까짓 상황에 얽매일 만큼 그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마형추를…….
“그랬나. 내 착각을 했나 보오.”
무신은 우선 유하게 화제를 넘어갔다.
그러자 우청길이 ‘헌데 말이오’ 하며 다른 화두를 던졌다.
“굳이 비밀에 붙인 이유가 뭐요?”
“비밀?”
“의뢰소장과 우리에게 이번 일을 철저히 숨겼지 않소?”
마형추가 껄껄 웃었다.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마물 잡으러 간다 하면 누가 의뢰를 내주고 또 누가 그 의뢰를 받으려 하겠소? 당장 대협들 얼굴에 지금도 ‘시팔, 괜히 왔잖아’ 하는 게 딱 쓰여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마물이란 말을 들은 직후부터 우청길이나 방우돈이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여태 육두문자 한번 안 뱉은 게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무슨 소리요? 마물이 뭐라고.”
“내 마물쯤은 요 한 손으로도 잡을 수 있소.”
겉으로는 마물보다 더한 놈도 가능하다는 듯 우쭐대지만, 정작 눈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짓가랑이를 까보면 누런 물이 몇 방울 고여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다 ‘그러시오? 너무 꺼려하시면 내 선수금도 안 받고 그냥 돌려보내려 했는데. 잘됐구려’ 하는 마형추의 말에 굉장히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무신은 그 우스운 광경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마물.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마침 마형추가 관련된 설명을 했다.
“다들 대충은 알고 있겠으나 마물은 타고난 힘이 하북팽가와 비교해 한참은 위오. 우리네 내공과 비슷한 마력이란 것도 절정고수를 거뜬히 능가하오. 성질은 산짐승보다 더 지랄 맞아서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 쥐고 씹어 먹지. 고서에 의하면 가장 좋아하는 게 인간 고기란 말도 있소.”
“거, 끔찍하구만.”
이번에도 역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방우돈과 우청길의 관자놀이에 흘러내리는 것은 분명 긴장으로 인한 식은땀이었다.
마형추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렇게 초절정고수들을 모신 것 아니겠소? 게다가 우리 예상은 둘이었소. 한 명이 더 왔으니 일은 이미 성공했다 봐야겠지.”
“싸워봤소? 둘이든 셋이든 성공 유무를 어찌 판단하오?”
“안 싸워봐도 판단은 가능하오.”
“그러니까 어찌?”
마형추가 너무 쉬운 문제라는 듯 답했다.
“방 대협은 비무할 때 꼭 싸워봐야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소? 척 보면 어느 정도 보이지 않소?”
“그야 그렇기는 한데…….”
“물론 실전은 다르오. 변수도 많지. 허나 다 감안하고 둘이면 충분하다 생각했소. 헌데 한 명이 더 왔으니 이미 성공했다 보는 것이오. 아니 그렇소?”
언뜻 들으면 방우돈만 멍청이에 겁쟁이가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틀려도 아주 제대로 틀렸다. 변수는 애초에 어떤 식으로도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변수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감안한다 할 수 있겠는가.
무신은 ‘둘이든 셋이든 그냥 니들 대신에 죽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마형추를 따라 동굴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서 솨아아아아아 괴상한 바람이 불었다. 허공을 찢어발기는 그 속에 짙은 살기가 껴 있었다. 마형추나 다른 의뢰인들의 것이 아니었다.
동굴 밖 마물들의 것.
방우돈과 우청길이 눈을 번쩍 떴다.
마형추가 말했다.
“이제 들어가겠소.”
***
산서와 안휘 사이의 거리는 결코 몇 날 며칠로 좁혀질 게 아니었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불과 하루 만에 안휘의 주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안휘의 주인.
남궁세가의 태상가주 남궁환이었다.
“선검대가 전멸당하고 동행한 남궁성은 제 팔다리를 입에 물고 죽어 있었다…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란 소리냐?”
“죄송합니다, 태상가주.”
“죄송이고 나발이고 정말 사실이냔 말이다.”
“그렇습니다.”
“허.”
수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나 대답만은 확고히 했다. 애초에 한낱 가솔이 태상가주를 상대로 농간을 칠 리도 없었다.
남궁환의 얼굴이 더더욱 굳어졌다.
“어느 집단 짓이야?”
남궁환은 이번 사안을 ‘당연히’ 집단의 일로 치부했다. 혼자, 아니 둘 셋도 적다 느꼈다. 남궁선검대와 남궁성은 결코 그 정도에 당할 이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한 명입니다.”
“한 명이라니?”
“수법이나 사인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남궁선검대와 남궁성은 분명 한 명에게 당했습니다.”
“그 무슨…….”
남궁환은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 겨우 입을 뗐다.
“확실해?”
“예.”
가솔의 대답은 이번에도 확고했고, 남궁환의 얼굴은 굳어지다 못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한 명을 못 당해 그 모양이 된 남궁선검대와 남궁성에 대한 치욕, 그리고 감히 남궁세가를 건드린 것에 대한 분노였다. 아무래도 후자의 영향이 컸다. 태상가주로 있는 그에게 남궁세가란 자부심은 가히 하늘을 찌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간신히 흥분을 억누르며 물었다.
“누구 짓이야?”
“그것은 미처… 현재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염병, 니들이 찾긴 뭘 찾아?”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임을 나타내는 패를 하나 내던지며 남궁환이 말을 이었다.
“개방으로 가. 그거 보여주면 강호 전역의 거지들이 나서서 도와줄 게다.”
같은 정파에 속할뿐더러 개방과는 항상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왔다. 게다가 사실 그쪽만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도 없었다. 패와 함께 몰래 뒷돈 좀 찔러주면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그놈을 앞에 대령해 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궁환은 몰랐다.
찾으려는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개방과 우호 관계에 있음을.
***
어두웠다. 공기에 거머리가 붙었는지 살갗은 끈적끈적했다. 그러나 전자야 내공만으로도 밝아지고, 후자는 여름날 더위만큼는 못 되서 그다지 불편할 거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동굴 밖에 있었다. 입구에서보다 곱절은 더 짙게 몰려오는 살기 탓이었다.
“나가면 마물들이 입 벌린 채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오?”
“미리 확인해 본 바로는 그 정도면 양호하오.”
잔뜩 몸을 움츠려서는 묻던 방우돈이 ‘입 벌린 게 양호면…’ 하고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마형추가 칵칵 가래를 긁어모아 퉷 뱉으며 말했다.
“이렇게 입에서 마력을 쏘기도 하오.”
“마력을 쏴?”
“검풍을 입으로 날린다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요.”
“희한한 족속이로구만.”
내내 그렇듯 말만 그럴 뿐이었다. 방우돈의 머릿속에서 마물들은 이미 희한한 족속이 아니라 두려운 족속이었다. 초절정고수로서의 자존심과 선수금으로 받은 금자 1냥만 아니었다면 진즉 발을 뺐을 것이다. 우청길? 그의 좁은 어깨가 유독 더 좁게 보였다.
무신은 ‘1천 년 전 사건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마형추에게 스리슬쩍 물었다.
“헌데 1천 년 전 마물들이 남겨놓았단 산물이 뭐요?”
“별거 없소.”
“무엇인데?”
“금은보화 정도?”
그 금은보화로 고용한 용병들에게 금자 50냥씩을 준다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답변이었다. 방우돈과 우청길은 그래서 헤벌쭉 좋아했다. 돈에 눈이 돌아가 없던 자신감까지 챙길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무신은 속으로 ‘웃기고 앉았군’ 하며 혀를 찼다. 마형추가 찾는 산물은 결코 금은보화 따위가 아니…….
콰콰콰쾅!
별안간 동굴이 요동치며 거대한 생물체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것은 아가리에 철철 끓어넘치는 괴상한 기운을 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좀 빨리 나타난 듯싶었다.
“마, 마물이오!”
떠듬거리며 소리친 자는 방우돈이었다. 마물이 입으로 마력을 쏘기도 한단 마형추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형추가 검을 뽑아 들며 중얼거렸다.
“너무 시간을 끌었나.”
이어 ‘제기랄, 동굴 밖에서 나온다 하지 않았소?’ 하는 우청길의 외침에 마형추가 ‘배고파서 들어왔나 보오’ 하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따지라면 더 따질 수 있겠으나 우청길은 거기서 그만 관두었다. 마물의 아가리에서 끝을 모르고 커지는 마력. 한가로이 투정이나 부릴 때가 아니었다.
마형추가 놈의 아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 강한 놈은 아니오! 허나 저걸 쏘면 동굴이 무너져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소! 최대한 빨리 처리합… 뭐야?”
놈의 머리통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발화제가 사라졌으니 아가리에 솟구치던 불씨야 바람 앞의 등불만도 못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힘없이 꺼졌다.
흑장포를 입은 자가 검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이놈 이거 이름이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