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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6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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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6화

겉과 속

 

 

1551년 7월 1일 유시.

무신은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슬슬 걸음을 뗐다. 만반의 채비라고 해봐야 별것은 없었다. 파천의를 대충 손보고 건량 따위의 먹을거리를 산 게 전부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산서 북쪽의 백야평야였다. 금자 50냥, 그보다는 ‘특별한 물건’을 얻기 위해서.

술시 전까지는 도착해야 하기에 그는 행보를 조금 서둘렀다. 아직 더위가 한창이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오히려 바람이 불었다. 서늘한 게 뺨을 간질이니 그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도착은 금방이었다. 일찍이 출발하기도 했고, 건초를 양껏 먹은 말이 힘껏 굽을 내디뎌 준 덕분이었다. 그는 백야평야의 전경을 바라보며 잠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양처럼 끝없이 펼쳐진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백야평야는 말 그대로 밤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대낮처럼은 아니더라도 주위 분간은 쉬이 될 만큼 선명하고 밝았다. 똑같은 하늘 아래 어떻게 이러한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그는 그저 신기했다.

찬찬히 안쪽으로 들어가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과장 조금 보태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유야 뻔했다. 이번 의뢰에 참여하려는 ‘초절정고수’는 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못 돼도 너덧 명은 될 것이다.

 

“의뢰 받으러 나오셨소?”

 

커다란 고목나무 같은 몸뚱일 가진 장한이었다. 민머리에 얼굴 가득 괴상한 문신을 새겨서 인상이 더욱 험상궂게 보였다. 등 뒤에 한 자도 넘는 양날 도끼를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부객인 듯싶었다.

무신은 백야평야 초입에서 그를 만났다.

 

“그렇소.”

“나도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시겠소?”

 

구렁이처럼 번들거리는 눈알을 보아하니 난데없이 뒤통수를 쳐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몸 여기저기에 수상쩍은 핏자국도 그득했다. 어떻게 봐도 좋은 쪽으로는 안 보였다. 그러나 무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상하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다.

 

”방우돈이라 하오.”

“최무신이오.”

 

통성명을 하는 사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똥차게 움직이던 말이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다. 말 그대로, 정말 숨을 거두었다. 말이 초절정고수들의 기압을 견디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단순히 기압 때문이라면 길 가는 사람들도 전부 죽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의뢰인들께서 살기를 좀 꺼내 든 모양인데.”

 

심즉살(心卽殺)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살기는 아주 무서운 힘이었다. 한낱 네 발 짐승 따위가 그것을 견딜 리 만무했다.

뒤에도 말 한 마리가 더 죽어 있었다. 방우돈의 말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환영 인사 한번 거하게 해주시는구만.”

“재밌지 않소?”

 

빙긋 웃으며 말하는 무신에게 방우돈이 ‘뭐가 재밌소?’ 하고 반문했다.

무신은 죽은 두 필의 말을 가리켰다.

 

“이놈들에게도 의뢰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게.”

 

방우돈이 ‘의뢰를 숨기고 싶어서 죽였다고? 에이, 설마’ 하고 답했다. 말 못 하는 짐승에까지 신경 쓸 이유가 무어 있느냔 투였다.

무신은 말굽 대신 제 발바닥을 내딛기 시작하며 말했다.

 

“뭐, 가서 들어보면 알겠지. 말 못 하는 짐승에까지 숨길 만한 의뢰인지 아닌지.”

“흐음.”

“갑시다. 어서.”

 

그렇게 말하며 무신은 힐끗 방우돈을 돌아봤다. 구렁이처럼 번들거리던 눈알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혹시나 해서 떠봤는데, 방우돈은 역시 이번 의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의뢰소장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을 무슨 수로 파악했겠는가. 그저 금자 50냥만 바라보고 무작정 뛰어들었을 것이다.

무신?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고의로 살기를 터뜨려 말 두 필을 죽인 게 이해될 정도로 말이다.

 

“헌데 이 의뢰인들은 대체 어디 있단 거요?”

 

생긴 것과 다르게 고분고분 걸어 나가던 방우돈이 백 보도 못 가 짜증을 냈다. 백야평야에 가면 알아서 마중을 나올 거란 의뢰소장의 말과 달리 의뢰인들이 털끝 하나 보이질 않았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돌부리 하나를 걷어찼다.

난데없이 돌풍이 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 뭐야?”

 

사람은 역시 겉모습으로 판단할 게 못 되었다. 돌풍이 아니라 폭풍이 불어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것 같은 자가 얼마나 놀랐으면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창피한 줄은 아는지 얼른 일어섰지만, 험상궂은 얼굴에 몇 방울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반대로 무신은 침착하게 돌풍의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댁들도 의뢰받으러 나왔소?”

 

마흔 초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신장은 7척 정도로 매우 컸는데, 체격은 범인만도 못 했다. 좁은 어깨에 팔다리는 여인네처럼 가늘었다. 그러나 저런 몸집을 하고서 종전의 그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무신은 흠칫 놀랐다. 남자가 돌풍을 일으켜서가 아니었다. 면면을 아무리 훑어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초절정고수쯤 되면 그 얼굴이 알려지게 마련인데, 회귀 전의 기억이나 배춘삼의 정보에 저 얼굴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방우돈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는 문신까지 새기고 있는데. 왜일까. 왜 알 수 없는 것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볼 수 있었다.

일찍이 명을 달리했거나.

이름이 알려질 만큼 실력이 출중하지 않았다거나.

초절정고수이니 후자일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면 전자인데, 무신은 어쩌면 이곳에서 두 사람이 명이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진짜 입막음을 할 거면 말이 아니라 사람을 죽여야 했다.

무신은 우선 남자의 말을 받았다.

 

“그렇소.”

 

사람만 달라졌을 뿐 대화는 방우돈을 만났을 때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나도 같이 갈 수 있겠소?”

“안 될 것 없지.”

 

의뢰인들을 만나면 어차피 한데 모일 사람들이었다. 굳이 거리를 둘 필요는 없었다. 무신은 ‘최무신이라 하오’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식은땀을 닦고 있던 방우돈도 냉큼 입을 열었다.

 

“바, 방우돈이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방우돈은 확실히 겉과 속이 달랐다.

무신은 피식 웃으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청길이오.”

“우씨라…….”

“맞소. 하북우가에서 왔소.”

 

하북우가.

하북하면 팽가가 제일이라 알려져 있으나 우가도 명문이었다. 특히 산동악가에 버금가는 창술은 세간이 인정하는 무공이었다. 과연 우청길의 등 뒤에 날이 바짝 선 창 하나가 매여 있었다. 아마 저것이 돌풍을 일으킨 주범이리라.

무신은 우청길이란 이름 석 자를 곱씹으며 ‘역시 들어본 적이 없어’ 하고 중얼거렸다. 다만 확실히 돌풍은 높이 살 만했다. 보아하니 우청길은 내공도 발현하지 않고 있었다.

못 참겠는지 방우돈이 물었다.

 

“방금 전 그 바람은 우 대협이 일으킨 거요?”

“아, 이거 말이오?”

 

우청길이 창을 꺼내들더니 가볍게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백야평야에 넘실거리던 무언의 연기가 쩌억 갈라졌다. 정확히는, 의뢰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살기가 지워졌다.

방우돈이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내공 안 쓴 거 아니오?”

“그렇소.”

“보기보다 힘이 장사구려.”

 

보기보다.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었으나 우청길은 방글방글 웃기만 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본인의 체격은 형편없었던 것이다.

방우돈이 비로소 여유를 찾으며 물었다.

 

“내공을 쓰면 아주 난리 나시겠소?”

“난리 정도로 되겠소?”

 

우청길이 창을 다시 등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이 백야평야 전체가 박살이 날 거요.”

 

자만이나 허세가 아니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만이 낼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우청길이 곧장 소량의 내공을 터뜨렸는데, 근방이 지진이라도 난 듯 들썩였다.

방우돈이 일순 움찔했다. 돌풍에 겁을 먹었던 순간보다 곱절은 더 눈이 떨리고 있었다.

잠자코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신은 ‘초절정부터는 다르긴 달라’ 하고 생각하며 말했다.

 

“우선 갑시다.”

 

화제가 바뀌니 방우돈의 말문이 가장 소란스럽게 열렸다.

 

“트집 잡으면 내 가만 안 있을 거요. 마중 나와도 모자랄 판에 코빼기 하나 안 비추니.”

“이럴 거면 백야평야의 어디 부근까지 들어와라 하고 미리 말해줬었어야지 원.”

“내 말이 그 말이오, 우 대협.”

 

콧김을 숭숭 내뱉는 두 들소를 양옆에 끼고 무신은 또 정처 없는 걸음을 이어갔다. 그라고 짜증이 안 나겠느냐마는, 오히려 같이 의뢰를 뛸 이들과 인사를 나눴단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고수를 만나는 것.

삼류무사였던 무신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일이었다.

 

“고백도 소장의 소개로 나오셨습니까?”

 

오른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여인이 튀어나온 것은 일각을 더 걸었을 때였다. 그녀는 척 봐도 초절정고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말도 ‘고백도 소장의 소개로 나오셨습니까?’ 하는 게 아무래도 드디어 찾은 듯싶었다. 의뢰인, 혹은 의뢰인과 관계된 자를.

방우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다만.”

 

상대가 존대로 나오니 방우돈은 당연하다는 듯 하대로 받았다. 초절정고수쯤 되면 흔하게 나오는 반응이었다.

여인도 당연하다는 듯 계속 존대로 응대했다.

 

“의뢰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염병, 얼마나 가야 하길래 안내까지야?”

 

육두문자가 나왔음에도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 눈치였다. 마치 이런 상황이 익숙하단 것처럼.

그녀가 공손하게, 그러나 얼굴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반 시진은 더 가셔야 합니다.”

“반 시진?”

 

우청길이 불쑥 끼어들었다. 입만 다물고 있었지 그도 방우돈만큼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우리들 걸음이면 아예 백야평야를 벗어나.”

“예?”

“우리들 걸음으로 반 시진이면 아예 백야평야를 벗어나 버릴 거라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장 기초적인 보법도 초절동고수의 발을 만나면 적토마가 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여인이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천리호정으로도 백야평야를 반 시진만에 꿰뚫지는 못해요.”

“뭐?”

 

지도.

표국.

심지어 행인들까지.

이미 다양한 경로로 백야평야의 전역이 밝혀져 있다. 그것은 분명 초절정고수들의 발걸음 반 시진이면 충분하다. 결코 천리호정이란 절세의 보신경까지 운운할 정도가 아니다. 방우돈과 우청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가운데, 여인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밝혀지지 않은 지점에 한해선 말이죠.”

“밝혀지지 않은 지점?”

“네.”

 

방우돈도 우청길도 여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신은 달랐다. 겉으로만 ‘그게 뭐요?’ 할 뿐 속으로는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이 중에서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바로 그였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설명을… 뭐, 뭐야, 저년!”

 

여인이 갑자기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풍기는 기운은 분명 초절정고수가 아니었는데, 발걸음은 초절정고수의 그것보다도 더 빨랐다.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이 얼른 따라오지 않으면 영영 의뢰를 맡을 수 없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확실히 협박이었다. 그들의 수중에는 아직 선수금으로 받은 금자 1냥이 전부였다.

 

“우라질!”

“저 망할 년, 멈추면 가만 안 둬 내가!”

 

방우돈과 우청길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새 손톱만 하게 작아진 여인을 따라나섰다.

무신은 벌써 달려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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