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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1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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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51화

쓰레기

 

 

진주언가.

산서성에 위치한 그곳은 남궁세가나 하북팽가와 같은 오대세가에는 못 들어도 강호 내에서 나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문이었다. 그래서 무신은 무척 놀랐다. 설마 하니 진주언가나 되는 곳의 여식이 광후채 놈들에게 잡혀 있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무사님을 환대해 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언가희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제 보니 얼굴이 상당히 미인이었다. 혈색이 돋아난 얼굴은 도자기처럼 매끈했고 눈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무신은 광후채가 진주언가라는 배경도 감수하고 그녀를 잡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

“마음 같아선 제가 직접 은혜를 갚고 싶지만 보시다시피 사정이 이래서요.”

 

언가희가 살짝 팔을 벌리며 제 몸을 드러냈다. 혈색이 돋아난 얼굴과 다르게 팔다리와 어깨 부근에 아직도 멍이 다 안 빠져 있었다. 아예 살갗이 찢어져서 반자도 넘게 흉이 진 곳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곳이 이 정돈데 보이지 않는 곳은 어떨까.

 

“무사님?”

 

착잡함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무신은 뒤늦게 언가희의 말에 반응했다.

 

“예.”

“같이 가요! 네?”

 

계획상 어차피 산서로 가려던 참.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언가희가 폴짝 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이토록 순수한 여인이 그 험한 꼴을 당했단 것에 그는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광후채 놈들을 죄 쳐 죽였기에 망정이지 하나라도 살려 보냈으면 아마 복장이 터졌을 것이다.

남 일.

몸이 망가졌든 어쨌든 결국 남 일.

혼자 잘 살잔 주의의 그가 새삼스럽게 남을 걱정하는 이유야 뻔했다. 그냥 저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회귀 전 15년을 힘없는 약자로 살아서일까. 그래,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거슬리게 했단 핑계로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손본 게 벌써 수차례였다.

 

“저흰 여기에 남아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언가희를 제외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여인이 없었다. 돌아가 봤자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한다며 차라리 광후채에 남겠다고 했다. 튼튼한 통나무집에 사방으로 산짐승을 막기 위한 약이 쳐 있으니 살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무신은 관도까지 배웅을 나가겠단 그녀들을 간신히 돌려보내며 언가희와 함께 말에 올랐다. 이후 쉬지 않고 달리다 관도로 들어설 즈음 대뜸 고삐를 풀었다. 그새 더위를 먹었는지 말 대가리가 축 늘어진 탓이었다.

그는 놈을 그늘진 나무에 묶고는 물을 먹였다. 그래도 덜 살 만한지 여전히 눈이 퀭했다.

 

“반 시진만 쉬다 가시지요. 식사도 할 겸.”

“네.”

 

그는 수풀을 식탁 삼아 건량 따위의 요깃거리를 꺼냈다. 좀 더 음식다운 음식을 먹으면 좋겠으나 마행(馬行) 중에 입맛을 챙기는 것은 사치였다.

그런데 언가희가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하며 메고 온 보따릴 풀었다. 고슬고슬한 밥에 쌈, 그리고 과일까지. 외지에 한 상을 차려놓았다.

 

“이건 또 언제 준비하셨습니까?”

“아까 인사하실 때 얼른 했어요.”

 

언가희가 눈을 찡긋하며 한 쌈을 싸 무신에게 건넸다.

그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받아 입속에 쏙 넣었다. 그래봤자 풀떼기에 밥알 얹어진 것에 불과함에도 고기 씹는 것처럼 입안에 감칠맛이 돋았다.

 

“장사하셔도 되겠는데요?”

“아이, 농담도 잘하셔라.”

 

손사래 치는 그녀를 뒤로하며 그는 걸신들린 듯 쌈을 먹어치웠다. 수북이 쌓여 있던 쌈이 금세 삼분지 이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모자라 또 입을 벌리던 그는 그제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그녀를 발견했다.

 

“왜 안 드십니까?”

“전 배 하나도 안 고파요. 무사님 다 드세요.”

 

때가 되도 한참 됐는데 망령이 아니고서야 어찌 허기가 안 지겠는가.

무신은 아까 받았던 것처럼 손수 한 쌈을 싸서 넘겨주었다.

그녀가 ‘가, 감사합니다’ 하며 낚아채듯 쌈을 가져갔다. 오물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귀엽고 풋풋했다.

 

“그러고 보니 언 소저는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열일곱이에요.”

“예?”

 

얼굴에 젖살 하나 없어 방년은 됐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열일곱이었다니. 어려도 너무 어렸다. 다시금 광후채에 대한 분을 삼키는 무신에게 언가희가 물었다.

 

“무사님은요?”

“스물여섯입니다.”

“정말요?!”

 

오히려 그녀가 그의 나이를 더 놀라워했다. 생각보다 많거나 적음를 떠나서 겨우 스물여섯에 어떻게 그만큼의 무위를 갖추었느냔 투였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저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거기에 엄청난 재능도 가지신 거 아닐까요? 십 수 년 넘게 검을 휘둘러도 계속 삼류무사에만 머무는 고수 지망생이 많잖아요.”

 

재능.

십 수 년.

삼류무사.

고수 지망생.

다 회귀 전의 무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게 없었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망령의 숲에서의 22만 년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실을 알 리 없는 언가희는 계속 감탄만 늘어놓았다.

 

“저희 가문에 있는 동 나이대 가솔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무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하하.”

“전생에 저승에서 수련이라도 하다 오신 게 아닐까요?”

 

무신은 순간 흠칫 놀랐다. 세상에 넘겨짚기를 이렇게 정확히 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행히 언가희가 ‘농이 너무 과했죠?’ 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만큼 뭐라 설명하기 힘든 힘을 가지셨어요. 목군호의 머리통이 바닥에 굴러다니는데… 소름이 쫙 끼쳤었어요.”

“목군호. 강한 놈이기는 하죠. 창강을 쓰니까.”

“맞아요.”

 

무신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헌데 어쩌다 잡히셨습니까? 설혹 목군호가 나섰다 해도 언가의 고수이면 꼼짝을 못했을 텐데.”

“네. 가솔들과 함께였으면 잡히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아버지께서 늦은 밤에 잠깐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저 혼자 나갔다가 변을 당한 거죠.”

 

늦은 밤.

심부름.

아비 되는 이는 얼마나 미안하고 상심이 클까.

반대로 언가희는 아비가 원망스럽지 않을까.

그녀가 무신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오히려 아버지한테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조심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

“사실 제가 서녀거든요. 그런데도 항상 잘 챙겨주셨어요. 언니들의 차별에 위로해 주시고 늘 감싸주시고 안아주시고.”

“…….”

“아! 제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길 했죠?”

“아닙니다.”

 

혈통이 굉장히 중시되는 중원.

그러한 곳에서 서녀로 살아가며 언가희가 느꼈을 설움을 이해해 잠시 말을 잇지 못했을 뿐이었다. 고아였던 무신이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마는, 그도 한국에서 입양을 당했다가 온갖 핍박과 멸시를 당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선명했다.

다행히 그녀에겐 아버지가 큰 버팀목이 돼준 모양이었다. 여자로서의 성징이 무너진 것에 조금도 원망을 달지 않을 만큼.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절 아껴주시는 만큼 무사님을 잘 대접해 주실 거예요. 그러니 기대 단단히 해놓으셔야 해요. 아셨죠?”

 

신신당부하는 그녀에게 무신은 왠지 모르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출신을 알았기 때문일까. 한국에서의 기억과 겹쳐지니 자꾸 안 좋은 선입견이 생겼다. 그러나 말만 들어도 그녀와 아버지 사이는 정말 끈끈해 보인다.

그래, 다 선입견일 것이다.

 

***

 

동영 어느 해안가.

동영구도의 일인자라 불리우는 카라하라 마스케가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카모토가 죽었다고?”

 

***

 

무신은 사흘을 꼬박 달려서야 산서 땅을 밟았다. 또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우중충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빗방울이 떨어졌다. 번개 소리까지 들리는 게 아무래도 곧 한바탕 쏟아질 모야이었다.

 

“다 와서 웬 비람!”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가려주는 그녀를 뒤로하며 그는 이상하리만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가 오던 날, 명화진의 죽음을 전해 들어서일까. 연관 짓지 않으려 해도 자꾸 그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물론 그와 달리 그녀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저기예요!”

 

단순히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돌아가서 나오는 기분이 아닐 것이다.

계속 광후채에 잡혀 있었다면 평생 돌아오지 못했을 곳.

그래서 그녀는 다시금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무사님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 끔찍한 곳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쁘군요.”

 

그녀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 반대로 제가 좋은 일을 해드릴게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무신도 거한 사례를 받고 싶었다.

다행히 언가희가 알아서 더 열을 냈다.

 

“말로만 끝나면 안 되죠! 목숨 걸고 구해주신 분한테!”

 

무신은 ‘목숨은 전혀 걸지 않았습니다만’ 하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어떻게 벌써 소식이 전해졌는지 저만치 진주언가의 정문이 열리며 우르르 가솔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개중 가운데에서 달려오는 중년인을 보며 언가희가 끅끅 눈물을 훔쳤다.

언태군.

진주언가의 가주이자 그녀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부리나케 달려가는 언가희를 따라 무신도 언태군을 비롯한 진주언가 가솔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했다. 가솔들의 낯빛이 어두웠다. 날이 흐려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미간까지 찌푸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심지어 언태군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느냐?”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사라졌던 딸’에게 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의 품에 안기려는 언가희를 살짝 내치기도 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네? 네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본인이 더 당황스러울 텐데도 언가희는 ‘괜찮아요, 무사님. 아버지가 놀라서 약간 긴장하셨나봐요’ 하고 속삭이며 무신을 먼저 챙겼다.

긴장.

그 말로 포장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무신은 수상쩍은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날 내 심부름에 나갔다가 광후채에게 잡혔고 줄곧 갇혀 있다가 이 검객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이 말이냐?”

“네.”

 

언태군만이 자리한 진주언가 내의 집회장.

언가희가 눈물을 훔치며 겨우 꺼낸 이야기에도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이고, 내 딸아.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느냐.

광후채 그 쳐 죽일 놈들.

아비가 미안하다.

아비의 잘못이다.

아버지로서 꺼낼 법한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이 정말 ‘그냥 그렇게 됐구나’ 하는 식의 반응이 전부였다. 그러더니 휙 고개를 돌려 무신에게 물었다.

 

“최 소협이라 부르면 되겠나?”

 

무신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으나 우선은 ‘예’ 하고 대답했다.

언태군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대단한 실력을 지녔구먼. 홀로 광후채를 쓸어버리다니.”

“아닙니다.”

“아니기는. 특히 그 광후채의 채주 목군호라 하면 세간이 알아주는 창술의 대가인데, 뭐? 머리통을 잘랐다고?”

 

다시 고개를 돌려 묻는 말에 언가희가 ‘네, 아버지’ 하고 냉큼 답했다. 언태군이 껄껄 웃으며 혼잣말하듯 말을 이어갔다.

 

“강호에는 역시 고수가 참 많아.”

“…….”

“헌데 무슨 이유로 광후채를 쳤는가?”

“녹림 놈들 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냥 도리대로 행동했습니다.”

 

사실은 흑사단과 동영 무사들, 그리고 해동 여인들이 얽힌 특별한 이유가 있었으나 굳이 따지면 지금 말한 게 더 맞는 이유였다.

녹림.

쓰레기가 보여 쓰레기를 치웠을 뿐이었다.

언태군도 ‘그래, 녹림 놈들 죽이는 것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같지’ 하고 비슷한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달랐다.

 

“그럼 이 쓰레기도 같이 치워 버리지 그랬나?”

 

언태군이 끌끌 혀를 차며 언가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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