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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7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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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7화

위장

 

 

눈 뜨고 코, 아니, 귀가 베였으니 장한은 이 순간 무신의 충직한 개가 되어 있었다. 덜덜덜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저 멀리 언덕 위.

유독 큰 통나무집이 있는 곳이었다.

무신은 ‘저기에 목군호가 있는 건가’ 하며 터벅터벅 광후채 안으로 발을 대디뎠다. 어디선가 계속 뭇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원들이 성욕을 해소하는 중인 것 같았다. 뭣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대낮부터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거야?”

“거형 이 자식이지, 또?”

 

귀가 떨어져 나간 종전의 장한이 지른 고통성을 듣고 광후채에 머물고 있던 이들이 뒤늦게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근육질의 웃통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과연 무골 하나는 엄지를 들어줄 만했다.

그들은 가림표국에게 통행료를 받으러 갔던 일원들이 뭐 마려운 양 안절부절못해하는 모습과 그 앞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무신을 보며 퍽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구는 부채주의 머리통.

그들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뭐야… 이거?”

“부, 부채주님이잖아?”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해하지 못할 이는 없었다.

저기 저 흑빛이 감도는 검객이 이 상황의 원흉이란 것을.

사내들이 벽마다 걸어둔 무기를 챙겨들고는 이내 무신을 둘러싸고 포위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채주가 죽자 눈만 끔뻑거리고 있던 뒷선의 일원들처럼 말이다.

그나마 부채주와 서열이 비슷했던 자들이 뛰어들었는데, 용기가 무색하게 결과는 처참했다. 무신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대로 팔이 잘려 나갔다. 검을 쥔 손에 끈적한 피를 질질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쯤 되니 역으로 무신이 사내들을 포위하는 꼴이 되었다.

한 명이 수백을 저지한다는 것.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무신은 조소를 금치 못하며 발치에 와 있는 부채주의 머리통을 밟았다.

피가 빠질 대로 빠진 그것이 그의 발에 닿아 빈대떡처럼 일그러졌다.

사내들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다들 치욕보다는 제 목숨 부지하기에 급급했다. 외려 포위를 풀며 길을 터줄 정도였다.

무신은 난 길을 따라 부채주의 머리통을 목군호의 집이 있는 곳까지 찼다. 힘껏 찰 것도 없었다. 그깟 머리통이 무거워봐야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리고 마침, 광후채의 채주 목군호가 걸어 나왔다.

 

“…….”

 

빈대떡처럼 일그러졌어도 그게 부채주의 머리통이란 것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장한의 보고를 받았을 터, 눈알이 콧구멍에 박혀 있어도 알아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목군호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광후채의 2인자가 하루아침에 머리통만 남은 망자가 되었으니 아무리 그라도… 는 오판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부채주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이깟 놈은 필요도 없다는 듯.

 

“이야, 아주 매몰차시군.”

 

데굴데굴 구른 것이 다시 자신의 발치에 떨어지자 무신은 짝짝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무렴 녹림이라도 정은 있는 줄 알았건만 정말 피도 눈물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높이 살 만한 정신이었다.

의외로 목군호는 거기서 반응했다.

 

“어디서 함부로 아가릴 나불대느냐?”

 

부채주의 목이 잘려 나간 것은 웃어넘겨도 외부인이 제 집 안에서 으스대는 꼴은 못 보는 모양이었다. 목군호가 뒤따라 나온 장한으로부터 거대한 창 하나를 건네받아 성큼성큼 무신에게 걸어갔다.

거대한 창.

정말이지 그것은 기다랗다는 말보다는 거대하단 말이 딱 어울렸다.

무신은 ‘저게 그 유명한 태산창인가’ 하며 그것을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유명세가의 자제의 목도 날렸다더니 과연 그럴 만했다. 내공은커녕 한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무언의 압력이 느껴졌다.

 

“채, 채주께서 노하셨어!”

“다, 다들 물러나!”

 

절세고수의 무위는 과장 조금 보태어 숨만 쉬어도 범인을 잠재우는 법이었다.

광후채 일원들의 경지는 잘 쳐줘야 이류, 높아봤자 일류에 지나지 않으니 저리 두려움에 떠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부채주를 잡아 한껏 기고만장해 있을 텐데, 똑똑히 보여주마. 힘이란 무엇인가를.”

 

수하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목군호가 태산창만큼이나 장대한 기운을 피우기 시작했다.

창기.

아니, 창강.

무신은 ‘영약을 몇 뿌리 씹었다는 게 사실이었나’ 하며 조금 놀랐다. 비단 내공만이 아니었다. 7척을 웃도는 거구임에도 움직임이 재빨랐다. 창술은 어찌나 정교하고 단단한지 흡사 악성권을 보는 듯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외려 악성권보다도 더.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태산창과 부딪친 흑라신검이 요란한 마찰음을 내는 게 그 방증이었다. 두 무구의 줄다리기를 견디지 못해 허공 위로 시꺼먼 기운이 넘실댔다. 그러나 미동도 없는 무신과 다르게 목군호는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힘이란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준다더니 양쪽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한가득이었다.

사내들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채, 채주님께서 꼼짝을 못 하시잖아?”

 

자신이 밀린다는 것에 성이 나 있었는지 목군호가 그 사내의 목을 가차 없이 벴다. 태산창 자체의 길이도 길이거니와 창강이 더해졌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본보기가 됐는지 더 이상 입을 함부로 놀리는 이는 없었으나 정작 목군호 본인이 머뭇거렸다. 태산창만 높이 쳐들고는 계속 제자리만 지켰다.

무신은 늘어지게 하품하며 검을 아래로 내렸다.

대결 중에 무구를 그리한다는 것.

상대를 하룻강아지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무인 취급 자체를 안 한단 뜻이었다.

 

“기고만장한 놈 혼내주겠다면서? 이거 너무 싱겁군.”

 

무신이 따분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가뜩이나 달아올라 있던 목군호의 얼굴이 더욱 시뻘겋게 변했다. 낯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딱 저럴 것이다.

그러나 이후 태산창이 두 동강 나자 목군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란 것을.

물론, 그러한 깨달음은 항상 늦는 법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팔 한쪽이 잘려 나간 목군호의 고통성이 광후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부채주와 마찬가지로 이미 내상도 입을 대로 입은 터라 거품 물고 졸도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무신은 꺽꺽거리는 목군호를 쓰러뜨린 후 나머지 팔 한쪽도 몸통과 분리시켜 주었다. 내공을 빼고 순수한 검날만으로 그리하니 서걱서걱 써는 맛이 있었다. 물론 일부러 사내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충직한 수하로 만들기 위해서.

 

***

 

광후채의 부채주보다 더 괴물 같았던 검객.

소지하고 있던 은자를 죄 쥐어주고는 도망치듯 산을 내려가던 가림표국의 표주 이대성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인상착의가…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았다는 그 검객이잖아?’

 

***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부채주의 머리통은 이제 놀랄 거리도 못 되었다.

목군호.

광후채 채주.

핏기도 가시지 않은 그의 머리통이 광후채 한편에 떡하니 박혀 있기 때문이다. 눈도 채 감지 못한 몰골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게 만들었다.

무신은 그것을 바닥에 박히도록 눌러 밟으며 이호단을 쳐다보았다. 채주와 부채주 다음 가는 실력자였는데, 체격만은 목군호보다 더 거구였다. 그러나 그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은 여린 소녀의 감성을 띠고 있었다.

여린 소녀의 감성.

바들바들 떨며 푹 숙인 고개를 전혀 들지 못하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 인원이 총 몇이야?”

“배, 백사십이 명입니다.”

“개중에 지금 나가 있는 인원은?”

“어, 없습니다.”

 

무신은 사이좋게 여물어가고 있는 채주와 부채주의 머리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뒤진 놈들 빼고 다 있단 소리군?”

“예, 예예.”

“좋아. 너 포함해서 날쌘 놈들로 마흔 여덟만 추려.”

 

갑자기 무슨 의도일까.

그러나 이호단은 물론이요, 누구도 의문을 달지 않았다. 수틀리게 했다가 자신도 채주나 부채주와 같은 꼴을 당할까 두려운 것이다.

이내 인원이 추려지자 무신은 다시 흑라신검을 쳐들었다. 그리고 마흔 여덟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검풍으로 모조리 죽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이호단을 비롯한 마흔 아홉의 사내들이 무슨 짓을 하느냔 투로 튀어 나왔으나 그뿐이었다. 뻘건 잿가루가 되어가는 동료들의 시체를 보며 목구멍에 있는 말을 꾹 눌러 삼켰다. 외려 이호단을 포함해 마흔 아홉에 들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무신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걸상 높이의 바위 하나에 걸터앉았다.

 

“너희 나랑 일 하나만 하자.”

“이, 일이요?”

 

하고 묻는 이호단의 얼굴에 시키시면 뭐든 하겠단 일념이 어려 있었다.

다른 사내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신은 49마리의 순한 양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흑사단으로 위장해 산동 동쪽 해역에서 동영무사들과 거래를 할 것이다. 일이 잘 끝나면 너희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마.”

 

흑사단.

산동 동쪽 해역.

동영무사들.

거래.

앞뒤 다 잘라먹은 말이었으나 이호단이나 사내들이나 모두 그 다음 말에만 집중했다.

 

“저,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

“나는 무인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아.”

“아, 알겠습니다.”

 

안도가 됐는지 이호단이 뒤늦게 의문을 가졌다.

 

“허, 헌데 저희가 왜 흑사단으로 위장하는 겁니까? 동영무사들과의 거래는 또 무엇이고요?”

“그건 알 바 없다.”

 

무신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며 한쪽의 창고 하나를 쳐다보았다. 올 적부터 웬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울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소란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아랫도리가 고프면 홍등가에 갈 것이지 저따위 짓을 하다니’ 하며 이미 다 안다는 듯 창고를 향해 걸어갔다. 문에 손목만 한 두께의 자물쇠가 걸려 있었으나 이호단이 황급히 뛰어와 열쇠를 끼워 넣었다.

드르르.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뒤로 옅은 불빛이 감도는 감옥이 나타났다.

정말, 감옥이었다.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방 안에 갇힌 나신의 여인들.

죄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는데, 분명 산 사람임에도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잘린 목군호의 머리통이 더 생기 있던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신이 들어서자 그녀들이 ‘살려주세요!’ 하고 울며불며 절규했다. 얼마나 창살을 긁어냈으면 손톱 사이에서 피가 새는 자도 있었다.

참담한 광경에 무신은 무어라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것을 ‘어떤 년을 골라먹을까’ 하는 고민으로 착각했는지 이호단이 손을 비비며 끼어들었다.

 

“한 년 잡수시겠습니까? 조련이 잘 돼서 먹을 만하실…….”

“다 풀어줘라.”

“예?”

“일각 주마. 옷도 입혀서 밖으로 내보내.”

 

무신의 어조에 뾰족한 가시가 돋아 있었기에 이호단은 더는 되묻지 않고 여인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48마리 양, 아니, 짐승들까지 동참하니 작업은 금방 끝이 났다. 옷은 마땅히 입을 게 없었기에 기다란 천으로 대충 가렸다.

간만에 햇볕을 쬐는 것일까.

여인들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며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밝은 곳에서 보니 안색이 더욱 핼쑥했다. 서 있는 게 다행일 정도로 앙상한 팔다리와 뻘겋게 물든 허벅다리는 그간의 고통을 짐작케 했다.

무신은 ‘원래대로 광후파가 흑사단으로 위장해 동영무사들과 거래를 했다면 해동의 처녀들도 저 같은 신세가 되었겠지’ 하고 혀를 차며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풀려난 것임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뭐, 뭘 하면 되나요?”

“자, 잘못했어요!”

 

무신은 우선 그녀들에게 안정을 주기로 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십시오.”

 

***

 

산동 동쪽 해역.

거선 한 척이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산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갑판 위로 선원들, 아니, 삿갓을 쓴 자들이 튀어나왔다. 강호에선 동영무사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바다 냄새를 잔뜩 마셨는지 그들의 안색은 대부분 초췌했다. 그러나 이내 ‘이번에 얼마랬지? 금 서른 냥쯤 된다고 했나?’ 하고 ‘에이, 더 되지. 듣자 하니 세가 하나를 통째로 터는 모양이던데’ 하며 다들 싱글벙글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선수에 있던 자가 내려오며 금세 침묵으로 화했다.

동영구흉(東瀛九兇) 중 하나인 사카모토 히사시였다.

 

“떠들지들 말고 가서 물건이나 잘 살펴.”

“예!”

 

물건.

흑사단에게 넘길 해동의 처녀들.

몇몇을 빼고는 죄 방년도 안 된 어린애들인지라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골병이라도 들어 빌빌 대면 값어치가 떨어져 돌아가는 주머니가 가벼워질 것이다.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카모토 히사시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는 길 수고 많았소.”

 

마침내 산동 땅을 밟아 마흔 아홉의 흑사단과 마주한 사카모토 히사시는 껄껄 인사를 해오는 ‘단장 사준환’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운이 거셌다. 거세도 너무 거셌다. 들은 바와 달리 굉장한 고수였다.

그러나 그뿐.

무려 동영구흉에 드는 그가 저기 어디 남궁세가의 무사도 아니고 변변찮은 흑룡강의 무사에게 주눅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만약 대결하게 된다면 능히 십합 안에 자신의 승리로 승부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삿갓을 목 뒤로 넘기며 사준환의 손을 잡았다.

 

“반갑소. 사카모토 히사시라 하오.”

 

그는 꿈에도 몰랐다.

손의 주인이 사준환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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