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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2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2화

위대한 존재

 

 

석영.

수트 차림과 무테안경이 그의 복장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검은 망령의 숲에서 직접 들기도 했던 바로 그 1급 사자의 검이었다.

이름 명 자가 적힌 서적은 더 볼 것도 없이 명부였고.

무신은 그럼에도 제 눈을 의심했다.

석영은 저승의 존재.

어찌 이승에 나타난단 말인가.

 

“최무신 님… 맞습니까?”

 

석영이 다시 물어왔다.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22만 년 전 그날과 똑같았다. 부드럽고 온화한 어조가 묘한 신뢰감을 주는 것이.

무신은 다만 의아했다. 석영이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 보듯 대하는 것은 물론이요, 다시 한 번 명부를 들춰보기까지 했다.

워낙 많은 망령을 상대했기 때문에?

아니었다.

무신은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회귀.

석영의 시점에서 자신은 본래대로라면 15년 후에나 마주칠 존재였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무신은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며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마음 같아서야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했듯 석영의 손에 명부가 들려 있었다. 천하제일무사라도 그것의 범주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무신은 ‘왜 날 찾아온 거지? 설마 저승에 데려가려는 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니, 죽지도 않았잖아?’ 하고 별의별 상념에 빠지며 석영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신분상으로는 무신보다 몇십 단계는 위에 있을 그 석영이 꾸벅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승 홍문 1급 관직 석영.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

 

벌써 몇 달째.

폐관수련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산속에만 틀어박혀 있던 유청하는 잠시 검을 내려놓고 한 남자를 떠올렸다.

 

‘잘 지내고 계실까.’

 

최무신.

생명의 은인이자 사랑…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남자의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는 그녀에게 사랑이란 것은 너무나 쑥스러운 감정이었다.

 

‘보고 싶어.’

 

그래도 마음으로나마 표현은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기분 따라 당장에라도 산을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큼 또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스승.

자신을 마음으로 낳아준 그분의 복수를 해야 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다시 검을 들었다.

 

***

 

위대한 존재.

무신은 자신을 향한 석영의 그 지칭이 무척 낯설었다. 자신은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지극히, 정말 지극히 평범한.

저승에 가서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거기서도 한낱 망령으로 분류되어 다른 망령들과 똑같이 심판을 받았다.

딱 하나 다르다면, 망령의 숲에 들어갔단 것뿐.

석영이 고개를 들었다.

 

“염라가 직접 뵈러 오지 못했음에 매우 죄송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압존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왜 죄송스러워한단 말인가? 망령 하나를 상대하는 일에 염라와 같은 저승 최고위직이 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너그러이 양해라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신은 ‘잠깐, 내가 지금 망령은 아니잖아?’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가 왜 위대한 존재인지요? 전 그저 평범한 인간입니다. 저승에서 모셔갈 망령도 아니고요.”

“예. 평범한 인간이시고 저승에서 모셔갈 망령도 아니십니다. 하지만 위대한 존재이심은 분명합니다.”

“왜죠?”

 

석영이 내내 한 손에 품고 있던 명부를 좌르르 펴 들었다. 정체로 적힌 수십 개의 이름이 주르르 나타났다.

무신은 거기서 ‘무기창’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석영이 말했다.

 

“망령을 영구 소멸시키는 것은 오로지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부디 저승의 입장을 생각해 주십시오.”

 

영구 소멸?

그것은 무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이었다.

저승에서 다시 한번 죽거나 망령의 숲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면 아예 망령이란 존재 자체도 사라지는 것으로…….

그는 무기창이란 이름 아래 정확히 일흔 개의 이름이 이어져 있음을 그제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름 옆 괄호 안에 이러한 글귀가 있었다.

칠십혈천대.

그는 눈을 부릅떴다.

 

“저들은 내가 죽인 놈들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헌데 저들이 나 때문에 영구 소멸을 당했다고요?”

“정확히는, 그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죽이면 그저 망령이 되어 저승에 가는 법이렷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무신은 당최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자세히 설명을 좀 해보십시오.”

“송구하오나 자세히 설명드릴 게 없습니다.”

 

석영이 ‘이번 일은 위대한 존재 본인께서 더 잘 알고 계시니까요. 무엇보다 감히 제 입으로 위대한 존재의 그 힘을 담기 어렵습니다’ 하고 말을 이었다.

무신은 그 난해한 말을 곱씹었다.

위대한 존재.

본인.

그 힘.

문득,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가 있었다.

 

“유… 아니, 신적인 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신적인 힘.

그 힘을 한낱 인간에 불과했던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망령이 아니라 아예 영구 소멸될 만큼.

무신은 ‘내가 검신이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신적인 힘, 그러니까 유림의 검의 영향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의문이 풀리니 이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다. 짜릿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저승에 한해선 석영, 그리고 염라보다 높은 존재가 된 셈 아닌가.

진짜 위대한 존재가 되어서 말이다.

 

“저놈들은 지금 어떤 상태로 있습니까?”

“우선은 망령의 상태로 있으나 머지않아 영구 소멸될 것입니다. 염라의 심판에 상관없이.”

“그럼 제게 부탁하려 한단 것이…….”

 

스리슬쩍 말끝을 흐리자 석영이 냉큼 답했다.

 

“위대한 존재께서 뿌리신 그 힘을 거둬주십시오. 그래야지만 이들이 다시 망령화될 수 있습니다.”

 

거두어라.

그렇게 할 방법을 모르는 것을 떠나 애초에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은 현재 저승에 가 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자가 어찌 그곳으로 간단 말인가.

당연스럽게도 석영은 거기에 대한 대안도 들고 왔다.

 

“이처럼 일흔하나의 망령이 영구 소멸될 정도의 특수한 상황에 한해 저승으로의 이동이 가능합니다.”

 

이해는 갔다. 천인공노의 죄를 저지른 이도 저승의 법도에 따라 염라의 심판은 받아야 하니 특수한 상황이란 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땅한 사유가 있더라도 앞서 말했듯 ‘섭리’를 거스를 수 있느냔 것이다.

무신의 생각은.

 

“산 자가 어찌 죽은 자의 세상에 간답니까?”

“위대한 존재라면 능히 가능합니다. 생과 사를 초월했기 때문이죠.”

 

생과 사.

아, 무신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신선의 경지마저 초월해 자연경을 넘고 신화경에 다다랐으니 어찌 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신적인 힘을 가지고 생과 사의 섭리를 운운한다는 게.

석영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오로지 위대한 존재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 힘이요?”

 

석영이 명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자들을 죽인 그 힘으로요.”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힘을 이용해 저승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힘.

기껏해야 0.1퍼센트밖에 개방되지 않았으며 설령 100퍼센트가 다 됐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무신에겐 그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했다. 당시에도 우연찮게 가동됐을 뿐이었다.

그는 넌지시 물었다.

 

“제가 그자들에게 뿌린 힘을 거두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석영님의 목이라도 날아가요?”

“하하. 제 목으로 끝날 일이라면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석영이 한숨과 함께 답했다.

 

“염라가 죽습니다.”

 

***

 

1551년 4월 초.

벚꽃이 만개한 그날, 도선유는 굳은 결심을 하고서 아버지 도회연을 찾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도회연은 하던 일도 마다하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저, 무사가 되고 싶어요.”

 

겨울이면 늘 골병을 앓는 아이였다.

무골?

당연히 형편없었다. 아무렴 여식이라고는 해도 짐 보따리 하나 제대로 드는 꼴을 못 봤다.

그런 녀석이 검을 들겠다고 하니 도회연의 입장에선 우스갯소리로만 들렸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너무나도 진중하고 확고한 그녀의 얼굴.

그는 웃어넘길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갑자기 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누구한테?”

 

하고 되묻는 도회연은 은근히 자신의 이름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도선유의 입에선 전혀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최무신. 제 미래의 낭군님한테요.”

 

***

 

저승의 왕.

망령을 책임지는 자라는 게 염라가 죽는 이유였다. 저승 안에서 영구 소멸됐다면 모를까 저승 밖에서 그리됐으니 그도 손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영구 소멸될 망령을 되살리는 힘 또한 그에게는 없었다.

오로지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석영의 설명이었다.

무신은 착잡하게 서 있는 석영을 바라보며 ‘냉정히 따져서 나랑은 상관없기는 한데’ 하고 중얼거렸다. 인정이 없는 게 아니었다. 염라가 죽든 어쩌든 어차피 다 저승의 일이 아닌가.

다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염라의 죽음으로 인해 저승에 혼란이 빚어진다면 그것은 큰 문제였다. 아무렴 나만 잘 살면 되는 세상이라고는 해도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그 많은 망령들을 어찌…….

무신은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염라를 살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그는 난해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석영 님?”

 

오매불망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석영이 퍼뜩 ‘예, 위대한 존재여!’ 하고 답했다.

무신은 더욱 골치가 아파졌다.

 

“신적인 힘을 이용하면 저승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말씀이잖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신은 ‘우라질, 완전 기대하고 있잖아’ 하고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헌데 지금 마땅치가 않습니다.”

“마땅치 않다니요?”

“그 힘이 완전하지도 않고 또 쓸 수 있는 여건도 아닙니다. 저승으로 갈 방도가 없어요.”

“…예?”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석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신은 난감했다. 두 다리 없는 이에게서 두 팔까지 자르는 기분이었다.

석영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 힘을 가지셨기에 위대한 존재이신 것인데 그 힘이 완전하지도 않고 또 쓸 수 있는 여건도 아니라는 게… 죄송하오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만 보면 석영의 말이 맞다. 나쁘게 말하면 무신이 아주 개소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회귀’라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모두 설명이 된다. 위대한 존재는 회귀 전의 경우요, 지금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무신은 바른대로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다. 석영도 그래야지만 받아들일 것 같았다.

구멍이 시야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커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잔잔하던 죽림에 돌연 폭풍이 몰아쳤다.

폭풍.

과장이 아니라 그 높디높던 대나무가 죄다 꺾일 정도로 바람이 불었고, 푸르던 하늘은 그새 시꺼메져 장대 같은 번개를 쏟아냈다.

석영이 ‘마, 맙소사!’ 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신은 영문도 모른 채 구멍을 주시했다.

이번에야말로 마물이 튀어나오나 싶어 그의 손이 검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오랜만에 이승 땅을 밟아보는구나.”

 

그런데 구멍 속에서 나타난 것은 어느 여인의 목소리였다.

무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는 검을 거두었다.

 

“최무신이 누구지?”

 

목소리의 주인공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은빛 머리칼.

하얗고 매끈한 피부.

호수를 박아 넣은 듯한 맑고 투명한 눈.

베일 듯 오뚝한 코.

옅은 자색으로 젖은 입술.

조막만한 얼굴 아래 사슴의 그것처럼 뻗은 목선.

쇄골이 훤히 드러난 순백의 드레스.

그날, 마치 성녀처럼 느껴졌던 존재가 싱긋 웃으며 구멍 속에서 걸어 나왔다.

유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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