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1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41화
구멍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무신의 검에 줄기줄기 치솟는 검강을 보는 순간, 악성권은 그 말을 퍼뜩 이해했다. 말 그대로 자신과 차원이 달랐다.
창강이든 검강이든 경지는 같지 않겠느냐마는, 전혀.
내공의 양에 따라 위력은 천차만별이었다.
“허허, 스스로 무덤을 팔 뻔했군요.”
물론 내공만이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다.
창술.
보법.
신법.
그리고 경험.
다른 요소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포함해도 마찬가지였다. 악성권은 무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 가주께서 밀려났어!”
검술은 대부분이 측정 불가의 등급을 가졌으며 보법과 신법은 비급과 비기로 무장, 아직 서른 줄도 되지 않았으나 경험 역시 한참을 앞섰다. 망령의 숲에서 유림과 10만 년도 넘게 대련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외려 그러한 무신과 ‘십오합’이나 견뎠단 것에 의의를 둬야 했다.
뒤로 물러서 헉헉거리고 있는 악성권은.
“대, 대체…….”
“어, 어디서 저런 고수가 나타난 거야?”
“마, 말도 안 돼!”
구경꾼들 반응이야 뻔했다. 진즉에 무신을 봤었던 악구형과 몇몇 무사들을 제외하면 다들 하나같이 동태의 그것처럼 눈을 뜨고 있었다. 시중 중에는 너무 놀라 바구니를 떨어뜨린 이도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악가의 가주 악성권이 누구던가.
산동을 호령하며 창술 하나로 가히 강호 최강의…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검과 창.
내공이 같단 전제하 실내를 벗어나면 후자가 전자를 누른다는 게 정설이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공격 범위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주 빗나갔다.
공격 범위?
열다섯 번의 합에서 악성권은 무신을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저 온 것을 받아낸 것뿐.
공격 범위란 말 자체를 운운하는 게 우스웠다.
“이, 이게 무슨…….”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악가의 창술도 생사를 걸며 쌓아온 숱한 경험도 다 무용지물이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벽에 부딪친 것 같았다. 악성권이 창을 거두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최 대협.”
“가주께서도 아주 훌륭하시군요.”
“훌륭은요.”
손을 내젓는 게 빈말이라 보는 모양이었으나 무신은 진심이었다. 악성권은 회귀 전 보았던 그 어떤 창객보다 강했다. 내공을 제외하면 무기창보다도 한 수 위일 것이다.
무신은 왠지 갈증이 나서 시중에게 물을 부탁했다. 얼이 빠져 있던 그녀가 얼른 한 바가지를 떠 왔다.
그는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구멍이 시원하게 젖으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악성권이 스읍 입을 훔치는 그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실 최 대협은 반로환동을 한 절세의 고수인 것이지요?”
“하하.”
깨달음의 경지.
환골탈태도 거쳤던 마당에 반로환동이라고 못 할 바가 없었다. 비록 망령의 상태였다 할지라도 어떤 의미에선 반로환동을 한 것이다. 무신의 하하 하는 어색한 웃음 뒤에는 그러한 속사정이 있었다.
“농입니다만, 그만큼 놀랍습니다. 최 대협의 무위는.”
그러면 그렇지.
악성권도 그냥 우스갯소리로 던진 것이다.
***
하북.
팽가가 주름잡고 있는 그곳에 한바탕 파란이 일었다. 하성운이란 이름의 신출내기가 팽가의 가솔과의 ‘힘 대결’에서 연달아 넷을 꺾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혀를 내두르며 ‘천하에 당신 같은 장사는 또 없을 것 같소’ 하는 말에 하성운은 이렇게 말했다.
“있소. 심지어 그, 아니, 그분은 겨우 장사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분이오.”
***
정오.
수라상과 다름없는 만찬을 먹은 후 악성권이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장신구가 치렁치렁 달린 작은 상자였는데,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내용물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무신은 모르는 척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제 마음입니다.”
제 마음.
예상대로였다.
슬쩍 상자를 젖히니 번쩍거리는 금빛 알맹이가 열댓 개도 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겠다는 척 눈을 동그랗게 뜨는 무신에게 악성권이 양 눈에 의지를 활활 태우며 말했다.
“앞으로 우리 악가를 잘 봐주십사 합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돈을 빌미로 좋은 관계로 지내보자 하는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은 거의 구걸이었다.
납작 엎드리지만 않았을 뿐.
무신은 이번만큼은 정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악가를 잘 봐주고 어쩌고 하겠습니까?”
“지금은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악성권이 ‘허나’ 하며 말을 이어갔다.
“장차 분명 큰 자리에 앉으실 겁니다, 최 대협은.”
“무얼 근거로 그리 말씀하십니까?”
“무인은 자신의 가치를 무위로서 증명합니다. 최 대협은 당장 문파 하나도 만들 수준이니 큰 자리 하나쯤이야 따놓은 당상 아니겠습니까?”
활활 타오르다 못해 번쩍거리기까지 하는 악성권의 눈을 보며 무신은 ‘별일이군’ 하고 속으로 웃었다.
당장 문파 하나도 만들 수준.
기초 검술조차 잘 다루지 못했던 자신이 그만한 평가를 받는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그것도 무려 악가의 가주에게.
악성권이 ‘아차차’ 하며 급히 말을 덧붙였다.
“뒷돈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현 상황에서 최 대협을 잡아둘 수단이 이뿐임을 알아주십시오.”
“뒷돈이라니요. 다 절 신경 써주시는 마음인 것을.”
“그리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신은 금자를 품에 넣었다.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 아니, 필요가 없었다. 도움은 안 되도 뒤통수 맞을 걱정은 없는 게 악가이며 무엇보다 금자 열댓 개란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것도 받으시지요.”
보석까지 내주고 있었다.
***
혈교 본거.
정기 집회 날이 아님에도 장로들을 비롯한 혈교 내 실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다들 안색이 퍼런 것이 무슨 사단이 나기는 난 모양이었다.
먼저 자리에 착석해 있던 장로 하나가 탁상을 쾅! 하고 내려치며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냐!”
장로의 뒤늦게 착석한 이들이 움찔거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산동으로 가는 평야.
그곳에서 ‘그놈’을 쫓다가 전멸한 칠십혈천대와 무기창.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내 부끄러워 들 낯짝이 없다, 낯짝이!”
장로라는 게 일선에서 벗어난 위치라고는 해도 이 정도 대사에는 아니 참견할 수가 없었다.
한참 오가던 고함이 잦아든 것은, 서열 1위 홍전풍(紅電風) 허대건이 들어온 직후였다.
“저희라고 무기창이 당할 줄 알았습니까? 어지간히 하십시오.”
“뭐? 어지간히?”
“안 그래도 혼잡스러운 판을 괜히 더 달구지 말란 소립니다.”
“네, 네놈이!”
장로가 노발대발하며 벌떡 일어섰으나 거기까지였다.
허대건은 교주의 촉망을 받는 자.
게다가 서열 1위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실력적으로도 따라갈 자가 없었다.
장로의 권력?
그것도 힘 앞에선 모두 한낱 껍데기일 뿐이었다.
허대건으로 인해 자리에 무거운 적막만이 흐르는 가운데, 드디어 그가 들어왔다.
혈추귀 적라성.
혈교의 교주였다.
“희한한 일이로군.”
적라성은 의외로 침착했다.
옅게나마 미소까지 띄우며.
“그렇게 죄다 당할 줄이야.”
적라성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허대건을 쳐다보았다.
“표적이 하나라고 했나?”
“예. 보고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산동 평야에서도 그 한 놈에게 당했단 것이고?”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아무래도…….”
허대건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부끄럽다 못해 치욕.
혈교의 간판과도 같은 교도들이 겨우 한 명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어찌 담담히 알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적라성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홀로 칠십혈천대와 무기창을 잡다니. 대단해. 아주 대단해.”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네가 보기엔 그놈이 어디 출신 같아?”
허대건은 냉큼 답했다.
“강호 쪽 문파는 아닐 듯싶습니다.”
“어째서?”
“감히 누가 혈교를 건드리려 하겠습니까?”
“후, 그래. 이 바닥에서 우리 혈교를 건드리면 병신이지. 죽여달란 거거든.”
허대건이 ‘맞습니다, 교주님’ 하며 말을 이어갔다.
“혹, 새외무림은 아닐까요?”
“새외? 어디?”
“저기 북해빙궁에서 내려온 무사라던지.”
“일리는 있는 소리다만 그놈 파천검을 들고 있다면서?”
“아, 예예.”
“파천검이 파천의 삼보라고는 해도 북해의 이름난 검들에 비하면 보통 철검에 지나지 않을 뿐이야. 뭐, 어디 출신이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외려 더 잘됐다.”
“예?”
적라성이 히죽 웃었다.
“그놈 잡아다 강시로 쓴다.”
***
다음 날, 산동 동쪽.
무신은 금자와 보석으로 든든한 배낭을 안고서 인적 드문 산행에 올랐다. 파천의 그 골짜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서너 걸음에 한 번은 돌부리가 채일 정도로 길이 험한 곳이었다. 신법이나 보법이 없었다면 아마 초입부터 발길을 돌렸을지도 몰랐다.
그가 발을 멈춘 것은 해가 중천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우거진 수풀이 그새 자취를 감추고 없었고 대신 푸르른 죽림이 잔뜩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그 대단한 신법과 보법도 더위까지 막아줄 순 없는 것이다.
그는 목을 축이며 육포 하나를 씹었다. 수련을 하러 간다 했더니 그 점소이가 특별히 만들어준 음식이었다. 그깟 고깃덩어리 말린 것이 무슨 음식이 되겠느냐마는, 먹어보니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연하고 잘 물리지도 않았다.
과하게 배를 채우면 외려 수련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간단히 요기만 하고서 그는 흑라신검을 들었다. 죽림 사이로 들어오는 몇 줌의 햇살에 특유의 흑빛 검신이 옅게 번쩍였다. 내공을 주입하자 그것은 희멀건 광채가 되었다.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파천검보다 내공을 빨아들이고 발산하는 힘이 더 크게 느껴졌다. 과연 명검은 명검이었다.
그는 ‘산동의 죽림만큼 검술을 키우기 좋은 곳도 없지’ 하며 본격적인 수련에 나섰다. 죽림 특유의 정기가 온몸에 흡수되니 길바닥에서 검을 들 때보다 몇 곱절은 가벼운 움직임이 나왔다.
그가 하려는 수련이야 물론 뻔했다. 철교 교주의 철룡광랑검법을 필두로 ‘감각’밖에 남지 않은 망령의 숲에서의 검술을 하나하나 쌓아갔다.
쌓아간다는 것.
말이 그렇지 실상은 현재의 몸에 익히는 것뿐이었다.
수련은 몇 날 며칠이 가도록 계속 되었다. 지루할 법도 하건만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운기조식까지 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회귀 전,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수련.
외려 땀 흘릴 수 있다는 것에 그는 감사했다.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죽림이 크게 흔들렸다. 급히 천라신경을 발동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앞에 시꺼먼 구멍이 하나 생성됐다.
정말, 구멍이었다.
성인 남자가 들어갈 정도로 제법 커다란 그것이 허공을 뚫고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물이라도 소환되는 것일까.
바짝 검을 고쳐 잡는데, 구멍 속에서 희뿌연 신형이 불쑥 튀어나왔다.
말끔한 수트 차림에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무테안경.
너무나 익숙한 검 한 자루.
그리고 이름 명 자가 적힌 서적 한 권.
무신은 기겁했다.
“저… 최무신 님 되십니까?”
그날, 염라의 대리를 봤던 자.
1급 석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