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0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0화
새로운 것
흑라신검과 모용수결의 목덜미 사이의 간격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숨 한 번만 잘못 쉬어도 목이 날아가는 형국.
무신은 그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흑라신검을 거두었다.
본인이 졌다는데 굳이 더 들이댈 것도 없었다.
“허억. 허억.”
모용수결이 거친 숨을 토했다.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한가득이었다.
무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미심쩍다는 듯한.
그것이 쥐톨만큼도 없었다.
이제는 믿는 눈치였다.
아니, 못 믿으면 병신이었다.
“내, 내가 큰 실수를 했네.”
모용수결은 수십 년 무도를 걸어온, 어떤 의미에서는 무(武)의 장인이었다.
그런데 검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졌다.
심지어 그 검이 부러졌다.
더 볼 것도 없다.
그는 무신의 상대가 못 되었다.
자존심?
그 알량한 감정 따위 역시 생각할 것도 못 되었다.
한창 때의 그도 질 수준이었다.
“무례를 용서해 주게.”
가주와 분가 가주들이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도 장로들은 꿋꿋이 자세를 유지했다.
특히 모용수결의 경우에는 간단한 감사의 인사 한번 던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선화를 구해주어 고맙네’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를 따라 장로들도 은혜에 대한 답례를 했다.
“무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힘에서 밀리니까 태세를 바꾸는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무신은 대인배답게 행동했다.
모용가의 ‘진짜 은인’이 되기 위해서는 장로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 복병이 있었다.
“제가 고개를 들 낯이 없잖아요! 진짜 너무하세요!”
모용선화였다.
그녀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면서까지 모용수결에게 쓴소리를 냈다.
언뜻 들으면 꾸중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모용수결은 무어라 반박을 못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또 그가 무례를 저지른 게 사실인 탓이었다.
그는 재차 사죄를 구했다.
“날 용서해 줄 수 있겠나?”
“예?”
“이렇게 부탁함세.”
강호 서부의 절세의 고수.
무림맹에도 몸담았을 만큼 입지도 좋은 자가 자신에게 ‘간곡히’ 청하고 있으니 무신은 반대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모용수결에게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악감정이 씻은 듯 날아갔다.
모용수결은 지금,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있었다.
“애당초 용서할 게 뭐 있겠습니까? 장로께선 당연한 의구심을 가지셨을 뿐입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
진짜 본심을 드러내도 모용수결은 일부러 그렇게 말해준 것처럼 해석했다.
무신으로선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잠자코 있던 가주도 ‘실력만큼이나 인품도 훌륭하시군요’ 하며 거들어서였다.
대강 상황이 정리되자 모용수결이 넌지시 물었다.
“헌데 자네… 아니, 대협은 나이가 어찌 되시오?”
말투가 감쪽같이 바뀌어 있었다.
지칭도 극존칭이었다.
무신은 문득 팽영권이 떠올랐다. 그자도 비슷한 꼴을 보이다가 이렇게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다.
‘그쪽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려나.’
무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팽영권이 분명 무림맹에 보고를 한다고 했으니 이미 맹주 곽이천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곽이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신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회귀 전에도 숱한 대전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만큼 이번 사건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지.
어쩌면 정마대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회귀 전에는 없던 경우였다.
무신의 작은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으로 번지는 것이다.
“아, 스물일곱입니다.”
딴 생각에 빠져 대답할 것을 잊고 있었다.
무신이 얼른 답하자 모용수결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스, 스물일곱이라고?”
“예.”
“내 못해도 반백 년은 사셨을 줄 알았소.”
어디 가서 늙어 보인단 소리는 못 들어본 무신이었다.
하지만 모용수결의 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반백 년은 살아야 그 정도 무위를 쌓을 것 같아 한 말이었소.”
“그러셨군요.”
“혹… 반로환동을 하신 게?”
왜 안 나오나 했다.
이쯤 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무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역시. 반로환동까지는 아닐 것 같았소.”
역설적이게도 반로환동은 아니지만 그보다 수십 수백 단계는 높은 검신의 경지였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신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홀로 마청대와 혈사대와 허대건을 쓰러뜨렸단 말에 힘겨루기를 했으니 검신을 들먹이면 정말 칼부림이 날지도 몰랐다.
물론 칼부림이 나도 다 이길 자신이 있지만.
모용수결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얼굴로 말했다.
“스물일곱에 그와 같은 무위를 갖추다니… 출신지가 어디요? 소속 문파나 가문은 또 어디고? 아니면 아주아주 굉장한 사부를 두었나?”
“자리가 너무 복잡합니다. 일단 안으로 가 얘기하시지요.”
무슨 질문을 이렇게 물밀 듯이 쏟아내나 싶은 찰나, 가주가 적당히 끼어들어 중재했다.
모용수결이 아쉬움을 뒤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신은 그들을 따라 모용가 안채로 들어갔다.
모용선화가 그의 뒤에 붙어 속삭였다.
“기분 많이 언짢으셨죠?”
“아닙니다.”
예의상 해주는 말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모용선화가 ‘저희 장로들이 좀 그래요. 고지식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그냥 제멋대로 독불장군들이세요’ 하며 자기네 어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무신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의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반은 진심이었다.
무신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일전에도 말했듯 저 장로들은 모용가를 망치는 주범이었다.
“감사의 표시니 받아주시오.”
이야기는 길었다.
안채에 들어간 게 정오 무렵의 일이었는데, 다 끝나고 가주에게 사례를 받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무신은 두어 번 거절하다가 못 이기는 척 손을 벌렸다.
그의 손 위에 올려진 것은 갖가지 보석과 열댓 장의 전표였다.
마물의 보물로 이미 돈방석에 올랐으나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그는 십 수 년은 놀고먹어도 될 그것을 품에 집어넣고는 슬슬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애당초 이곳은 사례받자고 온 곳이 아니었다.
“헌데…….”
무신이 말끝을 흐리며 입을 열자 가주가 냉큼 반응했다.
“말씀하시오, 최 대협.”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우리 모용가문의 정통 심법이 어떤 것이냐고 하면, 그것도 알려줄 수 있소. 뭐든 물어보시오.”
정통 심법이란, 한마디로 비기.
금은보화보다도 더 귀한 것을 외부인에게 내놓겠단 것이다.
일이 의외로 쉽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조금 가볍게 입을 뗐다.
“본래 모용가하면 오대세가의 한 축이자 자타 공인 강호 최강의 세력 중 하나였잖습니까?”
무신은 특히 ‘강호 최강의 세력’이란 말을 강조했다.
가주가 착잡한 얼굴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랬지. 분명 그랬지.”
“어쩌면 그 이상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 말씀을 떠올려보면.”
“맞소. 남궁가도 꼼짝을 못 했으니.”
사실이었다.
한때는 남궁가도 억누를 만큼 모용가가 강호를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가 하면…….
무신의 고개가 모용수결에게 돌아갔다.
저 노인이 현역일 적이 모용가의 전성기였다.
‘그러고 보니 내 잘못 생각했군. 가주가 나한테 아무리 호의적이라도 저 노인 때문에 일이 쉽게 진행될 가능성은 적어. 결국 설득해야 할 사람은 저 노인이니까.’
무신은 좀 더 진중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헌데 지금은 왜 이렇게 위상이 떨어졌습니까?”
위상이 떨어졌다는 것.
민감한 표현이었으나 가주, 심지어는 모용수결조차 딱히 반박을 못했다.
사실이니까.
오대세가에서는 진즉에 추방됐고, 남궁가와는 이제 천양지차가 됐으니까.
가주가 쓴웃음과 함께 답했다.
“다른 가문들이 너무 커버린 탓 아니겠소.”
“다른 가문들이 너무 커버렸다…….”
“그렇소. 남궁가는 차치하더라도 당가나 팽가는 분명 우리보다 몇 수는 아래였거늘.”
마침 모용수결이 끼어들어 주었다.
무신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반대로 모용가가 퇴보했다고는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퇴보?”
되물은 이는 이번에도 모용수결이었다.
그의 얼굴은 어딘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가문, 비단 가문을 떠나 강호 내 모든 문파는 늘 지금보다 나은 이상을 추구합니다.”
“…….”
“아무리 오래 해먹은 전력이 있더라도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요.”
무신이 하려는 말의 의도를 알았는지 이번에도 대답은 모용수결이 했다.
“모용가가 기존 무공으로 만들어낸 옛 영광에 취해 새로운 무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거요?”
“직설적으로 하면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도 새로운 무공은 만들어지고 있었소. 허나 모용가는 기존 무공으로 모두 제압했지.”
모용수결이 조금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즉, 지금 우리 모용가가 밀려난 것은 순전히 사람의 탓이지 무공의 탓이 아니오.”
“가솔들이 기존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이다, 이것이군요.”
“그래, 그렇소.”
예상했던 답이었다.
무신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익히는 사람에 따라 숙련의 정도가 달라지는 무공이 좋은 무공입니까?”
“…….”
“모용가의 기존 무공은 그렇지 않다 생각합니다. 충분히 좋은 무공이지요.”
교묘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좋은 무공이란 것의 이점은 확실히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주는 것에 있었다.
“그렇다면 기존 무공이 좋은데도 왜 점점 퇴보하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새로운 것의 부재이지요.”
“…….”
“그저 제 개인적인 견해이니 너무 신경은 쓰지 마십시오.”
이미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모용수결의 미간에 잔주름이 쩍쩍 박혀 있었다.
무신은 슬쩍 가주를 흘겼다. 우습게도 기꺼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것이 가주는 수년 전부터 기존 무공을 변화시키자 의견을 낸 위인이었다.
그러나 모용수결에게 번번이 막혀 시작도 못 했다.
그것을 무신이 다시 끄집어내 준 것이다.
물론 오지랖이었다.
그냥 오지랖도 아니고 아주아주 지랄 맞은 오지랖이었다.
세상에 남의 가문 무공에 지적질하는 작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다 나중을 위해서였다.
모용가는 이미 실질적 아군.
아군의 세력을 키워놔야 훗날 더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어차피 가주뿐 아니라 분가 가주들도 반갑게 여기는 눈치였다.
무신은 애당초 그 점을 알고 이번 일을 계획한 것이다.
“고인물은 결국 썩게 마련입니다. 이미 썩은 후에는 아무리 깨끗한 물을 부어봤자 소용이 없지요. 모용가의 기존 무공이 그리될까 염려됩니다.”
“후… 사실 말이오.”
“말씀하십시오.”
“지금 최 대협이 한 말을 내 가주나 분가 가주들에게 수십 수백 번은 더 들었소.”
처음 들었다는 척 무신은 놀란 눈을 했다.
“그러셨군요.”
“허나 내 누누이 거절했지. 기존 무공에 무언가가 껴들어가는 게… 그래, 망쳐지는 것 같았소.”
역시나 그게 모용수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무신은 충분히 이해했다.
목이 텁텁한 듯 모용수결이 남은 차를 모두 들이키며 말을 이어갔다.
“헌데 최 대협까지 그리 말하니 생각이 달라지오. 과연 망쳐지는 것인가, 아니면 가꿔지는 것인가.”
“어찌 답을 내리셨습니까?”
무신의 물음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한 모용가의 가솔 모두가 모용수결의 입만을 주시했다.
가주의 목구멍에서는 꿀꺽 하고 긴장, 그리고 기대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장로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모용가 내에서 모용수결의 힘이 생각보다 더 셌군.’
무신은 남몰래 중얼거리며 가솔들을 따라 모용수결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잠시였다.
모용수결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가꿔지는 것이요. 기존 무공에 새로움을 더하는 것은.”
무신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