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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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9화
겨루기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강시술은 금술이었다.
그 악랄하다던 마교에서도 강시술을 쓴 경우는 전무했다.
회귀 전의 15년을 통틀어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몰라서 쓰지 않은 것이다.
‘알았으면, 분명 썼어.’
무신은 확신했다.
힘을 키우기 위해서면 제 장기도 훼손시키는 게 마교란 족속들이었다.
그들이 강시술과 같은 비기를 가만 놔둘 리 만무했다.
그래, 강시술은 금술임과 동시에 비기였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아주 특별한 것.
단지 정파는 정(正)을 무도(武道)로 삼기에 금술로 지정했을 뿐이었다.
무신은 거기서 고민했다.
자신은 힘을 키우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교인가, 아니면 도리를 지키는 정파인가.
답은 금방 나왔다.
그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가 가는 길은 그저 그가 가는 길이었다.
일곱 구의 활강시 시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다시 흥미에 젖었다.
그는 혈교 교도들을 강시로 만들겠단 괴이한 생각을 현실화하고 싶었다.
그게 마교와 다를 바 무엇이겠느냐마는, 그들이었다면 애꿎은 사람까지 죄 잡아다 강시로 만들었겠지.
그러나 무신은 아니었다.
오로지 혈교교도들만.
쓰레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놈들을 처리하는 것이니 어쩌면 달가워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무신은 벌써부터 기대에 젖기 시작했다.
교주나 부교주, 그리고 원로들을 죽여 강시로 만들면 그 힘은 가히…….
그의 눈이 다시 또 일곱 구의 활강시를 쫓았다.
강시는 저렇게 산 채로 제작하는 게 제일이었다.
생전의 힘과 기술이 그대로 보존되니까.
그는 ‘문제는 산 채로 잡아두기가 좀 까다롭다는 거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생각에 조금 더 정당성을 부여했다.
세력.
22만 년의 경험, 그리고 점차 내공을 증폭시키고 있다고는 해도 언제까지 홀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해전술에는 천하제일인도 얄짤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세력을 강시로 키우고 싶었다.
힘을 떠나 적어도 배신당할 걱정이 없다는 것.
같은 가문끼리도 뒤통수를 치는 강호라는 터울 안에서 그것은 굉장한 이점이었다.
‘마침 거점지도 필요한 참이었고.’
그는 오래지 않아 도착할 흑룡강을 떠올렸다.
혈교의 본거.
어쩌면 그곳이 그의 제 2의 고향이 될 것이다.
“…무사님?”
자신을 부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무신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모용선화가 다소 불안한 눈초리로 서 있었다.
“아, 모용 소저.”
“괜찮으세요?”
온몸이 피에 흠뻑 젖은 놈이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고 있었으니 그녀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아니, 미친놈으로 보였을지도 몰랐다.
무신은 얼른 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치만…….”
애당초 모용선화가 걱정했던 부분은 그의 피식피식한 웃음이 아니라 그의 온몸 가득한 피였다.
얼마나 다쳐야 저만큼 피를 흘릴까.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멀쩡했다.
너무도 멀쩡했다.
베이거나 잘리기는커녕 타박상 하나 없었다.
“말도 안 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모용선화가 무신을 딴 세상 사람처럼 바라봤다.
“대체 무사님은 얼마나 강하신 거죠?”
“음…….”
모용선화가 열 세 구의 시체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들 혈사대와 활강시라면서요. 심지어 허대건이 대장으로 왔고.”
아무래도 뒤에서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
“특히 허대건은 혈교 서열 1위의 고수잖아요.”
“예, 그렇지요.”
“진짜…….”
“예?”
“지금 문득, 그 말씀도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슨 말이요?”
모용선화가 진중한 눈으로 말했다.
“저승에서 22만 년 동안 폐관수련하셨다는 거요.”
자신이 말하고도 우스웠는지 그녀는 푸훗 웃었다.
“너무 당당하게 그러셔서 순간 진짜인 줄 착각했었어요.”
“하하.”
“그런데 정말 그렇게 착각이 들 만큼 강하셔요.”
강하다는 말은 무인에게 언제나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회귀 전 15년을 약자로 살았던 무신에게는 특히 더.
무신은 그 말을 무림맹주쯤 되는 강호 최강의 고수들에게 들으면 더 기분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꽃밭이 온통 피에 얼룩져 있었다.
붉은 꽃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좀 기분이 나아졌지만, 잠깐이었다.
이내 곧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새 시체가 말라붙으면서 비릿한 냄새도 함께 뒤섞였다. 그 주위에 꼬인 날파리야 말할 것도 없었다.
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림에 먹물이 쏟아진들 이보다 짜증스러울까.
그런데 그도 또 잠시였다.
“가실까요, 무사님?”
모용선화를 보니 기분이 싹 풀렸다.
이번에는 일시적인 게 아니었다.
‘이 꽃은 멀쩡하군.’
무신은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말에 올라탔다.
그녀는 이미 그의 뒤에 앉아 있었다.
“죄송해요. 둘이 타면 불편하실 텐데.”
“뒤에 기댈 거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합니다. 그리고 죄송하다니요. 소저가 잘못한 게 아니잖습니까.”
타고 온 말.
호위로 딸려온 팽가의 무사들.
혈사대와 허대건보다도 먼저 죽었으니 무신과 모용선화는 어차피 한 말을 탔었어야 할 신세였다.
친구들 죽음에 자극을 받았는지 말은 거침없이 달렸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겠단 몸짓이었다.
무신은 놈이 조금 안쓰러웠다.
‘모용가에 가거든 건초를 양껏 먹여줘야겠어.’
그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시야를 멀리 던졌다.
지평선 넘어 천진의 전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었다.
천진.
천진성.
개방의 거점지가 되는 곳이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아무런 연고도 없었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배춘삼이 준 패(牌)가 있었다.
혈교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천진에도 한번 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좀 더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에 따라 그의 허리춤도 좀 더 세게 조여졌다.
모용선화의 손이었다.
***
신강 북부.
예정보다 길어지는 교주의 출타로 인해 그곳의 최상석에는 아직도 부교주 마정태가 앉아 있었다.
임시라도 교주직을 맡는단 것에 처음에는 기뻐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뭐야?!”
백야평야에서 마향대가 궤멸한 게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일이 아직 다 마무리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일이 터졌다.
“없으면 얌전히 복귀할 것이지 왜 들쑤시긴 들쑤셔!”
“말씀드렸다시피 정략혼인을 위해 하북으로 이동하던 팽가와 모용가 가솔들을 근처 녹림 세 채가 쳤는데, 마청대가 그 녹림 세 채를 마향대 궤멸의 원흉으로 본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하필 팽가를 건드리느냔 말이다!”
모용가야 한풀 꺾였다지만 팽가는 여전히 오대세가로 굳건한 정파의 거물이었다.
그런 곳이 당했으니 이어진 전개야 뻔했다.
“곽이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라질!”
“무언가 수를 쓰지 않으면…….”
무림맹주 곽이천.
그가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큰 싸움을 벌이겠단 뜻이었다.
큰 싸움이 무엇인지야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마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어.”
“어찌 하실 겁니까?”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시면…….”
마정태는 몸을 일으켰다.
“발 빠른 놈들로 서넛만 꾸려. 교주님을 뵈러 간다.”
***
요령 모용세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던 그곳의 가주가 무신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모용선화가 ‘…해서 오기 직전에는 혈교의 혈사대와 활강시, 그리고 허대건을 잡으셨어요. 전 두 번이나 최 무사님께 목숨을 빚진 셈이에요’ 한 직후였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신하가 황제를 대하는 태도도 이렇게까지 각이 잡혀 있진 않을 것이다.
무신은 난처해졌다.
“이만 됐습니다. 고개 드십시오.”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주는 몸을 일으킬 줄을 몰랐다.
모용세가만큼 은혜를 중시하는 곳도 없다더니 실제로는 더했다.
이러다 분가 가주들까지 죄다 모여…….
설마는 곧 현실이 되었다.
요령 각지에 흩어져 있던 모용세가의 거물들이 그새 소문을 듣고 우르르 찾아왔다.
그들의 반응도 가주와 똑같았다.
어떤 이는 허리를 굽실거렸고, 어떤 이는 금품을 내밀었으며, 어떤 이는 석고대죄하듯 아예 엎드리기도 했다.
물론 비단 모용선화를 구해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홀로 마청대를 잡아?”
“마청대뿐이야? 혈사대와 활강시도 잡았대!”
“그게 정말이야?”
“심지어 혈사대와 활강시를 지휘한 자가 허대건이었다고.”
“서열 1위의 그 허대건?”
“그래.”
고수를 만나게 되거든 무조건 예를 갖추는 게 강호의 법칙이었다.
아이가 어른을 공경하듯 하수가 고수를 공경하는 아주아주 당연한 법칙.
모용가의 가솔들도 거기에 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과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냐는 의문점을 던지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장로들이었다.
“선화야, 네가 뭘 잘못 본 게 아니냐?”
“아니에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허허.”
모용선화가 확실한 대답을 주는데도 무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미심쩍었다.
무신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가장 연륜이 있어 보이는 장로가 팔을 걷어붙이며 앞으로 나섰다.
“자네, 나와 힘겨루기 한번 해볼 텐가?”
힘겨루기.
하성운이 하북에서 하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칼부림 나는 것도 아니고 못할 게 무어 있겠느냐마는, 지금 상황에서는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은인을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바닥으로 내팽개치려 하고 있으니까.
보다 못한 가주가 나섰다.
“왜 이러십니까. 그만하십시오.”
“그만은. 내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대개의 가문에서 장로란 자리는 일선에서 물러난, 나쁜 말로 하면 영향력이 사라진 자들이 앉는 곳이었다.
그러나 모용가는 다르다.
그들은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어 장로라 불릴 뿐이었다.
그들의 입김은 아직도 모용가를 쥐락펴락한다.
가주가 꼼짝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게 그 방증이었다.
‘모용가의 몰락이 이 노인네들 때문이기도 하지.’
무신은 쓴웃음을 삼키며 장로를 따라 한발 앞으로 나섰다.
“괜찮습니다. 힘겨루기가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모용선화가 뒤에서 ‘죄송해요, 무사님… 이러려고 모셔온 게 아닌데…’ 하고 낙담했다. 죽을죄를 지었단 얼굴이었다.
무신은 이번에도 괜찮다는 말로 일관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이었다.
그는 지금, 오히려 흥분될 지경이었다.
모용수결.
그와 힘겨루기를 할 저 노인은 한때 강호 서부를 주름잡았던 절세의 고수였다. 벌써 반백 년도 더 지난 얘기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그때의 기백마저 사라지겠는가.
그는 주름살 가득한 손을 맞잡았다.
생긴 것과 다르게 묵직한 힘이 철철 넘쳤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모용수결이 ‘그럼 시작하지!’ 하고 외치는 순간, 모용수결을 그 자리에 뒤로 넘어뜨렸다.
노인 공경 따위는 없었다.
모용수결이 먼저 승부를 제안했으니 힘겨루기란 놀이의 정당한 규칙에 따른다.
그뿐이었다.
담담히 서 있는 그와 볼썽사납게 너부러진 모용수결.
두 사람 주위에 흐르는 것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딱 한 명을 빼고는.
“거봐요! 제가 맞다고 했잖아요!”
아직은 눈치라는 것을 잘 모를 나이의 모용선화가 그렇게 소리쳤다. 심지어 ‘장로께서 말도 안 되는 놀이를 제안한 거라구요!’ 하며 모용수결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눈치 없는 모용선화의 잘못이 아니었다.
애당초 이 일을 자초한 이는 모용수결이었다.
“…….”
모용수결이 검을 빼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닌 척하고 있으나 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이런 식은 내 주력이 아니라서 말이지. 검으로 한번 승부를 보는 게 어떤가? 아, 그냥 재미 삼아 해보잔 걸세. 방금 힘겨루기를 했듯이.”
“좋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모용수결을 뜯어말릴 작정이었던 가주는, 무신이 흔쾌히 대답하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무신의 몸에서 이가 떨릴 정도로 시린 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주도 본 것을 모용수결이 못 봤을 리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어, 없던 승부로 하…….”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 법이었다.
형형한 흑빛을 내는 검이 그의 잿빛 검을 그대로 두 동강 냈다.
그 뒤로 남은 것은 겁에 질린 맨몸뚱이였다.
그는 다시 한번 다급하게 외쳤다.
“져, 졌네! 내, 내가 졌어!”
입을 조금만 더 늦게 벌렸으면,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